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즉생 필생즉사 성경 - pilsajeugsaeng pilsaengjeugsa seong-g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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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4-2822:12:42 #102693

    누가죽어 71.***.199.222 2410

    이번에 각하께서 현충사를 방문하시고 방명록에 쓰신 글귀입니다.
    누구를 죽이기 위해 하신 말씀인지 짐작할 수 없으나, 분명 각하의 뜻과는 다른 뜻을 가진 의미가 성경 구절에 나옵니다.

    요나:

    여호와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저 큰 성 니느웨로 가서 그 성을 향해 외쳐라. 그들의 죄가 내 앞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요나는 여호와를 피해 다시스로 도망가는 배를 타다가 풍랑을 만나고 배가 전단날 위기에 처해지자 제물로 바다에 던져졌다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밤낮을 지내다 살아났다.

    여호와께서 살아난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저 큰 성 니느웨로 가거라. 그 곳에서 내가 너에게
    전하는 말을 외쳐라.”
    이말을 듣고 니느웨 백성들이 금식하고 반성하여 여호와의 재앙을 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요나는 못마땅한 나머지
    “여호와여, 제발 나를 죽여 주십시오. 내게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네가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요나는 자신의 오두막에 자라난 박넝쿨이 죽게되어 머리위로 햇볕이 내리쬐는 것도 못 참고 기운이 빠져 다시 한번 그는 죽고 싶은 마음에 “내게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낫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심지도 않았고 가꾸지도 않았으며, 밤새 나타났다가 이튿날 죽고 만 그 나무를 그렇게
    아끼는데,

    하물며 옳고 그름을 가릴 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도 넘게 살고 있으며,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저 큰 성 니느웨를 내가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느냐?”

    스토리가 어째, 북쪽을 향해 그들의 죄를 까발리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어기고 도망하다 배가 좌초된 얘기나  죽다 살아나서 하는 얘기가 맞아 들어갑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기도를 올려도 하나님은 각하와는 다른 뜻을 가지고 계시니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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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진통일 141.***.245.176 2010-04-2822:15:28

      야는 무슨 횡설수설하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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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죽어 71.***.199.222 2010-04-2822:20:56

      북진통일은 여기서 주뎅이로만 떠들지 말고,
      어서 북으로 가서 그들 앞에서 그들의 죄상을 까발리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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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가다 99.***.213.199 2010-04-2822:59:20

      알지도 못하는 성경말씀을 인용하는 사람이나 알지도 못하며 북한어쩌구 하는 사람이나 무식하고 용감한건 똑같다.

    • Reply

      74.***.122.233 2010-04-2914:25:58

      군필즉생 미필즉사 가 요즘 대세라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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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온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요12:20-26)"

본문에서 ‘한 알의 밀’은 예수님의 육체를 상징하며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시는 시기를 가리킨다. 당시에는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헬라인과 같은 이방인까지 구원의 범위가 확대되었다. 땅에 뿌려진 씨가 썩어져서 나무에 생명을 주고 많은 열매를 맺듯이 예수님께서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들도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하려면 예수님처럼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5장 54절에 보면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 하셨고

고린도 후서 5장4절에는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썩지 않고 죽지 않으면 생명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명언으로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死必卽生)’, 즉 “살고자하면 죽고, 죽고자하면 살 것이다.”는 말이 있다.

또 오자병법(吳子兵法)에서 “오자왈(吳子曰) ‘...필사즉생(必死則生) 행생즉사(幸生則死)...’ 즉, 오자는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요, 요행히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오” 라고 말했다.

마태복음 16장 25절에서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신앙을 지켜야 영생을 얻게 된다. 실재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던지는 대신 영혼의 영생을 택했다.

우리가 영생의 길을 가려면 먼저 자신이 성경적 근거에 의해 ‘생명’의 의미를 마음 판에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말씀을 볼 때 문자 그 자체는 생명이 없으니 그 문자 안에서 생명을 발견해야하는 것이다.

