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 1절(창 2:1) 와예쿨루 핫솨마임 웨하아레츠 웨콜 체바암 히브리어구약BHS,1 וַיְכֻלּוּ הַשָּׁמַיִם וְהָאָרֶץ וְכָל־צְבָאָם׃ 새번역,1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
* 천지(הַשָּׁמַיִם וְהָאָרֶץ - 핫쇠마임 웨하아레츠) 직역하면 '그 하늘들 그리고 그 땅'(KJV, the heavens and the earth)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하늘이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늘을 복수로 표현했다. * 만물(וְכָל־צְבָאָם - 웨콜 체바암) 여기서 '체바암'은 '군대'(출 6:26), '군중'(신 4:9)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차바'의 복수형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성경에서 '하늘의 천사들의 무리'(수 5:14, 15; 왕상 22:19)나 태양, 달, 별과 같은 천체(사 34:4; 렘 33:22; 단 8:10)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를 수식하는 '콜'은 '모든 것'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 뿐만 아니라 천사와 같은 영적 존재들 그리고 모든 천체까지도 다 만드셨다는 뜻이다. * 다 이루니라(וַיְכֻלּוּ - 와예쿨루) 직역하면 '그리고 그것들이 이루었다'이다. 여기서 '이루다'(칼라)는 '준공하다'(대하 8:16), '성취하다'(룻 3:18), '마치다'(룻 2:23)란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단순히 중단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온전히 성취하셨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과 계획을 따라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그 뜻과 계획을 따라 운행하고 계신다. 창세기 2장 2절(창 2:2) 와예칼 엘로힘 바욤 핫쉐비이 멜라크토 아쉘 아사 와이쉬보트 바욤 핫쉐비이 미콜 멜라크토 아쉘 아사 히브리어구약BHS,2 וַיְכַל אֱלֹהִים בַּיֹּום הַשְּׁבִיעִי מְלַאכְתֹּו אֲשֶׁר עָשָׂה וַיִּשְׁבֹּת בַּיֹּום הַשְּׁבִיעִי מִכָּל־מְלַאכְתֹּו אֲשֶׁר עָשָׂה׃ 새번역,2 하나님은 하시던 일을 ㉠엿샛날까지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 ㉠사마리아 오경과 칠십인역과 시리아어역을 따름. 히, '이렛날까지' 개역개정,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וַיְכַל אֱלֹהִים בַּיֹּום הַשְּׁבִיעִי מְלַאכְתֹּו - 와예칼 엘로힘 바욤 핫쉐비이 멜라크토) 여기서 '바욤'은 '~안에'란 의미를 지니는 전치사 '베'와 정관사 '하'가 합쳐진 '바'와, '날'을 의미하는 '욤'이 합쳐진 단어로 직역하면 '그 날 안에'라는 뜻이다. 그리고 정관사 '하'와 '일곱번째'란 의미를 지니는 서수인 '쉐비이'가 합쳐져 '핫쉐비이'가 되었다. 따라서 본문 전체를 직역하면 '그 일곱째 날 안에'가 된다.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마치신 날이 제 6일이었는지 제 7일이었는지에 대하여선 이견이 있다. 70인역이나 사마리아 사본은 이를 제 6일째로 번역하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영역본(KJV, NIV, RSV)은 제 7일째로 번역하고 있다. 이같은 차이점은 히브리어 '예칼'(마치니)의 시제 및 어법이 불투명한데서 비롯되었는데, 우리는 이를 다음과 같이 조화시킬 수 있다. (1)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에 대한 창조 사역을 마치신 날은 제 6일째이다. (2) 그러나 그분의 창조 사역의 완성은 이를 기념하고 축복하여 안식하신 날인 제 7일째에 온전히 성취되었다. * 안식하시니라(וַיִּשְׁבֹּת - 와이쉬보트) 직역하면 '그러자 그분은 안식하셨다'이다. 여기서 '안식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바트'는 '쉬다'(출 31:17), '그치다'(사 14:4), '정지하다'(느 6:3)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이 6일간의 천지 창조 사역을 완수하고 난 후에 모든 일을 완전히 멈추시고 쉬신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6일 동안 과중한 일을 하신 후 피곤하여 쉬신 것이 아니라 계획하신 모든 일을 다 이루셨기에, 친히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시며 지극한 만족감을 가지고 안식에 들어가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하나님께서 전혀 아무런 행동도 하시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는 (1) 이후로 하나님께선 더 이상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지 않으셨다는 것과 (2) 피조된 천지 만물의 운행을 주관하시며 그것들을 보고 기뻐하고 계셨다는 것(1:31)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안식에 근거하여 훗날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것이 바로 안식일 제도이다(출 16:29; 신 5:15). 그리고 구약 시대의 이 안식일이 신약 시대에 이르러 주일로 승화되었다(요 20:19; 행 20:7; 고전 16:2).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을 안식일의 완성이라고 생각하여 주일을 안식일로 지켰다. 그리고 주일에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는데 이는 안식이 그냥 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고 충전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창세기 2장 3절(창 2:3) 와예바레크 엘로힘 엩 욤 핫쉐비이 와예카데쉬 오토 키 보 솨바트 미콜 멜라크토 아쉘 바라 엘로힘 라아소트 히브리어구약BHS,3 וַיְבָרֶךְ אֱלֹהִים אֶת־יֹום הַשְּׁבִיעִי וַיְקַדֵּשׁ אֹתֹו כִּי בֹו שָׁבַת מִכָּל־מְלַאכְתֹּו אֲשֶׁר־בָּרָא אֱלֹהִים לַעֲשֹׂות׃ ף 새번역,3 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므로,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개역개정,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וַיְבָרֶךְ אֱלֹהִים אֶת־יֹום הַשְּׁבִיעִי וַיְקַדֵּשׁ - 와예바레크 엘로힘 엩 욤 핫쉐비이 와예카데쉬) 하나님이 일곱째 날 자체를 복되게 하셨다는 것은 이 날의 안식을 통해 피조물들에게 복을 베푸신다는 뜻이다. 즉, 안식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장차 인간에게 주어질 안식일 제도가 인간을 위한(막2:27) 복된 것임을 증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여기서 '거룩하다'(카다쉬)는 '깨끗케 하다'(삼하 11:4), '구별하다'(출 27:26), '드리다'(대상 18:11)로도 번역될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안식하신 날을 거룩한 목적으로 특별히 구별하셨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날을 무엇보다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날로 삼아야 한다. 