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출시 년도 - lamyeon chulsi nyeondo

전 세계에서 인스턴트라면은 한 해 1000억 개가 넘게 소비된다. 세계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중국의 소비량이 가장 많고( 연간 408억 개), 인도네시아(139억 개), 일본(53억 개) 등의 순이다. 한국은 6위 소비국이다(34억 개). 그렇다면 라면은 언제 어디서 처음 등장했고, 한국에는 언제 소개돼 현재에 이르렀는지 라면의 역사를 10회에 걸쳐 알아본다.

라면 출시 년도 - lamyeon chulsi nyeondo

삼양라면의 국내 첫 라면 출시 광고

1>  라면의 기원

라면은 본래 중국 음식으로 ‘납면(拉麵)’에서 유래했다. 납면은 밀가루 반죽을 양쪽에서 당기고 늘려 여러 가닥으로 만든 국수의 한 종류이다. 이 납면이 메이지유신 직후인 187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일본식 발음인 ‘라멘(ラーメン)’이 됐다. 라멘은 당시 일본에서 닭뼈나 돼지뼈, 멸치, 가다랭이포 등을 우려낸 육수에 면을 말아먹는 음식이었다. 납면의 면발이 가늘었다면 라멘은 면발이 다소 굵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현대적인 의미의 인스턴트 라면은 1958년 일본 닛신(日淸)식품의 회장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에 의해 개발되어 시판됐다. 1950년대의 일본은 제2차 대전 패배의 후유증으로 인해 건국 이후 최대의 식량난을 겪고 있었다. 미국에서 밀가루를 원조받아 빵을 만들어 먹는 게 일반화돼 있었다. 안도는 어느 날 술집에서 덴뿌라를 기름에 튀기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어 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튀기는 실험 끝에 라면을 개발했다. 안도가 만들어 낸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아지츠케면(味附麵)’은 국숫발에 양념을 묻힌 것으로 끓는 물에 2분만 넣고 끓이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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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삼양식품이 국내서 처음으로 선보인 인스턴트라면

라면이 국내에 소개된 건 1963년 삼양식품에 의해서였다. 당시 삼양식품은 일본에서 라면 제조 기술을 도입해 와 ‘즉석 삼양라면’을 처음 선보였다. 삼양식품은 콩기름을 만들어 팔던 1961년 설립된 삼양제유가 모태다. 당시 삼양제유의 전중윤 회장은 콩기름이 구호물자로 들어오는 바람에 사업을 지속하기가 어렵게 되자 일본을 왕래하면서 접했던 라면사업을 구상했다고 한다.

국내 라면의 효시로 꼽히는 '즉석 삼양라면'은 출시 초기만하더라도 라면을 생소하게 여기는 소비자들에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혼분식 소비 권장정책에 힘입어 대중화됐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우리 일상에 빠질 수 없는 식품으로 자리잡게 됐다.

전중윤씨는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교육도 잘 받은 엘리트였다. 당시 제일생명의 사장으로 있던 전중윤씨는 회사 근처 동대문 시장으로 구경을 나갔다가,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사먹으려고 줄 서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음식의 이름은 꿀꿀이 죽이었고 가격은 5원이었다.

당시 버스의 가격이 8~10원정도였다고 하고 담배가 1갑에 25원, 커피 가 1잔에 35원정도로 팔리고 있던 당시였다고 하니, 죽 한그릇에 5원이라는 가격은 엄청나게 저렴한 것이었다.

전중윤씨는 처음 보는 음식의 저렴한 가격에 호기심이 생겨, 다른 사람들과 같이 줄을 서서, 꿀꿀이 죽을 먹기 위해 기다렸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그가 받아든 음식의 모습은 처참했다.

