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우리는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선한 동기만 갖고 살 수 있는가 - ilsang-eseo ulineun gyeolgwaleul golyeohaji anhgo sunsuhage seonhan dong-giman gajgo sal su issneunga

(만화) 칸트 실천이성비판     

심옥숙 / 주니어김영사 / 2017 / 195p / 12,000원   

 칸트가 평생 다룬 단 하나의 주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다른 철학자들이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방법으로 인간을 탐구했는데, 그것이 바로 비판철학이다. 칸트의 비판철학은『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판단력비판』3부작으로 완성된다. 칸트의 3부작은 세계 철학을 뒤흔들 정도로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중『실천이성비판』 윤리와 도덕의 중요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연법칙도덕법칙으로 움직인다. 자연법칙은 본능적 욕구와 충동을 따르는 법칙이고, 도덕법칙은 인간이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법칙이다. 칸트는 자연법칙보다 도덕법칙을 중요하게 여겼다. 칸트는 인간이 인간다우려면 행동에 어떤 원칙이 있어야 하고, 행동이 원칙과 일치하게끔 만드는 명령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명령은 누가 시켜서가 아닌 인간 스스로 이성에 의해 내려진다고 보았다. 그것이『실천이성비판』의 핵심인 '정언 명령'이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성이 있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의지가 있다면 누구나 도덕법칙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칸트의 묘비에는『실천이성비판』의 마지막 구절이 새겨져 있다. 거기에는 인간을 그 자체로 가치있는 존재라고 여겼던 칸트의 따듯한 시선과 도덕적 실천의지에 대한 강한 믿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내 마음을 늘 새로운 놀라움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 머리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이고, 다른 하나는 내 마음속 도덕법칙이다."

 심옥숙.  영문학 석사. 베를린자유대학 독문학/언어학/철학 전공. [하이네의 철학적 시론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숭실대,전남대 출강하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프로이트가 들려주는 마음 이야기》《사르트르가 들려주는 실존 이야기》《헤겔 역사철학강의》등.

 머리말 - 심옥숙(작가).

 칸트(1724~1804)만큼 자신의 철학을 실제 삶을 통해서 보여 준 철학자는 그리 많지 않다. 칸트는 규칙적인 생활로 유명하다. 기상,산책,취침까지 정확하게 시간을 지켰다. 칸트가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집 안의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 그야말로 계획적으로 시간관리를 했다.

 칸트는 고향에서 30km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세상 돌아가는 일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당시에는 훌륭한 스승을 찾아 그 지역으로 공부하러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칸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도시를 떠나서 공부한 적이 없다. 홀로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노력하면서 자신이 세운 목표를 실현했다. 칸트는 자신의 일생을 통해 의지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고 노력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실천이성비판>에서 말하는 이성에 따른 자유의지와 실천능력을 몸소 실천한 셈이다.

 칸트이성의 실천능력은 순간의 감정에서 나오지 않고, 객관적인 법칙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이러한 법칙을 설명하고 논증하기 위해서 쓴 책이 바로 <실천이성비판>이다. 이 책에서 칸트는 인간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행동과 실천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행동이 가치있기를 바라는데, 이것이 곧 도덕적,윤리적 태도라고 말한다.

 물론 인간의 내면에는 도덕원리만 있는 것은 아니고, 욕망과 충동에 따르는 자연법칙도 있다. 칸트자연법칙도덕법칙, 이 두 가지 중에서 우리가 행동하는 데 필요한 법칙은 도덕법칙이라고 말했다. 도덕법칙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예외없이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이자, 하나의 명령이다. 덕법칙은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개인 스스로 자신에게 내린 자율적인 명령이다. ☞ 하지만 당위와 실제는 다르다.

 이성이 우리 자신에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를 알려 주는 명령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자신의 이성과 의지에 따라서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생각하고 도왔다면 그것은 도덕법칙에 따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나중에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나 대가를 기대하고 다른 사람을 도왔다면, 그 행동은 이성의 명령에 따른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 ☞ ???

 칸트의 철학은 도덕과 윤리의 가치가 점점 사라지는 현대사회에 많은 질문을 던진다. 도덕적 의무를 행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 의해 달라지거나 충동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닌, 거부할 수 없는 이성의 명령이라는 칸트...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머리말 - 주경훈(화가).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더 커지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속 도덕법칙이 그것이다."

 칸트 평생에 걸친 고뇌와 지성이 압축적으로 들어간 말이다. 내 마음속 도덕법칙... 칸트는 왜 이토록 도덕법칙을 강조했을까? 그가 외친 도덕법칙이란 무엇일까?

