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론 프로이드는 인간행동에 대해 전적으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 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프로이드는 정신질환을 이해하는 주요 근원으로 무의식적 심리 과정의 연구에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그의 이론은 모든 정신질환에는 기질적인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는 입장과는 구분된다. 프로이드(S. Freud, 1856~1939)는 현재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인 프라이베르그에서 20세의 어머니와 40세 아버지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에게는 전처 소생의 장성한 두 아들이 있었으며 아버지는 근근히 유지해가는 정도의 모직상인이었다. 프로이드는 어린시절 매우 영리하였기에 가족들은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그의 공부를 격려하였다. 1873년 의학도로서의 훈련을 시작한 후 신경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뇌해부학 연구소에서 일했다. 그 후 비엔나 종합병원에서 임상훈련을 받으면서 의사 및 정신분석가로서의 수련과정을 밟았으며
이 기간 동안 그의 정신분석연구의 대부분이 완성되었다. 프로이드는 당시 미개척분야인 신경질환에 주력하였으며 프랑스 의사 샤르코가 최면술을 이용하여 히스테리 행동을 치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와 함께 일하면서 신경학연구에서부터 정신병리학 연구로 관심이 옮아갔다. 샤르코와의 연구에서 중점을 둔 것은 신경증적 마비와 기질적인 마비를 구분하는 것이었으며, 히스테리 연구는 프로이드 업적의 시발점이 되었다. 프로이드는 자유연상의 방법을 통해서 환자의 묻혀버린 생각과 감정을 복원시키도록 도와줌으로써 환자를 치료했다. 자유연상의 방법은 ‘기탄없이 이야기하기’ 즉, 환자의 마음에 떠오른 어떤 생각이라도 밖으로 표현하도록 하는 기법이다. 히스테리라는 용어는 생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억상실이나 신체질환에 적용되는 말이다. 예를들면 어떤 환자가 손의 감각을 상실하는 손마비 증세를 호소하였는데 생리학적으로는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프로이드는 환자들이 어떤
소원이나 감정을 의식으로부터 차단하거나 억압하고 있어서 이렇게 억압된 에너지가 신체적 증상으로 전환된다고 보았다. 프로이드는 환자가 연상의 진행에 강하게 저항하는 경험을 통해 마음 속에 억압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항이란 연상이 차단되는 것을 말한다. 환자는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므로 억압되고 따라서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다. 유리 모두는 자신이 인정할 수 없는 생각이나 욕망을 가지고 있다. 신경증은 이러한 억압과 갈등이 특별히 강하고 환자가 이것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프로이드는 히스테리 환자들이 의식으로부터 차단하고 있는 중심 정서가 성에 관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환자의 기억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고민하던 프로이드는 자기분석을 시작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느낀 혼란이 동기가 되어 자신의 꿈, 기억, 어린시절의 경험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아동기성욕이론’에 대한 확증을 얻었으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발견했다. 이것은 이성의 부모에 대한 애정 때문에 동성의 부모에게 강한 경쟁의식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프로이드는 이 이론을 <꿈의 해석>에서 처음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19세기의 청교도적인 비엔나의 분위기 때문에 발표 당시 학계의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했다. 1920년대에 이르러 그의 이론의 진가가 새로이 조명되었다. 의식의 수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