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 규제 사례 - hyeom-opyohyeon gyuje salye

#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코로나19 혐오범죄법'에 서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관련한 인종차별적 언어 사용을 줄이기 위한 법안이다. 미국 애틀랜타의 한 마사지숍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6명이 백인 남성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지 2개월 만이었다.
#2. 스코틀랜드 의회는 지난 4월 '혐오범죄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2018년 3월 극우 단체가 '무슬림 처벌의 날'(Punish A Muslim) 전단을 돌린 걸 계기로 의회가 직접 나선 법안이다. 당시 전단에는 여성의 히잡을 잡아당기면 25점, 모스크에 불을 내면 1000점을 획득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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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1일(현지 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벌어진 시위. 시위 참가자들은 아시아계 미국인과 태평양 섬 주민들에 대한 인종차별주의를 멈추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혐오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난민 유입 증가, 코로나19 팬더믹 등은 전 세계적 혐오를 부추긴다. 세계 각국은 갈수록 독해지는 혐오 표현, 이를 넘어선 혐오 범죄와 맞닥뜨리고 있다. 유럽, 북미 등에선 아시아계를 향한 무차별 폭력이 꾸준히 이어진다. 그러자 선진국들은 속속 차별과 증오를 막기 위한 구체적 행동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게 '반(反) 혐오' 법안이다.

<‘혐오 팬데믹’ 한국을 삼키다> 5회 #"침묵은 공범" 처벌 강화 나선다 #우리보다 앞선 외국의 혐오방지법

혐오 범죄 늘수록 법은 세진다

원래 반 혐오 법안이 없었던 건 아니다. 유럽 대부분 국가는 세계인권선언을 바탕으로 한 혐오표현 금지 법안을 두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가입조건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캐나다·뉴질랜드·일본 등도 차별적인 증오 발언을 금지하는 별도 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혐오방지법'은 인종·성별·종교 등에 대한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게 공통된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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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주요국 혐오 방지 방안. 그래픽=김은교

하지만 극단적 범죄가 이어지면서 법의 수위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보호 대상을 대폭 넓히거나 처벌을 강화하는 식이다. 지난 3월 아시아계 마사지숍 총격을 겪은 미국 의회는 '코로나19 혐오범죄법' 제정에 나섰다. 코로나19 유행 후 아시아계 노약자를 겨냥한 '묻지마 폭행'이 끊이지 않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수정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미국 사회지만, 364 대 62(하원 표결)의 압도적 찬성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 서명한 바이든 대통령은 "(혐오 표현에 대한) 침묵은 공범"이라고 강조했다.

뉴질랜드는 2019년 백인 우월주의자의 테러로 51명이 숨지는 참사를 겪었다. 그러자 지난 6월 증오발언법의 징역(3개월→3년), 벌금(7000뉴질랜드달러→5만 뉴질랜드달러) 규정을 상향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보호 대상엔 트랜스젠더 등을 추가하기로 했다.

캐나다 역시 혐오 표현과 혐오 범죄에 대한 새로운 법안을 지난 6월 발의했다. 그리고 형법상 '증오'가 무엇인지에 대한 규정을 추가할 계획이다. 모두 실질적으로 혐오를 막기 위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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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제11차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목요행동 '지금당장'에서 청년진보당, 진보당 인권위원회 관계자들이 법안 제정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독일, 가장 강한 혐오금지법 시행