 오늘날 사람들은 빈부격차,인종차별,범죄,전쟁에 대한 공포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문제들의 근본원인은 도덕법칙의 상실에 있다고 생각한.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적인 마음이 사람들끼리 불신하고 미워하게 만들고 있다.

 칸트가 말한 도덕이란, 지역이나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라, 인류 모두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도덕을 말한다. 그는 도덕인간 각자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의 목소리라고 했다. 우리는 흔히 선한 일을 하면 결과만 보고 칭찬하는데, 칸트동기가 순수하지 않으면 선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어야 한다고도 했다.

 칸트의 사상은 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서양철학을 종합하고 체계화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천성적으로 양심과 같은 신성하고 고귀한 성질이 있고, 그것을 계몽을 통해 확장하려고 시도한 첫 번째 철학자가 칸트였다.

 물론 칸트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인간의 내면에 완벽한 도덕법칙을 타고 난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신의 존재와 영혼불멸을 믿어야 최고의 도덕법칙이 완성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점이 한계로 지적되기는 하지만, 신칸트주의가 등장하며 그의 철학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연구하며 계승하고 있다.

 칸트 철학이 오늘날에도 가치가 있는 이유는 도덕의 실천이 인류에게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개인의 행복이 인류의 행복이고, 인류가 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개개인이 도덕을 실천했을 때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 말이 진심임을 깨달을 때 칸트의 말처럼 내 마음속 도덕법칙에 놀라고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1장.『실천이성비판』은 어떤 책인가?
 칸트의 철학은 비판철학이라고 부른다. 그가 쓴 책 제목에 '비판'이 들어가는 이유도 있지만, 칸트 스스로 자신의 철학을 비판철학이라고 불렀다.

 <순수이성비판>(1781) - 인간의 인식론을 다루었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실천이성비판>(1788) - 인간의 윤리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판단력비판>(1790) - 인간의 고급이성능력 중 하나인 판단력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우리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실천이성비판>은 근대 철학의 기초를 다진 책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칸트가 생각하는 '사람'은 이성적인 존재.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 때, 자신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올바른가를 생각하기 때문에, 옳지 않은 행동을 하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불안해진다. 자신의 감정과 충동을 못 이기고 행동할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면서도 거리낌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다수의 사람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곧 의지이고 실천능력이다. 도덕적으로 행동하려는 의지는 감정에 흔들리는 법이 없다. 오로지 객관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이러한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서 칸트가 쓴 책이 바로 <실천이성비판>이다.

 칸트가 <실천이성비판>에서 줄곧 주장한 것은 실천이성이 인간이 지닌 최고 능력이라는 점이다.

 행동과 실천의 원리.  칸트는 인간의 행동과 실천을 중요하게 여겼다. 인간은 날마다 수많은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올바른지 아닌지 생각하고 판단한다. 자신의 행동이 윤리적,도덕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윤리와 도덕을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다. 칸트는 윤리와 도덕의 중요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했다. 그 노력의 결과가 <실천이성비판>이다. 실천에도 객관적 원리가 있음을 보여 주려고 한 것이다. 어떤 행동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에 적용되는 도덕적 근거를 밝혀 내려고 했다. 실천이성이 도덕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행동과 법칙의 원리.  행동을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행동은 곧 무엇인가를 실천하는 것이고, 실천의 바탕에는 의지가 있다. 의지란 어떠한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연법칙과 도덕법칙으로 움직인다.

 자연법칙 - 본능적인 욕구와 충동을 따르는 법칙.

 도덕법칙 - 의지에 따라서 행동하는 법칙.

 칸트는 자연법칙보다 도덕법칙을 중요하게 여겼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이 올바르다고 믿을 때 행동하려 하는데, 기준이 되는 것은 자연법칙이 아닌 도덕법칙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한 행동이 실제로 올바른 행동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도덕적인 행동을 하기 어려워한다.

 도덕법칙은 수학이나 과학과 달리 검증하기가 어렵지만, 칸트는 이런 까다로운 문제에 도전한다. 실천이성비판을 통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과 실천의 법칙을 철학적으로 풀어 보고자 했다.

 자연법칙의 원리.  법칙과 원리는 개인의 사정이나 조건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항상 보편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법칙과 원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용된다. 과학법칙이나 수학공식이 우리 기분이나 감정에 따라서 변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이 오로지 자연법칙에 따라 행동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때그때의 감정상태와 기분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고, 선과 악을 구별하기 어려울 것이다.

