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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우크라이나인이 고발한다

文과 생각 다른 尹…평화 외치다 전쟁 맞은 우크라 현실 직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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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 약 200명이 지난달 27일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한 후 가두행진을 했습니다. 재한 우크라이나인 4000여 명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러시아 공격을 멈추게 해 달라'는 취지로 집회를 기획했다고 합니다. 이날 영어로 연설한 드미트로 위의 연설문을 번역, 소개합니다. '나는 고발한다. J'Accuse...!'를 만드는 중앙일보 씽크팀 정희윤 기자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일부 내용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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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서울 집회에 참여한 드미트로 위(왼쪽 남성). 그래픽=김경진 기자

안녕하세요. 한국에 사는 한국계(조부모가 옛 소련으로 이주한 고려인) 우크라이나인 드미트로 위(Dmytro Vi)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법대를 졸업하고 법조계에서 15년간 일하다 인생의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4년 전 한국에 왔습니다. 지금은 대전의 한 병원에서 환자 이송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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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쟁이 한 달 이상 계속되고 있습니다. 나날이 느는 희생자와 파괴의 수준은 지난 세계대전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참혹합니다. 전쟁 발발 이후 한국 정부와 국민이 보여준 관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 전쟁의 재앙적 결과를 더 많은 한국인에게 알리고, 한국 정부의 보다 폭넓은 정치·인도·군사적 지원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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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연설하는 트미트로 위. [사진 본인 제공]

한국인들에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언론 환경에 대해 우선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러시아는 오래전에 이미 언론을 무기화(weaponized)했습니다. 러시아에는 지금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운 독립적인 언론 매체가 하나도 없습니다. 서방 언론에 따르면 정부 폭주에 반대 목소리를 내던 마지막 두 매체마저 한 달 전 문을 닫으면서 관변 어용 매체만 남았다고 합니다. 이 매체들은 지금 대중을 선동하는 거짓 뉴스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사람이라면 모두 겪어봐서 그 실상을 잘 알 것입니다. 러시아가 우리 땅 일부를 점령한 지난 2014년부터 러시아가 벌이는 고도의 정보전(戰)에 시달려왔습니다.

언론을 무기화한 러시아 

한국 언론인들과 독자들에게 보다 냉철한 판단을 호소하는 이유입니다. 소식통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러시아 선전 문구에 불과한 기사를 번역해서 전달하고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때마다 평화를 지키겠다는 우리 희망은 멀어져갑니다. 러시아가 퍼뜨리는 거짓말은 허무맹랑하기에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부탁이 더 있습니다. 전쟁 발발 초기에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해준 덕분에 우크라이나는 각별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관심이 점차 줄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주목도가 보다 높은 사건으로 발 빠르게 옮겨가는 언론 속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군 폭격이 남긴 건물 잔해 아래에서 아이들이 굶주림과 상처로 죽어가는데도 러시아의 의도적인 방해로 부모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비극이 여전한데, 세계 언론이 전쟁 초기처럼 주목하지 않는 게 저는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이런 상황이 바로 침략자가 원하는 것입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8년 동안 점령하면서 벌어졌던 일과 완전히 똑같습니다. 러시아 언론은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포장했고, 그 덕분에 세계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결과를 우리가 맞닥뜨린 겁니다. 참혹한 침략 전쟁 말입니다. 이런 과거만 돌아봐도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혹은 푸틴의 뜻대로 고분고분해질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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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프랑스에서 평화 협상을 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중앙포토]

저 먼 남의 나라 얘기라고요? 푸틴이 과연 우크라이나로 그칠까요?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했던 것처럼 영토 확장을 계속해나갈 것입니다. 이미 폴란드를 공개적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약자의 유화책? 침략자에 빌미 제공 

한국은 지금 북한의 핵 위협, 코로나 19와의 싸움, 한·일과 한·중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저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런 현안을 다루는 데 있어 윤 당선인이 문재인 대통령과는 다소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은 알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젤렌스키 대통령의 의회 연설이 무산된 것과 달리 윤 당선인은 대선주자일 때부터 우크라이나 편에 섰고, 당선된 후인 지난달 29일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영상 대화를 통해 우크라이나 문제가 한국에게 주요 의제이고 앞으로도 긴밀한 협력을 할 것이란 희망을 보여줬습니다.

