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몬스터 브랜드 - jenteulmonseuteo beulaendeu

‘괴짜’일까? ‘비범’한 걸까? 김한국 젠틀몬스터 대표의 평가는 극단을 오간다. 안경 사업에서 시작해 코스메틱 브랜드, 디저트 카페, 로봇연구까지 영역을 확장 중인 그는 늘 새로운 시도로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는 이제 지속가능한 새로움과 놀라움을 통해 위대한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조심스럽게 펼쳐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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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글로벌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고급 패션브랜드 몽클레르와 협업해 컬렉션을 서울 청담동 하우스도산에서 선보였다. 

‘극장 같다.’ 뉴욕타임즈는 2016년 미국 뉴욕에 문을 연 젠틀몬스터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당시 이렇게 설명했다.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상업공간을 예술공간으로 설계해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전시나 콘텐츠를 앞세워 브랜드와 제품을 각인시켰다. 영화를 보고 나면 스토리가 남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주인공이 떠오르듯. 뉴욕타임즈는 이를 두고 ‘극장’이라고 표현했다.

극장을 만든 이는 누굴까. 창업자 김한국 대표는 젠틀몬스터의 제품 기획부터 공간 연출까지 거의 모든 과정에 관여한다. 주로 검은색 옷을 착장하고 조용히 웃는 그의 겉모습은 ‘젠틀’하다. 하지만 그가 지난 10년간 국내외 럭셔리 마켓에 끼친 영향은 ‘몬스터’급이다. 구글, 나이키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 관계자들이 서울에 오면 먼저 젠틀몬스터 플래그십 스토어에 들러 공간을 확인할 정도다.

젠틀몬스터는 인지도에 비하면 미디어 노출이 적은 브랜드다. 제품 출시나 행사 관련 기사 이외엔 별다른 뉴스가 없다. 김한국 대표가 거의 인터뷰를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굳이’ 제품, 공간과 같은 콘텐츠 이외에 대해선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기업문화에 기인한다. 다만 그들의 관심은 ‘놀라움을 주는 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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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젠틀몬스터는 서울 청담동 하우스도산에서 축구선수 손흥민과 협업한 팝업공간을 선보였다. 

 

김 대표가 미팅을 피하거나 소극적인 성격의 인물은 아니다. 평소 그는 서울 가로수길, 홍대 등을 자유롭게 오가며 사람들을 만난다. 미디어 노출을 자제할 뿐이다. 인터뷰 당일에도 그는 말했다. “젠틀몬스터에 대한 환상이나 좋은 이미지가 나로 인해 가려질까봐 걱정이네요. 가만히 있으면 될텐데 괜스레 오해를 만들지 않을까요? 지금이라도 안하면 좋겠어요.”

인터뷰어로 참여한 송길영 바이브 부사장이 그를 안심시켰다. “10년 전 제가 쓴 글을 보면 부끄러워요. 괜히 썼다는 후회도 들고요. 한편으론 그 시간동안 내가 나아졌기 때문이란 생각도 들어요. 부끄러움을 안거니까. 한 번씩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남기는 건 나름의 의미가 있어요.”

“궁(窮)함에서 놀라움이 나왔다” 지금은 ‘브랜드의 공간 기획’이 필수지만 젠몬은 이미 8년 전인 2014년 실험적인 공간을 선보였다. 공간에 마련한 전시나 공연을 15일마다 바꾸는 ‘퀀텀 프로젝트’. 공간 대비 매출이 중요한 리테일 입장에선 ‘비효율’이고 명분과 키워드,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기존 예술계나 유명 작가와의 협업 공간을 선보였던 브랜드 입장에선 ‘파격’이었다. 목욕탕, 헌집 등을 새로운 매장으로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다.

송길영 부사장은 김 대표가 ‘어떤 이론’ 또는 ‘직관’을 가지고 이런 일을 시작했는지 궁금했다. 송 부사장은 “과거엔 브랜드가 흥하려면 신문, 잡지, TV 등을 통해 노출을 시키고 관련 전문가나 유명인이 ‘이거 좋아요’라고 하면 됐다”면서 “이젠 미디어 의존이나 활용 방식이 바뀌었고 이벤트를 통해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이것이 구전되도록 한다. 그걸 빨리 시작한 배경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김 대표의 대답은 단순했다. “새로움, 놀라움을 주고 싶은데 돈으로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돈이 없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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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몬스터를 창업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킨 김한국 아이아이컴바인드 대표. 

