후쿠시마 정화조 사건 - hukusima jeonghwajo sageon


안녕하세요 ~ 소망입니다.

오늘의 무서운 이야기는 바로

 일본의 미제사건 후쿠시마 정화조 의문사 사건 입니다.

1989년 일본 후쿠시마 최악의 미제 살인 사건으로유명한데요.

처음에는 변태 남성의 어처구니 없는 죽음으로 봤지만

이 남성이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점과 납득하기 어려운 당시 사건 상황으로

수사는 난항에 빠지게 되죠.

그럼 후쿠시마 정화조 사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후쿠시마 정화조 의문사 사건

오늘의 무서운 이야기 실화

▼ 1989년 일본 후쿠시마현 다무라군 미야코지촌의 한 마을에서 유래없는 황당한 사건벌어진다.

타무라군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여교사는 업무를 마치고 학교 옆 건물인 여교사 숙소의 화장실로 향했는데

일을 보려던 여교사는 화장실 변기 속에 뜬금없는 남성의 구두를 보게 된다

구두가 보이자 매우 놀란 여고사는 변기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사람의 발 같은 것을 발견한다

여교사는 기겁을 하며 학교로 뛰어갔고 학교안에 남아있던 교감과 동료 교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학교측의 정화조에 사람의 발이 있다는 황당한 신고에 경찰관과 소방관들은 급히 초등학교로 출동했다

정말로 변기 속 정화조안에 사람의 시신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경찰관과 소방관들은 정화조 안 시신의 발을 잡아당겨 시신을 꺼내보려 했으나

정화조가 너무 좁아 꺼낼수가 없었다

마지막엔 중장비를 동원하여 화장실을 부수고 정화조를 파내 깨부순 후에야 시신을 꺼낼 수 있었다.

후쿠시마 정화조 사건 - hukusima jeonghwajo sageon

 (후쿠시마 정화조 의문사 사건 현장)

시신을 정화조에서 꺼낸 후 확인해보니 여교사 숙소에서 10여분 정도 떨어진 마을에 사는 26살의 젊은 남성이었으며 당시 후쿠시마는 굉장히 추운 날씨였는데도 윗옷을 벗은 채 죽었던걸로 파악됐다.

벗은 윗옷은 돌돌 말아서 가슴에 안고 쥐고 있던 상태였다.

시신을 검사하려 했지만 오물 때문에 쉽지 않았고 결국 여러번에 걸쳐 오물들을 씻어낸 뒤에 다시 소방서까지 옮겨지고 한번 더 씻어낸 후에야

의사가 시신을 검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검사 결과 시신은 팔꿈치와 무릎에 조그마한 긁힌 상처를 제외하곤 별다른 외상조차 없었고 결국 의사가 내린 사인은 저체온증과 흉부순환장애로 내려졌다.

다시 말하자면 타살이 아닌 자의로 좁은 정화조로 들어가서 오물을 뒤집어 쓴 채로 얼어 죽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찰과 의사의 소견에 마을 주민과 유가족들은 크게 반발했다.

그 이유는 이 남성의 평소 행실로 봐서 도저히 납득조차 안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남성은 생전 고등학교때 밴드 활동을 했고 성격 또한 친근하고 상냥해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굉장히 많았으며,

 졸업 후에는 후쿠시마 우너자력 발전소 유지보수 회사에 직원으로 입사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완벽했던 남성이 예의까지 발랐다고 하니 마을 사람들은 도저히 이 남성이 여자 화장실을 훔쳐보려고 자의로 정화조에 들어가 죽었다는걸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경찰의 수사를 믿을 수 없다하여 마을 주민 4천여명이 경찰에 재수사를 촉구하는 서명서를 제출할 정도였다.

사건의 의혹 ?

의혹 첫번째, 겨우 여교사를 훔쳐보려고 좁은 정화조까지 숨어들어간다는 판단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

청년이 본색을 감춘 변태적인 성욕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발전소에서 일할 정도의 두뇌를 가진 사람이 정화조에 숨어들어간다는 발상을 했을까 ?

의혹 두번째, 처음 여자 화장실 변기에서 발견된 구두 한짝은 찾았지만 문제는 다른 한짝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경찰의 결론대로 이 남성이 여자 화장실을 보고 싶은 나머지 정화조에 숨어들었다면 나머지 다른 한쪽의 구두는 정화조에서 발견 되는게 맞다.