제가 한국 정부의 정치적 선택을 평가하거나 조언할 입장은 못 됩니다. 다만, 러시아가 지난 8년간 호시탐탐 우크라이나를 노려온 과정에서 보고 느낀 점을 우크라이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 꼭 전하고 싶습니다. 침략자에게 유화책은 전혀 소용없었습니다. 우리가 손을 내밀 때 푸틴은 우리를 나약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판단 아래 실제로 군사력을 과시했습니다. 윤 당선인은 이런 우크라이나의 우(愚)를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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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왼쪽)은 지난달 29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연합뉴스]

많은 우크라이나인이 오래전부터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전쟁 발발 이후 난민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이주민 대부분은 폴란드·체코·독일 등 인근 국가로 삶의 터전을 옮겼습니다. 지구 반대편인 한국까지 찾은 건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가치를 공유하고, 한국의 문화를 좋아하고, 한국의 전통을 존중합니다. 한국의 성공과 번영을 늘 함께 기원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여기 한국에 있습니다.

평화 얻겠다고 핵 포기한 결과 

최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평화 회담과 관련해 큰 기대가 없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아마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다 그럴 것입니다. "러시아가 서명한 협정은 그것이 적혀 있는 종이 한장만큼의 가치도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러시아는 대내외적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로 국제조약을 기꺼이 이용해 왔습니다. 푸틴은 제아무리 국제조약을 맺었다 해도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주저 없이 어길 겁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핵무기 러시아 이전(핵 포기)을 대가로 정치적 독립을 보장받았던 부다페스트 양해각서(1994년)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우호 조약(1997년), 돈바스 전쟁 정전 협정인 민스크 협정(2014년) 등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목격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후로는 러시아가 한 그 어떠한 약속도 믿지 않게 됐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는 결국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안전보장을 받는 모양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계속 싸우기만 하겠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리 러시아가 기만적으로 나온다 해도 대화를 해야 합니다. 전쟁을 궁극적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전쟁 포로를 교환하고 위험 지역 난민 보호에 그칠 뿐이라 해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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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시국국민회의 등 보수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7일 서울 용산구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우크라이나를 응원하는 집회를 열었다. [뉴스1]

우크라이나는 지금도,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평화를 원합니다.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재침공을 막기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크라이나에는 인도적 지원을 하고, 러시아에는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할 국제사회의 연대가 절실합니다. 인류가 과거의 큰 전쟁에서 배운 게 있다면, 세계를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몰고 가는 미치광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연대라는 것입니다.

평화를 얻겠다고 핵무기를 포기한 우크라이나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십시오. 우리의 모습을 보고도 세계의 비핵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한국이 스스로의 주권을 지키는 동시에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려 싸우고 있는 한 나라를 돕는 데 앞장서기를 희망합니다.

[신태환의 반박불가]러시아 편드는 당신, 일본 제국주의자 논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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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국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얘기를 담은 드미트로 위의 칼럼과 함께 보면 좋을 외교덕후 회사원 신태환씨의 글과 스탠퍼드대 홍태화 학생의 글을 소개합니다. 러시아 편을 들거나 국제관계에 무지한 한국인에게 하는 쓴소리는 아프게 다가옵니다. 전문은 중앙일보 사이트 나는 고발한다 섹션(www.joongang.co.kr/series/11534)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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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거주 중인 40대 한국계(고려인) 우크라이나인이다. 그곳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약 15년간 법조계에서 일했다. 4년 전 방문 취업자 신분으로 와 현재 대전시에 있는 한 병원 이송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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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는 세대 갈등이 첨예하던 2021년, 2030세대가 기성세대를 향해 던지는 도발적인 문제 제기 칼럼 시리즈 ‘나는 저격한다’로 온라인 공론장에서 큰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당시의 문제의식은 그대로 유치한 채 필진과 대상, 주제를 확장한 ‘나는 고발한다’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매주 월~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소련 독재자 스탈린은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의 죽음은 통계"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도 많은 한국인에겐 그저 강 건너 불구경 같은 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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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게임 관전하듯 논평하는 글이 쏟아진다. 강한 나라가 약소국을 침공하는 걸 왜 우리가 왜 신경 써야 하느냐, 아마추어 코미디언 대통령이 부른 불행이라는 비아냥도 눈에 띈다.

