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탈출 진범 - syosaengkeu talchul jinbeom

영화가 더 유명한 쇼생크 탈출

비 맞고 있는 포스터로 유명한 영화 <쇼생크 탈출>. 개봉 당시에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나도 그 영화 포스터를 방문에 붙여놓았었다.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된 유약한 앤디. 은행 부지점장으로 평탄하고 부유한 삶을 살아왔던 그가 쇼생크 감옥에서 잘 견뎌낼 수 있을까? 때론 절망하고, 때론 순응하고, 가끔은 반항하기도 하면서 그는 나름 쇼생크 감옥에 적응을 해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실제로는 아내를 살해하지 않았으며(그는 너무 술에 취해 있어서 기억이 없었다), 아내를 살해한 진범이 따로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는데. 과연 그는 진범을 찾을 수 있을까? 그는 누명을 벗고 감옥에서 나올 수 있을까?

쇼생크 탈출 진범 - syosaengkeu talchul jinbeom

출처: 황금가지(민음사) 출판사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익숙할 저 장면을 책 표지로 옮겨놨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이 영화에 원작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 원작을 이제야 읽어보게 됐다. 원작은라는 책에 실린 단편 중 하나이고, 그 단편의 제목이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Rita hayworth and Shawshank Redemption)>이다. 리타 헤이워드는 미국에서 예전에 인기가 많았던 여배우인데, 극 중 주인공 앤디가 자신의 감옥 벽에 그녀의 포스터를 붙여놓는다. 그녀(의 포스터)가 지닌 상징성을 생각해보면 이 단편의 제목은 아주 잘 지은 것 같다.

우리말로는 '탈출'이라고 번역했지만, escape나 break out 등이 아니라 redemption(구원)이라는 단어를 쓴 것도 의미심장하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혹은 영화를 보고 나면) 왜 redemption을 썼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쇼생크 탈출 진범 - syosaengkeu talchul jinbeom

출처: 교보문고   

영어 원서 표지. 역시나 저 작은 망치가 보인다. 자유를 상징하는 작은 새가 함께 보이는 것도 맘에 든다.

책은 감옥에서 같이 수감생활을 했던 '레드(모건 프리먼 역할)'의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현재 진행형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끝난 후(?) 레드가 지난 일을 회상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책의 묘사가 너무나 생생해서 (물론 영화를 본 것도 한몫했겠지만) 마치 눈 앞에 모든 장면들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역시 명불허전 스티븐 킹! 더군다나 나는 오디오북으로 들었는데, 목소리 배우가 연기를 잘해서 마치 영화를 다시 한번 더 보는 느낌이었다.

영화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는 앤디가 방송 마이크로 오페라를 틀고, 감옥 뜰에서 운동을 하던 죄수들이 하던 걸 모두 멈추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로 부르는 노래를 멍하니 듣는 장면이었다. 아쉽게도 책에는 그 장면이 없다. (아마도 영화화하면서 삽입된 장면인 듯.) 하지만 나머지 부분만으로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책에서는 마지막에 레드가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 영화처럼 명확히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선택을 하기를 희망해볼 수는 있겠지. 그래서 더 여운이 남는 책인 거 같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내 방 문에 붙어 있던 바로 그 포스터.

출처: 다음 영화

나를 깨우는 말들

1.

Some birds are not meant to be caged.

어떤 새들은 새장에 가둬둘 수 없다.

레드가 앤디에 대해 회상하며 하는 말.

2.

It always comes down to just two choices. Get busy living, or get busy dying.

결국 둘 중 하나지. 열심히 살거나 혹은 열심히 죽거나.

3.

Remember that hope is a good thing, Red, maybe the best of things, and no good thing ever dies.

명심해요, 레드. 희망은 좋은 거예요. 어쩌면 가장 좋은 거고요. 그리고 좋은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요.

앤디가 레드에게 남긴 편지에 쓰여있던 말. 영화에서도 보고 감명 깊었던 장면.

4.

Writing about yourself seems to be a lot like sticking a branch into clear river-water and rolling up the muddy bottom.

자기 자신에 대해 글을 쓰는 건 맑은 강물에 막대기를 넣고 휘저어서 흙탕물을 일으키는 것과 같아.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글을 쓰는 건 많은 용기가 필요한 법.

5.

It goes back to what I said about Andy wearing his freedom like an invisibility coat, about how he never really developed a prison mentality. His eyes never got that dull look.

이게 결국 내가 앤디에 대해서 말했던 그 얘기다. 마치 투명망토처럼 자유를 입고 있었던 앤디, 감옥에 갇힌 사람의 정신상태가 아니었던 앤디. 앤디의 눈은 한 번도 멍했던 적이 없었다.

제목: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원서 제목: The Shawshank Redemption

저자: 스티븐 킹 (Stephen King)

옮긴이: 이경덕 옮김

출판사: 황금가지

특징: 팀 로빈스, 모건 프리먼이 주연을 맡아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한글 해석은 이경덕 님의 번역이 아니라 제가 원서를 읽고 해석한 것입니다. 한글 출판본과는 번역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앤디 듀프레인에게는 살인을 행할 동기가 있습니다. 듀프레인의 부인은 골프 코치와 불륜에 빠졌고, 그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살인 사건이 벌어진 날 그것으로 인해 심한 다툼을 벌였습니다. 말다툼 내용 중에 부인이 리노에서 이혼을 하자고 하자, 리노보다 지옥에서 먼저 볼 것이라며 협박을 했다는 것은 덤입니다.

