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반응 - jug-eum-eul apdun salamdeul-ui ban-eung

나는 나이 40대 중반에 정기 건강검사를 받았는데 암표지자의 수치가 기준보다 높게 나왔다. 담당 의사는 암이 우려된다며 조직검사를 권했다. 며칠 후 결과가 나왔는데, 다행히 암은 아니었다. 죽음을 남의 일로만 알았던 나도 죽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서 죽음 공부를 시작했다. 우선 죽음 관련 책을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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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지음. [사진 청미 출판사 페이스북]

연명 의료를 둘러싼 논란이 일면서 요즘엔 관련 책이 많이 나와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죽음을 다룬 책이 별로 없었다. 그러던 중 『인간의 죽음'(On Death and Dying)』이란 책이 눈에 띄었다. 미국 호스피스계의 대모이자 정신과 의사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가 쓴 책이다. 검색해보니 교보문고에 재고가 딱 한권 있었다. 나는 서둘러 가서 그 책을 샀다.

로스 박사는 사람들이 죽음을 통고받으면 통상 다섯 단계의 감정변화를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가장 먼저 보이는 반응은 죽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은 모두 죽지만 늘 남의 일로만 여겼지 자기가 죽는다는 건 평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다음에는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왜 내가 죽어야 하지. 나는 지금까지 고생만 하다 이제 겨우 살 만해졌는데”라며 말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무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는 법이다. 세 번째에 나타나는 반응은 타협이다. 신과 협상을 하는 것이다. “하느님, 제가 죽는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으니 한 1년만 죽음을 연장해주십시오”라며 신에게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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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죽음을 통고받으면 '부정-분노-타협-절망-수용' 다섯 단계의 감정 변화를 거친다. [사진 pixabay]

얼마 안 가 그것도 소용없다는 걸 깨닫는다. 네 번째에 나타나는 반응은 절망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낙담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비로소 죽음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 다섯 가지 단계를 거치는 건 아니다. 영성이 높은 사람은 즉각 마지막 단계로 들어간다.

『인간의 죽음』을 읽고 죽음에 관한 책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특히 국내에 출판된 로스 박사의 책은 거의 읽었다. 그는 스위스 취리히 태생으로 어렸을 적부터 생명에 관심이 많았다. 자서전을 보면 스위스도 우리나라처럼 가부장적인 사회였다. 그의 집안에서 아버지의 뜻은 절대적이었다. 어릴 적부터 의사의 길을 걷고 싶었으나 아버지는 그에게 회계 일을 도우라고 지시한다. 그는 제 뜻을 고집했고 결국 집을 나와야 했다.

젊은 시절 전쟁터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그는 의사가 돼 죽어가는 사람을 돕기 시작한다. 그런데 의아스러운 것은 동료 의사들이 죽음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우선 학생들을 상대로 죽음 강의를 시작한다. 그 후 동료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세인들의 입에 오르게 된다. 책은 이런 과정을 엮은 것이다. 타임지는 그의 공적을 높이 평가해 그를 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하나로 선정했다.

호스피스 과정을 공부할 때 살펴보니 환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고 죽어가는 과정과 죽은 이후에 자신이 사멸된다는 점이었다. 로스 박사는 ‘근사체험(임종에 가까웠을 때 혹은 일시적으로 뇌와 심장 기능이 정지해 생물학적으로 사망한 상태에서 사후세계를 경험하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을 스스로 경험하고 임종 환자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했다. 죽음으로서 우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른 세계로 갈 뿐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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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무서운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세계로의 이동이다. 마치 애벌레가 옷을 벗고 나비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지구 상에 살다가 원래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로스 박사의 주장은 임종 환자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사진 pixabay]

어린 환자가 이해하기 쉽게 죽음은 애벌레가 옷을 벗고 나비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인간을 다른 별에서 지구로 소풍 온 존재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 지구 상에서 즐겁게 놀다가 원래 본향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임종 환자에게 큰 위안이 됐다.

말년에 사지가 마비되며 죽음을 직면하는 경험으로 쓴 자서전에서 “사람들은 나를 30년 이상 죽음에 대한 연구를 해 왔기 때문에 죽음의 전문가로 여기지만 그들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나의 연구의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핵심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라고 했다.

죽음은 사실 두렵고 회피하고 싶은 단어다. 죽음으로서 모든 것이 끝난다는 부정적인 내세관 때문이다. 그러나 로스 박사의 주장처럼 죽음이 다른 세계로의 이동일 수도 있다. 죽음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인지, 아니면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인지, 그것은 오로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후자를 선택해 마음이 편해진다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은퇴를 준비하며 죽음에 관해 공부하기를 권한다. 살아생전 미리 공부하면 죽음은 무서운 것이 아니며 모든 생명이 겪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나아가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죽음을 성찰하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 깨닫게 되는데 그건 죽음 공부가 주는 덤이다.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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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NewYork Times의 「」를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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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he NewYorkTimes

여러분도 저도 언젠가는 똑같은 증상으로 죽음을 맞이할 겁니다. 증상은 같지만, 그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들을 가리켜 우리는 암, 당뇨병, 심부전, 뇌졸중 등 여러 가지 이름을 붙이기는 할 겁니다.

