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를 확인한 후 준비해야 할 서류 목록은 Show 이외에도 종교재단 사립대학은 또한 분야마다 요구하는 스펙이 워낙 다르다보니 이런 기록을 남기는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도전이니까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 과정에서 얻고 배운것들을 기록해놓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2015년포닥을 나오자마자 하지 말아야할 짓 중 하나가 임용 지원이다. 초반에 자리 잡을려면 신경써야 할 일이 많은데, 임용 지원을 시작하면 마음까지 들떠서 집중이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1. S여대 화학과: 계산화학 대표논문: J. Comput. Chem. [2015], Inorg. Chem. [2014], J. Comput. Chem. [2013] 연구계획서: DFT 방법론 개발, Genetic alogirthm을 활용한 물질 디자인 우리는 너를 원하고 있다!라는 것처럼 보이는 공고가 올라왔다. “계산화학”. 그때는 몰랐다. 나 말고도 계산화학을 하는 사람이 수십명은 더 있다는 것을… 거기다가 소식통에 따르면 실험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더 좋겠다는 말까지 있었다. 실험 페이퍼는 없었지만 포닥하는 동안 실험을 조금 배우고 있었던지라, 김칫국을 아주 통째로 들이켰다. 첫 지원, 첫 광탈. 뛰어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모실 수 없게 되어서 유감이라는, 굉장히 짜증나는 이메일을 받았다. 2016년미국 포닥와서 쓴 첫 논문(J. Phys. Chem. C)이 9월에 출간이 되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공고는 계속 올라왔고, 논문 추가 없이 총 세군데 어플라이를 하였다. 2. K대 화학과: 기억안남 대표논문: J. Comput. Chem. [2015], Inorg. Chem. [2014], J. Comput. Chem. [2013] 연구계획서: 들뜬상태 금속착화합물, 멀티스케일 바이오시뮬레이션 바이오의료헬스클러스터 분야라 정말 기대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이때 포닥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해서든 한국에 가고 싶었던 참이라, 화학이라는 글자만 보고는 세부분야가 바이오건 뭐건 그냥 질렀다. 연구계획서에 양자화학 시뮬레이션으로 바이오 물질을 다룰 수 있다고 말도 안되는 포장을 하고… (학부 때 저런 개소리했을 때 교수님 표정을 봤으면서…) 당연하게도 탈락 이메일을 굉장히 빨리 받았다. 그래도 별다른 임용지원 포탈 시스템을 만들어 놓지 않고, 학과장님께 이메일로 바로 쏘는 시스템이라 편리했다. 3. Y대 화학과: 화학 전분야 대표논문: J. Comput. Chem. [2015], Inorg. Chem. [2014], J. Comput. Chem. [2013] 연구계획: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사리 분별력도 완전히 사라졌었나보다. 대표논문 저거 세 개로 Y대를 지원하다니. 모든 논문의 요약본을 요구해서 서류 준비하는 데 너무 힘들었다. 인터넷으로 접수 마지막 과정에서 “모든 서류를 인쇄해서 우편으로 보내시오”라고 떴다. 인터넷 접수는 왜 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이해를 못한 만큼, 학교에서도 왜 이런 놈이 지원했는지 이해 할 수 없었나보다. 훗날 이 자리를 꿰찬 사람의 스펙을 들어보니 탈락 통보조차 하지 않은 교무처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4. S대 화학과: 화학 전분야 대표논문: Nat. Commun. [2016], Inorg. Chem. [2014], J. Comput. Chem. [2013] 연구계획: 머신러닝, 태양전지 작성할 서류가 가장 많았던 대학이었던 것 같다. 인적사항 2천자, 학위논문요약 2천자, 지원동기 및 연구계획 2천자, 연구업적 2천자, 본인의 강점 5가지 500자, 강의가능교과목 40자. 내 인적사항을 정말 읽어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여기저기서 하도 머신러닝을 많이 하길래 나도 연구계획서에 머신러닝을 하겠다고 썼다. 해본적도 없으면서 무슨 베짱이었는지 모르겠다. 진짜 이건 지금봐도 0점짜리 연구계획서다. 대표논문으로 J. Comput. Chem. [2015] 대신 Nat. Commun. [2016]을 넣었다. 서류에서 하도 떨어지니까 혹시 공저자건 뭐건 네이처면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말도 안되는 짓을 저질렀다. 