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제를 위하여 해석 - ellijeleul wihayeo haeseog

아마 한국인 중에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Für Elise)’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사 그 노래가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것을 모른다고 해도, 멜로디만큼은 친숙하다. 베토벤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곡이  한국의 일상 속에서 얼마나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엘리제를 위하여는 베토벤이 1810년, 마흔에 작곡한 바가텔 A단조 곡이다. 바가텔이란 두도막·세도막 형식의 짧은 피아노 소품곡을 말한다. 베토벤 사후 40년, 1867년에 음악학자 루드비히 놀(Ludwig Nohl)이 악보를 발견해 편곡 후 출판했다. 영화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 1994)의 테마곡으로 쓰이는 등 전 세계적으로도 사랑받는 곡이다.
 

피아니스트 랑랑이 해석한 ‘엘리제를 위하여’ (유튜브)

그러나 한국인의 엘리제를 위하여 사랑은 조금 유별난 감이 있다. 대중가요나 광고는 물론, 응원가, 초인종 소리, 심지어 쓰레기차 후진하는 소리까지... 언제 처음 들었는지조차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엘리제를 위하여는 ‘국민 클래식’을 넘어 한국인의 무의식에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다. 일부 클래식 애호가들은 이렇게 온갖 장소에서 엘리제를 위하여가 등장하는 것을 보며 명곡이 소음으로 전락했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덕분에 엘리제를 위하여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장면 속에서 끝없이 변주되는, ‘불멸의 곡’이 되었다. 한국인의 일상 곳곳에 등장하는 엘리제의 모습을 한 번 살펴보자.

발라드부터 힙합까지 종횡무진

엘리제를 위하여를 활용해 인기를 얻은 대중가요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친숙한 곡은 가수 아이비의 2집 타이틀곡 ‘유혹의 소나타(2007)’일 것이다. 엘리제를 위하여를 빠른 템포로 바꾼 뒤 강한 비트와 독특한 멜로디를 더했다. 작곡 당시 작곡가 박근태는 노출 없이 섹시한 컨셉을 살릴 수 있는 클래식 샘플링 곡을 찾기 위해 7개월을 방황했다. 그러다 우연히 부모님 집 초인종에서 나오는 엘리제를 위하여를 듣고 그 자리에서 유혹의 소나타를 써 내려갔다고 한다. 락발라드 가수 김경호의 ‘슬픈 영혼의 아리아(부제: 엘리제, 1997)’도 엘리제를 위하여를 샘플링했고, 가사에도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표현이 있다.

아이비 ‘유혹의 소나타’의 공식 뮤직비디오(유튜브)

최근 곡으로는 2020년 2월 출시된 걸그룹 체리블렛의 ‘무릎을 탁치고(Hands Up)’를 들 수 있다. 역시 엘리제를 위하여를 샘플링한 중독적인 음악에 808드럼 사운드를 더한 트랩(Trap) 장르의 곡이다. 출시 직후 영국, 호주, 아랍에미레이트 아이튠스 K팝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무릎을 탁 치고 손을 들어올리는 안무를 따라 하는 일명 ‘무릎탁’ 챌린지가 모바일 메신저 틱톡(TikTok)에서 유행했다.

체리블렛 ‘무릎을 탁치고(Hands Up)’의 공식 뮤직비디오(유튜브)

정열의 꽃으로 다시 피어나다

한국인들이 즐겨 부르는 트로트 중 하나인 ‘정열의 꽃’도 엘리제를 위하여를 활용한 곡이다. 원곡은 카테리나 발렌테(Caterina Valente)의 ‘Tout l’amour’로, 1960년 이금희가 처음 리메이크했으며 정미조(1972)와 김수희(2000)가 그 뒤를 이었다. 최근에는 KBS의 예능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서 여성그룹 다비치의 보컬 이해리(2013), 걸그룹 마마무(2015)가 재편곡해서 부르기도 했다.