 도덕법칙의 의미.  하지만 이성을 가진 인간은 자연법칙의 지배에서 벗어나 도덕법칙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개인의 경험이나 감정변화에 쉽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어떤 힘든 상황에 처하더라도 강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다. 인간이 도덕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실천이성이고 의지. 물론 의지가 있다고 해서 모든 일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 때문에 의지와 반대로 행동하는 경우도 많다.

 법칙의 보편성.  칸트의 도덕법칙은 보편적인 법칙이다. 보편적인 법칙이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법칙을 말한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보편적인 법칙을 찾기란 아주 어렵다. 지구의 수십억 사람들이 전부 만족할 수 있는 도덕법칙을 찾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 모두 인정할 수 있는 도덕법칙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칸트는 고집스럽게도 보편적인 도덕법칙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칸트는 어떤 행동이 도덕적인지를 따지기보다, 사람들이 도덕적인 행동을 할 때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유를 찾으려고 했다. 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면 도덕법칙이 보편적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칸트는 인간이 경험하거나 알기 전부터 존재하는 원리에 관심이 많았다. 칸트가 찾으려고 한 원리는 사람들 행동의 전제가 되며 또한 도덕법칙이기 때문에 개인의 경험을 판단기준으로 삼아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도덕적 의지.  원리란 다른 말로 행동방식의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틀은 하나하나의 행동이 옳은지 아닌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틀 안에서 기분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된다. 우리는 틀 안에서 마음속의 자연적인 충동이나 감정을 억제하고 극복할 수 있다.

 우리 마음속에는 이미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이런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구를 참고 극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칸트는 이런 의지를 도덕적 의지라고 부른다.

 의무여! 숭고하고도 위대한 이름이여!  각각의 사람들이 마음속에 도덕적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해도, 도덕적 의지가 보편적인 법칙이 되려면 객관적인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도덕적 의지에 객관적인 타당성을 부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칸트는 나름 해법을 찾았는데, 바로 의무라는 개념이다.

 칸트는 왜 인간의 의무를 강조했을까? 인간에게서 의무를 빼 놓는다면 진정으로 인간답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무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의 명령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칸트가 말하는 의무스스로 깨닫고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의지를 뜻한다. 인간이 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도 개인의 이익이나 다른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냥 인간의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선한 행동을 한다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도덕적인 행동은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다른 목적을 갖고 선한 일을 한다면, 그것은 결코 선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도덕적인 행동을 한다면, 도덕적인 행동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목적이 의무가 되는 것이다. 내가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할까 봐 친절하게 대한다면, 칸트는 당장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것은 옳지 않아. 친절을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지. 친절은 인간의 의무야."

 거부할 수 없는 명령.  도덕법칙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알려 주는 명령이다. 여기에서 명령은 다른 사람이 내리는 명령이 아니라, 나의 이성이 내리는 명령이다. 이를테면 이성은 위험에 처한 사람이나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나에게 명령을 내린다. 물에 빠진 사람이 도와 달라고 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제야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물에 빠진 사람을 보는 즉시 구하려는 행동은 스스로의 의지로 하는 일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나에게 감사함을 느낄 거라고 기대하고 도움을 주어서는 안 된다.

 현대의 윤리와 도덕의 모델이 된 <실천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이 나온 지 200년이 넘었지만, 이 책의 핵심개념들(도덕의 법칙, 윤리의 원리)은 과거 속 이야기가 아니다. 칸트의 철학은 첨단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필요하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은 점점 사라지고 있고,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도 외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럴수록 우리는 칸트의 가르침에 다시 귀 기울여야 한다. 도덕은 인간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명령이기 때문이다. <실천이성비판>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유다.

 실천이성을 생활 속에서 실천한 칸트.  칸트는 사회에 널리 퍼진 회의주의,독단주의,상대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인간은 조건이나 이익을 따지지 말고, 순수한 마음으로 도덕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덕적 행동은 주관적으로 판단하거나 제멋대로 결정해 내리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생활양식이나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도덕적인 행동을 주저하는 것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도덕을 지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이성이 우리에게 내리는 명령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도덕적 행동을 몸소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일상생활이 도덕법칙 그 자체였다. 그는 철저하게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삶 전체로 자신의 철학을 보여 준 셈이다.

 2장. 칸트는 어떤 사람인가?
 1724년 4월 22일 칸트는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11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칸트는 집안이 가난했고, 검소하게 살았다. 아버지 요한 게오르크 칸트는 가죽으로 마구를 재단해서 파는 일을 했다. 어머니 안나 레기나 도로테아 로이터는 정식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현모양처였다.