이정도면 광탈당해야 마땅한 것 같다. 2017년ACS Phys Young Investigator Award를 수상하였다. ACS니까 공신력도 있고, 포닥들끼리 경쟁한 상이라서 나를 포장하기에 좋은 상이었다. 실적 입력할 때마다 수상실적이 비어있어서 썰렁하던 참에 도움이 되겠다했는데, 시상식은 8월말에 있었던지라 E여대 지원할 때부터 써먹을 수 있었다. 이맘때부터는 미국에 남아야겠다는 마음이 부쩍 많이 들기 시작했다. ACS에선 상을 받았는데 한국에서는 서류도 통과못할 정도면 과연 한국에는 내자리가 있는걸까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교수님께도 미국대학에 어플라이할 생각이다고 말씀을 드리고 교수님과 같이 연구계획서를 쓰기 시작했다. ACS에 낸걸 보완해서 네장짜리 research statement를 작성하고, 한장짜리 teaching statement도 준비해놓았다. 2017년 7월 중순에 논문 두 개를 추가했다. 1저자 하나, 공저자 하나. 특히 내가 1저자 논문이 꽤 임팩트있는 저널 (Journal of Physical Chemistry Letters)에 출간되어서많은 도움이 될거라고 형들이 격려해주었다다. 공저자 논문은 이미 많았기 때문에 한 편 더 추가하는 게 큰 도움은 되지 않은 것 같다. 5. K대 화학과: 물리화학 대표논문: J. Phys. Chem C [2016], J. Comput. Chem. [2015], Inorg. Chem. [2014] 연구계획: 태양전지, TADF ACS 상을 받고 난 직후에 올라온 공고라 나름 기대를 했지만 서류 2단계 심사에서 떨어졌다. 아는 형이 K대에서 “실험”물리화학을 찾는다고 하여서, 나 여기서 레이저 실험도 했고 전기화학 실험도 할줄 안다고 열심히 포장을 했지만, 실험논문 paper가 없었던 게 치명타였던 것 같다. 같이 코웍을 많이 한 교수님이 계셔서 그래도 혹시나 도움이 되지 않을까했는데, 그게 오히려 악재였던 것 같다. 코웍을 많이했다는 것은 그만큼 연구분야가 겹친다는 말이니까 대학 입장에선 비슷한 연구하는 사람을 둘이나 데리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원서, 교육계획서, 연구계획서, 학위논문, 대표논문을 각각 5부씩 인쇄해야해서 힘들었다. 다 인쇄하고 나니까 박스 한가득이었다. 날짜가 촉박하여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동생이 직접 다녀왔다. 그래서인지 탈락 소식을 듣고나서 더 속상했다. 6. G대: 화학과 대표논문: J. Phys. Chem C [2016], J. Comput. Chem. [2015], Inorg. Chem. [2014] 연구계획: 태양전지, TADF 지금까지 지원한 대학들 중 연구환경으론 가장 좋아보이는 대학이라 정말 가고 싶었다. 레이저 실험을 같이 할 교수님도 계셔서, 운만 받쳐준다면 좋은 논문을 많이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대표논문 선정하는데 뭔가 입맛이 쓰렸다. 연구계획서/교육계획서를 자유형식으로 요구한 덕분에 써 놓은걸 그대로 냈다. 하지만 결과는 입구컷. 동생이랑 뉴욕 여행가는 날 아침에 이메일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미국 지원을 결심했던지라, 미국에서 훨씬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진 않았다. 7. E여대 과학교육과: 물리화학/유기화학 대표논문: J. Phys. Chem. Lett. [2017], J. Phys. Chem C [2016], J. Comput. Chem. [2015], Inorg. Chem. [2014], J. Comput. Chem. [2013] 연구계획: 태양전지, TADF
동생과 함께 그랜드캐년가는 버스안에서 형들한테 E여대 과학교육과에 물리화학/유기화학 공고가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학과만 생각했지 과학교육과는 생각해본적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형들의 충고를 따라 일단 내보기로 했다. 워낙 서류에서 광탈을 많이 했던지라, ACS 수상실적, J. Phys. Chem. Lett., J. Phys. Chem. C 등 논문 두 편을 추가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언제 서류전형 통과 발표가 난다고 따로 말을 해주진 않았지만, 작년 공고를 보니 대략 언제쯤 발표나겠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날이 되고 눈을 뜨자마자 카톡방을 보니, 같이 지원한 형은 서류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그 형이 나보다 실적이 훨씬 좋았기 때문에 나는 이번에도 광탈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조회를 해보니 합격을 축하한다는 메세지와 함께 2차 면접 일정이 나왔다. 