창세기 2장 4절(창 2:4) 엘레 톨레도트 핫솨마임 웨하아레츠 베히바레암 베욤 아소트 아도나이 엘로힘 에레츠 웨솨마임 히브리어구약BHS,4 אֵלֶּה תֹולְדֹות הַשָּׁמַיִם וְהָאָרֶץ בְּהִבָּרְאָם בְּיֹום עֲשֹׂות יְהוָה אֱלֹהִים אֶרֶץ וְשָׁמָיִם׃ 새번역,4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의 일은 이러하였다. 주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실 때에, 개역개정,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 여호와 하나님이(יְהוָה אֱלֹהִים - 아도나이 엘로힘)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처음 소개된다. '여호와'는 하나님께서 친히 스스로 계시하신 이름으로서(출 3:13-15) 성경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엘로힘'(하나님)은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을 강조하는 명칭이며, '여호와'는 스스로 계시는 초월적인 하나님,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을 이루어가시는 구원의 하나님의 모습을 강조하는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의 천지창조 기사에서는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을 강조하는 '엘로힘'만이 쓰였으나, 이제 인간과 하나님의 언약 관계를 보여주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여호와'라는 이름이 동시에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부르는 것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라 생각하여 금기시하던 히브리인들은 이 단어를 '주님'이라는 뜻을 가진 '아도나이'로 발음했다. * 때에(בְּיֹום - 베욤) 여기서는 히브리어 '욤'이 '날'(day)이 아니라 특정한 '때'(time)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 내력이니(אֵלֶּה תֹולְדֹות - 엘레 톨레도트) 여기서 '엘레'는 '이것들'(These)이라는 의미를 가진 지시 대명사이다. '내력'에 해당하는 '톨레도트'는 '아이를 낳다'(4:18)란 뜻이 있는 '얄라드'에서 유래하여 '계보', '출생', '역사', '가족' 등과 같은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는데, 본절에서의 정확한 의미는 '역사'이다. 이는 본절 이하의 내용이 1:1-2:3에 언급된 사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재묘사하는 역사적인 내용이라는 뜻이다. 즉, 창세기 1:1-2:3이 하나님의 천지창조 사역을 큰 틀에서 묘사했다면, 2:4부터는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사역을 인간을 중심으로 묘사하고 있다. 창세기 2장 5절(창 2:5) 웨콜 시아흐 핫사데 테렘 이흐예 바아레츠 웨콜 에세브 핫사데 테렘 이츠마흐 키 로 힘티르 아도나이 엘로힘 알 하아레츠 웨아담 아인 라아보드 엩 하아다마 히브리어구약BHS,5 וְכֹל שִׂיחַ הַשָּׂדֶה טֶרֶם יִהְיֶה בָאָרֶץ וְכָל־עֵשֶׂב הַשָּׂדֶה טֶרֶם יִצְמָח כִּי לֹא הִמְטִיר יְהוָה אֱלֹהִים עַל־הָאָרֶץ וְאָדָם אַיִן לַעֲבֹד אֶת־הָאֲדָמָה׃ 새번역,5 주 하나님이 땅 위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으므로, 땅에는 나무가 없고, 들에는 풀 한 포기도 아직 돋아나지 않았다. * 땅을 갈(לַעֲבֹד אֶת־הָאֲדָמָה - 라아보드 엩 하아다마) 하나님은 본문을 통해 사람이 땅을 갈아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갈다'의 원형 '아바드'가 일차적으로 '일하다' (30:26; 출 5:18)란 뜻을 가지고 있지만 '다스리다'(2:15; 신 28:39), '봉사하다'(29:25; 민 18:23), '힘쓰다'(신 5:13)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을 착취하거나 우리의 마음대로 파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열심히 관리하고 다스려야 하며,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이 구절은 창세기 1:1-2:3의 천지 창조 기사와는 일견 모순되는 듯한 구절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선 사람이 창조되기 이전의 셋째 날에 이미 하나님께서 각종 채소와 과목을 창조하신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1:11-13). 이는 창세기 2장의 서술 관점이 창세기 1장의 서술 관점과 다르기 때문이다. 즉, 창세기 1장이 창조 사역의 순서를 중심으로 기록된 내용이라면 창세기 2장은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사람을 중심으로 기록된 내용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창조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이 이 땅에 존재하기 이전에 지구의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 2장 6절(창 2:6) 웨에드 야아레 민 하아레츠 웨히쉬카 엩 콜 페네 하아다마 히브리어구약BHS,6 וְאֵד יַעֲלֶה מִן־הָאָרֶץ וְהִשְׁקָה אֶת־כָּל־פְּנֵי־הָאֲדָמָה׃ 새번역,6 땅에서 물이 솟아서, 온 땅을 적셨다. *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וְאֵד יַעֲלֶה מִן־הָאָרֶץ - 웨에드 야아레 민 하아레츠) 직역하면 '그리고 안개가 땅에서 올라오고 있었다'이다. 특히 본문에서 '올라와'(야아레)는 '피어 오르다'란 의미를 지니는 히브리어 '알라'의 미완료형으로 계속해서 안개가 피어 올라오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또한 '안개'(에드)는 땅에서 증발한 후 비가 되어 다시금 땅에 떨어지는 수증기를 의미하는 것으로(욥 36:27), 이러한 수증기는 땅에서 식물이 자랄 수 있게 해 주는 여러 가지 조건 중 하나였다. * 적셨더라(וְהִשְׁקָה - 웨히쉬카) 직역하면 '그리고 그것은 적시게 하였다'이다. 여기서 '적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카'는 '물을 대다'(신 11:10; 겔 32:6), '마시우다'(민 20:8; 시 60:3), '윤택하다'(욥 21:24)로도 번역되는 단어이다. 여기서 이 단어는 이미 동작이 끝났음을 보여 주는 완료형으로 사용되어, 땅에서 올라오는 안개가 마치 물을 대는 것과 같이, 식물이 잘 자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온 지면에 공급되고 있었음을 뜻한다. 창세기 2장 7절(창 2:7) 와이체르 아도나이 엘로힘 엩 하아담 아파르 민 하아다마 와이파흐 베아파우 니쉬마트 하임 와예히 하아담 레네페쉬 하야 히브리어구약BHS,7 וַיִּיצֶר יְהוָה אֱלֹהִים אֶת־הָאָדָם עָפָר מִן־הָאֲדָמָה וַיִּפַּח בְּאַפָּיו נִשְׁמַת חַיִּים וַיְהִי הָאָדָם לְנֶפֶשׁ חַיָּה׃ 새번역,7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 ㉡히, '아다마' ㉢히, '아담' 개역개정,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 땅의 흙으로(עָפָר מִן־הָאֲדָמָה - 아파르 민 하아다마) 여기서 '땅'(아다마)은 '붉다'(애 4:7; 나 2:3)란 뜻이 있는 '아담'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땅이 붉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표현이다. 