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콘트라베이스 - jaejeu konteulabeiseu

Special재즈에서 더블 베이스는 무엇을 하는가.

최근에 국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재즈 음반 한 장이 발매되었습니다. 베이스 연주자 황호규의 첫 음반 [Straight, No Chaser](블루룸)입니다. 황호규의 이력 중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셀로니어스 멍크 재즈 연구소(Thelonious Monk Institute of Jazz) 출신이란 점입니다. 이 연구소는 재즈의 거장 Thelonious Monk(1917~1982) 타계 이후에 Monk의 업적을 기리고 유망한 연주자들을 육성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세운 기관으로, 1987년부터 셀로니어스 멍크 국제 재즈 컴피티션(콩쿠르)을 개최하면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년에 한 번 입상자들을 선정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 아래 멍크 재즈 연구소는 각 악기 별로 단 한 명의 신인 연주자들만을 엄선해 6~7인조의 밴드를 만들고 그들을 2년 동안 집중적으로 교육 시키는 엘리트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요, 황호규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이 연구소의 교육 과정을 마친 유망주입니다. 각 악기 별 단 한 명의 연주자를 격년으로 선발한다는 멍크 재즈 연구소의 엄정한 방침은 황호규의 잠재력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Thelonious Monk >

물론, 예술가를 대회 입상 경력과 학력으로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 된 것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황호규의 가능성은 단지 그가 멍크 재즈 연구소 출신이란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일급 재즈 연주자들로부터 계속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에 발매된 그의 첫 앨범 역시 멍크 재즈 연구소 시절 스승이었던 명 드러머 Jeff 'Tain' Watts가 참가했고 그의 단짝인 명 피아니스트 David Kikoski, 여기에 새롭게 밴드에 합류한 기타리스트 Adam Rogers가 함께해 국제적인 명성의 올스타 밴드와 황호규는 첫 음반을 녹음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황호규가 신선한 아이디어로 편곡한 두 스탠더드 넘버를 듣겠습니다. Monk의 작품 'Straight, No Chaser'와 John Coltrane의 작품 'Giant Steps'입니다.

이 표는 리스트로 체크박스, 번호, 곡명, 아티스트, 앨범, 좋아요, 뮤직비디오, 다운로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표 하단에 제공하는 전체선택, 듣기, 다운로드, 담기, 선물하기 기능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황호규가 연주하는 악기는 더블 베이스(Double Bass)로, 콘트라바스(Contrabass)라고도 불리며 직립된 형태로 연주한다고 해서 업라이트 베이스(Upright Bass)라고도 불립니다. 팝과 록에서는 일렉트릭 베이스(베이스 기타)가 주로 쓰이지만 재즈에서는 여전히 더블 베이스가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이 악기는 이름 그대로 밴드에서 최저음을 연주하는 악기인데 재즈가 처음 탄생했던 20세기 초에는 금관악기인 튜바 혹은 수자폰이 최저음을 연주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것은 재즈 밴드의 조상이 바로 마칭밴드였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더블 베이스보다 행진할 때 훨씬 연주가 용이한 튜바 혹은 수자폰이 최저음을 연주했던 것입니다.

< (좌)수자폰, (우)튜바 /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

하지만 행진음악에 즉흥연주가 더해지면서 실내음악으로 정착한 재즈에서는 튜바 혹은 수자폰보다 유연한 리듬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더블 베이스로 점차 악기가 바뀌게 됩니다(그러므로 초창기 재즈 밴드의 베이스 주자들은 튜바와 수자폰을 겸해서 연주했습니다).