임용은 정말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싶어서 자는 동생을 깨우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하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난리를 쳤다. 이제 고작 한 고비 넘었을 뿐인데 마음은 이미 오피스 안에 가 있었다. 2. 면접심사 처음에 온 면접일정 안내문에는 ‘학부 유기화학에서 열역학 법칙을 설명하는 강의 10분 / 연구결과 및 계획 10분’ 발표 준비를 해달라고 했다. 유기화학에서 열역학 법칙? 그럴꺼면 그냥 유기화학 뽑는다고 하지 왜 나한테 저런 짬뽕스러운 걸 시킬까 투덜거리며 도서관에 가서 여러종류의 유기화학 책을 훑어봤다. 물리화학과 유기화학을 짬뽕시킨 스토리를 짜고 나니까, ‘물리화학에서 열역학 법칙’이라고 정정 이메일이 왔다. 스토리 다 만들어놨는데 왜 바꾸냐는 투덜거림이 나왔지만, 다행이라는 마음이 훨씬 컸다. 열역학 법칙 강의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0법칙부터 3법칙까지, 총 네 개의 법칙을 10분 안에 설명하려니까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솔직히 0법칙은 잘 몰랐고, 2법칙은 다양한 베리에이션 중 하나만 알고 있어서 열역학 법칙 네 개를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 수 있는 흐름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서류접수 때 연구계획서는 2천자로 줄인걸 제출했다. 한글과 영어를 혼용해서 쓰다보니 별 내용 쓰지 않았는데 2천자가 금방찼다. 그래서 내용이 너무 두루뭉술한 것 같아 full research statement를 따로 준비해갔다. 영어로 쓴 걸 그대로 내면 짧은 면접 시간안에 아무도 안 볼것 같아 한글로 번역을 했다. 면접 하루 전날, teaching statement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모든 대학에서 서류접수 과정에서 teaching statement를 요구하는데 여기는 과학교육과인데도 따로 요구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과학교육과니까 교육철학에 대한 질문이 무조건 나올 것 같아서, 전에 써 놓은 거에다가 강의가능 교과목과 신설교과목을 추가해서 냈다. 나도 영어쓸줄 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이건 영어로 써놓은걸 그대로 냈다. Thermodynamic lecture/연구발표 면접에서 받은 질문들과 나의 답변을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3. 총장면접 내가 몇 순위인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들러리라도 열심히 준비하면 뒤집을 수 있고, 내가 1순위라면 그것을 확고하게 굳혀야겠다는 마음으로 최대한 열심히 준비했다. 20분간 총장님이랑 이야기하게 될텐데 내가 아무것도 준비해가지 않으면 굉장히 상투적인 대화가 될 것 같았다. 자기소개 해봐라, 어떤 연구를 하는가 등 총장님의 질문에 내가 끌려다녀서 내가 원하는 말을 다 못하고 나올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한장짜리 personal statement를 준비해서 드리면, 아무래도 그걸 위주로 질문을 하게 될테고 나를 좀 더 강하게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해외/국내 가릴 것 없이 대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연구, 교육, 그리고 서비스(봉사)였다. 지금 보니까 당연한 말 같은데, 처음에는 뭘 어떻게 적어야할지 조금 난감했다. Personal Statement Research Interest, Fund for Research, Education, Service 네 개의 주제로 personal statement 작성했다. 굳이 연구를 두 개의 주제 Interest와 Fund로 나눈 것은, 연구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ACS 상 받은걸 강조하고 싶었고, 대학에서 fund를 어떻게 수주해올 것인지에 관심이 많다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E여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총장님 인사말, 교훈, 인재상 등 모든 걸 싹 다 인쇄해서 읽어보았다. 이 학교 목표에 맞는 연구를 하겠다고 해야 좋아할 것이고, 이 학교 교훈에 맞는 인재를 키우겠다고 해야 좋아할테니, 어떤 학교인지부터 알아야했다.