장기 한 군데가 망가져 제 구실을 못하고, 이어 다른 장기들이 차례로 무너집니다. 아니면 한꺼번에 여러 장기가 전부 다 고장나버릴 수도 있습니다. 죽음 앞에 선 우리들의 모습은 서로 무척 닮아 있을 겁니다. 그 모습은 이상 징후가 처음 나타났을 때나 처음 의사로부터 병을 진단받았을 때 사람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를 겁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엄연한 생명 활동입니다. 죽음에는 여러 가지 징후가 있습니다. 이는 생명체 스스로 내리는 진단이기도 합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몇 주간, 혹은 몇 일간의 경과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기 전 마지막 몇 시간만 놓고 보면 대부분 사람이 겪는 과정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임종을 앞둔 사람의 목에서 나는 가래 끓는 소리나 호흡곤란, 마지막 경련과 불안 증세 등 몇 가지 징후는 대단히 괴로워 보이지만, 보이는 것과 달리 많은 환자들은 큰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알려졌습니다. 특히 죽음을 앞둔 환자들은 대개 고통을 덜 만한 약을 투여한 뒤고, 전 세계적으로 호스피스 병동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난 덕분에 극심한 고통 속에 죽음에 이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죽음의 여러 가지 징후를 복합적으로 겪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지만, 대개 한 가지씩은 경험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 가운데 흔한 편인 징후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The Death Rattle

  • 임종을 앞둔 사람의 목에서 나는 가래 끓는 듯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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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들은 망가진 뼈들과 말 없는 외침으로 가득했다.

las tumbas están llenas de huesos demolidos, de estertores callados.

  • 파블로 네루다, 「독재자들」 중

산소 호흡기를 떼고 나면 그 환자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동맥을 타고 뇌 뒷부분까지 올라온 혈전 때문에 뇌에서 위험을 감지하고 각성을 담당하는 부분으로 피가 제대로 흘러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환자는 이물질을 뱉어내기 위해 기침을 할 만큼 깨어있지 못해 죽게 될 가능성이 큰 상태였습니다.

호흡용 관을 빼내자 환자는 곧 죽음을 앞둔 이가 내는 가래 끓는 듯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는 환자가 숨을 거둘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목구멍 깊은 곳이 울리는 듯한, 어딘가 지직 거리는 듯한 소리로 물이 든 잔의 가장 아래까지 꽂아둔 빨대에 숨을 불어넣을 때 나는 소리 같았습니다. 그 소리를 낼 때부터 숨을 거두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6시간입니다. 그 환자는 가래 끓는 소리를 낸 지 여섯 시간 뒤 숨을 거뒀습니다.

이 가래 끓는 소리는 무언가를 삼키는 기능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징후이기도 합니다. 평상시 사람은 혀를 입천장까지 움직이고 침을 분비해 입 안으로 들어온 음식물을 삼킵니다. 이때 목구멍을 덮고 있는 후두덮개(epiglottis)가 열려 음식물이 기도로 흘러들어가지 않게 막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서는 무언가를 삼킬 때 조화롭게 이뤄져야 하는 기본적인 기능마저 약해져 서로 엇박자가 나게 됩니다. 어떤 때는 후두덮개가 기도를 막기도 전에 혀가 침을 뒤쪽으로 분비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혀가 전혀 안 움직여 분비된 침이 기도를 타고 폐까지 흘러들어가기도 합니다. 들어와선 안 되는 침이 들어온 상태에서도 폐는 계속해서 숨을 쉬려고 합니다. 이 때 바로 가래 끓는 듯한 그렁그렁한 소리가 나는 겁니다.

이 소리 자체는 엄청 거칠고 으스스하지만, 보통 임종을 앞두고 가래 끓는 소리가 나더라도 환자가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소리는 호흡기 자체의 기능 저하나 문제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경우와 비슷하게, 대개 가래 끓는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의사가 직관에 따라 필요한 약을 투여합니다.

먼저 소리 자체를 너무 크게 내지 않게 하려고 침을 덜 분비하게 하는 약을 투여합니다. 어떨 때는 환자가 가래 끓는 소리 자체를 안 내게 되기도 합니다. 대개 의사들은 실제 현재 상황보다 훨씬 심각한 것처럼 소리를 너무 거칠게 낼 때 이를 줄이는 데 초점을 둡니다. 필요 이상으로 환자에게 무리를 주지 않는 선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임종을 지켜본 뒤 다시 삶을 살아가야 할 가족들에게 떠올리기 싫은 이미지를 새기지 않으려는 처방이기도 합니다.