 8살 때 학교에 입학한 칸트는 특히 라틴어와 고전문학에 몰두했는데, 덕분에 평생 라틴어 고전을 즐겨 읽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당시 지나치게 엄격했던 교회 분위기를 싫어해서 부모를 따라 다녔던 어린 시절 이후에는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국왕 빌헬름2세가 쾨니히스베르크를 방문해 특별예배를 열었을 때도 참석하지 않았다.

 1740년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대학에 입학했는데, 입학 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칸트는 특히 수학,물리학에 흥미를 느껴서 뉴턴의 책을 자주 읽었다. 신학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반면, 자연과학은 그에게 큰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해야만 했다.

 대학 졸업 후 칸트는 학자의 길을 가기를 원했지만, 가정형편상 학업을 도중에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집에는 칸트가 돌봐야 하는 동생이 다섯이나 있었다. 칸트는 근교 마을에서 약 9년간 가정교사 일을 하며 집안일을 도왔다. 그렇다고 학자가 되는 꿈을 포기하진 않았다.

 31세가 되던 해에 칸트는 박사학위를 받았고, 친구의 도움으로 대학에서 강사 자리를 얻었는데, 강사 생활은 이후 무려 15년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수입이라고는 학생들로부터 받은 수업료가 전부였다. 처음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칸트의 발음은 부정확했고, 목소리가 작았다. 그럼에도 강의수준이 높았기 때문에 학생들은 많았다. 그의 강의는 철학과 과학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수학,물리학,논리학,형이상학까지 폭넓은 분야를 다루었고, 강의를 하면서 부지런히 집필작업을 해 여러 권의 책도 출간했다.

 칸트는 평생 엄격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그는 여행이라고는 거의 한 적이 없어서, 그가 가장 멀리 간 곳은 자신이 가정교사를 하던 장교의 집이었다고 한다.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세상을 보고 경험하는 데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엄청난 독서량으로 다양한 영역을 접해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정말 많았다. 그의 강의가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책을 통해 얻은 사례를 강의시간에 적절히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칸트는 고향의 쾨니히스베르크대학의 교수가 되기를 원했지만, 교수임용을 두 번이나 거절당했다. 다른 대학에서 교수초빙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심지어 독일 최고의 대학인 베를린대학에서는 국왕의 호의로 많은 특권을 제시하며 詩學을 강의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했다. 詩學이 자신의 전공이 아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고향을 떠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칸트도서관에서 일하며 강사 일을 계속했다.

 1770년 마침내 칸트의 꿈이 이루어졌다. 46살이 되어서 그토록 바라던 쾨니히스베르크대학의 철학교수가 된 것이다. 이후 다른 걱정 없이 오직 학문연구에만 매달릴 수 있게 된 칸트정교수가 된 이후 10년이 넘도록 어떤 글도 발표하지 않은 채 긴 시간 동안 인간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 마침내 연구결과물을 책으로 출간했는데, 철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저술이라고 평가받는 책들이 잇달아 나온 때가 이 시기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책이 바로 <순수이성비판>(1781)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비아냥거려도 개의치 않고,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연구하다가 비로소 세상에 자신의 철학을 공개한 책이다. 그는 인간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인식하는지 밝히려고 노력했다. <순수이성비판>을 출간한 후 또 다시 7년을 연구한 끝에 나온 책이 <실천이성비판>(1788)이다. 칸트는 이 책을 통해서 인간이 왜 선한 행동을 해야 하고, 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지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로부터 2년 뒤에 출간한 <판단력비판>(1790)에서 칸트는 자신의 사상을 더 발전시켰고,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원리가 무엇인지 찾아내려고 했다.

 사람들은 비판의 3부작이라 부르며 아주 높이 평가했고, 인간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해 철학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 준 칸트는 독일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 이름이 알려졌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쾨니히스베르크대학으로 모여들었다. 칸트의 명성은 점점 높아졌고, 덕분에 칸트두 번이나 쾨니히스베르크대학 총장을 지냈다.

 대학총장 시절 칸트는 신념을 굽히거나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기독교를 비판해 국왕을 노엽게 하는 바람에 종교에 관련된 강의나 저술활동을 금지당했고, 심지어 교수직까지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국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칸트는 매우 엄격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학문을 연구했다. 시간관념이 매우 철저해서 수십 년 동안 정해진 계획표대로 생활했다. 어쩔 수 없이 생활계획표를 지키지 못하거나 변경해야 할 일이 생기면 짜증을 낼 정도였다. 칸트매일 5시에 정확하게 일어났고, 홍차 두 잔을 마신 후 잠옷을 입은 채로 연구를 시작했다. 오전에는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가장 활발한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는데, 식사에 손님을 자주 초대했다. 요리솜씨가 전문가 수준이어서 직접 요리를 해서 손님을 접대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혼자 식사하는 건 불행한 일이라며, 어떤 사람과 무슨 요일에 점심식사를 할 것인지 계획을 세웠고, 3~9명까지 손님을 초대했다.