또한 '흙'(아파르)은 '재'(민 19:17), '진토'(삼상 2:8), '가루'(왕하 23:15)로도 번역되며, 동사로 사용될 때는 '부스러지다'(왕상 20:10)는 뜻도 지닌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기가 없다면 흙과 같이 부스러지기 쉬운 보잘것 없는 존재이며 결국은 흙으로 돌아갈 존재이다. * 사람(הָאָדָם - 하아담) 성경에서 히브리어 '아담'이라는 단어는 약 560회 가량 나온다. 그런데 이 단어는 본절에서와 같이 '사람'(man)을 뜻하기도 하고, 19절 이하에서 계속 반복되는 것과 같이 최초의 사람인 '아담'(Adam)이란 특정한 인물의 이름을 뜻하기도 한다. 이 단어의 어원과 거기 담긴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둘째, '만들다'(make), '짓다'(build)란 뜻을 지닌 앗수르어 '아다무'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다. 즉 아담이란 뜻은 사람이 '지음을 받는 존재' 즉 피조물임을 강조하는 이름이라는 견해이다. 셋째, 히브리어 첫번째 알파벳인 '알렙'과 '물' 혹은 세계의 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 '바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알파벳 '멤' 그리고 두 글자 사이에 '중심'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알파벳 '달렛'을 사용하여, 처음과 끝이 의미하는 모든 피조 세상의 중심에 사람이 위치함을 보여 준다는 견해이다. 넷째, 하나님을 의미하는 '엘로힘'의 히브리어 알파벳 '알렙'과 짐승이란 뜻을 지닌 '베헤마'의 히브리어 알파벳 '멤'사이의 존재가 사람임을 보여 준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신적 요소를 지닌 반면 육체의 정욕대로 살 때는 짐승과 같은 존재로 타락할 수도 있다는 견해이다. 다섯째, '빛이 나다'라는 의미가 있는 아람어에서 유래하여 사람이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존귀한 존재임을 나타낸다는 견해이다. 여섯째, '결합시키다'라는 의미가 있는 아람어에서 유래하여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서 살았던 전 인류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자임을 나타낸다는 견해이다. 일곱째, '붉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사람의 피부 빛을 반영하고 있다는 견해이다. 이 중에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는 첫 번째 견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견해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창세기 1:26-27절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는 전인격적인 창조에 관한 기술이라면 본문은 특별히 사람의 육신의 창조에 관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 생기를(נִשְׁמַת חַיִּים - 니쉬마트 하임) 본문의 '생기'는 '숨'(왕상 17:17), '호흡'(신 20:6), '기운'(욥 4:9), '영혼'(잠 20:17) 등으로도 번역되는 '네솨마'의 연계형 '니쉬마트'와 '살다'(23:1), '활발하다'(시 38:19) 등에서 유래해 '생명'(1:30; 신 28:66)으로 번역되는 '하이'의 복수형인 '하임'이 결합된 말이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생명들의 기운'이며, 곧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인 방법으로 부여하신 '생기'로부터 유래되었음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 * 생령(לְנֶפֶשׁ חַיָּה - 레네페쉬 하야) '숨', '호흡'을 뜻하는 '네페쉬'와 '생존', '존재'를 의미하는 '하야'가 합해서 된 말로 '살아 있는 존재'란 뜻이다. 물론 '네페쉬'가 다른 곳에서 '혼'(Soul) 또는 '영혼'(Spirit)을 가리키는 뜻으로도 쓰였으나 여기서는 '호흡'(breath)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생령'이라는 말은 사람이 '영혼'을 지닌 존재임을 직접적으로 증거하는 구절은 아니다. 사람의 영혼은 오히려 1:26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란 말에 강력히 암시되어 있다. 그런데 번역 성경에서는 왜 동일한 단어를 일반 짐승을 가리킬 때는 '생물'(RSV, living creature)로, 사람을 가리킬 때는 '생령'(KJV, living soul)으로 번역했을까? 이러한 차이는 히브리어 단어 때문이 아니라 문맥의 차이를 반영하여 번역함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짐승들은 말씀을 통하여 육체와 생명을 동시에 창조하신 반면 특별히 사람만은 그 육체를 흙으로 지으시고 그 생명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있게 하셨다. 이러한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여 창조된 사람은 살아 숨쉰다는 점에서 '네페쉬 하야'인 다른 동물들과 차이가 없으나, 하나님의 특별한 애정으로 그 형상에 따라 지음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생령'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1:27). 창세기 2장 8절(창 2:8) 와이타 아도나이 엘로힘 간 베에덴 미케뎀 와야셈 솸 엩 하아담 아쉘 야차르 히브리어구약BHS,8 וַיִּטַּע יְהוָה אֱלֹהִים גַּן־בְּעֵדֶן מִקֶּדֶם וַיָּשֶׂם שָׁם אֶת־הָאָדָם אֲשֶׁר יָצָר׃ 새번역,8 주 하나님이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을 일구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 동방의(מִקֶּדֶם - 미케뎀) 창세기 저자의 입장에서 본 동방으로, 10-14절에 언급된 네 강의 이름과 주변 지역 및 그 산물들을 종합해서 고찰해 보면 아마도 '메소포타미아 지역'인 듯하다. * 에덴에 동산을(גַּן־בְּעֵדֶן - 간 베에덴) '동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간'은 '울타리를 치다, '보호하다'(왕하 19:34; 사 37:35)라는 뜻이 있는 '까난'에서 유래하여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는 안전한 장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곳은 하나님이 구별하여 보호하시는 특별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헬라어역 성경인 70인역에서는 '낙원'(파라데이소스)으로 번역하고 있다. 히브리어 '에덴'은 '기쁨'이라는 뜻을 가진 우가릿어 '에덴'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라틴어 번역본 성경인 벌게이트(Vulgate)는 본절에 나오는 '에덴 동산'을 '파라디수스 볼룹타티스'(paradisus voluptatis), 즉 '기쁨의 낙원'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하여 기쁨이 넘치는 매우 특별한 장소를 마련해 놓으셨다. * 창설하시고(וַיִּטַּע - 와이타) 인류 최초의 거주지 에덴 동산이 특별한 장소였다는 사실은 '창설하다'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다. 