또한 앤디 듀프레인은 그 날 38구경 권총과 다수의 실탄을 구입했는데, 그의 부인과 골프 코치는 38구경 총알에 각각 4발씩 맞아 사망합니다.

그리고 사건 장소인 골프 코치의 집 앞에서 듀프레인의 발자국, 차바퀴 자국 그리고 그의 지문이 묻은 실탄이 있었고, 듀프레인 역시 거기에 갔음을 시인합니다.

듀프레인은 다음과 같이 자신을 방어합니다.

다툰 것은 사실이나 흥분해 있어서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한 다툰 후 부인이 짐을 싸서 나가자 몇 군데 술집을 들른 후 그의 집에 갔었다.
왜 갔는지는 혼란스럽고 술에 취해 잘 모르겠다.
총을 샀으나 겁을 주려 했을 뿐 실제 사용하지 않았으며, 그 둘이 없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왔고, 그 도중 강에 버렸다.
이후 술이 깨고 있어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와 자려고 했다.

여기서 추가할 사항은 듀프레인이 강에 버렸다고 주장한 권총은 3일간의 수색 끝에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듀프레인은 이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받아 두 번의 종신형을 선고받습니다. 형이 강하게 나온 이유로는 6발들이 권총임에도 8발을 쏜 것이 때문에 우발적 범죄보다는 계획적인 복수로 인정된 점, 재판에서 냉정함을 유지하여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후 우리가 잘 아는 쇼생크 탈출 스토리가 흘러갑니다. 잘 나가던 은행가의 역량을 발휘하여 간수와 소장의 경제적 조언을 해주고, 소장의 돈세탁을 맡아 동료들에게 맥주도 돌리고, 도서관도 세우고, 교도소 전체에 음방을 시전했다가 독방에도 갇힙니다.

그러던 중 토미 윌리암스라는 청년이 들어오는데, 그의 공부도 봐주고 가까워지던 중 그가 새로운 사실을 알려줍니다.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던 진짜 큰 범죄를 저지르지도 못할 것 같던 떠벌이 죄수가 하나 있었는데, 그가 그냥 한 놈 찍어서 죽였는데 그게 골프 코치였고, 그랑 붙어 있던 여자도 죽였는데 그녀의 남편은 은행가였고 그가 죄를 다 뒤집어 썼다는 얘기를 해주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듀프레인은 소장에게가 이 이야기를 해주며 도와달라고 하나 거절 당합니다. 그래서 강하게 여러가지 말을 하다가 독방에 한 달 간 갇히게 됩니다. 그리고 소장은 윌리엄스를 죽이죠.

이후 듀프레인은 19년 간 준비해온 탈옥을 시행하여 소장의 돈을 가로채 국경을 넘어 태평양 연안 마을에 정착합니다.

우선 사건 개요를 봅시다. 그에게는 동기가 있고, 사건 현장에 갔으며, 발견되지 않은 도구와 동일 기종을 구입하였습니다. 반면, 그는 술에 흥분해 있었고 술에 취해 있었으며, 총은 강물에 버렸다는 주장만 합니다. 사실 영화가 아닌 논거 대 논거로 보면, 듀프레인의 논거는 형편없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범죄자는 모두 무죄라고 말한다며 듀프레인의 주장이 거짓말일 수 있다고 살짝 흘립니다. 물론, 그 말은 교도소의 분위기를 말하는 것으로 교묘히 위장됩니다.

그리고 영화 내용을 통해 "주인공" 듀프레인은 현명하고 능력있으며 사려깊은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저 유명한 편지의 이중창을 통해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자유를 갈망한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무죄라는 것을 설명해주지는 못합니다. 감정적인 동조는 가능하지만요. 그는 굉장히 냉철하게 판 전체를 바라보고 끈기있게 목적을 성취해나가는 능력 역시 있습니다. 그리고 범죄자 역시 자유를 얼마든지 갈망할 수 있어요. 그들이라고 감옥에 갇혀 반성만 하란 법 없지 않습니까? 쇼생크의 죄수들은 딱히 반성하는 모습 따윈 없습니다. 있다면 윌리암스 정도죠. 하지만, 그들은 탈옥 따윈 꿈 꿀 능력도 없고 그저 감옥에 길들여져 살아갈 뿐이에요. 거기에 순응하면 무시무시해 보이는 간수들도 같이 공존하지 못할 존재도 아닙니다. 매일 이유없이 때리고 괴롭히진 않습니다. 듀프레인은 그것을 꿈꾸고 실행할 능력이 있었떤 것 뿐이지요.