예상질문 리스트 이 외에도 나올만한 질문거리를 리스트로 만들어서 정리했다. 일단 과학교육과니까 교육철학에 관한 것을 불어볼 것 같았다. 막연하게만 떠오르고 잘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연구실 누나가 알려준 장하석 교수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가 큰 도움이 됐다. 그 다음으론, 교육 목표에 성평등을 달성하기 위해 일하는 개척자를 양성한다는 말이 있어서 성차별, 성평등 관련 부분에 답변 준비를 열심히 했다. 아무래도 여대니까 저런 부분의 질문이 필연적으로 나올 것 같았다. 친구가 추천해준 손아람 작가의 세바시 강의가 큰 도움이 됐다. 성차별의 구조적 문제와 거기서 파생되는 역차별 문제를 비교적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이 외에는, 연구분야 소개, 연구계획 개요, 연구계획 세부, 연구계획 관련 산업 현황, 인공지능 설명, 4차산업시대 사람의 역할, 공동연구하고 싶은 교수님, 대안교육, 펀딩계획 세부, 논문계획 세부, 교육철학, 학교학과발전 방안, 공개강의, 학생지도 방법, 봉사활동, 과학도서, 자기소개, 장점, 단점, 조기졸업한 이유, 감명 깊게 읽은 책, 리더십 사례, 취미, 구성원간 신뢰회복을 위한 방안, 과학교육과에 대한 정보, 큰 규모의 연구실을 운영할 수 있는 방안, 과학교육과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E여대에 지원한 이유, 과학교육과 지원한 이유, 마지막 한마디, 기독교 신앙, 성적관리, 롤모델, 여학생, 힘들었던 일, 한국에 지원하는 이유, ACS 상은 어떤것인지, 연구의 좀 더 큰 그림, 경력 3년동안 지원한 곳은 없었는지, 과학교육과 진선미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우리나라 과학 교육의 문제, 미래사회에서 교사의 역할, 자율학기제 등에 대한 답을 준비했다. 실전 전날 친구집에서 잘 준비를 하는데 학과장 교수님께 카톡이 왔다. 한국에 왔는지 체크하시고, 내일 면접 시간에 늦지않게 오라고 하셨다. 내 합격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니까 저런 안부 카톡에 답장보내는 것도 엄청 신경이 쓰였다. 너무 바로 읽으면 폰 붙잡고 사는 놈 같고, 답장이 너무 늦으면 연락 잘 안되는 답답한 놈 같고. 당일 친구와 함께 일찍가서 면접장소를 확인하고 나오는데 총장님을 보았다. TV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셨다. 하지만 당황해서 인사는 하지 못하고 그냥 나와버렸다. 훗날 이게 어떤 나쁜 결과를 초래하진 않을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수 많은 면접자 중 하나라고 생각하셨겠지… 까페에서 대기를 하다가 3시 20분쯤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나 빼고 전부 여자가 우루루 타니까, 내가 꼭 바다위에 떠 있는 섬 같아서 위화감이 들었다. 까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긴 했는데 거긴 공간도 넓고 친구랑 함께 있어서 그런 기분이 덜 들었던 것 같다. 면접 장소엔 학과장 교수님이 미리 와 계셨다. 내가 과학교육과 첫 번째 면접이라서 학과장님도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이런저런 날씨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내 차례가 되어서 면접에 들어갔다. 실제 면접장 분위기는 굉장히 차가웠다. 총 여섯 분이 계셨다. 총장님이 가운데 계시고, 오른쪽에 교무처장님, 학생처장님이, 왼쪽에는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 교수님, 총무처장님, 과학교육과 학과장님이 앉아 계셨다. 나는 총장님의 맞은 편에 앉았다.