김한국은 2011년 안경 사업을 시작했다. 안경은 ‘시장지배 사업자가 없고 브랜드도 없다’는 배경에서다. 하지만 정작 그는 돈도 없었다. 홍대 거리에 매장을 내고 싶었지만 비싼 월세, 인테리어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200만원 월세로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아파트형 공장을 구했다. 커튼으로 사무실과 쇼룸을 분리해 사용했다. 처음 그의 사업 모델은 제품을 집에 보내주고 구매를 결정하도록 하는 ‘홈트라이’. “포장비와 배송비를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온종일 반송된 안경 닦는게 일이었죠.” 직접 제품을 들고 안경점을 다녔다. “사업을 시작하고 명동 에이랜드에 입점하는게 꿈이었어요.” 입점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매장을 찾아다니면서 민망한 상황도 여러 번. 그는 결심했다. ‘소비자가 찾아오도록 직접 매장을 만들어보자.’ 그는 사업방향을 B2C로 수정했다.

송 부사장 질문은 이어졌다. “그렇다고 매장이 뚝딱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것도 굉장히 파격적인 공간이었잖아요?”

“전 패션이나 건축을 공부한 적이 없지만 잘 할 수 있겠단 생각은 가지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사업화할 수 있을지 잘 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주변의 도움은 필요했죠. 당시 디자인 스튜디오 패브리커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는데 말이 잘 통했어요. 그래서 함께 일을 하게 됐죠. 젠몬 초창기의 과감한 도전에는 패브리커의 공이 컸어요. 지금도 친하고요.”

패브리커와 함께 2013년 서울 논현동에 첫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했다. 주택을 빌려 마당에 배를 전시했다. 뱃머리는 매장의 벽을 뚫고 들어갔다. 젠몬의 항해가 시작됐음을 알리려는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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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국 젠틀몬스터 대표와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좌)

“도움 없이 된 건 없다”

지금은 젠틀몬스터 주력 제품군이 선글라스지만 처음엔 안경이 주축이었다. 김 대표는 안경과 선글라스를 ‘빵과 빽’으로 설명한다. “빵은 꽤 반응이 좋았어요. 그런데 빽의 반응이 시원찮더라구요.” 잘되는 안경보다 안 팔리는 선글라스가 신경이 쓰였다. ‘왜 안팔리지?’ 당시 그는 알고 지내던 여성복 대표를 찾아가 물었다.

“여자들은 어떤 선글라스를 써요?”(김한국) “큰거요.” “왜요?”(김) “얼굴이 작아 보이니까요.” 매장에 가서 젠몬 제품을 살피고 다른 제품들도 둘러봤다. 당시 국내에 수입된 선글라스 역시 렌즈는 대부분 안경의 그것과 비슷한 정도로 크지 않았다. 동양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얼굴이 작은 서양인들에게 선글라스 렌즈가 특별히 클 이유는 없었던 것. “그때 알았어요. 제품을 착용한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게 브랜딩이라는 걸요”. 김 대표는 큰 렌즈의 선글라스 제품 6가지를 만들었다. 때마침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촬영 중이었다.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대표가 제품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가 담당한 배우 전지현씨에게 제품을 전달했다. 전지현 배우는 6개 중 4개 제품을 착용했다. 그후 인지도가 폭발적으로 올라가면서 매출이 급상승했다. “정윤기, 전지현씨가 아니었다면 솔직히 우리가 이 정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이후 다른 아이웨어 브랜드도 렌즈가 큰 선글라스를 출시하기 시작했고 그 인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송 부사장은 작업 공정에 대해서도 궁금해 했다. “결정하고 제품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텐데, 상당히 빠르게 다양한 제품이 출시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샘플 나오기까지 한달도 안걸리는 데 당시는 4개월 이상 걸렸어요. 목업(mock up)의 경우 단 며칠이면 되고요. 아세테이트 공장이 한국엔 없었어요. 전부 손으로 연마해야 하고 인건비도 비쌌죠. 기계도 없었구요. 샘플을 조금이라도 빨리 받으려고 김포공항에 가서 계속 기다렸어요. 그래서 중국에 샘플 공장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모든 공정을 직접 하신 이유가 조직 밖에선 그 절박함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인가요?”

“네. 한 조직 안에서 이걸 왜 빨리 만들어야 하는지 당위성과 절박함을 동시에 느껴야 시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면 안되는 이유만 찾겠죠.”

아이웨어에서 향·케익까지 확장

김 대표는 아이웨어 젠틀몬스터 이외에 최근 향을 기반으로 한 코스메틱 브랜드 ‘탬버린즈’(2019년), 케익 중심 디저트 카페 ‘누데이크’(2021년)까지 사업 카테고리를 확장했다. 2016년 로봇회사도 인수해 계속 연구 중이다. 이 모든 결과물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하우스 도산’. 하루 평균 2000명 이상(주말 4000명 정도) 몰려든다.

