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남자 복식 - 19segi namja bogsig

A Study of Fall–GQ Russia fashion editor Ekaterina Melnikova works her magic on a new fall story featuring VNY’s Sean O’Pry. Clad in a season’s worth of luxe outerwear, Sean is captured by the lens of Doug Inglish in labels, ranging from Salvatore Ferragamo and Alexander McQueen to John Galliano.

1.역사적 배경   

       프랑스의 루이나폴레옹3세가 황제로 즉위한 20년을 말한다. 나폴레옹 3세는 나폴레옹

      1세의 업적을 기리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전쟁의 수행과 식민지 개척등 나라

      안팎으로 경륜을 펴나갔다.또한 영국은 빅토리아여왕 재위기간동안 경제적인 대국으로 발전하였고, 부르주아 계급이 정치적 영향력을 구사하게 되었다.

       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달과 생활수준의 향상은 사상적으로 낭만주의에서 리얼리즘으로 이행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복식의  특징

   상류계층에서는 계절에 따라 놀러다니는 풍습이 생겨나 스포츠용 의복이 발달하였고,

   여성권리주장과 교육의기회를 주장하는 여성운동과 때를 맞춰 아멜리아블루머여사가

   비활동적인 복장의 개선으로 개량복을 권장하였으나, 호흥을 받지 못한다.

   1850년대 이후 의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커다란 업적은 재봉틀의 발명이였고,

   유행의 선두를 일으킨 인물은 나폴레옹3세와 결혼한 유제니황비와 영국인으로

   파리에 의상점을 처음으로 차린 찰스워스이다.

   1850년대의 또 다른 특기할만한 사실은 크리놀린의 등장이다. 이 크리놀린과 함께

   루이16세 시대 로코코스타일의 폴로네즈 가운도 다시 등장하였다.

   그리하여 크리놀린시대를뉴로코코라고도 한다.

      영화  바람과함께 사라지다中       크리놀린을 입고있는 비비안

                                            유제니 황비

                    블루머를 직접 착용한 아멜리아블루머여사와 블루머

2.남자복식

(1)코트

남자복식의 가장 큰 변화는 코트와 바지를 같은 옷감으로 만들어 한 볼로 매치시킨 점이다.

디토 슈트

생략해서 디토라고도 한다. 디토는 「똑같은·복사·복제」란 뜻이지만, 복수로 디토즈(dittos)가 되면 「상하 동일한 옷감의 의복」이라는 의미이다. , 스리피스나 투피스에서 모두가 같은 옷감으로 만들어져 있는 본래의 슈트를 말한다.

색 코트

허리 라인을 조이지 않는 헐렁한 색과 같은 재킷을 말한다. 보통 싱글 브레스트로 되어 있고, 원래 미국에서 신사복 재킷을 이렇게 불렀다.

                 디토 슈트                 색 코트

 

(2)조끼

조끼의 기본형은 숄 칼라에 싱글이나 더블로 여미는 것이다. 옷감은 꽃무늬나 줄무늬 비단 또는 점있는 벨벳감등이 있었다.

(3)셔츠

스탠딩 칼라에 앞에 터커장식이 있는것이 있었다. 이브닝 웨어에는 프릴 달린 셔츠를 입었고 정장에는 흰색타이를 매었다.1850년 이후에는 현대와 같이 접힌 칼라가 나와 넥타이는 좀더 축소되고 스트링타이, 보타이, 매듭타이를 매게되었다.

                      스트링타이 

 

(4)바지

무릎아래길이의 바지는 보이지 않게 되었고 바짓부리가 좁은 것이 생겨났다.

블루머 여사의 영향으로 사냥복의 바지통은 블루머처럼 넓어졌으며 바지 옆선에 바지와 다른색의 테이프를 붙이는것이 있는데, 예를들면 적갈색 바지에 청색 테이프를 붙였다. 바지옆선에 테이프를 붙이는것은 현대 남자예복이나 군복바지에 전래되어 오고있다.

(5)오버코트

프록그레이트코트가 유행. 케이프가 달린 소매없는 외투 인버네스케이프를 입었고,

     벨벳 칼라에 박스형인 체스터필드 코트를 입었다.

3.여자복식

(1)가운

재킷바디스의가운,볼가운,프린세스가운

                                                   볼가운

 

(2)크리놀린

1840년∼1860년대까지 유행. 이 시대 여성들의 이상적인 허리 사이즈는 14~16인치로 빈혈로 기절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허리를 졸라매어 가늘어 보이게 페티코트를 입어 허리가 잘록하게 꼭 끼고 극단적으로 퍼진 의복은 크리놀린 실루엣으로서 널리 알려졌는데, 스커트 밑자락의 지름이 신장(身長)에 미칠 정도. 당시의 보편적인 의상이라도, 1벌에 약 9m(10)가 들었고, 주름이 많이 잡힌 것은 약 27m(30)나 되는 천이 필요하였다.스커트 버팀대를 만들기 위한 재료의 이름이었으나 그대로 스커트 스타일의 명칭으로도 굳어짐. 영국의 빅토리아여왕은 끔찍한 사고를 막기위해 새장크리놀린을 입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막지 못하였다.

(3)외투

크리놀린을 입어서 스커트가 넓게 퍼졌으므로 숄을 두르는 것이 유행하였다.

 

4.헤어스타일과 모자

아랫입술 밑에 수염을 조금 기른 나폴레옹3세의 수염은 그의 전속이발사에의해 소개 되었다. 남자모자는 중절모자와 굴뚝처럼 높은 실크해트, 크라운이 낮고 챙이 넓은 모자도 유행하였다. 여자들은 유제니 황비의 붉은 갈색머리와 가운데 가르마를타고돌돌말린 컬을 양쪽에 늘어뜨리는 것이 유행. 그리하여 염색약과 탈색제를 사용하였다. 시뇽형이나 가발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5.신발

헝겊과 가죽으로된 옆에서 단추로 잠그는구두가 나왔으며,옆에 고무를댄 반장화가 유행하였다. 여자는 작은 힐이붙은것이 대부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