총장님 질문이 끝나고 교무처장님의 질문 순서로 넘어갔다. (사실 이때는 누가 누군지 몰랐다. 지금와서 찾아보니 교무처장님이셨다)
대략 15-20분 정도 면접 본 것 같다. 총장님 질문을 저렇게 간단하게 복기했지만, 실제로는 앞뒤에 살을 많이 붙여서 질문하셨다. 이런게 내공인가 싶었다. 분위기가 굉장히 딱딱해서 준비해 간 마지막 한마디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뒷걸음질 쳐서 빠져나왔다. 친구가 적어준, 내 마음에 정말 쏙 드는 킬링멘트였는데… 억지로라도 타이밍을 만들어서 말하고 나올 걸 그랬다. 4. 결과 같이 최종면접에 올라간 친구가 임용되었다. 손에 잡힐 것만 같았던 것이 사라져서 너무 속상했다.면접장소 미리 확인하러 갔다가 총장님 만났을 때 인사를 안한게 문제인걸까, 만 29세인데 이루어 놓은게 많네요라는 코멘트에 만 30세입니다라고 말대꾸를 한게 문제였을까. 너무 틀에 박힌 정형화된 내 답변들이 문제였을까. 그 이유만이라도 알려주면 좋을텐데… 가족들이 실망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가족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위로해주어서 정신줄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꼭 더 훌륭한 연구자가 되어서 나를 놓친 것을 후회하게 해주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8. J대 화학교육과: 계산화학 대표논문: J. Phys. Chem. Lett. [2017], J. Phys. Chem C [2016] 연구계획: 태양전지, TADF 내가 언제부터 교육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E여대 과교과에 이어 2연속 사범대에 지원했다. 여기는 분야가 “이론 및 계산화학”이라고 내 전공을 콕 찝어가지고 나와서 괜히 더 마음이 설렜다. E여대 면접을 마치고 친구들과 진탕 술을 먹고 나서 서류를 준비했다. 다행히 교원공채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서 실적 입력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또 양자방 연구실 사람들의 도움으로 인쇄하는 것까지 무난했다. 다만, 논문의 질을 JCR 퍼센테이지 기준으로 10 % 안이면 S등급이라고 300 %, 그 밖은 A등급으로 100 %만 인정해주는 식으로 평가한다. Impact factor로 논문을 평가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거기다가 마음대로 10 % 안이면 S등급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더 최악이었다. 지원접수증을 보니 006-01-003이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앞의 세자리는 대학코드, 중간의 두자리는 학과, 마지막 세자리는 지원자 숫자인거 같다. 사범대학-화학교육과-3번째지원자란 의미로 추정된다. 인터넷으로 접수한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야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류접수 마감 이틀전에 접수한 내가 거의 마지막이 아닌가 싶다.