정파적으로 각색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일부 진보 진영 인사들은 지나친 친서방 정책으로 러시아를 자극한 우크라이나 정부가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가 중국을 자극하면 안 된다는 걸 이렇게 에둘러 주장한다. 루스키 미르(러시아적 세계), 즉 러시아 정교회를 정신적 기반으로 한 범 슬라브계의 지정학적 공간에 대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광적인 집착은 무시한 채 '나토 동진의 부당함'이라는 크렘린 주장만 반복한다.

러시아라는 거인의 상시적 위협 속에서 친서방 행보를 보인 우크라이나를 탓할 수 있는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 전쟁까지 치른 우리나라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러시아는 2014년 갑자기 '나토 확장의 위험'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2009~2014년 그 어떤 미·러 회담에서도 나토 확장은 언급되지 않았다. 2011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대대적인 반(反) 푸틴 시위, 독재정권들을 무너뜨린 '아랍의 봄'에 이어 2014년 우크라이나의 친러 독재자 야누코비치까지 실각하면서 푸틴은 권력에 더욱 집착하기 시작했다. 푸틴의 국내 정치적 고려와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러시아의 공세적 외교를 무모한 수위까지 올렸다.

*정파적 이용 궁리만 하는 정치인들

그런가 하면 일부 보수 인사들은 우리도 우크라이나처럼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고 공포를 주입한다. 문재인 정부 이후 한·미 공조가 약해진 건 부인할 수 없지만, 한·미동맹의 존재와 그 함의를 간과한 것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미군의 우크라이나 투입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나토 영토 침범은 단 1인치도 용인하지 않겠다"고 선제적으로 엄포를 놓는 것은, 나토 헌장 5조에 가맹국들의 집단 안보가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나토에 가입한 인구 200만의 북마케도니아가 우크라이나보다 전략적 중요성이 더 커서 보호를 받는 게 아니라, 나토에 포함됐느냐 아니냐 하는 지위의 차이다. 물론 북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미국 본토를 겨냥하는 있는 와중에 우리가 미국에만 의존할 수는 없으며, 강력한 독자적인 국방력은 필수다. 하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 핵우산의 보호를 받는 한국은 우크라이나와는 다르다.

그럼에도 우려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우크라이나가 불쌍하긴 하지만, 우리 일이 아니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안일함이 대표적이다. 전쟁 초기 문재인 정부는 남·북·러 가스관을 언급하며 한·러 협력을 강조했다. 또 세계가 규탄하는 와중에 침묵했다. 이런 정부에 분노와 실망이 크지 않았던 데는 이런 안일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런 태도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국한하지 않는다. 지난 2월 한국 대선 후보 토론에서 각 당 후보들은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진입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차출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지 논의했다. 한마디로 남 일에는 철저하게 물러서 있자는 발상이다. 여기서 특정 국가에 주둔한 미군은 그 나라 위협에만 대항한다는 식의 희망적 사고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군은 전 세계에 7개 지역별 통합사령부를 운영하고 있다. 2019년 신설한 우주군을 제외한 나머지 사령부는 역내 각국에 흩어져 있는 미군들에 특화된 임무를 부여한다. 한 곳에서 대규모 분쟁이 벌어지면 다양한 군사자원을 결집해 대응하기 위해서다. 주둔국들은 미군의 존재 자체가 평시에 인계철선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웃국가가 공격받을 때 자국 내 미군의 차출을 감수하는 것이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은 인도·태평양 사령부 소속이다. 주일미군은 한반도 유사시 조기에 투입될 미군 전력이며, 최전방을 지원하는 병참기지다. 한국이 주한미군의 대만 차출을 반대하는 명분과 같은 논리로, 일본 정부가 북한의 미사일 공격 위험을 운운하며 “주일미군 차출을 막겠다"고 한다면 납득할 수 있을까.