그럼에도 튜바 혹은 수자폰이 되었든, 더블 베이스가 되었든 이들 연주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은 최저음을 연주함과 동시에 행진에서 발걸음처럼 기본적인 리듬을 연주한다는 점입니다. 재즈에서 더블 베이스가 '둥-둥-둥-둥' 기본 박자를 연주하는 것을 워킹 베이스(Walking Bass)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워킹 베이스를 연주할 때 더블 베이스 연주자들은 현을 손가락으로 뜯던지(피치카토) 혹은 손바닥으로 현을 때렸는데요(슬랩), 특히 초창기 재즈 연주를 들어보면 더블 베이스의 음향을 키우는 앰프가 개발되기 이전이라 베이스 소리를 강하게 내기 위해 현을 손바닥으로 치는 슬랩 주법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 Duke Ellington & Wellman Braud >

비교적 초창기 재즈 밴드의 베이스 연주를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던 Jelly Roll Morton의 밴드 Red Hot Peppers의 1926년 녹음으로, 더블 베이스 주자는 John Lindsay(1894~1950)입니다. 두 번째 곡은 Morton의 뒤를 이어 작곡과 편곡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훗날 재즈의 거장이 되는 Duke Ellington의 1928년 녹음입니다. 당시 그의 밴드였던 Cotton Club Orchestra의 연주인데, 더블 베이스 연주에는 Wellman Braud(1891~1966)입니다.

< Count Basie & Walter Page >

그로부터 대략 10년 뒤인 1930년대 중반이 되면 더블 베이스 주자들은 안정된 피치카토 주법으로 네 박자의 정석적인 스윙을 만들어내는데요 그 대표적인 밴드가 Count Basie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였습니다. Count Basie Orchestra 중 리듬섹션만의 4인조 연주 들어보시겠습니다. 베이스에는 Walter Page(1900~1957)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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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lam Stewart >

1930년대 후반이 되면 재즈에서 더블 베이스는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킵니다. 음악의 최저음과 리듬을 지탱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음악의 표면 위로 등장하는 대목을 종종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베이스 연주자 Slam Stewart(1914~1987)는 피치카토가 아닌 활을 사용한 보잉(bowing) 주법으로 유명한 연주자였는데요 그는 기타리스트 Slim Galliard와 공동으로 노래와 자신들의 악기를 연주하는 'Slim & Slam'이라는 팀을 1938년에 결성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음악에서 즉흥 보잉 주법과 함께 허밍(콧노래)을 함께 부르는 그만의 독특한 사운드를 과시하게 됩니다. 그의 스타일은 훗날 베이스 연주자 Major Holley(1924~1990)에게로 계승 됩니다.

< Jimmy Blanton >

아울러 Duke Ellington은 혁명적인 연주기량을 갖춘 더블 베이스 연주자 Jimmy Blanton(1918~1942)을 그의 오케스트라에 입단시켰습니다. 그리고 그의 현란한 피치카토 주법의 즉흥 솔로가 등장하는 명곡 'Jack the Bear'를 발표했습니다. Ellington은 이례적으로 그의 피아노와 Jimmy Blanton의 더블 베이스 연주만을 위한 2중주곡들을 녹음했는데요, 그 점은 거장 Ellington이 요절한 천재 Jimmy Blanton을 얼마나 아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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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scar Pettiford >

Jimmy Blanton의 등장 후에 재즈에서 더블 베이스의 주법은 혁명적으로 발전했고 그의 뒤를 잇는 주자들이 속속 등장하게 됩니다. 테너 색소폰의 거장 Coleman Hawkins는 Blanton이 세상을 떠나고 1년 뒤인 1943년에 George Gershwin의 곡 'The Man I Love'의 기념비적인 녹음을 남깁니다. 그리고 이 녹음에서 더블 베이스 주자 Oscar Pettiford(1920~1960)는 Jimmy Blanton의 첫 계승자라는 점을 솔로를 통해 선명히 들려줍니다.