제일생명의 사장. 그리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을 잘 받고, 잘 살아가던 전중윤 사장의 손 앞에 들려 있는 꿀꿀이 죽의 모습은 자신의 세계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던 서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듯 했다. 당시 꿀꿀이 죽은 미군들이 먹고 남은 찌꺼기를 걷어 와서 솥에 끓인 후 사람들에게 팔던 음식이었다. 꿀꿀이 죽에서는 가끔 고깃덩어리나, 참치 등이 나올 때도 있었지만, 또 어떨 때는 담배꽁초나 먹지 못하는 이물질이 나오기도 하는 사람이 먹기 힘든 음식이었다. 이렇듯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음식을 서민들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사 먹고 있었다. 전중윤 사장은 꿀꿀이 죽이라는 이름의 역한 음식의 모습을 보며, 왜 꿀꿀이 죽이라고 하는지 유추했다. 돼지 사료와 같은 그런 음식... 그래서 꿀꿀이 죽이라고 했던 것이구나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전중윤 사장은 돼지 사료같은 음식을 차마 목으로 넘길 수 없었고, 이 사건으로 한국 사회가 당면한 식량 사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사업을 한다면 보험이 아니라,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식품 사업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일생명의 사장자리에서 물러나서 식량 사정을 해결하기 위한 식품 사업을 구상하게 된다.

우연의 일치일까? 전윤중씨가 라면을 개발하게 된 계기도 인스턴트 라면을 처음 개발한 안도 모모후쿠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사람들이 식량 부족으로 힘들어하는 모습, 그리고 6.25 전쟁 이후 한국 사람들이 식량 부족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이 동일했듯, 나라는 다르지만 안도 모모후쿠, 전중윤 두 사람은 식량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똑같은 문제 의식을 공유했다.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던 전중윤 사장의 머릿 속에 떠오른 것은 50년대 말, 보험 회사를 운영하며 일본에서 연수를 받던 중 먹었던 인스턴트 라면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먹었던 인스턴트 라면을 떠올리며, 국내에서도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스턴트 라면을 생산해 낸다면 식량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식품 회사를 차린 후 일본에서 구입해 온 인스턴트 라면을 보며 한국 최초의 라면 개발을 위해 연구하게 된다.

그러나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전중윤은 식품회사를 인수한 후 회사 이름을 삼양공업주식회사로 바꾸었다. 그리고 인스턴트 라면 제조 기계를 구입하려 했으나, 자금이 모자랐고, 전중윤 회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정부 부처에 국내 식량 문제를 해결할 자신의 포부를 밝히고, 정부 당국자를 설득해 5만불을 배당받았다.

우리나라 라면의 역사, 출시년도

한국사람 중에서 라면을 전혀 안 먹는 사람, 아주 드물죠?

그만큼 우리의 생활과 떼려에 뗄 수 없는 식품이 된지 오래입니다.

고칼로리와 높은 나트륨 함량이 때문에, 너무 잦은 섭취는 좋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사대용이나 간식 등으로 줄곧 사랑받고 있는 최고의 기호식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기가 많은 만큼 라면의 종류도 천차만별입니다.

1963년 한국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이 등장한 이후로 현재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라면이 나왔고, 사라졌는데요.

이쯤에서 우리가 즐기는 라면, 특히 2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해온 베테랑 라면들의 역사, 출시년도를 정리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1. 삼양라면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한국 최초의 라면입니다.

1963년 9월 5일에 출시되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니,무려 50년 넘게 장수해온 셈이죠?

2. 육개장

요즘에는 온갖 종류의 용기면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지만,이 육개장의 맛을 여전히 선호하는 마니아들이 많죠.

1982년 11월에 출시된, 삼양라면 못지않은 장수라면입니다.

3. 안성탕면

저렴하고 맛있는 라면으로 유명하죠.

귀에 착착 달라붙는 TV 광고음악 기억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1983년 9월에 첫 선을 보였습니다.

4. 너구리

특유의 굵고 쫄깃한 면발, 시원한 다시다 국물!영원한 라면계의 슈퍼스타, 너구리입니다.

1983년 2월에 출시됐네요.

5. 짜파게티

1984년 3월 등장한 대한민국 최초의 인스턴트 짜장라면입니다.

이름 그대로 짜장면과 스파게티의 중간쯤 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죠.

라면보다 나트륨이 낮고 부드러운 맛으로 여전히 사랑받는 중입니다.

6. 신라면

그 유명한 신라면을 모르는 분은 아마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해외에도 수출되어 상당한 히트를 기록한 라면입니다.

1986년 10월에 태어났습니다.

7. 튀김우동

우동맛 라면의 등장도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죠.특히 끓는 물을 부으면 맛있게 불어나는 건조된 튀김이 트레이드 마크!

1990년 10월에 출시됐습니다.