이 단어의 원형인 히브리어 '나타'에는 일차적으로 나무를 '심다'(레 19:23; 삼하 7:10; 전 3:2), 포도원이나 정원을 '만들다'(신 20:6; 렘 29:5, 28) 라는 뜻이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되, 마치 농부가 좋은 열매를 바라며 정성껏 나무를 심듯이 또 포도원이나 정원을 만들 듯이 깊은 관심을 기울여서 만드셨음을 보여 준다. 창세기 2장 9절(창 2:9) 와야츠마흐 아도나이 엘로힘 민 하아다마 콜 에츠 네흐마드 레마르에 웨토브 레마아콜 웨에츠 하하임 베토크 학간 웨에츠 하다아트 토브 와라 히브리어구약BHS,9 וַיַּצְמַח יְהוָה אֱלֹהִים מִן־הָאֲדָמָה כָּל־עֵץ נֶחְמָד לְמַרְאֶה וְטֹוב לְמַאֲכָל וְעֵץ הַחַיִּים בְּתֹוךְ הַגָּן וְעֵץ הַדַּעַת טֹוב וָרָע׃ 새번역,9 주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개역개정,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נֶחְמָד לְמַרְאֶה וְטֹוב לְמַאֲכָל - 네흐마드 레마르에 웨토브 레마아콜) '아름답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흐마드'는 단순히 보기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귀하고'(잠 21:20), '영화스러워서'(시 39:11), '흠모할'(사 53:2)만큼 '탐스러운'(3:6) 것까지 의미하는 다양한 뜻을 가진 '하마드'의 단순 재귀형(Niphal) 수동 분사이다. '좋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브'는 '선하다'(26:29), '보배롭다'(왕하 20:13), '복되다'(욥 7:7), '유익하다'(전 5:11) 등으로도 번역된다. 따라서 '먹기에 좋다'란 의미는 단순히 맛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었을 때에 우리에게 매우 복되고 유익하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우 좋은 음식을 허락하셨다. * 생명나무(וְעֵץ הַחַיִּים - 웨에츠 하하임) '생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이'는 단순히 '생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기', '활력', '번영'(삼하 23:20; 삼상 25:6) 및 '소생'(18:10, 14; 왕하 4:16, 17)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람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생명이 유지될 뿐만 아니라 생기와 활력이 넘치고 번영하며 소생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칼빈(Calvin)은 이 나무는 아담과 하와가 그 과실을 먹을 때마다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성례전적 의미를 지닌 나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사람이 범죄한 이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심으로 말미암아 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고 영생하는 것을 막으셨다.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וְעֵץ הַדַּעַת טֹוב וָרָע - 웨에츠 하다아트 토브 와라) 여기서 '선'(토브)은 본절에 나오는 '먹기에 좋은 나무'의 '좋은'과 동일한 단어로서 온갖 긍정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는 단어이다. 반대로 '악'(라)은 '죄악'(6:5), '재앙'(19:19), '근심'(40:7), '곤경'(느 2:17), '위험'(시 107:26) 등과 같이 다양하게 번역되는 단어로서 온갖 부정적인 것을 모두 포괄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알게'(다아트)는 '알다', '체험하다', '익숙하다' 등의 다양한 뜻을 지니는 히브리어 '야다'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지식'(시 19:2; 전 1:16), '재능'(왕상 7:14)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선악을 알게 하는'이란 표현은 선과 악을 명확히 구별하는 지식은 물론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선만을 행하였으나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는 악까지 행할 재능을 지니게 됨을 보여 준다. 한편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주신 까닭은 인간이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로서, 타율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였다. 만약 이러한 자유 의지가 발휘될 수 있는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인간은 잘 만들어진 로보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자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셨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선악과를 주셨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악과가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악을 행할 가능성이 있으나 자의적으로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 창세기 2장 10절(창 2:10) 웨나하르 요체 메에덴 레하쉬코트 엩 학간 우밋솸 잎파레드 웨하야 레아르바아 라쉼 히브리어구약BHS,10 וְנָהָר יֹצֵא מֵעֵדֶן לְהַשְׁקֹות אֶת־הַגָּן וּמִשָּׁם יִפָּרֵד וְהָיָה לְאַרְבָּעָה רָאשִׁים׃ 새번역,10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서 동산을 적시고, 에덴을 지나서는 네 줄기로 갈라져서 네 강을 이루었다. 개역개정,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 강이...적시고(וְנָהָר ... לְהַשְׁקֹות - 웨나하르 ... 레하쉬코트) 직역하면 '그리고 강이 적시기 위하여'이다. 여기서 '강'(나하르)은 일차적으로 '시내'(시 46:4), '하수'(출 7:19)를 가리키지만, 많은 경우 풍요함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된다(사 48:18; 66:12). 또한 '적시다'(솨카) 역시 흡족할 정도로 '마시다'(24:46), '윤택하다'(욥 21:24) 등의 뜻을 지닌다. 이처럼 풍요를 상징하는 단어가 거듭 사용된 것는 그만큼 에덴 동산의 물이 풍부하여 땅이 매우 비옥했기 때문이다. 창세기 2장 11절(창 2:11) 쉠 하에하드 피숀 후 핫소베브 엩 콜 에레츠 하하윌라 아쉘 솸 핮자합 히브리어구약BHS,11 שֵׁם הָאֶחָד פִּישֹׁון הוּא הַסֹּבֵב אֵת כָּל־אֶרֶץ הַחֲוִילָה אֲשֶׁר־שָׁם הַזָּהָב׃ 새번역,11 첫째 강의 이름은 비손인데, 금이 나는 하윌라 온 땅을 돌아서 흘렀다. 개역개정,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 비손(פִּישֹׁון - 피숀) '흩어지다'(나 3:18), '퍼지다'는 뜻이 있는 '푸쉬'에서 유래하여 많은 지류가 있는 강임을 암시한다. 