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케 모노 가타리 연출 - bake mono gatali yeon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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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모노가타리 시리즈를 보다가 중간부터 안봤었는데 오늘 네코모노가타리(백)부터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특이한 연출들이 주의를 끌었고 상당히 마음에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다보니 이런 연출들이 시청자가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하기 위한 장치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 그런 느낌이 들게 되는지를 한 번 정리해봤습니다.

참, 보통 만화책을 보고 책읽는 것 같은 느낌이라 한다면 그건 텍스트가 많다는 뜻이지만

바케 모노 가타리 연출 - bake mono gatali yeonchul

1 텍스트 많은 만화책의 대표주자 명탐정 코난

단순히 모노가타리 시리즈 애니에 스쳐지나가는 텍스트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한 뜻은 책을 읽을 때 펼쳐지는 상상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온 듯하다는 뜻입니다. 다른 애니메이션들이 해당 작품 속에 존재하는 세계 자체를 영상에 담은 느낌이라면 모노가타리 시리즈 애니메이션은 책을 읽을 때 우리 머릿속에 구현되는 세계를 영상에 담은 듯한 느낌이죠.

1. 추상화된 엑스트라

  

바케 모노 가타리 연출 - bake mono gatali yeonchul

1 소드아트온라인의 한 장면. 뒤의 듣보잡들까지 친절하게 묘사되어 있다.

보통 다른 애니의 경우 지나가는 엑스트라에게도 어느정도 이상의 개성은 부여되어있습니다. 시공간적 배경에 따라 적절한 수준의 복장이나 머리, 피부색 등이 지정되어 나오고 헤어스타일까지 부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간략화된다고 해도 최소한 색(검은색 뿐이라도) 정도는 가지고 표현되죠.

바케 모노 가타리 연출 - bake mono gatali yeonchul

1 엑스트라들이 공백과 특정무늬로만 나타나있다. 그나마 대화에 참여하는 인물에게도 '선생님' 이상의 개성은 부여되어있지 않다.

하지만 모노가타리 시리즈에서 엑스트라들에게는 개성이 전혀 부여되지 않습니다. '사람'이라는 개념만 가진 채 사람모양의 공백과 특정한 무늬나 텍스트에 의해서만 그 존재가 드러나죠.

이것이 책을 읽을 때 우리 머릿속에서 구현되는 세계와 참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군중', '지나가는 사람들'과 같은 개성없는 텍스트, 혹은 '사람이 많은 거리'와 같은 간접적인 지칭을 통해서만 그 존재를 드러내며, 존재 이상의 의미는 부여받지 않는 캐릭터들. 우리는 소설을 읽을 때 굳이 그들 개개인의 모습을 상상해가며 읽지 않습니다. 그냥 그들의 존재를 상정할 뿐이죠. 모노가타리 시리즈 애니에서 나타난 이들의 모습은 우리 상상 속 엑스트라의 모습을 훌륭하게 표현해낸 듯 보입니다.

바케 모노 가타리 연출 - bake mono gatali yeonchul


또, 모노가타리 시리즈에서 자주 묘사되는 텅 빈 거리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 엑스트라들에 대한 직,간접적인 묘사 조차 없는 경우 우리는 굳이 우리 상상의 공간을 엑스트라들로 채워넣지 않습니다. 애니에서 나타나는 텅 빈 거리나 공간들은 실제로 인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엑스트라가 생략되어있는 것 뿐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실제로 설정상 통행량이 적은 공간, 시간대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2. 비현실적인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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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원돌파 그렌라간의 한 장면. 방의 넓이나 구조, 문의 배치 등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다른 애니메이션들에서는 대개 어떤 공간의 넓이나 구조, 특징이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으며 그대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은 그 공간 안에서 생활하고  싸우는 등의 행돌을 하게 되죠.

하지만 모노가타리 시리즈에서는 어떤 공간이 지나치게 넓게 묘사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그 공간을 이상한, 혹은 비현실적인 조형물이 채우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역시 우리의 상상의 세계를 잘 반영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봅시다. 소설에서 '4평 정도의 정사각형 방'이라고 묘사되어있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 방의 넓이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좁은 방'의 경우에도 좁다는 느낌을 위하여 상상의 방에 벽을 배치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넓은 방'과 같은 묘사를 한 경우나, 넓이에 대한 묘사가 빠진 경우 우리는 상상 속의 방에 굳이 벽을 세우지는 않을 것입니다(벽에 대한 묘사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죠).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공간의 이미지가 아니라 '넓다'라는 느낌과 주요인물이 위치한 지점의 세부사항들 뿐이죠.

바케 모노 가타리 연출 - bake mono gatali yeonchul

1 넓은 공간에 비현실적일만큼 많은 양의 빨간책이 쌓인 칸바루의 방

위의 칸바루의 방을 보면 아무리 설정상 집이 넓다고 해도 비현실적일만큼 넓은 방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거기다 빨간책의 수 역시 비현실적일만큼 많지요.  과장되고 감각적인 묘사를 통해 방의 '모습'이 아니라 '이미지'를 잘 드러내고 있죠. 소설에서 방에 대한 묘사가 '넓다', '빨간책으로 가득 어질러져있다' 정도로 끝나있다면 우리 상상 속의 방은 대략 저 정도의 이미지를 갖게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칸바루의 방이 저럴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저런 방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은 사건 자체와 인물들에 집중하지, 방의 모습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방의 모습은 저런 감각적인 이미지만 남고마는 것이죠.