쫄깃하고 꼬불꼬불한 면발, 시원하고 얼큰한 국물이 떠오르면 찾게 되는 라면. “물 550ml(3컵 정도)를 끓인 후 면과 분말스프, 후레이크 스프를 같이 넣고 4분 30초간 더 끓이세요.” 라는 글만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단히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라면은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안성맞춤인 즉석 음식이다. 라면은 종류도 다양하여 비빔라면, 짜장라면, 스파게티라면 등 다양한 종류의 라면이 취향이 다른 소비자를 만족시키며 판매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라면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중국으로, 2012년 기준으로 연간 440억 3천 만 개를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5일에 1번, 1년에 80개 정도를 먹고 있는 우리나라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라면은 간식이나 식사대용으로 찾는 간편 음식이다.

라면이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인 것은 1963년 9월 15일 출시된 삼양라면이었다. 식량난이 극심했던 시기에 일본에서 라면을 시식했던 전중윤은 식량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라면 생산을 추진했다. 정부로부터 돈을 빌려 일본의 묘조식품(明星食品)에서 라면생산 기계 2대를 수입하여 삼양라면의 생산을 시작하였다. 첫 출시 당시 삼양라면은 100g에 10원이었는데, 커피 한 잔에 35원이던 시기였으므로 매우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러나 처음에 라면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밥과 국, 반찬을 먹어야만 끼니를 해결했다고 여기던 당시 사람들에게 밀가루로 만든 인스턴트식품인 라면이 한 끼 식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라면의 꼬불꼬불한 모양의 면발도 익숙하지 않았고, 라면이라는 명칭의 ‘면’을 일종의 ‘천’이나 ‘실’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오해를 하기도 했다.

라면 출시 년도 - lamyeon chulsi nyeondo
삼양식품 공장 라면 포장작업 과정1
(1972)
라면 출시 년도 - lamyeon chulsi nyeondo
삼양식품 공장 라면 포장작업 과정2
(1972)
라면 출시 년도 - lamyeon chulsi nyeondo
삼양라면 360만포 월남 수출계약 조인식
(1968)

그러다가 1960년대부터 쌀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시작된 정부의 ‘혼․분식 장려정책’은 라면 판매량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절미운동과 혼․분식을 늘리는 식생활개선 사업계획을 세운 정부는 대대적인 캠페인과 각종 웅변대회, 그림대회 등을 통하여 쌀보다 영양이 풍부한 잡곡과 밀가루음식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라면 출시 년도 - lamyeon chulsi nyeondo
1968년 절미운동과 식생활개선 사업 계획(1968)

이러한 상황에서 출시된 라면은 처음에는 판매가 저조했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혼․분식 장려정책과 라면 무료시식회 등을 통해 맛이 좋다는 평을 받으면서 판매량이 급증하게 되었다. 1966년 한 해 동안 240만개가 판매되었던 라면은 1969년에는 1,500만 개가 팔렸고, 몇 년 만에 무려 300배가 넘는 판매실적을 올렸다. 그리고 2012년 현재 우리나라의 라면 판매량은 35억 2천만 개에 달하고 있다.

라면 출시 년도 - lamyeon chulsi nyeondo
식생활개선위해 보리혼식과 분식 장려의 이점소개 (1968)
라면 출시 년도 - lamyeon chulsi nyeondo
혼·분식 좋은점의 과학적 설명으로 보리혼식과 분식 장려(1969)

삼양라면이 출시된 지 2년 후 경쟁 라면인 롯데라면이 등장했다. 1965년 출시된 롯데라면은 농심라면의 전신이다. 삼양라면과 농심라면은 서로 경쟁하며 라면의 맛과 질을 향상시켰다. 꾸준히 판매량이 증가되던 라면은 1989년 11월 삼양라면의 ‘우지(牛脂)라면’ 파동이 일어나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공업용 쇠고기 기름을 사용하여 라면을 만들었다는 소식은 소비자들을 경악하게 하였다. 이 우지파동으로 삼양라면은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직원 1000여 명이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삼양라면은 1997년 8월 7년 8개월의 법정투쟁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로 값싼 밀가루가 도입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부족한 쌀의 소비를 줄이고 식량 소비의 패턴을 바꾸고자 주도한 분식장려운동으로 많은 국민들은 라면을 사먹기 시작했다. 그래서 라면은 어려운 시절 가난의 한 모습으로 기억되기도 하고, 훈훈한 추억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지금의 라면은 대체식량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기호식품의 하나가 되어 여전히 우리의 출출한 배를 채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