 칸트는 맥주의 본고장에서 살았지만, 맥주는 입에 대지 않았다. 칸트의 일화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산책시간을 엄격하게 지킨 것이다. 그는 제나 오후 4시에 철학자의 산책로라 불리는 길을 산책했다. 그 시간이 어찌나 정확했는지, 동네 사람들은 칸트를 보며 시계를 맞추곤 했다. 칸트가 평생 산책시간을 지키지 못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루소의 <에밀>을 읽을 때였다. 어떤 사람은 한 번 더 있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프랑스혁명 소식이 실린 신문을 읽다가 늦었다고도 한다.

 저녁시간이면 그는 주로 여행기 같은 가벼운 책을 읽었다. 칸트는 고향을 떠나 본 적이 없었지만, 여행기를 읽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실제로 다녀온 사람처럼 잘 파악했다고 한다. 여행기를 통해 얻은 세상소식을 강의시간에 적절하게 활용했다.

 칸트밤 10시에 정확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칸트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평생 하인 한 사람과 살았다. 칸트가 결혼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두 번 정도 결혼을 결심했지만, 지나치게 신중히 생각한 나머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언젠가 칸트는 사귀던 여성으로부터 청혼받았다. 신중한 성격의 칸트는 사랑,결혼에 대해 알아보고 결정하기 위해 다양한 책과 자료를 살펴보았는데, 그 결과 결혼하는 것이 결혼하지 않는 것보다 장점이 약간 더 많다는 결론을 내렸고, 드디어 결혼을 결심했다. 문제는 사랑과 결혼에 대해 자료조사기간이 너무 길었다는 것이다. 무려 몇 년이나 걸리는 바람에 청혼했던 여성은 기다리다 지쳐서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한 뒤였다.

 칸트평생 독신이었는데, 독신생활을 불만스러워하거나 힘들어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칸트를 안락한 독신자라고 불렀다. 그는 결혼제도에 관심이 많아서, 이웃에게 바람직한 결혼에 필요한 점을 이야기하곤 했다. 외모를 보고 충동적으로 상대를 고르지 말 것, 이성적 판단에 따라 상대를 선택할 것. 또한 돈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했다. 그는 돈이 부부의 행복을 지켜 준다고 생각했다.

 경제적 여유가 없다면 부부의 행복도 없고, 서로 감사하는 마음도 생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결혼과 경제적 활동에 대해서는 매우 현실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결혼이나 돈에 대한 가치관이 냉정한 이유는, 감정보다 이성을 더 중시 여기는 철학자였기 때문이다. 따라현실적인 문제를 다룰 때는 낭만적인 감정보다 합리적 이성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칸트72세 때 강의를 그만두고 은퇴했다. 나이가 들어 시력과 기억력이 약해졌고, 철학연구에 대한 열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실질적인 연구시간은 줄어들었고, 쓸쓸한 노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30km 이상 고향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던 칸트는 1804년 80살에 세상을 떠났다.

 칸트가 남긴 마지막 말은 "Es ist gut! 좋군!"이었다고 한다. 사람들로부터 대단한 존경을 받았던 칸트가 세상을 떠나자, 도시 전체가 일을 멈추었고, 모든 교회에서 일제히 종을 울렸으며, 수천 명이 장례행렬을 따랐다. 칸트의 묘비에는 <실천이성비판>의 마지막 구절을 새겼다.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더 커지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속의 도덕법칙이 그것이다."

 3장. 순수이성과 실천이성, 그리고 善의지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이 다른 철학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의 이성을 순수이성실천이성으로 나눠서 설명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의 차이를 이해하려면 우선 이론실천의 관계부터 알아야 한다. 철학은 이론과 실천으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이론 - 어떤 것이 어떠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 행동이 따르지 않음.

 실천 - 어떤 일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미. 행동을 전제로 함.

 철학의 저수지 <순수이성비판>.  칸트제1비판서로 불리는 <순수이성비판>은 칸트가 쓴 책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 서양 철학사에서 커다란 저수지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이전의 서양철학을 종합하고 체계화했기 때문이다. 서양역사에서 로마가 이전의 역사를 통합하고 이후의 역사에도 큰 영향을 끼친 것처럼,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이 <순수이성비판>에 의해서 모아지고, 칸트 이후의 철학이 <순수이성비판>으로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칸트가 활동할 당시 서양철학에는 두 가지의 흐름이 있었다.

