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피탈리즘 호 복선 - kaepitallijeum ho bogseon

"돈에 지배당하지 마세요. 자기 자신을 지키세요. 루세트나... 티어처럼 되지 않도록 말이죠."

 사실 이 작품의 연재기간이 2015년 2월 7일~2015년 10월 9일인 걸 생각하면 한참 뒷북인 리뷰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내 머리 속의 생각을 정리해보자 글을 써본다. 리뷰 특성상 스포일러는 주의. 그리고 미리 경고해두지만, 유혈 ,폭력, 선정적 묘사를 매우 싫어하거나, 아직 접하기 이른 나이라면 미리 뒤로가기 바란다.

 이 작품을 접하게 된 계기는 별 거 없다. 연말에 수능도 끝났고 게임이나 웹서핑을 하며 시간을 때우던 도중 어쩌다 만난 작품이다. 사실 이름은 연재 당시에 몇 번 들어봤지만 그렇게 관심 있지도 않았고 그대로 머리 속에서 지웠던 작품인데, 돌고 돌아 다시 만난 이 작품은 참으로 충격적이고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먼저 작품이 만들어진 계기에 대해 알아보자. 이 작품의 주요 캐릭터는 '루세티아: 한 아이템 가게의 이야기(ルセッティア: アイテム屋さんのはじめ方/Recettear: An Item Shop's Tale)'라는 게임에 원본을 두고 있다. 2007년 코믹마켓에서 발매되어 2010년에는 영문화되어 스팀에도 진출한 수작 게임으로, 용을 잡으러 간 뒤 실종된 아버지를 대신해 '루세트'라는 소녀가 돈을 갚으러 온 '티어'라는 요정의 도움을 받아 가게를 운영하며 많은 빚을 갚아나가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꽤나 귀여운 모에 그림체에 속기 쉬우나, 실제로는 손님들에게 물건값을 후려쳐 창렬하게 팔거나 때가 되면 칼같이 빚을 갚으러 돈을 떼어가고 돈이 부족해 빚을 갚을 수 없게 되면 게임오버되어 골판지에 나앉는 등 의외로 자본주의의 피도 눈물도 없는 면모가 많이 보이는 게임이다. 물론 게임 오버 시 꿈드립을 치는 등 반농담에 가깝지만.

 그런데 스팀에 발매된 해외판에서 영문화를 하면서 일본판에도 없던 대사를 끼워넣게 되는데, 그것이  "Capitalism, Ho!"다. 어린 소녀가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그 간극이 인상적이어서일까, 이는 자연스레 서양권 유저들에게 밈이 되었고, 후에는 일본에도 역수출되는 등 사실상 루세티아를 상징하는 대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당연히 루세티아를 즐겨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단어였고, 그 중 디시인사이드의 고전게임 갤러리에서는 아예 루세티아를 캐피탈리즘 호라고 부르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어느 날, 고전게임 갤러리(이하 고갤)에 한 질문글이 올라온다. '캐피탈리즘을 다운받았는데 왜 귀여온 여캐는 안나오고 아저씨만 나오냐?' 당연히 댓글란은 비웃음으로 가득차게 된다. '캐피탈리즘'은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로, 루세티아와는 상업을 다룬다는 점만 빼면 전혀 관련이 없는 게임이기 때문. 흔히 '박제'라고 표현하는, 짤방화까지 되어버린 웃긴 사건이었지만, 여기서 한 고갤러가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