*보호만 받으려는 안보 인식

중국과의 무력 충돌은 재앙이 될 수 있으며, 주한미군의 대만 투입은 북한의 핵위협을 마주하는 우리로선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중국의 대만 수복 야욕을 억제하는 데 기여할 의지도, 한반도 밖의 안보현황에 그 어떤 이니셔티브를 취할 생각도 없이 그저 보호만 받기 원하는 건 올바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처음 도마 위에 올랐던 게 2005년이다. 17년이 지나 대한민국 위상은 높아졌지만, 그 어떠한 프레임의 전환도 찾아볼 수 없다.

한반도 밖의 사건과 위협을 먼 나라 일로 치부하며 아전인수식 교훈 찾기에 몰두할 게 아니라, 직간접적인 영향을 직시하고 대응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범지구적인 파문을 가져왔으며, 이 변화는 다시 2차 파도를 수반해 세계를 뒤흔들 것이다. 급상승한 유가가 전부가 아니다. 식량 공급 차질도 큰 문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세계 농업 생산량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코로나 19로 세계 식량 비축량이 빠듯한 가운데 전 세계적 식량 위기가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다. 금융체계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러시아는 서방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이란·인도 등과 새로운 결제시스템 구축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 위안화의 부상까지 겹쳐 전후 국제통화질서인 브레턴우즈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미국의 글로벌 동맹 네트워크에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유럽에서는 독일을 필두로 그간 국방비 증강을 거부해 온 국가들이 재무장에 나섰다. 이들이 지역 방위분담에 나서며 미국의 부담을 덜어줄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중동의 미 동맹국들은 러시아 규탄을 거부하며 대러유엔결의안에 기권했다. 지난 10여년간 중동에서 점진적 철수를 꾀하며 이란이라는 지역 공동의 적에 유화책을 던지는 미국과, 시리아 내전에서 동맹 아사드를 위해 단호히 참전한 러시아의 모습이 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중동, 동아시아 중 한 곳에서 지역 안보가 흔들리면 다른 지역에서 미국의 관심도가 하락하는 경향이 있기에 우리도 주의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중반 중국이 태평양에서 견제없이 영향력을 키워갈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아프간-이라크 전쟁의 늪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의 아시아 전문가들은 강대국 경쟁의 큰 틀에서 중·러의 협력을 경계한다. 중국 입장에서 유럽과 척 지면서까지 ‘공공의 적’이 된 러시아를 보호할 리는 만무하지만, 중국 의존도가 급상승한 러시아로선 매력적이다. 존스홉킨스대학 할 브렌즈 교수는 중국과 러시아가 동시다발적으로 자유주의 질서를 공격하는 행태를 ‘유라시아 악몽'이라 했다. 이러한 흐름은 중국의 그림자 아래 놓인 우리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 반열에 오른 우리에게 더 이상 '남의 일'은 없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회사원 신태환씨. SNS에 꾸준히 국제관계·외교 관련 깊이 있는 글을 써서 ‘아마추어 전문가’로 통합니다. 그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해 쓴 글 두 편을 묶어 소개합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한·일 관계를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또 러시아가 소련으로 회귀한 게 아니라 1930년대 독일과 같은 나라가 됐다고 주장합니다. 본인 뜻에 따라 소속 회사와 얼굴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러시아 정당성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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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교수 등 러시아 편을 드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중국이 만약 한국에 600년 동안 중화 질서에서 잘살았고 열심히 조공 바치던 모범국이었으니 마땅히 중화 세계에 들어와야지, 라고 말하면 거기에 수긍할 한국 사람이 어디 있겠나?

물론 중국도 한미동맹의 존재를 잘 알고 있어 저런 무지막지한 요구를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미동맹이 갖는 중요성을 잘 인식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크라이나가 원했던 건 바로 저런 확실한 보장을 제공해주는 ‘동맹’이었다. 폴란드나 체코는 소련이 무너지자 광속으로 서방에 붙었는데, 우크라이나는 타이밍을 놓쳤다.