 경험주의 - 모든 인식을 경험으로 설명하려는 이론으로, 영국에서 발달했다. 대표적 철학자로는 베이컨,홉스,로크가 있다. 이들은 '인간이 아는 모든 것은 감각과 경험에 의해서다'라고 주장한다.

 합리주의 - '인간의 모든 인식은 이성에 바탕을 둔다'고 주장한다. 유럽대륙에서 발달했다. 대표적인 철학자는 데카르트,라이프니츠,스피노자 등이다.

 칸트는 이 두 가지 입장을 하나로 통합했다. 감성과 지성, 경험과 이성을 종합하는 철학을 세웠다.

 <순수이성비판>과 선험적 종합판단.  철학에서 '순수'란 경험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순수이성은 경험에 의지하지 않고 자립적이고 자발적인 성질이 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안다고 해 보자. 과거에 경험하지 않아도 순수하게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순수이성에 의한 인식은 경험해서 아는 것과 달리 필연적이고 보편적이다. 그래서 개인의 생각,느낌이나 환경 등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인간은 순수이성을 토대로 더 넓은 인식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더 넓은 인식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판단기준이 필요한데, 칸트는 이것을 선험적 종합판단이라고 했다. 선험적 종합판단은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든 상관없이 경험에 앞서서 하는 판단을 말한다. 선험적 종합판이성을 요구하는 모든 학문에서 매우 중요한 원리.

 칸트는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아도 선험적 종합판단을 통해 수학이나 자연과학을 이해할 수 있으며, 순수이성비판은 이런 선험적 종합판단잘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강조한 이유는, 다른 철학자들의 이론이나 체계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이를 빗대어 칸트는 자신의 사고방식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칸트는 '순수이성' 뒤에 '비판'이라는 단어를 썼을까? 칸트 이전의 철학자들이 의심하지 않았던 이성 자체를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성 자체를 비판해 이성의 한계와 능력을 제대로 안다면, 인간 스스로 자신의 인식능력을 비판하고, 스스로 반성함으로써 인간이 경험에 영향을 받지 않고 어디까지 인식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만약 인간에게 순수이성 비판능력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사물을 정확하게 지각할 수 없을 것이다. 사물을 지각한다는 것은 사물 그 자체를 안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의 인식으로는 사물자체(物自體)를 알 수 없다. 다만 그 현상들을 아는 것 뿐이다. 예컨대 사과나 장미꽃이 있다고 하자. 우리가 사과나 장미꽃을 아는 것은 눈으로 보고 사과모양을 알거나, 코로 냄새를 맡아 장미향기를 알 뿐이다. 즉 공간과 시간을 통해서 주어지는 정보들을 눈으로 보거나 코로 냄새를 맡아 우리의 지성이 판단하는 대로 인식할 뿐이다.

 어떤 종류의 붕어빵 틀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붕어빵의 크기나 모양이 달라지듯이, 우리는 각자가 가진 인식의 범주 안에서 사물을 인식한다. 이러한 인간의 경험과 인식을 종합하는 것이 <순수이성비판>의 핵심이다.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직관과 사유, 감성과 지성이 종합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이를 칸트는 "모든 인식은 경험과 더불어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경험으로부터만 인식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경험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경험에 흔들리지 않는 무엇이 필요하다. 이것을 칸트는 순수이성이라고 본 것이다.

 종합해보면, 칸트경험을 무조건 믿지도 않았고, 경험을 무시하고 이성과 정신만 고집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천이성비판>을 제2비판서라고 하는 까닭.  칸트가 제1비판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이성 자체를 비판했다면, 제2비판서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천이성 능력을 비판했다. 실천이성에 대한 비판은 도덕적 실천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실천이성비판>은 그의 윤리학 저서인 <도덕 형이상학의 정초>에 나온 도덕원리를 한 단계 발전시킨 책이다.

 <실천이성비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언명령이다. 정언명령은 인간이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 실천이성이 자기 자신에게 내리는 최고의 명령이다. 정언명령에 따르기 위해서는 자유예지가 아주 중요하다. 칸트자유예지를 바탕으로 실천이성의 원리들을 완벽하게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 예지란 사물의 이치를 꿰뜷어 보는 지혜롭고 밝은 마음을 뜻한다.

 그중에서도 칸트가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의지였다. 의지감성이나 경험에 흔들리지 않는 최고의 도덕원리라고 할 수 있다.