TV조선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미스트롯(2019)’에서도 본선 3차 경연에서 ‘되지’ 팀이 이 노래를 불렀다. 미스트롯이 여성들의 무대였다면 시즌2 버전인 ‘미스터트롯(2020)’에서는 남성들이 전면에 나섰다. 출연자 영탁이 결승전에서 부른 ‘찐이야’ 초반에 엘리제를 위하여 멜로디가 나온다. 비록 영탁은 우승하지 못했지만, ‘찐이야’는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미스트롯(2019)’에서 ‘정열의 꽃’을 부르는 ‘되지’ 팀(유튜브)

응원가로도 인기를 얻어

미국의 하버드와 예일, 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처럼 한국에도 대학 대항전이 있다. 바로 연세대와 고려대가 벌이는 일명 ‘정기 연고전(혹은 고연전)’이다. 두 학교는 매년 9월 야구, 농구, 하키, 럭비, 축구 다섯 개 구기 종목에서 승부를 펼친다. 이때 양 학교 학생들은 경기 내내 응원가를 부르고 춤을 추며 선수들을 응원한다. 고려대학교의 응원곡 중 하나가 바로 ‘엘리제를 위하여’이다. 1981년 고려대 응원단 음악부에서 편곡한 노래로, 심지어 응원단 음악부 이름도 엘리제다. ‘정열의 꽃’에서 영감을 얻어 강하고 힘있는 느낌으로 편곡하고, 동작에는 ‘부비부비춤’을 가미했다.

연고전(고연전)에서 고려대 응원단과 학생들이 ‘엘리제를 위하여’를 부르며 고려대를 응원하고 있다.(유튜브)

프로리그 선수 응원가로도 활용되고 있다. 프로야구에서는 SK 와이번스 이재원 선수, 그리고 기아 타이거즈의 이홍구 선수의 응원가로 사용되었다. 먼저 엘리제를 활용한 것은 이홍구 선수이나 2017년 SK로 팀을 옮겨 이재원 선수와 한 배를 타게 되면서 응원가를 다른 곡으로 바꿨다. 프로배구에서는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박철우 선수 응원가에 엘리제를 위하여가 사용되었다.

엘리제, 죽음의 멜로디?

2008년 개봉한 공포영화 ‘고사: 피의 중간고사’에서 엘리제를 위하여는 ‘죽음의 멜로디’로 등장한다. 실제로 한국의 일부 초중고에서 엘리제를 위하여를 종소리로 사용하고 있기에, 이에 착안한 듯하다. 영화에서는 더욱 음산한 느낌으로 편곡해 공포감을 일으키는 소재로 활용했다. 범인이 학생을 죽이는 것이 생중계될 때 교내 스피커에서 이 종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외에 김하늘, 이동건 주연의 SBS 드라마 유리화(2004) OST에 오카리나 연주곡이 수록되기도 했다.

쓰레기차 후진음에서 와플 기계까지

사실 사람들이 엘리제를 위하여를 듣고 가장 흔하게 떠올리는 것은 ‘쓰레기차, 똥차’다. 과거 쓰레기차를 비롯하여, 트럭이나 지게차 등 대형차량에서 백부저(후진할 때 나오는 경고음)에 엘리제를 위하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 버스 기종에서는 하차벨 소리로 사용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대형차량 후진음이 대부분 비프음으로 바뀌어 예전만큼 길에서(순서 바꿈) 엘리제를 위하여가 자주 들려오진 않는다.

