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역대 대통령 - solyeon yeogdae daetonglyeong

2022년 8월 31일

소련 역대 대통령 - solyeon yeogdae daetongl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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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서기장이 지난 30일 향년 91세로 사망했다

냉전 종식의 주역으로 평가받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서기장이 지난 30일(현지시간) 9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85년 서기장이 된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개방과 개혁을 이끌었다.

그렇지만 그도 소련의 붕괴를 막을 순 없었고 결국 현대의 러시아 탄생을 목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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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가 숨을 거둔 병원 측에 따르면 오랫동안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었으며, 최근 몇 년간 더욱 악화해 자주 병원에 찾았다고 한다.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진 않았으나, 지난 6월 신장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옛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의 별세 소식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역사의 흐름을 바꾼" 인물이라고 애도했다.

그러면서 트위터에 "고르바초프는 유일무이한 정치인이었다"면서 "전 세계는 다자주의를 옹호하며 지치지 않고 평화를 옹호했던 뛰어난 지도자를 잃었다"고 적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또한 깊은 애도를 표했다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이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에 전했다고 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고르바초프를 "자유로운 유럽을 위한 길을 열어준, 신뢰와 존경을 받는 지도자"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우린 (고르바초프가 남긴) 유산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고르바초프의 용기와 진실성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존슨 총리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침공한 시기에 고르바초프의 소련 개방을 위한 지칠 줄 모르는 헌신은 모두에게 본보기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한편 고르바초프는 54세 때 소련 공산당 서기장 겸 사실상 지도자가 된 인물로, 당시 최고 평의회 격인 '정치국(폴리트뷰로)'의 최연소 정치국원이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서기장으로 선출되면서 이전 지도자들과 달리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됐다.

바로 이전 서기장이었던 콘스탄틴 체르넨코는 재임 1년 만에 73세의 나이로 사망하기도 했다.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 덕에 이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방식으로 정부를 비판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개방 정책에 따라 소련 내 여러 지역에서 민족주의 정서가 고조됐으며, 결국 소련 붕괴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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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에 서명하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

국제적으로 살펴보면 고르바초프는 미국과 무기 감축 협정을 맺기도 했으며, 동유럽 국가에서 반공산주의 시위가 일어났을 때도 이탈을 막기 위한 개입을 시도하지 않았다.

서방 세계는 고르바초프를 소련과의 긴장이 깊어져 가던 냉전 상황이 1991년 종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개혁가로 바라본다.

이에 따라 "동서 관계가 급진적으로 변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공로로 1990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91년 이후 새롭게 등장한 러시아에서 교육과 인도주의에 초점을 맞췄던 고르바초프는 권력에서 밀려났다. 1996년 또 한 번 대선에 출마했으나, 득표율 불과 0.5%를 기록하며 다소 쓸쓸하게 실패했다.

이렇듯 고르바초프를 향한 엇갈린 시선은 사망 소식이 전해진 이후 반응에서도 잘 드러난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국무부 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는 BBC 뉴스나이트와의 인터뷰에서 고르바초프는 "인류와 러시아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역사적 변혁을 시작한 인물로 역사에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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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를 표하는 키신저 전 미 국무부 장관

고르바초프 정부와 독일의 재통일에 대해 협상한 제임스 베이커 당시 미 국무장관 또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고르바초프는 역사에서 자신의 위대한 국가를 민주주의로 이끈 거인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많은 러시아인들이 소련 붕괴 이후 혼란에 대해 고르바초프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가 임명한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주 행정부 수반인 블라디미르 로고프는 고르바초프가 "의도적으로 소련의 붕괴를 이끌었다"면서 반역자라고 비난했다.

한편 현지 타스 통신에 따르면 고르바초프는 유명인이 다수 잠들어 있는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묘지에 안장돼 1999년 백혈병으로 먼저 사망한 부인 라이사 곁에서 영면에 들어갈 예정이다.

러시아와 소련의 역대 통치자

모스크바 공과 대공 : 다닐로비치 왕조 1

다닐(알렉산드로 네프스키의 아들)

1276경~1303

유리

1303~25

이반 1세

1325~40

세묜

1340~53

이반 2세

1353~59

드미트리 돈스코이

1359~89

바실리 1세

1389~1425

바실리 2세

1425~62

이반 3세

1462~1505

바실리 3세

1505~33

이반 4세

1533~47

차르 : 다닐로비치 왕조

이반 4세

1547~84

표도르 1세

1584~98

차르 : 혼란시대

보리스 고두노프

1598~1605

표도르 2세

1605

가짜 드미트리

1605~06

바실리 4세

1606~10

공백기

1610~13

차르와 여제 : 로마노프 왕조 2

미하일 3세

1613~45

알렉세이

1645~76

표도르 3세

1676~82

표트르 1세(이반 5세 공동재위 1682~96)

1682~1725

예카테리나 1세

1725~27

표트르 2세

1727~30

안나

1730~40

이반 6세

1740~41

옐리자베타

1741~62(구력 1761)

표트르 3세 3

1762(구력 1761~62)

예카테리나 2세

1762~96

파벨

1796~1801

알렉산드르 1세

1801~25

니콜라이 1세

1825~55

알렉산드르 2세

1855~81

알렉산드르 3세

1881~94

니콜라이 2세

1894~1917

임시정부

1917

공산당 서기장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1917~24

요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

1924~53

그리고리 막시밀리아노비치 말렌코프

1953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흐루시초프

1953~64

레오니드 일리치 브레주네프

1964~82

유리 블라디미로비치 안드로포프

1982~84

콘스탄틴 우스티노비치 체르넨코

1984~85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

1985~90

대통령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

1990~91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

1990~2000

블라디미르 푸틴

2000~

1 다닐로비치 왕조는 류리크 왕조의 후기 분가이며, 그 시조인 다닐의 이름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2 1721년 10월 22일 대제 표트르 1세는 '차르(tsar)'라는 러시아식 호칭을 보다 유럽적인 '황제'로 바꾸었다. 그러나 공식적인 명칭과는 별개로 일상적인 호칭은 묘하게 변질되어 그의 뒤를 이은 모든 남성 지배자들은 보통 차르(그의 배우자는 차리나[tsarina] 또는 차리차[tsaritsa])로 호칭되었으나 여성 지배자들은 여제(imperatritsa)라고 불리게 되었다.
3 로마노프 왕조의 직계 계승은 1721년 대제 표트르 1세의 딸인 옐리자베타가 죽음으로써 막을 내렸으나 뒤를 이은 홀슈타인 고토르프 왕조가 로마노프 왕조의 이름을 계승했다. 첫번째 계승자인 표트르 3세는 표트르 1세의 딸인 안나와 홀슈타인 고토르프 공 카를 프리드리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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