 도덕의 근본법칙.  인간은 이성적 존재다. 하지만 감각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의지가 쉽게 흔들리곤 한다. 우리가 모든 일에 항상 이성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각자가 주관적으로 판단해 행동하는 경우도 많다.

 칸트인간이 인간다우려면 행동에 어떤 원칙이 있어야 하고, 행동이 원칙과 일치하도록 만드는 명령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명령은 이성에 의해 움직여야 하며, 스스로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각자의 경험이나 환경에 따라서 쾌감과 불쾌감을 느끼는 감정은 보편적이지 않다생각한 것이다. 경험이나 주변환경 등이 바뀌면 각자의 생각이나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칸트순수 실천이성의 근본법칙을 세우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정언명령은 누가 시켜서 만든 법이 아니다. 인간의 이성이 스스로 세운 법이다. 법을 만든 인간의 이성이 자유의지에 따라서 스스로 세운 도덕법칙을 따르라고 강조한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이성이 있고, 내면으로부터 들리는 이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면 누구나 도덕법칙을 지킬 수 있다.

 선과 악.  선악은 인간이 도덕법칙에 따라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생기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선악은 무슨 행동을 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저마다 다양한 욕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실천이성은 자유의에 따라 행동한다. 어떤 행동이 선한지 또는 악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아무 생각없이 하는 경우는 없다. 자신이 하려는 행동이 보편적인 법칙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 먼저 자신에게 묻는다. 자신의 행동이 보편적이고 자연법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선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반대라면 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위가 선악을 기준으로 했을 때 어느 쪽인가를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심.  도덕법칙만 강조하면 개인의 다양성을 가로막아 큰 고통을 줄 수 있다. 도덕법칙의 명령이 너무 엄격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마음에 심한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덕법칙에는 높은 권위가 있다. 도덕법칙에 따르는 의무를 알고 스스로 행동하는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며, 이에 복종하는 인간이야말로 이성적 존재라 할 수 있다.

 최고선의 문제.  인간은 도덕법칙에 따르는 것으로 만족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동시에 행복하기를 원한다. 도덕과 행복이 하나로 결합했을 때리는 이를 최고선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실천이성에 모순이 생긴다. 도덕을 실천한다고 항상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덕 없는 행복은 공허하고, 행복 없는 도덕은 만족스럽지 않다.

 칸트는 도덕을 완성하기 위해서 영혼불멸의 존재를 내세웠는데, 그게 바로 이다. 인간은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도덕법칙을 충실히 수행할 때 최고선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칸트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있다.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이 경탄과 외경으로 마음을 채운다." 자연의 질서는 도덕의 질서와 같이 작동한다는 것을 비유해서 표현한 말이다.

 실천이상은 왜 순수이성보다 우위에 있는가?  칸트실천이성이 순수이성보다 한 수 위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순수이성보다 실천이성에 더 관심이 많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관심은 마음이 움직이도록 자극을 주는 원리를 의미한다. 순수이성에 대한 관심은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지만, 실천이성에 대한 최고의 관심은 최고선에 도달하기 위해 자유의지를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사변이성실천이성이 결합하면 실천이성이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인간이 관심을 갖는 것은 결국 실천으로 나타나며, 사변이성도 실천해야 비로소 완전해지기 때문이다. 사변이성이란 이론적 인식에만 관계하는 순수이성이다.

 善의지.  이성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의지가 있다. 의지란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능력으로, 인간이 의지를 갖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다양한 감성적 자극을 이용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 항상 善의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전쟁터에서는 적을 죽여야 내가 산다. 善의지인간이 선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로, 양심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능력을 말한다.

 어떤 일을 하려는 의지가 강해도, 양심을 외면하거나 소홀하게 취급한다면 그것은 善의지라고 할 수 없다. 그만큼 善의지와 양심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칸트는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우리 내면에는 법정이 있어서, 이 법정 앞에서 자신이 자유의지에 따라 했던 모든 일에 대해 판결을 받는다."

 양심은 우리 내면에서 두 가지 역할을 한다. 하나는 판결을 기다리는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판결을 내리는 역할이다. 양심이 있기에 이성을 가진 인간은 도덕법칙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 칸트善의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인간은 오로지 그것이 옳다는 이유만으로 옳은 행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행동의 과정이나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옳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善의지를 택한다는 뜻이다.

 칸트善의지를 이렇게 정의하기도 했다. "이 세계에서 또는 이 세계 박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선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善의지 뿐이다. 善의지는 어떤 원인이나 결과, 또는 목적이 있어서 선한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선한 것이다."