합격발표가 나서 면접일정을 보려고 했더니 전공심사가 따로 있었다. 강원대도 기초심사, 전공심사로 나누어서 하는걸로 보아 두단계 서류전형 심사는 국립대의 특징인가보다. 기초심사는 지원자격 정도만 검토하는 것이라 통과한 것 같다. 2. 전공 1단계 심사 예고한 것과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12월 13일 오후 6시, 미국시간으로 13일 오전 4시에 발표가 났다. 한번 느껴본 기분이라 그런지, 합격의 기쁨이나 짜릿함은 솔직히 처음에 비해 덜했다. 왠지 E여대가 될 것만 같다는 느낌이 자꾸 들어서, 이건 무시할까라는 (지금 생각하면 진짜 미친 말도 안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들은 결과, 면접에는 웬만하면 가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3. 전공 2단계 심사 (면접) 우여곡절 끝에 J대에 도착을 했다. 학과사무실이 대기장소라 들어갔더니 다른 분이 한 분 더 계셨다. 지원자 둘이 한 책상에 앉아있는 것이 얼마나 숨막히는 일인지는 글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공개강의: 열역학 제 2법칙 내가 먼저 공개강의를 했다. 심사위원은 학과교수님 네 분 + 사범대 학장님이 계셨다. 주제는 열역학 제 2법칙. E여대에서 열역학 법칙 10분 발표한 것에서 인트로와 2법칙 부분을 따왔다. 피피티의 골격이 갖추어져 있으니까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거기다가 E여대의 색깔과 J대의 색깔이 굉장히 비슷했다. 열역학 법칙을 세부적으로 파고 들어가다보니까, 더 이상 그림과 스킴만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들이 생겼다. 가령, Carnot cycle의 효율, 다양한 과정의 엔트로피 변화 유도, Clausius inequality 등을 유도하는 부분은 수식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이 때 아는 형님이 “열역학이라면 피피티 쓰지말고 서판을 시도해봐라. 전부 피피티 쓰기 때문에 칠판에 아무것도 보지않고 수식 적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일수가 있다”라는 조언이 기억이 났다. 그래서 Const P, Const S, Const V, Const Q 네 가지 상태에서의 Entropy 변화를 칠판에 유도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부분이 이번 발표의 킬링 컨텐츠가 아니었나 싶다. 질문 생각보다 날카로운 질문들이 많이 쏟아져서 당황했다.
이외에도 질문들이 더 많았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공세미나 이 부분은 별로 흥미가 없으신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마음편하게 발표한 것 같다. 실제 세미나가 끝난 후에 연구에 관한 질문은 한 두개 정도 나왔다. Two-photon absorption 계산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polymer의 binding 에너지는 얼마나 정확하게 계산이 가능한가 정도. 나의 강점이랍시고 실험과 계산을 모두 할 수 있는 것을 강조했는데, 계산만 해도 논문은 쓸 수 있는지가 궁금하신 것 같았다. 아주 간단한 실험밖에 할 수 없는 환경이라, 레이저 실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메리트는 아닌것으로 보였다. 역시 대학마다 원하는 인재가 있고, 그것에 맞춰서 피피티를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나머지는 ‘사범대의 재정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주로 이야기하시면서, 그래도 우리과에 오셔서 연구하실 수 있겠나라는 질문을 다양한 표현으로 바꿔가면서 물어보셨다. 학과장 개별미팅 세미나를 마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조교님이 잠깐 남아있다가 학과장님과 잠깐 만나고 가시라고 했다. 내가 E여대에 지원한 것을 알고 계셨다. 복잡하고 긴 이야기 끝에, 나는 멍청하게도 애매한 답변을 하고 말았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2018년한국 대학은 최근 3년 실적을 보는 곳이 많다. 