학자에 따라 이 강이 인더스 강(Kalisch), 나일 강(Midrash), 갠지스 강(Josephus, Eusebius), 코카서스(Kaukasus)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파시스 강(Adriaan Reland), 또는 바벨론 지역에 있는 팔라코파스 운하(Delitzsch)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 하윌라(הַחֲוִילָה - 하하윌라) '춤을 추다'(삿 21:21, 23), '소용돌이 치다' 등의 뜻이 있는 '힐'에서 유래하였다. 이러한 이름은 하윌라 지역을 비손 강이 휘돌아 흐르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곳은 본문의 내용과 같이 금과 은 및 각종 보석이 풍부하게 생산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학자에 따라 이 곳이 아라비아 인도 지역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창세기 2장 12절(창 2:12) 우자합 하아레츠 하히 토브 솸 하베돌라흐 웨에벤 핫쇼함 히브리어구약BHS,12 וּזֲהַב הָאָרֶץ הַהִוא טֹוב שָׁם הַבְּדֹלַח וְאֶבֶן הַשֹּׁהַם׃ 새번역,12 그 땅에서 나는 금은 질이 좋았다. 브돌라라는 향료와 홍옥수와 같은 보석도 거기에서 나왔다. * 순금이요(טֹוב - 토브) 원어를 직역하면 '그리고 그 땅의 금은 좋다'이다. 이를 약간 의역했기 때문에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순금이요'라는 글씨를 작게 썼다. 여기서 금이 좋다는 것은 금의 순도가 높다는 뜻이다. * 베델리엄(הַבְּדֹלַח - 하베돌라흐)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은 이 단어를 '석탄'이란 뜻의 '안드락스'로 번역했다. 같은 단어가 민 11장 7절에도 나오는데 한글성경은 이를 '진주'로 번역했다. 그러나 이 단어를 '분리하다'(느 13:3)라는 뜻이 있는 '빠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면, 이는 다른 것과 구별되는 값비싼 보석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수지(식물 고무)로 만들어진 투명한 호박 보석으로 보고 있다. * 호마노(הַשֹּׁהַם - 핫쇼함) 원어는 '창백한, '희미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희미한 녹색을 띤 '녹주석'(beryl) 또는 다양한 색채를 띤 '줄마노'(onyx) 등으로 보기도 한다. 한편, 이 보석은 후일 대제사장의 흉패 장식용 보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출 25:7). 오늘날에는 장식품이나 미술품의 재료로 사용된다. 창세기 2장 13절(창 2:13) 웨쉠 한나하르 핫쉐니 기혼 후 핫소베브 엩 콜 에레츠 쿠쉬 히브리어구약BHS,13 וְשֵׁם־הַנָּהָר הַשֵּׁנִי גִּיחֹון הוּא הַסֹּובֵב אֵת כָּל־אֶרֶץ כּוּשׁ׃ 새번역,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인데, 구스 온 땅을 돌아서 흘렀다. 개역개정,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 기혼(גִּיחֹון - 기혼) '넘쳐 흐르다'(욥 38:8)는 뜻이 있는 히브리어 '끼아흐'에서 유래했다. 학자에 따라 이 강을 나일 강(Josephus, Gesenius, Kalisch)이나 카스피 해로 흘러 들어가는 수량이 풍부한 '아락세스 강'(Reland) 혹은 바벨론 지역에 있는 '샤트 엔 닐' 운하(Delizsch) 등으로 추정하나 확실하지 않다. * 구스(כּוּשׁ - 쿠쉬) 기혼 강에 의해 둘려진 이 구스는 아프리카 지역의 구스(에디오피아)가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구스로 추정된다. 창세기 2장 14절(창 2:14) 베쉠 한나하르 핫쉐리쉬 힏데켈 후 하호레크 키드마트 앗수르 웨한나하르 하레비이 후 페라트 히브리어구약BHS,14 וְשֵׁם הַנָּהָר הַשְּׁלִישִׁי חִדֶּקֶל הוּא הַהֹלֵךְ קִדְמַת אַשּׁוּר וְהַנָּהָר הָרְבִיעִי הוּא פְרָת׃ 새번역,14 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인데, 앗시리아의 동쪽으로 흘렀다.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이다. 개역개정,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 힛데겔(חִדֶּקֶל-힏데켈) '티그리스'(Tigris)강을 가리키는 히브리어의 고대 명칭(단 10:4)이다. 원어는 '화살처럼 빨리 흐르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리오 왕의 비문에는 '티그라'(Tigra)라는 명칭으로 나타난다. * 앗수르 동쪽(קִדְמַת אַשּׁוּר-키드마트 앗수르) 여기서 '동쪽'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키드마'는 '동쪽'(east)이란 뜻 이외에 '앞쪽'(forward)이란 의미도 강하다. 따라서 이 말은 '앗수르 앞쪽'이란 뜻으로도 볼 수 있다(Keil). * 유브라데(פְרָת-페라트) 서아시아 최대의 강으로, 티그리스 강과 더불어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큰 영향을 끼친 강이다. 원어는 '잘 흘러가는', '좋고 비옥한'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강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단순히 '하수'(출 23:31; 사 7:20), '큰 강'(신 1:7), '강'(민 22:5) 등으로도 표기된다. 고대 페르시아 비문에는 '우프라타'(Ufrata)로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2장 15절(창 2:15) 와이카흐 아도나이 엘로힘 엩 하아담 와얀니헤후 베간 에덴 레아브다흐 우레솨므라흐 히브리어구약BHS,15 וַיִּקַּח יְהוָה אֱלֹהִים אֶת־הָאָדָם וַיַּנִּחֵהוּ בְגַן־עֵדֶן לְעָבְדָהּ וּלְשָׁמְרָהּ׃ 새번역,15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 그 사람(הָאָדָם-하아담) '아담'(사람)이란 말 앞에 정관사 '하'가 결합된 형태로 하나님께서 흙과 생기로 생령이 되게 하신(7절) 바로 '그 사람', 곧 인류의 시조인 '아담'(Adam)을 가리킨다. * 이끌어(וַיִּקַּח - 와이카흐) 이는 하나님이 아담의 손을 친히 잡고 그를 인도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아담이 하나님께서 지정해 두신 곳으로 이르도록 그의 전인격을 붙잡으시고 그의 내적, 외적 환경에 깊이 역사하셨다는 뜻이다. 이는 강압이나 억지가 아니라 그의 자발적인 의사(물론 하나님은 이 의사에 적극 개입하셨음)를 따른 것으로,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에덴 동산에 두어(וַיַּנִּחֵהוּ בְגַן־עֵדֶן - 와얀니헤후 베간 에덴) 여기서 '두어'는 '쉬다', '머물러두다', '위안하다'의 히브리어 '야나흐'에서 유래된 말로서 외부의 침입이나 내부의 근심이 없이 절대 평안을 유지하는 가운데 살도록 아름다운 여건을 조성하시고 거하게 하셨다는 뜻이다. * 경작하며(לְעָבְדָהּ - 레아브다흐) '아바드'(일하다, 경작하다, 봉사하다)의 단순 부정사로 아담이 평생 해야하는 일이 땅을 중심으로 한 노동이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노동의 원래 목적은 생계의 유지가 아니라 자연과 세계를 관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노동(직업)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이라는 의식을 가질 때 고귀하며 의미가 있다. * 지키게 하시고(וּלְשָׁמְרָהּ - 우레솨므라흐) 어근인 '솨마르'는 '울타리를 치다', '보존하다', '주의를 기울이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손상 없이 보존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아끼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혹자는 이를 근거로 그 당시 하나님의 동산을 해칠 만한 악한 존재가 이미 나타났다고 주장하나 설득력이 없다. 