하지만 다른 한쪽 구두는 남성의 집 근처 제방에서 발견 되었다.

남성이 신발을 한짝만 신고 여자화장실을 보러 정화조 안으로 숨어 들었다 ? 이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일인가 ?

의혹 세번째, 후쿠시마는 일본 북부 지역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2월말 가장 추운 시기였고 그런 추위속에서 여교사를 훔쳐보려고 윗옷까지 벗고 정화조안으로 들어갔다는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의혹 네번째, 남성의 죽기전 행적이 불분명하다.

검안 결과 시체의 굳은 정도로 보아 남성의 사망 시기는 시신 발견 이틀전(26일)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경찰이 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행적은 24일 이후부터 불명했다고 한다.

남성은 23일 선배의 송별회에 참석했고 그 다음날(24일) 새벽 1시에 술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간 청년은 오전 10시 쯤에

아버지에게 어딜 다녀오겠다 하곤 그 이후 행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남성의 승용차만이 여교사 숙소 근처에서 발견 되었기에 적어도 이 근처에서 누군가를 만나려 했거나 볼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용의자가 있을까 ?

마을에서 인기가 많았던 젊은 청년의 죽음에 마을 사람들은 선거 관계자를 의심했다.

당시 이 마을에는 촌장 선거가 코앞이었는데, 이 남성은 한 촌장 후보측으로부터 자신을 옹호하는 연설을 부탁 받았다.

그러나 선거의 과열 양상으로 선거판에 염증을 느낀 남성은 거절을 했고 이로 인해 선거 관계자에게 원한을 사 정화조에서 굴욕적인 죽음을 당한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연설의 거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는 건 무리한 과대 망상이라는게 정설이다.

다른 한편으론 시신을 처음 발견한 여교사와의 관계에 포커싱했다..

이 여교사와 남성은 생전 알던 사이였는데 여교사의 남자친구가 이 남성과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남성이 살아 있을 때 여교사는 지속적인 장난전화에 시달렸고 청년과 남자친구가 여교사에게 걸려온 장난 전화를 녹음한 뒤 경찰에 신고 했지만

경찰은 장난전화의 범죄성이 미미하여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근데 그때 남성은 여교사에게 장난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이 간다고 말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청년이 행적을 감춘 24일에 장난전화를 건 사람을 만나러 갔다가 그 사람에게 제압 당해 원한이 있던 의문의 남성이 정화조에서

굴욕적인 죽음을 선사한게 아니냐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음모론

1989년에 발생한 후쿠시마 정화조 사건이 미제로 남은채로 세월이 흘러 갔다.

그런데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이후 원전을 반대하는 측에 의해서 재조명 되었다.

이들에 따르면 1989년 1월에 후쿠시마 제2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일어났었는데

사실 1988년 말기부터 이미 재순환 펌프에 이상이 있고 사고가 날 수 있다는걸 감지했었으나 이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원자로를

운영한 결과 발생한 사고라고 주장하엿다.

당시 이 원자로의 책임자는 본래의 다른 책임자들이 신년 휴가를 간탓에 대신해서 원자로를 봐주고 있던 상황이었다.

엄밀하기 말하자면 대신 원자로를 봐주고 있었고 애초에 펌프에 이상이 있었던 것이니 이 책임자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책임을 피할 순 없었다.

결국 이 책임자는 도쿄전력 본사에 소환 되어 추궁 받고 후쿠시마로 돌아가는 길에 우에노역에서 투신을 해 사망했다.

그런데 이 투신을 한 책임자는 정화조에서 의문사 한 남성의 동료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화조에서 의무사한 남성은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책임을 지고 결국 투신을 한 동료의 죽음을 파헤치려 하다가 결국 도쿄전력이

보낸 암살자에게 정화수에서 죽는 굴욕적인 죽임을 당한것 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화조에서 죽은 남성의 죽음에 대해선 현재까지 추측만이 있을뿐이다

이 남성의 죽음은 발전소와 관련이 있을까 ? 아니면 정말 극심한 변태 성욕을 가진 사람이었을까 ?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을까 ?

지금까지 무서운 이야기 실화

후쿠시마 정화조 의문사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