이순신: “아직도 살고자 하는 자가 있다니,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정녕 싸움을 피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냐? 육지라고 무사할 듯 싶으냐? 똑똑히 봐라! 나는 바다에서 죽고자 이곳을 불태운다. 더 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목숨에 기대지 마라!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고, 또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병법에 이르기를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 명의 적도 떨게 할 수 있다 하였다. 바로 지금 우리가 처한 형국을 두고 하는 말 아니더냐?”


영화 명량 중에서[1]

정유년 9월 15일(명량 해전 전날)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되,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고 재삼 엄중히 약속했다.[2]

즉, 상관인 충무공의 명령을 어기고 도주하면 전투에서 패해서 왜군에게 죽기 전에 먼저 군율로써 죽이겠지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상관을 신뢰하고 끝까지 죽음을 각오한 채 전투에 임한다면 싸움에서 이겨서 살 수 있다는 의미. 그러니까 쉽게 말해 죽어라 싸우면 내가 살려주겠다. 목숨을 아까워하는 놈은 나한테 죽는다.라는 연설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난중일기 원문에서도 바로 다음에 '군율을 어긴다면 용서치 않겠다'라고 하고, 전투 중 우물쭈물대는 안위와 김응함에게 니들 진짜 뒈지고 싶어? 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으므로, 농담이 아니라 저 해석 맞다.

신기하게도 보통 상관이 부하들을 이런 식으로 사지에 처넣으면 미친놈아! 죽고 싶으면 너 혼자 죽어! 라면서 반발하거나, 심하면 프래깅을 당하기 일쑤인데, 한 PTSD 온 환자가 빤쓰런을 쳐버린 게 전부였다. 명량 해전에서도 참전하지는 않을 망정 바로 도주하지는 않았던 걸 보면 부하들은 저 내가 살려주겠다라는 말이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릴 정도로 충무공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순신은 그 신뢰에 완벽하게 보답해서, 죽어라 싸우다가 위기에 처한 안위를 손수 구해내면서 '살려줄 것이다' 파트도 완벽히 지켜낸다.

3. 왜곡[편집]

종종 이 문구와 같은 의도를 왜곡하여 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 상황에서 비합리적인 선택을 정신론으로 정당화하거나 또는 억지로 개인의 의지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를 요구할 때 이를 합리화하는 의도로 쓰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세기 초반 프랑스 육군의 엘랑 비탈[3]에 영향을 잘못 받은 일본군의 반자이 돌격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말의 대명사인 이순신부터가 자신의 연설에 처음부터 "병법에 이르기를"이라고 말했다. 곧 이 말의 출처는 병법이다. 병법이라는 게 원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군사 운용방식과 군사전술이론을 설명하는 것인데, 이런 병법에서 비합리적인 정신론을 주장할 리가 없다.

필사즉생행생즉사의 원전 오자병법 제3 치병편을 보면 시작부터 四輕(사경), 二重(이중), 一信(일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싸움에 이기기 위해선 먼저 보급, 전투병기, 병사의 사기를 충만하게 해야하는 것이다.[4] 그 이후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명령에 의거하여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잘 육성한 군대'를 갖추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터란 항상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곳으로서 죽기를 각오한 자는 살고 요행히 살아남기를 바라는 자는 죽는다고 하였다. 또한 다음 구절에서도 '용병에서 주저함은 가장 큰 병폐이며, 군대를 재앙으로 몰고 가는 것은 의구심을 갖는 것에서 비롯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구의 의미는 어디까지나 문제를 해결할 때 일단 무언가 결정을 했다면 그 후에 행동을 주저하지 말라는 것이지, 그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의 합리적인 선택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정신력만으로 해결하라는 뜻이 아니다.

