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여성 인권 순위 - yeoseong-gajogbu yeoseong ingwon sun-wi

여성가족부 여성 인권 순위 - yeoseong-gajogbu yeoseong ingwon sun-wi
자료=세계경제포럼(WEF)

[이코리아]  “더 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

위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답한 내용 중 일부다. 구조적 성차별이 사라진 만큼 여가부는 역사적 소명을 다했고 더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 발언은 유력 대선 후보의 성차별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으로 당시 극단으로 치닫고 있던 젠더 갈등과 맞물려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사회의 성평등 수준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실제 우리 사회에 내재된 ‘구조적 성차별’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인식에는 좁힐 수 없는 큰 차이가 있다. 

◇ 한국의 성평등은 세계 99위?

이러한 상황에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와 “한국은 여전히 성차별적 사회”라는 서로 다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는 것이 국제기구 등에서 발표하는 성평등 관련 지수다. 여러 국가를 조사해 성평등 수준을 순위로 나타내는 성평등 지수를 통해 한국의 성평등 수준이 어디쯤인지를 대략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2006년부터 발표하고 있는 성격차지수(Gender Gap Index, GGI)다. WEF는 매년 세계 각국의 성평등 수준을 ▲경제활동 참여 및 기회 ▲교육 ▲건강 및 생존 ▲정치적 권한 등 네 가지 분야로 나눠 성별 격차를 측정해 0~1 사이의 숫자로 표시하고 있다.

GGI는 1에 가까울수록 완전한 성평등을, 0에 가까울수록 완전한 불평등을 뜻하는데 지난 13일(현지시간)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0.657로 조사대상 146개국 중 99위였다. 지난해(102위)보다는 3계단 상승한 순위지만, 여전히 하위권에 머무른 것. 한국의 순위는 아이슬란드(0.908, 1위) 같은 서구권 국가는 물론, 같은 아시아 국가인 베트남(0.705·83위)이나 캄보디아(0.690·98위)보다도 낮았다. 중국(0.682, 102위), 일본(0.650, 116위) 등 동아시아 문화권 국가들도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 한국의 성평등은 세계 11위?

하지만 GGI는 발표될 때마다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의 여성 인권이 내전 중인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낮다는 사실을 납득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아이슬란드와 한국 사이에는 북미·유럽 국가들 외에도 소득 수준이 낮거나 인프라가 취약한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다 다수 있다. 

이 때문에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주장하는 측에서 자주 인용하는 또 다른 성평등 지수가 있다. 바로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하는 성불평등지수(Gender Inequality Index, GII)다. UNDP는 모성사망비(신생아 10만명당 사망한 산모의 수), 청소년 출산율(신생아 1000명 당 15~19세 산모의 수), 국회 내 여성 의원 비율, 여성 중 중등교육 이상 비율,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등을 종합해 GGI와 마찬가지로 0~1 사이의 숫자로 국가별 성평등 수준을 표시한다. 다만 GGI와는 달리 GII는 0에 가까울수록 완전한 성평등을 의미한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한국의 GII는 0.064로 조사대상 189개국 중 11위에 해당한다. 1위는 스위스(0.025)였으며, 일본(0.094, 24위), 중국(0.168, 39위) 등도 상대적으로 상위권에 포진했다. 한국과 스위스 사이에 있는 것은 모두 유럽 국가들이었으며, 소득 수준이 낮은 국가들은 대부분 하위권을 기록했다. 

◇ GGI 99위와 GII 11위 지수의 차이

“구조적 성차별이 여전하다”는 주장과 “구조적 성차별은 사라졌다”는 주장 사이의 거리 만큼 GGI 99위와 GII 11위라는 지수의 차이도 극명하다. 이처럼 성평등의 정도를 측정하는 지수 간에 큰 차이가 나는 것은, 두 지수가 보여주고자 하는 성평등의 측면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GII는 남성과 여성 간의 격차를 보여준다기보다는 여성의 삶의 질을 구성하는 기초적인 요소들이 얼마나 제대로 갖춰졌는지를 보여준다. 실제 UNDP가 GII 산출 시 반영하는 모성사망률이나 청소년 출산율은 그 사회의 의료·교육인프라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 대부분 고소득 국가가 높은 점수를 기록한다. 한국의 경우 청소년 출산율은 1.4명, 모성사망비는 11명으로 모두 조사대상국 중 최상위권이다. 특히 청소년 출산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GII가 성 격차를 잘 보여주는 지표라고 보기는 어렵다. 구조적 성차별이 남아있는 사회에서도 경제발전을 통해 각종 인프라가 갖춰진다면 모성사망비와 청소년 출산율은 낮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극도로 낮은 청소년 출산율은 청소년의 성에 대한 한국 사회의 보수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지, 여성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GII에도 여성 삶의 기초적인 요소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격차’에 초점을 맞춘 세부 지표가 있다. 문제는 해당 세부지표에서는 한국의 순위가 매우 낮다는 것이다. 실제 여성 의원 비율(16.7%), 여성 중 중등교육 비율(80.4%), 경제활동 참여율(52.9%) 등 GII 세부지표에서 한국의 순위는 같은 소득 수준의 국가보다 상당히 낮은 편이다. 여성 의원 비율의 경우 100위권 밖이며, 그나마 높은 중등교육 비율도 대부분 100%인 서구권 국가와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 성평등 지수, 대부분 “한국 성 격차 크다”로 결론

또한, UNDP는 건강과 교육, 복지 수준 등을 나타내는 인간개발지수(HDI)를 측정하고 있는데, 이를 이용해 산출한 성개발지수(Gender Development Index, GDI)도 GII와 함께 발표하고 있다. GDI는 여성의 HDI를 남성의 HDI로 나눈 값인데, 1에 가까울수록 완전한 평등을 뜻한다. 한국의 GDI는 지난 2019년 기준 0.936으로 오만과 함께 HDI 최상위권 국가 62개 중 57위였다. HDI 최상위권 국가 중 한국보다 GDI가 낮은 곳은 아랍에미리트(UAE, 0.931), 터키(0.924), 바레인(0.922), 사우디 아라비아(0.896) 등 이슬람권 국가들뿐이었다. 

이를 종합하면, UNDP 자료 또한 WEF가 발표하는 GGI와 같이 한국의 성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결론을 보여주는 지표는 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양성평등 관련 사회제도지수(SIGI)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90개국 중 51위(2019년)를 기록했으며, 영국 매체 이코노미스트의 유리천장지수(Glass-ceiling Index)에서는 매년 꼴찌를 반복하고 있다. 두 지수 모두 GII보다는 GGI에 가까운 지표로 남성과 여성 간의 ‘격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편,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토론회에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발언과 관련해 질문을 받자 “남성과 여성의 집단 간 문제가 아닌 개인 대 개인의 문제로 바라봐야 약자의 권리와 이익을 더 잘 보장할 수 있다”라고 답했다. 반면, WEF는 한국의 여성이 경제·정치·교육·건강 등의 분야에서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무려 132년이 걸릴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선언한 윤 대통령이 매년 발표되는 성평등 지수를 한국 사회에 남아있는 구조적 성차별의 증거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측정 상의 오류로 치부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