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8 10 - changsegi 28 10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 야곱은 집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습니다. 그의 형 에서가 자신의 장자권을 빼앗아간 동생 야곱을 죽이려 하기 때문이죠. 야곱은 자신이 평생 살아왔던 브엘세바를 떠나 난생 처음 한번도 걸어가보지 않은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자신도 이 길에 무엇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는 떠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목적지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길을 떠나는 것, 어쩌면 야곱의 이 여정은 이제 막 2020년도를 시작하는 우리와 너무나도 유사한 상황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이 새로 시작한 새해 어떤 사건들이 우리를 기다리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인생을 여행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삶을 모험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익숙한 장소, 익숙한 환경을 떠나 한 번도 걸어가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으로 옮겨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야곱에게 있어 이 여정은 단순히 공간적인 이동이 아니라, 새로운 진로를 향해 가기 위해 그 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고통의 현장 속에서 야곱은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는 이 고통의 여정 길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죠. 이제 막 시작한 2020년,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만남’입니다. 새해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만남과 선택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 여러 만남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하나님과의 만남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놀랍도록 변화게 됩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달라지고,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인생관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우리들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는 변화의 순간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어디에서 과연 이 귀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단 말입니까? 오늘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장소는 그가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장소였습니다. 10-11절 말씀을 한 번 보십시오. “(창 28: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창 28:11) 한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그는 지금 떠나고 싶어서 이 여정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죽이려 하는 형 에서의 눈을 피하기 위해, 사랑하는 부모와 원치 않는 생이별을 하는 중입니다. 지금 이대로 가면 언제 또 다시 고향 땅으로 올 수 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두 번 다시는 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상황 입니다.
자기 어머니의 오라버지가 살고 있다고 들은 하란 땅을 향해 무거운 마음으로 무작정 걸어가고 있는 것이죠. 11절을 주목해 봅시다. 여기 “한 곳에 이르러”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집을 떠난 야곱은 자신도 어디인지 모르는 어느 한 곳에 이르게 된 것이죠. 가정의 막내로 예쁨 받으며, 엄마 치마 폭에서 귀한 자식으로 자란 야곱 입니다. 일평생 집 밖을 이렇게 멀리 떠나 본적이 없으니 그도 이곳이 어디 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곳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광야였습니다. 누울 침소 하나 없고, 새벽이슬로부터 그를 지켜줄 벽이나 천장도 하나 없는, 사방이 흙과 모래 밖에 없는 광야였습니다.
야곱은 태어나서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집에 있었으면 푹신한 베개를 배고 잤을탠데 배게가 없다보니 돌을 베개 삼아 잠을 청하게 됩니다. 등 밑에 땅이 그의 침대요, 돌이 그의 베개요, 하늘이 그의 이불인 셈 입니다. 밤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을 보며 어쩌면 야곱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억제하며 잠을 청하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지금 인생의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가장 외롭고 고통스러운 상황, 그리고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 밖의 장소… 어디인지도 몰라서 11절에 “한 곳에…”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바로 그 광야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인생의 신비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삶의 고통의 순간에 우리들을 찾아 오십니다.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거나 들어줄 이 없는 이 쓸쓸한 광야, 내일이면 또 무슨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지 알 수 없어 불안한 광야, 가족과의 생이별을 겪고 아픈 가슴을 부둥켜 안고 있는 광야… 야곱의 생애 중 가장 고독스러운 밤이요, 세상의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감싸는 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인생의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바로 그 밤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뜻 밖의 순간에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12-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창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창 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야곱이 하나님을 찾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니 야곱이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나고 싶어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 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오늘 본문 말씀을 본다면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만나시기 위해 그가 상상하지도 못한 이 광야로 이끄셨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군중 가운데 있고, 소음으로 둘러 쌓여 있고, 일상의 분주함이 있는 곳에서는 하나님을 잘 만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인 자신의 비참한 실수 때문에 가정에서 쫓겨나 광야로 나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수를 통해서도 능히 역사하심을 알고 계십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서 있는 실패와 좌절의 광야에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신명기 32장 9-10절 말씀을 한 번 찾아봅시다. (구약 313페이지) “(신 32:9)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신 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10절 보세요. 하나님은 야곱을 어디에서 만나셨습니까? 편안한 집 입니까? 잔치가 열리는 화려한 성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은 외롭고 고독한 장소,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짐승들의 울음소리만 들려오는 광야에서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광야는 조용한 곳입니다. 고통스럽고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만나 주시기 위해서 혹은 때로 훈련 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훈련 학교 입니다. 우리는 안락한 가정이나, 익숙한 환경에서 배울 수 업는 것들을 인생의 광야를 통과하며 배우게 됩니다. 그곳에서 우리 자아가 깨지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쁘고 화려한 삶 속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TV 소리가 들리고, 하루 종일 음악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하나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계속해서 사람들은 시끄러운 곳으로, 바쁜 곳으로,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데려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 세가지를 피해야 합니다. ‘소음’, 성급함’, ‘군중’ 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만나기 위해 그를 ‘조용한 광야’, 분주함이 없는 광야’, ‘나홀로 있는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야곱의 눈으로 보면 분명 그가 있는 곳은 아무것도 없는 광야 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고통의 현장에 하나님은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다시 한 번 유심히 보십시오. “(창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창 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야곱은 현재 자신의 삶이 위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로 그의 생각이 맞습니다. 지금 모든 문들이 야곱에게는 닫혀 있습니다. 미래가 불안하고,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여전히 야곱에게 아직 한 가지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늘의 문이었습니다.
실로 성경을 읽어보면, 위기의 순간에 하늘이 문의 일리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우리 삶에 곤경이 찾아오거나, 우리가 믿고 따르던 사람이 죽거나 떠났을 때,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저랑 한 번 성경을 좀 찾아보시죠. 예레미야 33장 1절 입니다. (구약 1106 페이지)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 예레미야가 인생의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인생의 모든 문이 닫혀 있을 때 오히려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하나만 더 봅시다. 이사야 6장 1절, 구약 972페이지 입니다.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웃시야 왕은 처음에는 옳은 일을 했습니다만, 점차 교만해져 결국 하나님의 벌을 받고 죽은 왕입니다. 왕의 죽음은 국가적 비보였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영적 타락으로 가득 했습니다. 이처럼 아무런 소망이 없어 보이는 그 때, 모든 문이 닫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때에 이사야 선지자는 하늘 문이 열려 있는 것으 보았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 입니다.
모세는 애곱에서 화려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애굽의 왕자라는 모든 지위와 보화를 잃어버리고, 광야에서 홀로 고독하게 양을 치는 목자로 살아 갈 때 주님을 만났습니다. 야곱은 두려움 가운데 아버지 이삭의 집을 떠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광야로 들어 갔습니다. 그는 인생의 가장 큰 위기를, 그리고 가장 외롭고 고독한 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로 야곱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새벽에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 야곱이 가장 힘들어 하고외로워 하는 바로 그 밤에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다는 사실 입니다. 그리고 훗날 어딘지도 몰랐던 그 낯선 장소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념하는 ‘벧엘’이란 멋진 이름을 가진 장소로 바뀌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제 막 시작한 2020년도 우리의 상황 역시 야곱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우리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어떤 사건과 상황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셨듯이, 우리의 삶의 여정에 주님께서 함께 하고 계시다는 믿음으로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앞을 보면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낯선 한 해’에 불과하지만 2020년도 한 해를 다 지내고 돌아보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벧엘의 한 해’였다고 고백할 수 있는, 하나님과의 복된 만남이 계속해서 이뤄지는 귀한 새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