Air Hunger

  • 호흡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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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악마 같은 자식! 뭐하는 것이냐? 내 숨은 내 목구멍에 붙어 있다.

You villain touch! what are you doing? my breath is tight in its throat.

  • 월트 휘트만, 「내 자신의 노래」 중

죽음을 앞둔 이 환자는 강단 있는 80대 여성이었습니다. 지난 70년간 줄곧 담배를 폈죠. 담배 때문에 스폰지처럼 말랑말랑해야 할 폐 조직은 단단하게 굳어버렸습니다. 바람을 한껏 분 비닐봉지처럼 부풀어오른 폐는 그녀가 숨을 내쉴 때마다 찌그러졌습니다. 마치 봉지 안의 모든 공기를 다 빼내려고 손에 봉지를 구겨 쥐고 마구 쥐어짜내는 것 같았습니다. 공기가 폐 안에 갇힌 겁니다.

특히 죽음을 앞둔 이가 겪는 호흡 곤란을 뜻하는 “Air hunger”는 임종을 앞둔 이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 가운데 하나로 의사들은 통증을 완화해주려고 몇 가지 조처를 합니다. 치료라면 먼저 아편 성분이 든 진통제, 대개 모르핀을 투여합니다.

숨 쉬는 게 고통스러운 환자에게 호흡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약을 투여하는 것을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편 성분이 오히려 호흡 곤란을 악화시키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죠.

이에 대한 답을 드리기 전에 먼저 왜 죽음을 앞두고 나타나는 호흡 곤란이 환자를 고통스럽게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몇몇 연구진은 호흡 곤란이 올 때 환자가 통증을 느끼는 이유로 뇌가 명령을 내리는 호흡량과 실제 폐가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량의 불일치를 꼽습니다. 아편 성분은 어느 정도까지 호흡해야 한다는 뇌의 욕구를 억제해 결과적으로 환자는 통증을 덜 느끼게 되죠. 지금 폐가 들이쉬고 내쉬는 정도로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겁니다.

모르핀이 실제 호흡량이나 호흡 능력에 미치는 옇양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연구진도 있습니다. 이들은 그보다 호흡 곤란과 전반적인 통증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가 거의 비슷하다는 데 주목합니다. 즉, 아편 성분이 통증을 느끼는 뇌의 신호를 억제하기 때문에 상황이 잠시 호전될 뿐이라는 겁니다.

환자는 입원해서는 담배 대신 호흡용 마스크를 써야 했습니다. 퇴원하면 집으로 돌아가 담배를 끊겠다는 다짐도 몇 번이나 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그녀의 볼은 눈에 띄게 움푹 패였습니다. 결국 그 환자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Terminal Agitation

  • 마지막 경련과 불안 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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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을 쉬이 받아들이지 마시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 딜런 토머스

돌아가시기 이틀 전부터 저의 친할아버지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당장 문을 열고 나를 밖으로 내보내 다오! 지금 당장! 이 모든 게 다 가짜다! 어서 문을 열어!

마치 길 잃은 아이의 울부짖음 같았습니다. 할아버지의 눈썹은 세월이 흐르며 바깥쪽부터 빠지기 시작해 이제는 미간 근처에 몇 가닥만 남았습니다. 1cm 남짓한 눈썹들이 그나마 안쪽으로 모여 난 탓에 더욱 초라해 보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를 고이 보내드리고 그 빈자리에서 오는 허전함과 아픔을 지혜롭게 나누어질 생각만 했을 뿐, 단단히 화가 난 채 내뱉는 섬망에 대한 준비는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한 유명한 시인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예술이다.”라고 썼습니다.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고 다루어봤을 호스피스 병동의 의사들은 마지막 경련과 불안 증세를 수반한 섬망을 죽음에 이르는 섭리를 향한 저항으로 여깁니다. 이런 증상이 흔히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특히 가족들에게 이를 지켜보는 건 무척 괴로운 일입니다.

편안히 눈을 감으며 이 세상을 떠나는 대신, 죽어가는 사람이 고통에 울부짖으며 침대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근육은 경련을 일으키며 씰룩거리고, 이미 온몸이 고통에 찢겨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배설하지 못한 소변이 체내에 쌓이거나 호흡 기능이 저하돼 숨이 막히고 답답하거나 신진대사 이상에서 오는 고통 등 섬망을 일으키는 물리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약물 치료를 통해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지만, 기력이 쇠약해지면서 정신적으로도 약해진 탓에 오는 불안과 고통은 약물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편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나타나는 마지막 경련이나 불안, 그리고 섬망을 목도한 사람은 다가오는 죽음을 향한 한 인간의 실존적 반응을 보는 것이라 믿곤 합니다.

특히나 강력한 발작에 가까운 섬망은 몸과 마음이 제기능을 못하게 되는 데 대해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아마 가장 격렬한 저항이라 해도 무방할 겁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올 때 자지러지도록 우는 것처럼, 우리 중 누구는 세상을 떠날 때도 목놓아 울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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