 '보색대비'라는 고정닉을 지닌 이 고갤러는 고네상스라 불리우는, 고갤의 게임 연재 열풍 당시 '고리아바돈'이라는 아리아드네 리뷰, '김치랜드'라는 심즈 2 리뷰를 통해 고갤에서 어느정도 인지도를 얻었으며, 김치랜드는 힛갤에 올라오기도 했다. 그렇게 꽤나 기대를 모은 그의 다음 작품은 위의 아이디어를 따와 루세티아의 캐릭터를 이용해 캐피탈리즘 시리즈의 최신작, '캐피탈리즘 랩'을 소개하는 만화가 되었고, 그 후폭풍은 고갤을 넘어 타 커뮤니티까지 미칠 만큼 상상 이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주인공 '루세트 레몬고갤러(루세티아에서의 성은 레몬그레스이다.)'는 고전게임 매니아로, 비록 학자금 대출로 오천만원의 빚이 남아있긴 하지만 인터넷 방송을 하며 국전에서 공짜로 게임을 얻어 행복해하는 평범한 25살 여성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요정캐피탈의 직원 '주개로니언 티어(루세티아에서는 성이 밝혀지지 않았다.)'라는 요정이 그녀에게 무료로 재무상담을 받지 않겠냐며 제안을 해온다. 이를 받아들인 루세트는 수입도 없는데 언제까지 부모님의 등골을 부셔가며 살거냐는 티어의 호통에 마음이 약해지고, 이어 그녀가 소개하는 '인생역전 청년사업가'라는 특별한 대출 상품에 무작정 서명하게 된다. 이 상품은 창업 자금 천만 달러를 창업 자금으로 빌려주는데, 가장 큰 특징은 채무자는 빚을 갚을 때까지 늙거나 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신도 요정캐피탈의 채무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 사업이 망해 파산한다 하더라도 '간단한 벌칙'만 받으면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마포대교에서 한강(恨江. 말장난으로, 실제 한강의 한자는 韓江이다.)으로 뛰어내림으로써 사업이 시작할 때로 리셋,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현실에서도 누구나 꿈꿀 법한 이상적인 상품이지만, 문제는 큐베마냥 서류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지장을 찍어버린 루세트를 뒤통수치는 조항들이다. 먼저 이 상품은 연이율 10%에 복리로 계산되는 50년 만기일시상환에 중도상환이 불가능하다. 즉 50년 뒤에 무려 117배인 11억 7천만 달러를 한 번에 갚아야 된다는 소리다. 거기에 경영자문을 하는 티아를 위해 1%의 순수익을 지불해야 하는 건 덤. 파산 시에는 리셋을 포기하고 특정 업체에서 최저시급만으로 2시간만 자면서 완전히 상환할 때까지 일해야 한다. 당연히 원금만 가지고도 일해야 하는 기간은 몇백년에 다다르게 된다. 리셋 때에도 다시 시작하는 천만 원은 빚에 합산되기까지 한다.

 또한 '간단한 벌칙'은 티어의 규정 악용으로 절대 간단하지 않게 된다. 2화에 등장하는 루세트의 첫 벌칙은 목이 떨어져 나가 몸과 다시 합쳐져야 하는 벌칙인데, 나레이션에 언급되는 토모에 마미 패러디에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벌써부터 묘사가 심상치가 않다. 중후반에 들어서면 정말 처절하고 비참한 벌칙을 당하게 되는데, 정말 그림체만 아니면 눈 뜨고 봐주기 힘들다.

 영세기업 '루세티아'를 운영하기 시작한 초짜 루세트를 옥죄어 파멸시키는 주변 사업가들과 루세트의 멘탈을 파괴하는 과도한 벌칙들(특히 평생의 트라우마가 된 보전깨와 부모님 소멸), 루세트를 돕는 척하면서 벌칙을 찍으며 즐기는 티어에 시달리면서 루세트는 점차 처음의 순수했던 마음은 박살나버리고 술을 퍼마시며 직원을 채찍으로 폭행하는 자본주의의 창녀(Capitalism Whore. Ho와 Whore의 발음이 비슷한 것을 이용한 말장난. 작중 직접 언급된다.)로 변해버리게 된다. "앀발!" "캐피탈리즘 호!"는 그런 루세트를 상징하는 대사.(아이러니하게도, 두 단어 모두 루세트가 싫어하는 것에서 온 것이다. '앀발'은 조교당할 뻔한 원양집창선의 메루루의 '씤' 말투에서 옮겨붙은 것이며 '캐피탈리즘 호'는 작중에서 티어가 돈을 벌수 있는 마법의 주문으로 가르쳐준 것이다.) 특히 10화 이후 악어년을 유리조각으로 무참히 찢어죽이고, 소를 통째로 찢어 가죽 품질을 확인하는 등 광년이 같은 각성을 해버리기도 한다(아버지가 도바킨인데 어쩌면 당연할수도?). 그녀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는 17화 이후 3개로 나눠진 다중인격 상황에서 드러난다.평상시의 무자비한 자본주의적 성격, 술을 마셨을 때의 자조적 성격, 약을 먹었을 때의 천사 성격. 그러면서도 이를 상황에 맞게 의도적으로 조절하는 계산적인 모습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

 그래도 중반부터 아타호나 점 부장과 같은 강력한 조력자를 만나 그녀도 점차 냉철한 자본주의 세계에 익숙해지면서 루프마다 고통받으면서도 얻은 지식을 활용해 상대 회사를 인수합병하면서 루세티아는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티어는 이를 가만두지 않았고 여러가지 방해공작을 펼치다 심지어 그녀를 납치하여 3년 간 마리오의 성노리개로 범해지게 만드는 계약 위반까지 저지르게 된다. 다행히 구조되긴 하지만, 한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다 깨어난 뒤에도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다. 마치 나이든 자본가의 말로처럼...

 결국 50년째가 되어 티어에게 회사를 넘기고 1600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빚을 갚아내지만, 루세트에게 남은 것은 심복 점 부장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녀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한강에 떨어져 자살하고 만다. 남은 직원들은 요정들에게 고통받으며 힘겨운 나날은 보내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분식회계라는 엄청난 폭탄을 루세티아에 숨겨놓았고, 점 부장의 계략으로 이-지스탕스가 금수저들을 몰살시켜 정경유착의 뿌리를 잘라내면서 루세티아에 강력한 조사가 착수되었다. 결국 티아는 파산하게 되었고, 그녀는 요정계의 어떤 주인에게 노예로 팔려가게 되는데...