 칸트어떤 결과에 따라서 善의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양심을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에 따라서 善의지가 결정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결과가 좋다고 해서 모두 善의지를 따랐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떤 일을 성공시켰다고 해서 그것이 善의지로 얻은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10명의 사람들이 조난을 당한 채 보트 안에서 며칠을 굶주렸다고 하자. 그중 한 사람이 먹을 거리를 발견했다. 그는 고민 끝에 음식을 다같이 나눠 먹기로 했다. 그는 선하다고 할 수 있을까? 칸트그것만으로는 선하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음식을 나눈 이유는, 혼자 먹은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고 비난할까 봐, 또는 다른 사람이 먹을 것을 발견하고 나누지 않을까 봐 두려워서 그랬다면, 그의 행위는 선하다고 할 수 없다. 선한 행동은 무언가를 기대하고 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한 행동은 단지 옳기 때문에 하는 행위다.

 인간의 자율성.  자율에 의한 의지는 도덕법칙과 도덕적 의무의 근거를 말해주는 원리. 반면 타율에 의한 의지는 도덕적 의무에 대해 어떤 근거도 되지 못해서 의지의 선함을 확실하게 보장해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의지가 자율적인가 타율적인가를 따지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

 인간이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먼저 생각한 후에 결정하는 소극적 의미에서의 자유. 반면 스스로 자신의 법칙을 수립하는 것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 ☞ 적극적 자유를 행사하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다. 특히 금융시장에서 그렇다.

 도덕법칙은 순수한 실천이성의 자유에서 나온다. 인간이 어떤 경향이나 충동에 따른다면, 의지는 스스로 법칙을 세우지 못하고 어떤 족이 내게 유리한지 따지며 자신에게 지시나 훈계를 내리려고 할 것이다. 의지는 자신의 행복만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자신을 위해 거짓 증언하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그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걸 알면서도 거짓 증언을 할 경우 자신이 얻게 되는 이득을 늘어놓고, 거짓이 발각될 때를 대비해 변명까지 준비해놓고, 사람은 영리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우리는 그의 처세술을 혐오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머리가 아주 좋은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보다 영리하지 못한 사람의 재산을 마치 자기 것인 양 사용한다. 오로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두 가지 사례에서 본 것처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의지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의 원리는 일반적 규칙으로 볼 수는 있으나, 보편적 규칙이라고 할 수는 없다.

 '도덕은 어떻게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답은 오로지 善의지 뿐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어떻게 하면 행복을 누릴 만한 품격을 갖출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도덕은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거나 인정받기 위해 도덕적인 행동을 해서도 안 된다. 그건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善의지는 무제한적으로 선하다.  善의지가 무제한적으로 선한 이유는, 개인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 도덕원리와 깊이 결합되어 있고, 순수이성이 명령하는 순수한 의지이기 때문이다. 모든 의지는 善의지가 토대가 되어 선한 행위를 하게 되며, 개인의 삶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善의지와 정언명령.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려는 의지를 善의지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할지 의식하고, 그것을 자신을 위해 하고자 하는 의지善의지라고 한다. 善의지는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고, 오로지 의무에 의해 생긴다. 그러므로 어떤 목적이 있어서 하는 행위가 아니라,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하는 행위가 선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善의지는 그 동기가 순수하다. 만약 동기가 순수하지 않고, 계산된 것이라면 善의지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주관적인 판단으로 善의지를 결정한. 단 반드시 이성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자신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것을 바라는 범위 안에서 행동하라." - 칸트.

 자신의 행동기준이 보편법칙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자신이 하는 일을 타인이 할 때에도 수긍할 수 있도록 행동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善의지는 정언명령을 따르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완전한 善의지와 단적인 善의지.  善의지에는 완전한 善의지단적인 善의지가 있다.

 완전한 善의지 -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언제나 보편법칙과 일치하는 신의 의지.

 단적인 善의지 - 보편법칙과 일치하지는 않는 인간의 의지. 따라서 인간의 善의지에는 강제성이 있는 정언명령이 필요하다. 완전하지 못한 인간은 이성에 복종하지 않고, 감성에 의해 움직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선택의지(타율의지) - 감성이나 개인의 성향에 따라 움직이는 의지다. 다른 요소들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타율의지라고도 한다. 선택의지는 도덕법칙을 배신하는 경우도 많다. 의지가 도덕법칙을 배반하면 악이 발생한다.

 보통 善의지최고의 선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도덕적 고귀함을 잘 나타내 주기 때문이다.

 4장. 정언명령이 도덕법칙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