바케 모노 가타리 연출 - bake mono gatali yeonchul

1 역시 넓은 공간에 실제라 보기는 힘든 인테리어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비현실적인 공간과 비현실적인 인테리어입니다. 아라라기 가가 아무리 부자라 해도 재벌이 아닌 이상 땅값 비싼 일본에서 저런 욕실이 딸린 집은 가지기 힘들겠죠. 하지만 욕실의 구체적인 넓이에 대한 묘사 없이 욕조나 여타 사물만 묘사한다면 상상 속 욕실은 저런 이미지를 가지게 될 수도 있겠지요. 주요인물의 주변만 묘하게 현실적인 것은, 그들을 중심으로 사건이 진행되고 그들 주변만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묘사되어있지 않은 나머지 부분의 상상은 감각적이고 무의식적인 이미지로 가득차게 되죠

바케 모노 가타리 연출 - bake mono gatali yeonchul

1 평범한 구멍가게. 하지만 배경에는 바오밥??

이처럼 모노가타리 시리즈에는 주요인물의 주변만 비교적 세밀하게 묘사되어있고 그 외의 부분은 감각적이고 추상적으로 채워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의 바오밥나무 역시 실제라 보기는 힘들지만 늦여름의 더운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나타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3. 과장된 액션

다른 만화들에도 과장되고 (작중 세계관에서 조차)비현실적인 액션은 많이 나옵니다. 주로 애초에 현실성 따윈 필요없는 개그만화나, 몇 번을 맞고 베이고 깔려도 온몸에 때만 타고 끝나는 소년만화들에서 그렇죠. 

  모노가타리 시리즈에서도 그렇습니다. 말도 안되는 길이의 내장을 뽑아 그걸 잡고 사람을 상고 돌리듯 빙빙 돌린다든가, 자신의 오빠를 기둥에 날려박아 기둥과 다리를 부순다든가 하는 엄청난 액션들이 나오곤 하며 터무니 없이 많은 양의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나오기도 합니다. 이것 역시 책을 읽을 때 상상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감각적인 묘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으며 실제로 기둥이 부서진다거나 저정도 양의 피가 뿜어져나온다고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강한 충격', '심각한 출혈'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미지화 한다면 저런 이미지가 탄생하는 것이죠. 이후의 장면들에서는 현실적인 충격을 받은, 현실적인 양의 피를 흘린 주인공을 상상하지만 액션신을 읽는 시점에서는 저런 장면들을 상상하며 액션신이 주는 싸움의 감각을 극대화시켜 받아들이곤 한다는 것입니다.

4. 그 외 다양한 감각적인 연출

바케 모노 가타리 연출 - bake mono gatali yeonchul

바케 모노 가타리 연출 - bake mono gatali yeonchul



그 외에도 모노가타리 시리즈는 순간적으로 군데군데서 감각적 이미지들 잘 이용합니다. 실제 책을 읽을 때 우리 상상 속의 세상은 엄밀히 규정된 이미지의 흐름이 아니라 느끼고 공감하고 상상하는 감각의 흐름에 가깝다고 볼 수 있죠. 눈을 찌르는 장면이 나올 때 정말로 눈을 찌르는 것을 상상할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 아픔 자체를 상상해내려고 하기도 합니다. 사이비종교에 빠진 어머니에 의해 상처받는 딸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보듯 상상할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 아픔, 그 상황 자체의 감각을 상상해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감각의 상상을 모노가타리 시리즈는 잘 잡아서 이미지로 표현해낸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단순히 회상신이 나오고 주인공들이 주절거리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상황의 느낌과 주인공들의 감정을 제시하고 집중해서 책을 읽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5. 마침

바케 모노 가타리 연출 - bake mono gatali yeonchul


오랜만에 글을 쓰니 말이 잘 정리가 안되네요. 두서없고 중구난방인 글 보느라 다들 수고 많으셨고 읽어주셔서 감사하니다. 

  모노가타리 시리즈가 실상 내용 자체가 에로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변태가 몇몇 나오긴 하지만) 눈을 즐겁게 하는 몇몇 서비스컷들에 때문에 룸메한테 눈치가 보여 지금까지 못보고 있었는데(룸메도 애니를 좀 보는 편이지만 모노가티리 시리즈는 모르는지라 블랙하네카와가 나오는 몇몇 장면을 뒤에서 흘긋 보고는 여고생 나오는 야애니인줄 알더군요ㅋㅋ) 집에 와서 다시 보게되니 정말 재미있고 좋네요. 이 글은 그냥 문득 든 생각을 한 번 정리해보고 싶어서 한 번 써봤습니다. 저는 다시 모노가타리시리즈 보러 가겠습니다ㅎㅎ 지금 오토리모노가타리까지 봤는데 스포는 자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