그래서 14년 연말에 나온 JCC 논문을 비롯하여 수많은 논문들이 짤려 나갔다. 거기다가 2015년은 포닥와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던 때라 논문도 없어서, 2018년 초반 임용지원에는 3년 실적이라고 해도 2년 실적과 별다를 바가 없는 상태였다. 실적에서 제외되는 논문과 비슷한 퀄리티의 논문을 두 편 이상 써서 논문 숫자를 늘리거나, 한 편을 쓸거면 퀄리티를 반드시 높여야만 하는 한 해라 마음의 부담감이 컸다. 9. B대 화학과: 물리화학 대표논문: J. Phys. Chem. Lett. [2017], J. Phys. Chem C [2016] 연구계획: 태양전지, TADF 이례적으로 굉장히 빠른 타이밍에 ‘물리화학’공고가 올라왔다. 계산화학 분야를 뽑을거라는 정보를 듣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나마 예전에는 논문 숫자라도 많았는데, 이제는 다 잘려나가서 실적란이 굉장히 휑했다. 그렇지만 작년 연말의 2연타 때문인지 되면 좋고 안되면 그만이라는 평온한 마음가짐이라, 광탈 당해도 큰 충격이나 상처는 없었다. *C대 화학과: 물리화학 3년 실적 주저자 6편. (IF 10이상일 경우 3편, JCR 5%내일 경우 3편으로 인정) 지원요건이 되지 않아 접수조차 못했다. 10. I대 화학과: 계산화학 대표논문: J. Phys. Chem. Lett. [2017], J. Phys. Chem C [2016] 연구계획: 태양전지, TADF
J대 화교과가 계산화학을 특정해서 뽑았을 때 상당히 큰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에 기대를 많이했다. 6개월 사이에 빅페이퍼를 쓴 사람이 3명 이상 있지 않다면 나에게 면접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2. 면접심사 면접일 10일 전 쯤에 결과를 통보 받았다. 연구업적 영어로 20분, 연구계획 한글로 10분, 질의응답 한글/영어 섞어서 20분. 스카이프로 면접이 가능하다고 한 첫 번째 대학이었지만, 스카이프’도’ 가능하다는 것과 스카이프’만’ 가능하다는 것은 너무 큰 차이가 있기에 비행기를 끊었다. 아무래도 직접 면대면으로 본 사람에게 더 큰 호감을 느낄 것이기 때문에, 비행기삯 아끼자고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순 없었다. 화학과 면접은 처음이었는데, 사범대랑 달리 미니렉처를 요구하지 않았다. 면접 본 세 곳에서 요구하는 사항이 조금씩 달라서 만들어놓은 피피티 자료들을 조금씩은 손봐야해서 힘들었다. 10분짜리를 20분으로 늘리고, 한글을 영어로 바꿔야하는 등 소소하게 손 갈 일이 많았다. 면접자들끼리 만날 수 없도록 철저하게 분리를 한다. 당연하면서도 고마운 일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조교분들이 노트북/usb를 가져가서 레이저 포인터까지 다 준비를 해주신다. 말끝마다 박사님이란 호칭과 함께 극존칭을 사용하셔서 몸둘바를 몰랐다. 이때까지 면접 본 세 곳의 대학 중 유일하게 학과 면접에서 항공료를 보조해주는 학교다. 금액은 아직 안 받아서 모르겠지만, 50-100만원 정도가 아닐까 싶다. (55만원을 받았다. 미주 50만원+국내경비 5만원. 아시아권은 20만원을 보조해준다.) 이 부분이 I대학에 대한 호감이 생기는 것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금액을 떠나서 아직 학교 식구도 아닌 지원자를 배려해주는 학교라니. 이런 부분이 많이 알려진다면 학교지원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큰 홍보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연구계획 발표는 Singlet fission/컴퓨터 활용한 분자 디자인/reaction mechanism 세 개의 주제에 3분씩 할당했다. 앞에 두 개는 원래 research statement에 있는 것이었지만, 반응 경로 연구는 학과 교수님들의 연구 프로필을 보고 추가한 것이었다. 다행히 지금 랩의 주력 연구 분야라서 대학원생들 피피티, 논문 결과물들이 화려해서 저 부분도 나름 알차게 채웠고, 이 부분이 킬링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질문 면접은 생각보다 평이했다. 50대 이하의 젊은 교수님들의 질문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나이 지긋하신 물리화학 교수님이 질문을 주도하셨다.
