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딜레마 - jeong-uilan mueos-inga dillema

Part 4: 윤리

정의란 무엇인가: 철로를 이탈한 전차의 딜레마

<상황1>

당신은 전차의 기관사이다. 전차는 시속 100킬로미터로 질주하고 있다. 저 앞에 인부 다섯 명이 철로 위에서 작업 중이다. 전차를 멈추려고 했지만 불가능하다. 이 속도로 들이받으면 인부들이 모두 죽고 말 것이다.

이때 오른쪽에 있는 비상 철로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도 인부가 있지만, 한 명이다. 전차를 비상 철로로 돌리면 인부 한 사람이 죽는대신 다섯 사람이 살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상황2>

이제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를 바라보며 다리 위에 서 있는 구경꾼이다. 이번에는 비상 철로가 없다. 저 아래로 전차가 들어오고, 철로 끝에 인부 다섯 명이 있다. 이번에도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문득 당신 앞에 서 있는 덩치 큰 남자를 발견한다. 당신은 그 사람을 밀어 전차가 들어오는 철로로 떨어뜨릴 수 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남자는 죽겠지만 전차는 멈출 것이다. 당신이 직접 몸을 던져 전차를 막기에는 몸집이 너무 작다. 그렇다면 덩치 큰 남자를 미는 행위는 옳은 일인가?

 요즘 한창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도덕적 딜레마 상황을 요약한 것입니다. <상황1>의 질문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다섯 명의 인부가 죽는 것 보다는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상황2>가 제시되었을 때 흔들리게 됩니다. 달려오는 전차에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을 밀어넣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다섯 사람의 인부를 구하는 일이라 할 지라도 잔인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두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으로 인해 살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구출할 수 있는 사람의 인원으로 도덕적 행위를 판단한다는 원칙을 두 상황 모두에 동일하게 적용시키기기는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상황2>에서 덩치 큰 남자를 선뜻 밀지 못하는 우리의 소극적인 자세는 극복되어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단순히 하나의 원칙을 일반화시켜 적용하기 보다는 우선 <상황2>에서 우리가 덩치 큰 남자를 밀기를 꺼려하는 마음이 왜 생기는 것이며, 이것이 도덕과는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샌델은 이 두 상황의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고 독자들에게 생각해 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문제에 답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저는 두 상황의 차이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고려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황1>에서 기관사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단지 '어느 철로를 선택하느냐' 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의 선택에 따라 다섯 명의 인부가 죽을 수도 있고 한 명의 인부가 죽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 상황 자체를 막을 수 있다거나 어느 한 쪽을 살릴 수 있는 입장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상황에 자체에 대한 도덕적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질 수가 없습니다. 즉 우리에게는 '둘 중 어느 쪽을 죽여야 한다'는 짐이 지워져 있고, 이 상황 속에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도덕적 판단은 '피해를 최소로 하여야 한다'입니다. 이러한 원리에 근거하여 우리는 다섯 명의 인부보다는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 안타깝지만 더 나은 일이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반면 <상황2>에서 우리는 덩치 큰 한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를 '철로로 밀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우리 행동의 선택의 여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은 도덕적 결정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덩치 큰 남자를 철로로 밀어버린다면 이 행위에 대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 멀쩡한 사람을 철로로 밀어버렸다는 사실은 일반적인 도덕 원칙 속에서는 잘못된 일로 여겨지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덩치 큰 남자를 철로로 미는 것을 꺼리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단지 '관점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도덕적 결정권이 있느니 없느니라는 문제는 어떤 시각에서 우리의 행동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상황1>에서 기관사에게 그 상황에 대한 결정권이 없다고 이야기하였지만 어떤 사람은 기관사가 철로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그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또 <상황2>에서 우리의 행위 역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든 다섯 명이 죽거나 한 명이 죽거나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우리에게 그 상황에 대한 결정권이 없다는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주 정확한 지적입니다. 사실 저도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인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전차의 딜레마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도덕적 판단의 매커니즘'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두 상황은 그 구체적인 내용만 다를 뿐 그 상황들 속에 주어진 우리의 행위 가능성과 그 행위로 인한 결과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서로 동일한 상황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생각하면 두 상황들에는 동일한 도덕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같은데,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꺼리기 때문에 딜레마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두 상황에 동일한 도덕 원리를 적용하는 것에 대해 꺼리는 마음이 나타나는 이유'가 바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그 상황의 결과나 우리의 행동의 내용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어진 도덕적 상황의 어느 부분에 주목하고 있는가', '어느 관점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가'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입장에서 그것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도덕 판단에 대한 심리적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전차의 딜레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몇 사람을 살릴 것이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고 체계는 이 두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행위의 가능성'과 '도덕적 결정권'에 근거하여 문제에 접근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은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우리가 그 상황의 어느 측면을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가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기관사로서 우리가 처한 상황을 '어느 누군가는 전차에 치여 죽어야 한다'는 점에서 살펴보면 '도덕적 결정권'이 없는듯 하지만, 반대로 '어느 누군가를 죽일지 고를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에게 결정권이 있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또 '덩치 큰 남자를 밀 수도 있고 밀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그 상황에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가도 '우리가 그를 밀든 밀지 않든 누군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라는 입장에서 보면 우리에게 결정권이 없는 듯 하다는 것입니다.

 도덕적 판단에서는 이렇듯 그 상황에 대한 우리의 '선택의 여지'와 '권리'와 '의무' 등의 여러 요인들이 고려됩니다. 우리는 그 요인들의 다양한 측면과 또 그 측면을 바라보는 수많은 관점들 간의 관계들을 복합적으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추상적 도덕 원리만을 각각의 상황에 적용시켜서 그 상황을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차의 딜레마에서도 단순히 '사람이 가장 적게 죽어야 한다'는 원칙이나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와 같은 원칙들을 단순히 그 상황에 일방적으로 적용시켜 판단을 내리려 하는 일들은 도덕적 상황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측면들의 미묘한 요소들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의 심리가 도덕적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여 판단 내리는지 그 과정과 체계를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도덕 원리에 근거하여 도덕 판단을 내리는 일은 현실과 도덕을 괴리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은 도덕의 굴레 속에 우리를 얽매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도덕적 상황을 판단하는 일들에 인간 심리에 대한 분석들이 토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우리의 사고 체계가 도덕적 문제 사황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며 무엇에 주목하는지 알아보는 일은 보다 현실이고 실질적인 도덕을 수립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서없이 주절주절 쓰다보니 글만 길어졌네요. 위의 내용들은 단지 도덕에 대한 어느 고등학생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임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사실 도덕적 판단의 문제에 있어서는 고등학생이나 대학 교수나 명쾌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샌델은 다양한 도덕적 딜레마 상황들을 제시해 주고 이 상황들에 대한 여러 판단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는 있지만 어느 것이 가장 올바른 도덕적 판단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문제 상황에 대한 답을 언제나 열어둔 채로 우리에게 맡기죠. 결국 삶의 주체로서 이 문제를 결정해야할 몫은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