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상사 정리해고 - muhansangsa jeonglihaego

 지난 27일 MBC <무한도전> '무한상사'편에서 정리해고 당한 정준하 과장이 짐을 들고 나오고 있다.
ⓒ MBC화면캡처

관련사진보기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무한상사'는 7명의 출연자들이 만들어낸 사무실 상황극이다. 다소 황당한 설정과 억지스런 행동이 웃음을 유발한다. 그 웃음 이면에 실제 직장 생활에서 느낄법한 애환을 적절히 섞어 놓는 것도 매력이다.

지난 27일 방송된 '무한상사'의 정리해고 에피소드도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영화 레미제라블을 삽입곡 <One day more>를 개사해 부른 장면에서는 정리해고를 앞둔 직장인의 복잡한 심경을 잘 담아냈다. 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정리해고 된 정 과장이 떠나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흘렸다는 시청자 소감이 많았다.

방송 이후 해고된 정 과장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을 모았다. 아무래도 정 과장은 회사를 나와 자영업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방송에서 정 과장이 계란프라이를 하는 장면과 예고편에서 걸그룹 '씨스타'가 '후라이후라이'라는 가게를 홍보하는 장면이 힌트가 됐다. 현실에서 정리해고 된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길이기도 하다.

제작진이 이후 스토리를 어떻게 가져갈지 알 수 없지만, 현실의 잣대를 들이대면 정 과장은  회사로 돌아갈 수 있다. 정 과장의 해고는 잘못된 해고이기 때문이다. 정 과장은 자신이 당한 부당한 해고에 맞설 이유가 있다. <무한도전> 제작진 또한 이런 부분을 감안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7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 '무한상사' 편에서 정준하 과장이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MBC화면캡처

관련사진보기

정 과장 정리해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조건 못 갖춰

사실 무한상사에서 그려지는 정 과장은 문제가 많은 직원이다. 매일 지각하고 업무능력도 부족하다(모든 직원이 마찬가지지만). 심지어 부장이 자리를 비우면 그 자리에서 잠을 자다가 걸리기도 한다. 시청자들에게 객관적으로 정리해고 대상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대부분이 정 과장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임금은 높고, 능력은 없고, 진급은 못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럼에도 해고할 수는 없다. 앞선 정 과장의 문제는 정리해고 이유가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을 경우에만 시행할 수 있다.(근로기준법 31조)

무한상사에서는 사장실에 다녀온 유재석 부장이 "곧 회사에 정리해고가 있을 것 같다"고만 말할 뿐 그 이유를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실적악화'라고 하지만 그건 정리해고 사유가 되지 못한다. 원칙적으로 정리해고는 사장이 "몇 명 정리해고 하라"고 지시한다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애초에 제작진이 일반적 '해고'가 아닌 '정리해고'를 택한 것도 이런 부분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놓고서는 외환위기 이후 해석의 온도차가 있다. 보통은 자본잠식으로 인해 회사가 부도 위기에 있는 경우를 뜻했지만, 최근에는 "미래에 닥쳐올(지도 모르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로 정리해고를 실시한 기업도 있었다. 정리해고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회계감사를 받아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법원의 허가가 필요하기도 하다. 물론 무한상사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만약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리해고를 시행하기 전까지 이를 회피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임금삭감, 근무시간 조정, 예산절감 등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최후에 꺼내야 할 카드가 정리해고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경우 법원은 정리해고를 허가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무한상사가 정리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날 방송에 등장한 두 명의 신입사원을 통해 알 수 있다. 길 사원은 이날 4년 동안 인턴시절을 끝내고 신규채용된 것으로 나온다. 방송 말미에 <서른즈음에>를 부른 홍광호 사원(뮤지컬배우)도 막 입사한 신입사원으로 등장한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로 정리해고를 실시하는 회사가 신입직원을 채용한 것이다. 이럴 경우 회사가 정리해고를 실시한다면 고용노동부와 법원의 제재를 받게 된다.

또한 정리해고는 최소 50일 전 근로자대표에게 통보해야 한다(통상해고는 30일 전). 해고를 하더라도 당사자에게 생계를 유지하고 해고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한상사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날 무한상사처럼 단 하루 만에 정리해고 결정을 하고 대상자를 선정해, 이를 바로 통보했다면 그 직원이 회사를 떠나는 시기는 50일 이후여야 한다. 방송에서처럼 통보 직후 짐을 싸게 할 수는 없다.

이렇게 해고 조건이 까다로운 이유는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한상사에서도 박명수 차장은 처자식에 1억 7000만 원의 융자가 있다고 절규한다. 정 대리는 최근 쌍둥이를 낳아 대리운전까지 뛰며 돈을 벌어야 한다. 길 사원은 첫 출근한 자리에서 정리해고 소리를 들었고, 하하 사원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장모님을 볼 면목이 없다고 한다. 노 사원은 이제 다른 회사에 갈 수 없는 나이라고 하소연했다.

이 가운데 "사람을 자르지 말고 조금씩 나눠 월급을 삭감하자"고 유일하게 정리해고 회피 노력을 주장했던 정 과장이 해고된 것은 아이러니 한 일이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무한도전>... 정리해고 왜 공감하나

무한상사는 항상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탄다. 실제 직장인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과장되게 보여주는 동시에 회사 조직의 부당함을 극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공감을 동시에 유발하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정리해고편도 마찬가지다. 정리해고의 아픔을 희극적이지 않고 진정성 있게 접근하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정리해고 대상자를 결정하고 통보하는 과정이 상당히 과장됐지만 그렇게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현실도 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문자메시지 한 통으로 해고를 통보하는 실제 사례를 떠올려 보면 편지봉투로 해고통보를 하는 무한상사는 그나마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지난 27일 MBC <무한도전> '무한상사'편에서 정준하 과장이 정리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 MBC화면캡처

관련사진보기

웃고 즐기자는 예능에 해고의 조건을 따지고 들어간 것은 이미 <무한도전>이 단순한 예능의 범위를 넘어 현실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알 수 없지만, 정 과장이 퇴직 후 차린 치킨집(?)은 실패할 것이 분명하다. 현실이 그렇다. 또 무한상사를 앞으로 더 찍지 않을 생각이면 모를까, 정 과장은 회사로 돌아올 것이다. 어떻게 돌아오는 지가 중요하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1년 10만여 명의 노동자가 '경영상 필요'에 의해 정리해고됐다. 2012년에는 8만 명가량으로 줄었으나 여전히 지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12만여 명이 정리해고 당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리해고 된 노동자의 수는 100만여 명에 달한다. 이들과 이들의 가족, MBC에서 해고된 동료들과 길거리에 나선 해고노동자들도 다음주 <무한도전>을 보게 될 것이다.

Toplist

최신 우편물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