한편 본절은 창세기 1:28에서 주어진 것과 동일한 '문화 명령'(cultural mandate)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의 권한을 위임하시고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관할하도록 위탁하셨다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인간은 만물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로서 세상을 정복하고 다시르고 문화를 꽃피움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낼 책임이 있다. 창세기 2장 16절(창 2:16) 와예차우 아도나이 엘로힘 알 하아담 레모르 밐콜 에츠 학간 아콜 토켈 히브리어구약BHS,16 וַיְצַו יְהוָה אֱלֹהִים עַל־הָאָדָם לֵאמֹר מִכֹּל עֵץ־הַגָּן אָכֹל תֹּאכֵל׃ 새번역,16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 명하여(וַיְצַו - 와예차우) '차와'(명령하다, 지정하다, 맡기다)의 미래 강조형으로 본절에 제시된 명령을 앞으로 거역하거나 불순종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임의로 먹되(אָכֹל תֹּאכֵל - 아콜 토켈) 문자적으로는 '먹고 싶은 대로 먹되', '자유롭게 섭취하되'란 뜻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모든 음식물 뿐만 아니라 '생명나무'(9절)의 실과까지도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완전한 특권과 자유를 주셨다는 뜻이다. 창세기 2장 17절(창 2:17) 우메에츠 하다아트 토브 와라 로 토칼 밈멘누 키 베욤 아칼레카 밈멘누 모트 타무트 히브리어구약BHS,17 וּמֵעֵץ הַדַּעַת טֹוב וָרָע לֹא תֹאכַל מִמֶּנּוּ כִּי בְּיֹום אֲכָלְךָ מִמֶּנּוּ מֹות תָּמוּת׃ 새번역,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 먹지 말라(לֹא תֹאכַל - 로 토칼) 이는 단순 부정으로서 결코 먹어서는 안된다는 강한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만물을 다스리고 지키는 특권과 동산의 각종 열매를 임의로 먹는 자유가 주어진 인간에게 단 한가지 금지 명령이 엄숙한 경고와 함께 주어졌다. 그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곧 선악과(善惡果)를 먹지 말라는 것이요, 만일 명령을 어기고 그것을 먹게 될 경우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내용이었다. 반면 이러한 내용을 역으로 생각하면, 만일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영원토록 생명을 누리리라는 내용이기도 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 말씀은 본질상 계약적 형태를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Bavinck). 이를 신학적 용어로 '행위 언약'이라 칭한다. 측 선악과를 '먹느냐' 혹은 '먹지 않느냐'라는 인간의 행위 여부에 따라 죽음과 영생이 결정되는 언약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죽음 또는 영생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결코 열매 자체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혹은 불순종하고자 하는 인간 내면의 '자유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이다. 한편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선악과와 이를 통한 행위 언약의 법을 주신 근본 목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에게 그 자유 의지를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활용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였다. 즉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지를 결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스스로 전인격적 독립체가 되도록 하셨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이런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이 스스로 당신을 섬기며 교제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대상으로 하여 맺은 행위 언약의 목적은 결코 인간을 속박하고자 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함으로써 인간이 그 말씀에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법을 깨달아 진정한 자유와 기쁨올 누리도록 하려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 네가 먹는 날에는(בְּיֹום אֲכָלְךָ מִמֶּנּוּ - 베욤 아칼레카 밈멘누) 여기서 '날'이란 말에는 전치사 '베'가 붙어 '바로 그날 안에'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이는 명령 거부에 대한 하나님의 단호하고도 엄정한 심판의 확실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 정녕 죽으리라(מֹות תָּמוּת - 모트 타무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준 '절대 명령'이자 인간과 맺은 최초의 행위 언약이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임을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역설적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면 영원히 살리라는 약속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언약(호 6:7)이다. 창세기 2장 18절(창 2:18) 와요메르 아도나이 엘로힘 로 토브 헤요트 하아담 레바도 에에세흐 로 에제르 케네그도 히브리어구약BHS,18 וַיֹּאמֶר יְהוָה אֱלֹהִים לֹא־טֹוב הֱיֹות הָאָדָם לְבַדֹּו אֶעֱשֶׂהּ־לֹּו עֵזֶר כְּנֶגְדֹּו׃ 새번역,18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 *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לֹא־טֹוב הֱיֹות הָאָדָם לְבַדֹּו - 로 토브 헤요트 하아담 레바도) 이 말씀은 분명히 1:31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최종 평가가 있기 전의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즉 본문은 인간의 자연 발생적인 고독과 완전한 만족의 결핍을 나타내 보인 것으로,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 아직 창조 사역을 완성하기 전의 상태를 나타내 주고 있다. 