아무튼 우크라이나는 싫다고 하는데 러시아는 계속 마땅히 ‘루스키 미르’(러시아 언어·문화를 공유하는 세계)에 들어와야 한다고 하니 짜증 나고 무서운 거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는 1990년대부터 나토에 가입하고자 했다. 러시아가 방해할수록 우크라이나인들의 집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생각해 보라. 19세기 일본은 줄곧 조선의 독립과 주권을 위해 중국·러시아에 맞선다고 선전했다. 일본이 조선을 먹어치우겠다고 내세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본은 조선의 부정부패를 지적하면서, 조선은 자치능력이 없다고 했다. 조선이 허약하면 중국이나 러시아가 먹어치울 우려가 있으니 너그러운 일본이 조선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일본은 1. 조선인들에게 조선의 탐관오리를 숙청하고 근대적 정치를 선물하겠다고 선전했고(우크라이나의 탈(脫)나치화) 2. 일본인들에게는 대동아의 위업을 완수하고 있다고 선전했으며(루스키 미르의 숙원) 3. 서양인들에게는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어쩔 수 없는 자위권 발동이라고 선전했다(나토 확장에 맞선 자위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하는 말과 똑같다.

일부 인사들은 맨날 ‘친일파 척결’을 외치면서 왜 19세기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나?

〈러시아는 1930년대 나치즘 독일과 유사〉

일각에서 푸틴의 러시아를 ‘소련으로의 회귀’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완전히 잘못된 진단이라고 본다. 푸틴의 러시아와 소련은 전혀 다르다. 소련은 스탈린 집권기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되던 나라였으며, 공산주의라는 보편적 이념을 적용하려 했던 나라였다. 공산주의는 민족주의와 종교를 배격하며, 계급 타파를 모토로 삼았다.

푸틴의 러시아는 다르다. 푸틴이라는 개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어 소련보다도 제도화의 정도가 낮으며, 민족주의와 종교를 도구로 활용한다. 특히 러시아 정교회는 국가의 전폭적 후원을 받아 과거 제정 러시아의 교회와 같은 위세를 자랑하며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

푸틴은 소련의 붕괴가 “20세기의 가장 거대한 지정학적 비극”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소련의 힘과 영향력을 그리워한 발언일 뿐 소련의 국가 제도나 이념을 그리워해서 나온 말이 아니다. 푸틴은 오히려 볼셰비키(레닌 중심의 소련 공산당)를 피해 유럽으로 망명한 극우 사상가 이반 일린(Ivan Ilyin)과 이념적으로 가깝다.

사실 푸틴은 소련, 정확히 말하면 볼셰비키를 혐오한다. 그는 지난해 볼셰비키가 러시아를 희생양 삼아 “인위적 실험을 한 결과 인위적 나라들(우크라이나 등)”이 탄생했다고 비난했다.

푸틴 시대에 제작된 사극들을 보면 레닌이나 볼셰비키 계열 트로츠키는 악당처럼 묘사되고 오히려 백군(볼셰비키에 대적한 반 혁명군)이 보다 자비롭고 인간적인 사람들로 그려진다. 러시아를 영광스러운 시대로 이끌었던 예카테리나 대제에 대한 블록버스터 사극도 푸틴 집권기에 제작됐다. 참고로 크림반도를 처음 러시아 땅으로 만든 장본인이 예카테리나 대제다.

그리고 푸틴은 광신적인 민족주의를 앞세우고 러시아가 겪은 온갖 수모를 서방 탓이라고 비난한다. 소련처럼 스스로 인류의 미래를 선도하겠다는 야심 따위는 없고, 자민족 우선주의에 입각한 기회주의적 권모술수밖에 없다. 푸틴 치하의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 세계혁명''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같은 슬로건은 없다. 오직 “러시아 민족이 겪은 치욕”이나 “러시아 민족이 쟁취해야 하는 위대함”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러시아는 1930년대 독일과 가장 유사하다. 실제로 학계 일각에서 바이마르 현상(바이마르 공화국, 1918~33년 히틀러 나치 정권 수립 전 대통령이 매우 강력한 권한을 가졌던 독일 공화국)이라고 한 건 대단히 적절한 표현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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