또한, 교도소의 인권 문제를 담담히 삽입합니다. 그래서 교도소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을 마치 악의 소굴에 갇혀 있는 것으로 상정하지요. 교도소 내의 인권 문제가 있어보이는 건 확실하나 그 당시 시대상황을 생각하면 새삼스러울 것도 아니고 진짜 말도 안되는 학대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진짜 문제는 교도소의 인권과 듀프레인의 누명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듀프레인이 누명을 썼건 안 썼건 교도소는 자유가 억압된 탈출하고 싶은 곳입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엮으며 교도소에 악역을 부여하고, 그 곳의 탈출이 곧 누명을 벗어가는 것처럼 만듭니다.

윌리암스가 가져온 증언은 어떨까요? 윌리암스 본인이 별로 가까워지고 싶지 않고 큰 일을 치룰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고 한 떠벌이 죄수의 증언입니다. 얼마나 신뢰해야 하는 걸까요? 하지만, 윌리암스가 범죄자지만 나름 건실한 청년이라는 밑밥을 깐 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는 듀프레인의 요구가 묵살되고 윌리암스가 죽음을 당하며 그의 증언은 영화 내에서 진실의 위치를 획득합니다. 사실 이 문제는 증언의 진실성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소장의 개인 욕심 때문에 이뤄진 일이에요. 듀프레인이 탈옥 후 신문사에 살인사건을 폭로하며 윌리암스의 복수를 실현함으로써 이 증언의 진실성은 의심의 기회마저 사라지게 합니다.

그리고 윌리암스의 죽음 후 탈옥이라는 절묘한 사건의 배치로 마치 듀프레인이 누명을 벗을 기회를 상실하자 탈옥을 결심하는 것으로 포장을 합니다. 모건 프리먼이 분한 레드의 나레이션이 이 생각을 굳혀주지요. 하지만, 듀프레인은 19년 간 탈옥을 준비했습니다. 교도소 벽을 파서 탈옥할 루트를 개척하고, 탈옥해서 사용할 신분을 위장하고, 돈세탁을 통해 교도소 퇴직금을 마련합니다. 이런 철저한 준비가 있었는데 윌리암스가 죽어서 탈옥을 했다구요? 실행할 타이밍을 잡는 계기가 될 수는 있어도 탈옥을 결심할 계기가 되지는 못합니다. 탈옥의 결심은 이미 19년 전 암석망치로 이름을 새기다 벽이 파진 이후부터 서있던 것이니까요. 아니 사실 암석망치를 레드에게 구해달라고 부탁했을 때부터 서있던 것일 수도 있지요.

이후 듀프레인은 도망자의 길을 선택합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지 않아요. 사실은 탈옥 이전에도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지요. 교도소에 도서관을 지을 기금을 위해선 매일같이 편지를 날리던 그이지만, 그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선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윌리암스가 나타났을 때 뿐이죠. 탈옥 이후의 그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도망자의 길을 택해 나라를 떠나 유유자적하게 삽니다. 저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어차피 19년 감옥에서 썪으며 좋은 시기 다 날린 거 돈도 많겠다 즐기며 사는 것 역시 이해 못 할 건 아니죠. 다만, 누명을 벗으려는 액션이 있다면 그가 무죄였다는 주장은 거의 명백해집니다. 하지만, 그런 액션이 없기 때문에 듀프레인이 누명을 썼다고 주장을 할 근거가 부족해집니다. 안 그래도 전체적으로 그가 무죄라는 증거는 영화 내에서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쇼생크 탈출은 기본적으로 누명을 쓴 사람이 자유를 획득하는 감동의 서사시가 아닙니다. 교도소에 들어간 능력있는 남자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여러 과정을 겪어가며 결국 탈옥에 성공하고 그 미래의 성공까지 보장받는 무용담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쇼생크 탈출은 근사한 이야기지요. 전 이 지점이 불편하기보다는 오히려 재밌습니다. 듀프레인은 치밀하고 장대한 과정을 거쳐 자신의 목적을 이루었고, 그 과정에서 친구들에게 여러가지 즐거움을 주었으며,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한 친구의 복수도 시원하게 합니다. 감독은 이 무용담을 절묘한 연출로 그릇된 판결로 감옥에 갇힌 주인공이 자유를 획득하는 감동까지 포장해냅니다. 근데,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봅시다. 듀프레인이 정말 무죄일까요? 저는 모르겠어요. 적어도 영화 내적으로 듀프레인은 확실히 무죄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듀프레인이 유죄라면 쇼생크 탈출의 재미가 떨어질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봐요. 장르가 드라마인게 문제이긴 하지만, 나쁜 놈이 성공하는 데서도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근데, 여기서 감독은 연출을 통해 상당수의 관객에게 감동까지 안겨줍니다. 듀프레인의 무용담을 드라마적으로 풀어낸 김에 말이죠. 쇼생크 탈출의 대단한 점이기도 한 동시에, 또한 얄팍한 점이기도 합니다. 전 이게 영화의 묘미가 아닌가 싶어요.

ps. 물론 전적으로 듀프레인이 무죄라는 시점에서 영화를 풀어내는 것도 가능합니다만,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그 풀이와 비교해가며 글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네. 이것은 더위를 날려버릴 한여름 밤의 꿀 아니 떡밥입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