실로 하나님은 인간의 아직 채워지지 않은 내적 갈망을 만족시킬 '돕는 배필'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Yates). 그리고 여기서 '좋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토브'는 상대적으로 '더 낫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하신 뜻을 좇아 지으신 피조물 중에 보시기에 좋지 못한 것은 본래 하나도 없었다(1:31). 따라서 이 말은 다만 아담이 혼자 지내는 것보다 하와와 함께 거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낫다는 의미이다. * 돕는 배필(עֵזֶר כְּנֶגְדֹּו - 에제르 케네그도) '조력자', '반려자', '응답하는 자'(one who answers)라는 뜻으로, 곧 성품과 신분에 있어서 남자와 같고 언제나 그 곁에 살면서 상호 위로와 기쁨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동시에 이 말은 남편과 책임을 나눠 지며, 이해와 사랑으로써 남편의 본성에 대응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섬기는 데 남편과 혼연일체가 되어 협조하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란 의미도 지닌다. 더불어 남편에 대한 아내의 역할을 암시하는 말로, 곧 아내의 일반적 기능이 '조력'에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말이 남성 우위론의 근거로 오용(誤用)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남녀의 차이는 신체적, 기능적 차이이지 인격적 차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다 그분의 성품을 함께 나눠 받은 동등한 인격체일 뿐이다(고전 11:11). 창세기 2장 19절(창 2:19) 와이첼 아도나이 엘로힘 민 하아다마 콜 하야트 핫사데 웨에트 콜 오프 핫솨마임 와야베 엘 하아담 릴오트 마 이크라 로 웨콜 아쉘 이크라 로 하아담 네페쉬 하야 후 쉐모 히브리어구약BHS,19 וַיִּצֶר יְהוָה אֱלֹהִים מִן־הָאֲדָמָה כָּל־חַיַּת הַשָּׂדֶה וְאֵת כָּל־עֹוף הַשָּׁמַיִם וַיָּבֵא אֶל־הָאָדָם לִרְאֹות מַה־יִּקְרָא־לֹו וְכֹל אֲשֶׁר יִקְרָא־לֹו הָאָדָם נֶפֶשׁ חַיָּה הוּא שְׁמֹו׃ 새번역,19 주 하나님이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흙으로 빚어서 만드시고, 그 사람에게로 이끌고 오셔서, 그 사람이 그것들을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보셨다.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물 하나하나를 이르는 것이 그대로 동물들의 이름이 되었다.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지으시고(וַיִּצֶר יְהוָה אֱלֹהִים מִן־הָאֲדָמָה - 와이첼 아도나이 엘로힘 민 하아다마) 본절은 '말씀으로' 모든 생물을 창조하셨다는 1장의 창조 기사와 모순되는 듯 보이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2장은 1장의 기사를 필요한 부분에 따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 장으로서, 본절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창조적 능력의 말씀으로' 각종 들짐승과 새와 물고기와 인간을 창조하시되 그 몸의 구성 성분을 흙으로 이루어지게 하신 것이다. 따라서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것들은 '흙으로' 지음 받은 존재와 다름이 없다. 그러나 짐승에게는 하나님의 생기 즉 영혼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7절). 창세기 2장 20절(창 2:20) 와이크라 하아담 쉐모트 레콜 하베헤마 울오프 핫솨마임 울콜 하야트 핫사데 울아담 로 마차 에젤 케네그도 히브리어구약BHS,20 וַיִּקְרָא הָאָדָם שֵׁמֹות לְכָל־הַבְּהֵמָה וּלְעֹוף הַשָּׁמַיִם וּלְכֹל חַיַּת הַשָּׂדֶה וּלְאָדָם לֹא־מָצָא עֵזֶר כְּנֶגְדֹּו׃ 새번역,20 그 사람이 모든 집짐승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 ㉣남자를 돕는 사람 곧 그의 짝이 없었다. / ㉣히, '아담' 개역개정,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 아담이 이름을 주니라(וַיִּקְרָא הָאָדָם שֵׁמֹות - 와이크라 하아담 쉐모트) '이름을 짓다', '이름을 부르다', '이름을 공포하다'는 뜻이다.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그에 대한 소유권이나 종주권(宗主權)을 나타내는 행위였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이 직접 피조물의 이름을 짓지 않으시고 그 권한을 아담에게 위임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다른 만물보다 뛰어난 존재임을 인정해주시는 사건이다. 실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각종 동물들에게 적절하고도 합리적인 이름을 부여할 만큼 통찰력이 뛰어났다. 창세기 2장 21절(창 2:21) 와야펠 아도나이 엘로힘 타르데마 알 하아담 와이솬 와이카흐 아하트 미찰오타우 와이스고르 바사르 타흐텐나 히브리어구약BHS,21 וַיַּפֵּל יְהוָה אֱלֹהִים תַּרְדֵּמָה עַל־הָאָדָם וַיִּישָׁן וַיִּקַּח אַחַת מִצַּלְעֹתָיו וַיִּסְגֹּר בָּשָׂר תַּחְתֶּנָּה׃ 새번역,21 그래서 주 하나님이 그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셨다. 그가 잠든 사이에, 주 하나님이 그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뽑고, 그 자리는 살로 메우셨다. * 깊이 잠들게(תַּרְדֵּמָה - 타르데마) 황홀경에 빠지거나 환상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잠에 든 것을 뜻한다(욥 4:13). 이는 아담이 자연적인 수면에 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초자연적인 깊은 잠에 들었음을 의미한다. * 갈빗대(מִצַּלְעֹתָיו - 미찰오타우) '구부러지다'란 뜻의 히브리어 '찰라'에서 파생된 말로, 직역하면 '구부러진 것'이란 의미이다. 이외에도 이 단어는 성경 용례상 '갈빗대'란 뜻과 함께 '한쪽 편'이란 뜻도 지닌다. 그래서 혹자는 이에 근거해 아담은 본래 남녀 양성을 지녔었는데 하나님께서 여성을 따로 떼어내셨을 것으로 추정한다(Obbink). 그러나 그 같은 견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자'(자카르)와 '여자'(네케바)로 각기 구별하여 창조하셨다는 창 1장 27절의 기사와,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라는 딤전 2장 13절의 말씀과 상충되는 주장으로 타당하지 못하다. 창세기 2장 22절(창 2:22) 와이벤 아도나이 엘로힘 엩 하체라 아쉘 라카흐 민 하아담 레잇솨 와예비에하 엘 하아담 히브리어구약BHS,22 וַיִּבֶן יְהוָה אֱלֹהִים אֶת־הַצֵּלָע אֲשֶׁר־לָקַח מִן־הָאָדָם לְאִשָּׁה וַיְבִאֶהָ אֶל־הָאָדָם׃ 새번역,22 주 하나님이 남자에게서 뽑아 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에게로 데리고 오셨다. * 여호와 하나님이... 그 갈빗대로... 