즉 이 문구를 쓴 오자의 원 뜻은 '의지드립'이 아닌 '준비를 철저하게 하여 전투에 임해야 하고 전투에 임하여서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 하며 한번 싸움에 임하여서는 주저하지 마라'라는 의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이순신은 의지드립으로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이 아니다. 이 오자병법의 정수를 깊숙히 체득한 이순신은 자신이 싸웠을 때 가장 승산이 높은 장소인 울돌목에서 일본 수군에 비해 상대적인 강점을 가지고 있던 판옥선과 각종 화포들을 활용하여 말도 안 되는 교전비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즉 무과급제를 한 조선군 장수답게 조선군 장수의 교과서 오자병법의 FM대로 승리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요행히 살고자 하는 자'의 의미는 '제대로 싸울 준비를 갖추지도 않은 주제에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상대와 싸워서 이기고자 하는 자'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제 멋대로 해석하여 결론을 내리기 이전까지의 합리적인 과정을 마치 겁쟁이의 행동인 것처럼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 이 문구의 의미는 어디까지나 결론을 도출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끝난 이후 문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도망치거나 문제를 회피하는 행동을 경계하는 것이지, 그 이전의 모든 과정들을 무시하고 아무 생각 없이 닥치는 대로 강행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당장 이순신이 울돌목을 전장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도 대량의 정찰선을 띄워서 적을 정탐하는 합리적인 정보 탐색 과정이 둿받침되었기 때문이었다.

손자병법에서도 '상황이 불리할 때는 처음부터 전투를 피해야 한다', '무능한 장수는 일단 싸움을 한 뒤에 요행수로 승리를 바란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승패의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유불리에 따라 전투의 여부를 결정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며, 불리한 싸움을 피하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을 선택하는 것 또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이 멋진 격언을 '의지드립' 따위의 쓸데없는 아집에 대입하는 것은 꼭 경계해야 할 것이다.

4. 성서[편집]

구체적인 맥락과 의미의 차이는 있지만 신약성경 복음서에서 예수가 비슷한 말을 하기도 했다.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 마태오 복음서 10장 39절(공동번역성서)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 마태오 복음서 16장 25절(공동번역성서)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


― 마르코 복음서 8장 35절(공동번역성서)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 루카 복음서 9장 23~24절(공동번역성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


― 루카 복음서 17장 33절(공동번역성서)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 요한 복음서 12장 25절(공동번역성서)

5. 그 외[편집]

후대의 레이테 만 해전의 사마르 해전에서도 일본 주력 함대에게 죽기를 각오하고 덤빈 4척의 구축함이 혈투 끝에 승리한 사건이 있어 근대판 명량 해전이라고도 한다.

훗날 아타튀르크로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도 갈리폴리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하여 싸워야만 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한 바 있다.

제3보병사단에서는 '필사즉생必死則生 골육지정骨肉之情'이라는 구호로 바꿔서 여기저기서 사용하고 있다. 사단 구호라든가 연대 마크라든가.

NC 다이노스의 유니폼 중 매년 4월 28일 홈경기에만 착용하는 충무공 유니폼이라는 게 있는데, 유니폼 안쪽 윗부분에 必死則生 必生則死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K리그1에서는 2부리그로 내려가기 일보 직전인 팀에서 흔히 쓰인다.

[1] 위 영상의 1:15 부터 나온다.[2] 충무공의 부대는 전사자보다 군율 및 군령 위반으로 처형된 사람이 더 많았다. 당시 충무공 휘하 장병들의 사망 원인 1순위는 전염병, 2위는 처형이고 전사는 3위였다고. 물론 이순신이 포악해서 처형이 많았다거나 한 게 아니라, 군기와 군율 유지에 그만큼 철저했고 그 결과 전투에서의 전사자 수가 극적으로 적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순신이 처형했던 병사들의 죄목을 보면 현대의 기준으로도 중형을 피할 수 없는 중범죄를 범한 경우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물론 그 사정을 알고 보더라도 이순신이 처형한 수 > 일본군에게 죽은 수라는 게 상당히 기묘한 일인지라, 역덕후들이나 밀덕후들에게 '충무공 휘하 부대 사망원인 2위가 이순신', Execution(처형)에서 따와 'E순신' 등의 농담거리가 되곤 하는 소재. 충무공 휘하에서 전사자 수가 비상식적으로 적었음을 역설적으로 칭송하는 농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