엘리제를 위하여는 신호음으로도 인기가 많다. 초인종 소리, 전화 대기음, 출입문 열리는 소리, 알람시계에서도 엘리제를 위하여를 들을 수 있고, 일부 학교에서는 엘리제를 위하여를 종소리로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원하는 만큼 음식을 가져다 먹는 뷔페가 인기인데, 와플기계에서도 와플이 다 구워지면 알림음으로 엘리제를 위하여가 나온다.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을 담아 만든 곡이 온갖 곳에서 흘러나오는 걸 보면 베토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Bagatelle No. 25 in 솔로 피아노를 위한 마이너 ( WoO  59, Bia  515)
1827년 작곡가 사망 후 40 년이 지난 1867 년까지 이 곡은 발표되지 못했다. 루드비히 놀 (Ludwig Nohl) 작품의 발견자는 원고 사본의 원고가 이제 없어 졌다고 주장했다. "Für Elise am 4 April 27 [1810] zur Erinnerung von L. v. Bthvn "("L. v. Bthvn을 ​​기념하여 4월 27일 엘리스를 위해"). 이 음악은 28-33 페이지의 Nohl 's Neue Briefe Beethovens ( 베토벤의 새 편지) 의 일부로 출판 되었으며 Johann Friedrich Cotta의 슈투트가르트에서 인쇄되었습니다.

오늘 들었던 "Für Elise"의 버전은 Ludwig Nohl에 의해 쓰여진 이전 버전입니다. 베토벤의 학자 배리 쿠퍼 ( Barry Cooper) 가 후반의 원고에서 필사 한 반주가 급격히 바뀐 이후 버전이있다 .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첫 번째 주제이며, 왼쪽 아르페지오 는 16 음으로 지연됩니다. 과도 섹션에는 B 섹션으로의 추가 막대 가 몇 개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승하는 작은 아르페지오 수치가 나중에 조각으로 이동합니다. Poco moto 의 템포 마킹 은 Ludwig Nohl이 기록한 원고에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는 잃어 버렸습니다). 이후 버전에는 Molto grazioso 마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베토벤은 조각을 바 게텔의주기에 추가하려고 의도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루트비 판 베트벤 (Ludwig van Beethoven)
1770년 121 17일~ 1827년 31 26일

독일에서 대어난 고전 음악 시대의 작곡가이다. 삶의 대부분을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았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전환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음악적 인물이었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널리인정받고 있다. 베토벤이 위대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청각장에클 알고 있었다는 것인데, 작곡가로서 지명적인,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도 그는 수백년간 사랑 받는 무수한 대작들을 남겼다. 그는 고전음악을 완성했고, 낭만주의 음악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베토벤을 대표하는 작품
교향곡 – 3번(영웅), 5번(운명), 6번(전원), 7번, 9번(합창)
피아노 소나타 – 8번(비창), 14번(월광), 15번(전원), 17번(템페스트), 21번(발트슈타인),23번(열정)
바이올린소나타 - 5번(봄), 9번(크로이저)
피아노협주곡 - 5번(황제)
피아노 삼중주(대공), 바이올린렵주곡, 후기현악4중주, 오페라(피델리오), 장엄미사 등이 있다.

[ 얼리제를 위하여. A단조 WoO. 173 ]
❝바가텔❞이라는 제목 아래 ❝4월 27일 엘리제의 추억을 위하여, 베토벤 작곡❞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1810년 무렵 작곡된 것으로 생각되며 소곡으로 기교적인 면예서 쉽기 때문에 초보자나 어린이들이 좋아한다.
a-b-a-c-a로 되풀이되는 작은 론도형식이다.

[ 작곡배경 ]
1810년 이 곡을 작곡할 때 벨호벤은 브라운슈바이크 백작의 딸인 테레제와의 약혼을 최소하고 자신의 주치의의 조카딸인 테레제 마르파티에게 구혼을했다. 열리제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두 여인중 하나로 추정된다. 물론 베토벤의 여자관계가 문란했던 것을 감안하면 제 3의 인물일 수도 있다.

[ 베토벤의 ❝엘리제❞는 누구일까? ]
악성(樂空)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명곡 ❝엘리제를 위하여❞의 주인공 엘리제의 정체가 확인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독일 언론에 따르면 베를린의 음악연구가 클라우스 마르틴 코피츠는 지난 수년간 ❝동시대인의 눈에 비친 베토벤❞이란 제목의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신문기사, 편지, 시, 메모 등 당시 베토벤과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의 모든 글을 분석한 결과 엘리자베스 뢰켈이라는 여성이 엘리제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793년생으로 베트벤보다 23년이나 어린 열리자베스 뢰켈은 베트벤의 오페라 피델리오에서 남자 주연인 플로레스탄 역을 맡았던 베토벤의 친구 조제프 뢰켈의 여동생으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피아노 연주자와 오페라 가수로 활동했다.