만드시고(וַיִּבֶן יְהוָה אֱלֹהִים אֶת־הַצֵּלָע - 와이벤 아도나이 엘로힘 엩 하체라) 하나님께서 많은 부분 중에서 특별히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지으신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1) 남자의 옆구리 부분에서 취하여 만든 것은 남자와 여자가 인격적으로 상호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보여 준다(고전 11:11, 12). 곧 하나님께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다리뼈로 여자를 만들지 않으셨다. 반면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머리뼈로 만들지도 않으셨다(Matthew Henry). (2)남녀는 상호 불가분의 존재로서 특히 여자는 남자에게서 소중히 여김을 받을 위치에 있음을 보여 준다(엡 5:25-33). 곧 하나님께서는 보호함을 받도록 팔 밑에서 취했으며, 사랑을 받도록 가슴 근처에서 갈빗대를 취하사 여자를 만드셨던 것이다(벧전 3:7). 이로 인하여 여자는 남자에 의지해야 하는 필연성을 지니게 되었으며 남자를 떠나서는 결코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는 의존적 존재가 되었다. 더불어 남자 역시 잃어버린 갈빗대인 여자를 떠나서는 완전치 못한 존재가 되었다. 따라서 두 독립체는 하나로 결합함으로써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마침내 창조의 기쁨과 영광이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Yates). 한편, 여기서 아담은 장차 둘째 아담으로 오실 신랑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여자 하와는 그의 신부인 교회를 예표한다(엡 5:32). 즉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로부터 흘러내린 십자가 상의 물과 피로 말미암아 신부되는 교회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상에서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에 취하게 하사 그의 옆구리로부터 흘러내린 대속의 물과 피로(요 19:34) 그의 배필되는 신부 교회를 만드셨던 것이다(엡 5:26). *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וַיְבִאֶהָ אֶל־הָאָדָם - 와예비에하 엘 하아담) 창세기 2장 23절(창 2:23) 와요멜 하아담 조트 하파암 에쳄 메아차마이 우바사르 미베사리 레조트 잌카레 잇솨 키 메이쉬 루카하 조트 히브리어구약BHS,23 וַיֹּאמֶר הָאָדָם זֹאת הַפַּעַם עֶצֶם מֵעֲצָמַי וּבָשָׂר מִבְּשָׂרִי לְזֹאת יִקָּרֵא אִשָּׁה כִּי מֵאִישׁ לֻקֳחָה־זֹּאת׃ 새번역,23 그 때에 그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 ㉤히, '이쉬' ㉥히, '잇샤' os ex ossibus meis et caro de carne mea haec vocabitur virago quoniam de viro sumpta est *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זֹאת הַפַּעַם עֶצֶם מֵעֲצָמַי וּבָשָׂר מִבְּשָׂרִי - 조트 하파암 에쳄 메아차마이 우바사르 미베사리) 잠에서 깨어난 아담이 하나님께 인도되어 오는 여자를 보고, 즉각 그 여자가 자신의 뼈와 살로 지음받은 존재임을 노래하는 장면으로, 곧 배필을 맞이 하는 남자의 지극한 기쁨이 반복과 대구(對句)를 통하여 표현된 아담의 감격시요 감사와 찬양의 노래이다. * 여자라 칭하리라(יִקָּרֵא אִשָּׁה - 잌카레 잇솨) '여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솨'는 '남자'를 뜻하는 '이쉬'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는 어원적으로도 여자는 남자의 뼈와 살로 지음받은 사실을 시사해 준다. 결국 이것은 남자와 여자는 상호 결합되어 있는 불가분의 존재로서, 본질상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교훈해 준다. 단지 질서와 기능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구별될 뿐이다. 그리고 이 단어는 여자와 남자가 구별된 존재임을 강조하는 '네케바'(1:27)와는 달리 여자란 남자에게서 유래(由來)된 존재임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창세기 2장 24절(창 2:24) 알 켄 야아좁 이쉬 엩 아비우 웨엩 임모 웨다바크 베이쉬토 웨하이우 레바사르 에하드 히브리어구약BHS,24 עַל־כֵּן יַעֲזָב־אִישׁ אֶת־אָבִיו וְאֶת־אִמֹּו וְדָבַק בְּאִשְׁתֹּו וְהָיוּ לְבָשָׂר אֶחָד׃ 새번역,24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 떠나... 합하여... 이룰지로다 결혼 제도의 창시자요 최초 결혼 예식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주례사(主禮輪)와도 같은 말씀이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결혼의 대 원리를 찾아 볼 수 있다. 즉, (1) 육체적 · 인격적으로 책임있는 존재로서 이제 상호 부모로부터 홀로 서는 '독립성'. 이는 혈연의 완전한 단절을 뜻하지 않는다. 오직 사랑과 성숙과 편의와 경제와 거주의 관점에서의 떨어짐을 가리킨다(Whitelaw). (2) 동등하고 유기적인 두 인격체가 상호 협력함으로 같은 뜻을 이루는 '연합성'. 이는 상호 이해와 신뢰와 인정과 인내와 헌신을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하다. 이런 사람은 강하며 생명력이 있다. (3) 구별된 두 존재가 성숙한 사랑과 이해로서 영육간에 하나되는 '일체성'. 이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만큼의 강한 결집력을 암시한다(마 19:6). 한편 안식일과 더불어 인류 타락 전에 주어진 현재 상태대로의 결혼 제도는 장차 신약 시대에 신랑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보혈로 형성된 신부 교회간의 연합과 일체를 예표하고 있는 사랑과 생명의 제도요 계시적 비밀이다(엡 5:31, 32). 창세기 2장 25절(창 2:25) 와이흐이우 쉬네헴 아룸밈 하아담 웨이쉬토 웨로 이트보솨슈 히브리어구약BHS,25 וַיִּהְיוּ שְׁנֵיהֶם עֲרוּמִּים הָאָדָם וְאִשְׁתֹּו וְלֹא יִתְבֹּשָׁשׁוּ׃ 새번역,25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개역개정,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태초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는 서로 나체였으나 부끄러움을 몰랐다. 이것은 혹자들(Knobel, Kalisch)의 견해처럼 그들의 도덕적 상태가 미숙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죄 시대의 특징으로서, 곧 타락 전 하나님의 거룩한 영의 형상으로서 온전히 창조된 아담과 하와의 순결한 영육은 부끄러움을 몰랐다(Keil). 부끄러움, 곧 수치심은 타락과 더불어 곧 느끼게 되었는데(3:7, 10), 이는 하나님의 명령(16, 17절)을 어기고 육체적 충동과 감각적 소욕을 쫓아 금지된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순결한 인간의 영육 상태가 오염되고 파괴된 결과로서 파생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부끄러움'(부솨)은 인간 타락의 결과로서 원초적 성결의 상실감에서 오는 부자연스럽고 불안정한 정신 상태의 한 양상임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