Blanton의 계승자는 Pettiford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1946년 Dizzy Gillespie Orchestra의 Ray Brown(1926~2002), 1948년 Lionel Hampton Orchestra의 Charles Mingus(1922~1979) 모두 뛰어난 더블 베이스 연주를 통해 이 악기가 더 이상 리듬과 근음(根音)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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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cy Heath >

1950년대 모던재즈가 본격적으로 만개하자, 이제 더블 베이스 주자가 즉흥 솔로를 하는 모습은 매우 일반적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매우 특출한 연주자들이 있었는데요, The Modern Jazz Quartet(이하 MJQ)의 Percy Heath(1923~2005)는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MJQ의 멤버들은 원래 Dizzy Gillespie Orchestra의 리듬섹션 멤버 네 명이 독립해서 결성했던 밴드로 Milt Jackson (바이브라폰), John Lewis (피아노), Ray Brown (베이스), Kenny Clarke (드럼)이 1951년에 모여 Milt Jackson Quartet이란 이름으로 출발했습니다.

< Ray Brown >

하지만 이 그룹 내에서 John Lewis의 음악적 영향력(재즈와 바로크 음악을 접목하는 성격의)이 강해지면서 밴드의 이름을 MJQ로 개명하자 이에 음악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던 Ray Brown은 그룹을 탈퇴하게 됩니다. MJQ는 새로운 더블 베이스 주자를 찾아야 했는데요, 역시 대안은 Ray Brown의 후임으로 Dizzy Gillespie Orchestra에서 더블 베이스를 연주한 Percy Heath였습니다. 그는 MJQ에서 Ray Brown의 후임자답게 Brown의 전매특허였던 'One Bass Hit'를 능숙하게 연주했습니다.

< Paul Chambers >

Jimmy Blanton이 Duke Ellington Orchestra에서 등장했던 때가 그의 나이 21세, Ray Brown이 Dizzy Gillespie Orchestra에서 등장했던 것이 19세의 젊은 나이였는데요, 그와 매우 유사한 사건이 재즈에서 또 한 번 벌어집니다. 1955년 Miles Davis Quintet에 나타난 19세의 더블 베이스 주자 Paul Chambers(1935~1969)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Chambers는 안정적인 피치카토는 물론이고 매우 유려한 보잉 솜씨를 과시했는데요. 특히 Miles 밴드 시절 간간히 녹음했던 그의 솔로 앨범에서 그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 Scott LaFaro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Ron Carter >

1950년대를 넘어서면서 재즈는 리듬섹션에게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Bill Evans Trio의 더블 베이스 주자 Scott LaFaro(1936~1961)는 피아니스트 Evans와 마치 대화하는 것 같은 즉흥연주로 더블 베이스를 기본 리듬과 저음 영역에서 해방시켰습니다. 그의 스타일은 이후 Eddie Gomez(1944년 생)를 비롯한 Bill Evans Trio의 후임 더블 베이스 주자들은 물론이고 Gary Peacock(1935년 생), Ron Carter(1937년 생), Niels-Henning Orsted Pedersen(1946~2005) 등 진취적인 스타일의 더블 베이스 주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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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McBride >

오늘날에도 재즈 더블 베이스의 계보는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Jimmy Blanton-Ray Brown의 스윙의 전통을 이어가는 John Clayton(1952년 생), Christian McBride(1972년 생)와 같은 정통파와 Scott LaFaro, Ron Carter의 자유로운 표현력을 십분 활용하려는 John Patitucci(1959년 생)와 같은 혁신파 등 일일이 호명할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스타일의 연주자들이 현재 재즈계를 누비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블 베이스의 본성은 음악의 근간을 잡고 밑바탕을 지켜주는 것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더블 베이스라는 악기는 표면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더블 베이스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재즈밴드의 모든 악기들에 섬세히 귀를 기울인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귀 기울일 때만이 재즈가 말하려는 내용은 온전히 감상자에게 전달되게 됩니다.

< Gerry Mulligan >

감상자도 그럴진대, 연주자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바리톤 색소폰의 명인 Gerry Mulliga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밴드에서 베이스 주자가 훌륭해야만 나머지 멤버들은 좋은 솔로를 연주할 수 있다." 부연이 필요 없는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황호규의 연주를 한 곡 더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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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덕호

음악평론가, KBS클래식FM Jazz수첩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