 그 주인은 바로 루세트였다. 리셋의 매커니즘은 사실 미리 만들어둔 계약자의 클론을 인격을 복제해 넣는 구조였으며, 오류로 인해 빚을 다 갚은 루세트의 클론을 사신이 처분하는 과정에서 루세트가 자살함으로써 요정계의 클론에 부활하게 되버린 것. 그녀처럼 요정계에 떨어졌던 심상환 씨의 도움으로 요정계에 익숙해진 그녀는 그녀가 원하던 방송 BJ가 되었고, 티어를 사들여 그녀가 했던 벌칙 그대로 그녀를 괴롭히는 방송을 찍게 된다. 이것이 10년 전. 즉 박스 안의 나레이션은 다름아닌 루세트 본인의 회고 코멘트였다는, 액자식 구성이라는 것이 마지막 반전이었던 것이다. 10화의 도더리 드립이나, 어딘지 말투가 거칠어지는 것 등이 바로 복선이었던 것. 마지막으로 루세트는 살아남지 못했고, 캐피탈리즘 好만이 남았다는 말과 함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이 작품의 가장 특징은 게임 소개 만화이면서도 오리지널 만화에 한없이 가깝다는 것이다. 사실 현재 와선 거꾸로 게임 소개가 곁다리가 된 인상이 강하지만, 어쨌든 본질은 게임 소개 만화이기 때문에 캐피탈리즘 시리즈에 대한 소개가 상당히 자세하게 되어있어 충실한 가이드 역할 역시 하고 있다. 특히 초반의 루프를 통해 '어떻게 하지?/이렇게 했는데 왜 안되지?' 하는 초보들의 의문을 순차적으로 풀어주고 있으며, 후반에 들어서는 꼼수나 실전 상황을 제대로 보여줌으로써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게임에 배어들은 상당한 경제학적인 지식 역시 습득하게 된다. 이 만화를 보고 캐피탈리즘 시리즈를 하고 싶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며, 아예 입문한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효과가 있는 듯 하다.

 물론 이러한 장점이 곁다리가 되었다는 서술을 보았으면 알겠지만, 이 작품이 히트를 친 이유는 역시 그 특유의 스토리에 있을 것이다.  고갤에서 향유되는 밈, 필수요소들을 적절하게 섞으면서 아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작가의 취향이 듬뿍 섞인, 미칠듯한 수위의 욕설과 선정성, 폭력성과 고어함은 너무나 자극적인지라 불쾌감이 드는 요소가 넘쳐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꽤나 대중적인 공감을 얻은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 불쾌감을 그러한 요소 자체가 아닌, 자본주의의 잔인하고 가차없는 어두운 면을 통해 인식하고 공감하고 있는 것이 크지 않을까. 게다가 현실은 픽션을 뛰어넘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그래도 이보다 심한 일이 일어나고 있겠냐'고 장담하지 못하는게 자본주의의 현주소이니 말이다. 마치 아동만화스러운 색종이 스타일 그림체는 얼핏 어울리지 못하는 듯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아이러니함이 자본주의의 냉혈함과의 간극을 크게 느끼게 한다. 특히나 고어한 장면의 경우 이것이 극대화되어, 마치 순화되는 듯 하지만 반대로 그것을 이용해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 더욱 그 장면의 카타르시스를 강하게 만들어버린다.

 만화 상단에 배치된 배경음악 역시 고평가할 만한 요소 중 하나이다. 고전게임 BGM들과 영화 OST, 가요가 시기 적절하게 사용되었고, 일부 곡들은 작가가 직접 편집함으로써 의도에 맞는 연출을 하기도 한다. 특히 28화는 아예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의 가사에 따라 진행하는 연출로 '28화만큼은 BGM 틀고 맞춰 봐라'라는 평이 있을 만큼 험난했던 루세트의 여정을 맞춰 그려낸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비록 고갤산 필수요소를 모르면 몇몇 웃음 포인트에 에러가 생기고, 툭하면 튀어나오는 욕설, 보전깨나 사람을 찢어죽이는 등 너무나 자극적인 19금 소재들이 넘쳐나기에 얼핏 음지에서만 향유될 법한 만화로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그러한 요소는 인터넷 문화 특유의 연출의 극대화를 위한 장치일 뿐(작가 취향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것만으로 이 작품을 평가하기엔 조금 잘못되지 않았나 싶다. 뚜렷한 기승전결과 훌륭한 복선회수력,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전달력과 사람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연출 등이야 말로 이 작품의 진가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앞으로도 기억날 '생명력 있는 작품'이라 하며 높게 평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힛갤 링크: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game_classic&no=5945727

* 작가 블로그: http://complementarycontrast.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