“카테고리는 계속 확장할 생각인가요?”(송 부사장)

“저와 직원, 회사가 감당할 수 있다는 전제로 ‘시기’의 문제인 것 같아요. 양적 성장을 위해 추가할 생각은 없고요.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고 영향을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죠. 사람 마음에 뭔가 남기려면 궁리를 많이 해야 하잖아요. 회사의 방침이 ‘시작하면 끝을 본다’입니다. 결국 끝을 보겠다는 사람을 키워내는 게 제 일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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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순간 모여 위대한 브랜드로”

김 대표는 젠몬이 추구하는 목표를 ‘위대함’이라고 했다. 놀라움과 새로움을 주되 지속하는 것이 위대함이라는 것. 더이상 위대한 순간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 두렵다고도 했다. 그는 긍정적인 의미의 ‘Shocker’다.

하지만 송 부사장은 “다 가진 젠몬, 역사가 없다”고 했다. 가문이나 오랜 연한을 배경으로 한 기존의 럭셔리 브랜드와 비교해 11년 역사의 젠몬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지 않겠냐는 물음이다. 김 대표는 담담했다. “없는 걸 아쉬워하면 뭐하겠어요. 우리 방식대로 역사를 만들고 있죠. 위대한 순간을 쌓으면 위대한 브랜드가 될 거라 생각해요. 글로벌에서 새로운 활동도 곧 시작할거에요.”

“유명 브랜드와의 협업이 많은데, 순수예술 작가와의 협업도 늘려야 하지 않을까요?”(송 부사장)

“제가 누군가와 잘 어울리고 부탁하는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예요. 전문 인력을 내부에서 계속 키워낸 이유이기도 하죠. 게다가 아티스트와 소통 과정에서 우리의 의도가 왜곡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방향을 수정하는데 어려움도 있잖아요. 지금도 꾸준히 작가 협업을 하고 있는데 워낙 많이 만들다 보니 부각이 덜 되는 느낌이 있어요. 앞으로는 더 자주 (작가와의 협업을)하고 싶습니다.”

“젠몬의 크리에이티브? 릴레이션십”

한국 33개, 미국·중국 등에 28개 직영 매장을 보유한 젠몬. 판매점은 400곳이다. 다양한 럭셔리 브랜드나 기업, 아티스트와의 협업 제품뿐 아니라 중국 베이징의 최고 럭셔리 백화점 SKP의 쇼핑몰도 기획하고 만들었다. 젠몬의 크리에이티브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송 부사장 역시 궁금해 한다.

“모두 직접 하세요?”

“대부분의 일에 관여하고 있지만 직원들이 잘 해 줘서 점점 맡기고 있어요.”

리텐션(고객 유지)이 안되거나 더이상 영향력이 없을까 걱정하진 않나요?”

“누군가 저를 돈키호테라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전 직관 위에 전략을 충실히 쌓는 편이에요. 계속 고민하고 실험하고 이야기해요. 그래서 우리에게 놀라운 건 (다른 사람들에게) 정말 놀라운 거라 확신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죠?”

“네, 우리는 자신에 굉장히 예민한 사람들이죠.”

“궁리를 많이 하는 사람이 있고 우선 실행하고 전략을 수정하는 사람이 있는데 대표님은 둘 다 지닌 것 같아요. 그런건 타고나는 걸까요? 만들어지는 걸까요?”

“축구로 비유하자면 어떤 선수냐가 우선이겠죠. 손흥민 선수가 굉장한 노력파라고 들었지만, 안타고 났으면 월드 클래스가 됐을까요?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타고나지 않았다면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발견한 마음을 잘 연마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군요.”

“네, 브랜딩에 대한 직관에 어느정도 자신 있지만 정말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찾아 물어봐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고 귀는 조금 닫는 편이에요.”

김 대표 답변에 송 부사장이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 이어 묻는다.

“그런데, 왜죠?”

“말씀을 들으면 항상 배우는게 있어서 좋은데 또 그만큼 제 색깔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서 그게 힘들어요. 아직 모자라서 그렇죠(웃음).”

“그 많은 일과 생각을 혼자서 할 순 없는데, 동료들이 궁금합니다.”

“비슷한 질문을 얼마전 들었어요. 중국의 한 패션산업 리더가 ‘롱텀 크리에이티비티는 어떻게 만들어지나?’하고 묻더라구요. 릴레이션십이라고 답했습니다. 잘하든 못하든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함께 일하면 나오는 것 같아요. 일희일비할 필요 없이요.”

“회사가 매출 3000억원을 넘었고 직원도 약 700명이어요. 규모가 커지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입사하고 혼재 속에 다양한 이슈가 발생할 수 있잖아요.”

“조직을 이끌어가는 직원들과 더 깊게 이야기 나누고 교육해요. 제 말을 쉽게 이해하고 또 되도록 많은 정보를 주고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합니다. 전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특히 저희 직원들의 경우 ‘착하다’는 평을 많이 들어요. 이유 없이 괴롭히거나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않죠. 저도 그게 싫어요. 능력도 중요하지만 진실된 사람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