연구 성과를 포함해서, 영어 소통 능력, 사교성 등 다양한 부분을 고려하는 것 같았다. 영어 질문이 있을 것 같아서 연구분야 소개/자기소개/지원동기/미시건소개/대학원유인책/학과 사업에 기여할수있는 부분/취미/펀딩수주계획/공동연구계획/학생관리/초기정착계획 등을 준비했다. 다행히 저 중에 하나가 걸려서 영어 질문은 생각보다 쉽게 패스했다. 3. 총장면접 발표 3일전 쯤, 여비 지원 서류와 함께 총장면접 자료 준비를 알리는 이메일이 왔다. 여비는 학과면접 때와 같은 금액이었다. 총장면접에 자료를 준비해오라는 경우는 다른 학교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질문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다. 1. 나의 연구와 바이오를 어떻게 접목 시킬 수 있는가. 2. 통일 후 통합에 학교와 나의 연구가 기여할 수 있는 방안, 3.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적용할 수 있는 연구 주제. 총장님의 인터뷰를 보니 바이오와 4차산업혁명, 중국을 아주 중요시한다는 것은 알고 있어서 그런 부분에 답을 준비하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통일, 일대일로와 같은 단어가 나오니까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무튼, 지인들의 기발한 아이디어 개마고원 태양전지, 탄소섬유 초장거리 철도 덕분에 각 주제에 대해서 두장씩 준비했다. 친구들에게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는데, 이것이 다 국가과제를 따기 위한 연습이다라는 말을 들으니 좀 이해가 되었다. 본부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발표자료를 보고 있는데, 정장을 입은 내 나이 또래의 사람이 본부로 들어갔다. 본능적으로 저 사람들이 나머지 후보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학과면접에서는 지원자들끼리 마주치지 않도록 엄청 배려를 해주셨는데, 본부면접은 그냥 한 방에서 같이 대기 시키는 바람에 굉장히 힘들었다. 통성명이라도 하고 이야기하면서 긴장을 풀면 좋았을텐데. 형들은 빨리 이름 알아와서 구글 스칼라 뒤지라고 했지만, 너무 긴장되서 그런 여유까지 부리진 못했다. 총장면접은 접수번호 순서대로 들어간다고 하셨다. 사실 학교마다 다를 가능성이 높고 학교에서도 접수번호 순서대로라고 말하는 곳이 많지만, 나의 경험과 주변의 이야기를 종합해 봤을 때 총장면접 들어가는 순서가 상당히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번에 특히 그렇게 느낀 이유가, 학과 면접을 내가 거의 첫 타임으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총장면접은 내가 제일 마지막에 봤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면접 시간인 것 같다. 당연하게도 들러리한테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형식적인 질문만한다. 그러다보니 면접시간도 일반적으로 짧다. 나보다 먼저 들어간 두 분은 대략 10-15분 정도 면접을 봤는데, 나는 25분 가량 본 것 같다. 어찌됐건 지나고나서 보면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걸 미리 알 수는 없으니 기회가 찾아올 때마다 열심히 준비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다. 면접에는 총 네 분이 들어오셨다. 총장님, 자연대학장님을 제외하곤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부총장님이 계셨던 것 같기도 하고… 질문은 주로 한 분 (내가 부총장님으로 기억하는 교수님)이 하셨다. 총장님은 중간 중간 영어와 한글 질문을 번갈아가면서 하셨고, 자연대 학장님과 나머지 한 분은 거의 마지막 쯤에 질문 한개씩 하셨다. 질문
총장면접을 하고 거의 2주만에 최종합격 통지를 받았다. *대학생이 되면서 막연하게 나도 교수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가졌고, 그 꿈을 이루는데까지 13년이 걸렸다. ‘교수 하려면 열심히 해야지’라는 압박감과 좋은 실적을 내야한다는 스트레스가 만성통증처럼 나를 괴롭혔는데 이제는 한 시름 놓게 되었다. 평생의 목표를 이뤘다는 성취감에 기쁘기도 하지만, 나의 지도교수님들처럼 이제는 내가 누군가를 책임지고 지도해서 학자로 키워내야한다는 생각을 하면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다. 그래도 간절히 원했고 열심히 준비한만큼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자신감을 가져야지. 나보다 더 나의 일을 기뻐해주고 슬퍼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