당시 진구들사이에서는 ❝얼리제❞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녀는 1810년 밤베르크의 한 극장에서 활동하기 위해 이사했는데 베토벤이 이별하게 된 얼리제와의 추억을 담아 피아노 소품을 작곡했다는 것이다.

코피츠는 또 베토벤이 ❝프로이라인(영어의 미스에 해당하는 독일어 존칭) 뢰켈❞이 아니라 단순히 엘리제라는 이름을 쓴 것은 그들이 그 만큼 친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실제로 엘리제 자신이 베토벤과의 관계에 대해 글을 남겼다고 말했다.

얼리제는한 편지에서 베트벤, 기타연주자 마우로 줄리아니, 그리고 나중에 그녀의 남편이 된 작곡가 요한 네포무크 喜훔멜 등과 어물렸던 만찬에 대해 얘기하면서 ❝라인 지방 특유의 장난기가 넘지는베트벤이 끊임 없이 괴롭혀 어쩔 줄 몰랐다. 진한 애정으로 팔을 꼬집기도 했다❞고 묘사했다.

얼리제가 훔멜과 결혼하고 나서도 베토벤과 엘리제의 우정은 계속됐다. 베토벤이 1827년 3월 운명하기 며칠 전 엘리제는 그의 집을 방문했다. 그녀는 자신이 경배했던 위대한 작곡가를 기억하기 위해 그의 머리칼을  잘라냈고 베토벤의 깃 펜도 선물로 받았다.
코피츠는그동안 베토벤이 1810년 청혼했던 테레제 말파티가 ❝얼리제❞라는 주장이 유력하게 자리잡았던 반면 엘리자베스 뢰케리라는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베토벤 연구가였던 루트비히 놀(1831-1885)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865년 이 작품의 초록을 발견해 테레제에 헌정한 곡이라고 발표했던 놀은 원본 악보를 테레제의 집에서 본 적이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본은 사라졌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들은 모두 베토벤이 다른 곡들을 구상하면서 쓴 불완전한 형태의 초록들 이다. 그러나 만약 이 작풍이 실제로 테레제가 아닌 엘리제를 위해 작곡된 것이라면, 또 놀의 주장이 맞는다면 어떻게 원본이 테레제의 순에 들어갔을까.

코피츠는 이에 대한 가설들 제시하면서 물론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즉 테레제가 베토벤의 집에 와서 우연히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곡의 악보클 보고 ❝엘리제가 누구에요? 아직도 나와 결혼하려는 건가요?❞라고 물었는데 테레제에 청혼했던 베토벤으로서는 엘리제를 위해 만든 곡을 테레제가 본 것예 대해 크게 당황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본에 있는 베토벤 하우스 산하 베토벤 문서보관소의 베른하르트 아펠 소장은 현재 출간을 위해 막바지 작업이 진령 중인 코피츠의 책을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에 결론쿨 내릴 수는 없지만 그의 가설에 회의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펠 소장은 ❝열리제는 당시 빈에서는 아주 흔한 이름이었다❞면서 누가 진짜 열리제인지 입증하려면 원본 악보가 사라지기 전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널리 알려지는 ❝엘리제를 위하여❞는 원래 장례식용 곡입니다. ]
베토벤이사랑하는 여인 테레제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갑작스러운 죽음용이 베토벤에게큰 충격이었고, 혼란속에서 마음을 정리하면서 이 곡을 만들었습니다. 만났던 날들을 기억하면서 떠난 연인의 장려식장에서 들려준 곡입니다.  그래서 이 곡은 추도식용이라고 볼 수있습니다. (베토벤의 악필때문에 원래 이름인 테레제가 엘리제로 잘못 해석됐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