현재 법으로 혐오 표현을 가장 폭넓게 규제하는 국가는 어딜까. 캐나다에선 고의성 있는 혐오 표현을 쓴 사람은 징역 2년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 최초의 차별금지법으로 꼽히는 캐나다 인권법은 결혼 여부, 전과, 성적 지향, 고용 형태 등 차별 행위를 폭넓게 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홀로코스트' 경험이 있는 독일도 사실상 대부분의 혐오 표현을 법으로 금지한다. 특히 인종적·신체적·정신적 특성에 근거한 모욕죄까지 적용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반면 일본에선 법적 강제성이 없어 실질적 예방 효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 정부 차원서 2016년 차별금지법이 제정됐지만 처벌 규정이 없다. 2019년 가나가와현(神奈川県) 가와사키시(川崎市)가 최대 50만엔(약 507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조례를 제정했을 뿐이다. 지난 5월 성소수자를 법상 보호 대상에 넣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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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혐한시위에서 항의 발언하는 재일교포 3세 최강이자(48)씨. 지난해 최씨는 일본 도쿄변호사회로부터 사회인권상을 받았다. 연합뉴스

한국의 반 혐오 논의는 상대적으로 크게 뒤처져있다. 혐오 표현, 혐오 범죄를 딱 집어 막을 법도 없다. 이 때문에 외국 사례를 참고해 서둘러 사회적 논의와 제도적 대안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여러 선진국에서 차별금지법으로 헤이트 스피치를 막고 있지만 한국은 없다"며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으로 혐오 규제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인권자문)는 "타인의 생명과 안전, 재산 침해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는 혐오 표현은 규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과 상충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 혐오표현으로 볼지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를 집어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더믹은 우울(블루)과 분노(레드)를 동시에 가져왔다. 특히 두드러진 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분노와 공격이다. 서구에선 아시아인 등에 대한 증오범죄와 혐오발언(헤이트 스피치)이 이어진다. 국내서도 온ㆍ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혐오 정서가 난무한다. 여혐ㆍ남혐 논란, 중국동포(조선족)와 성소수자 비난 등이 대표적이다.

'성별, 장애, 출신지역, 인종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편견을 조장하고 멸시ㆍ모욕ㆍ위협을 하거나 폭력을 선동하는 행위'. 혐오표현의 정의(2019년 인권위 보고서 참조)다. 이러한 혐오표현은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아왔다. 그리고 코로나19를 계기로 분출하는 모양새다. 혐오는 때론 내 이웃을 향하고, 종종 나 자신을 겨누기도 한다. 팬더믹 1년 반,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우리 안의 혐오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어디로 가야할 지를 살펴봤다. 혐오표현이 근거로 삼는 명제들이 맞는지도 '팩트체킹'했다.

특별취재팀=정종훈ㆍ백희연ㆍ편광현ㆍ박건 기자, 곽민재 인턴기자

언론중재위원회가 해외 혐오표현 관련 미디어 규제 현황을 다룬 보고서(해외언론법제연구 용역사업 결과)를 발표했다. 혐오에 대응해 차별금지법을 마련하고자 하는 우리 입장에서 참고가 될만한 내용이다.

책임연구원 지성우(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공동연구원 윤성옥(경기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박용숙(강원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조교수), 이승현(연세대학교 강사), 보조연구원 모준성(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은 ‘해외 각국의 혐오표현 관련 미디어 규제 현황과 법제 연구’를 통해 독일, 영국, 미국, 일본 등 모두 4개국의 혐오표현 관련 미디어 규제 현황을 살핀 보고서를 발표했다.

독일은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하는 등 광범위하게 제재하고 있다. 지난해 독일에선 외국인 혐오와 반(反)유대주의 범죄가 전년보다 20%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왔다. 독일은 형법 제 130조 제 1항에 “대중선동죄”를 규정하고, 구술 또는 간행물을 통해 치안방해가 되는 방식으로 “특정 인구집단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거나 그들에 대한 폭력적 또는 독단적 조치를 요구하는 행위” , “특정 인구집단을 모욕하거나 악의적으로 비방하여 타인의 인간적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를 매우 광범위하게 금지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혐오표현 그 자체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일은 입법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가장 혐오표현을 광범위하게 규제하는 입법을 하고 있다고 평가된다”고 지적했다.

일반법으로 일반평등대우법(Allgemeines Gleichbehandlungsgesetz)과 군인의 평등대우에 관한 법률(Gesetz über die Gleichbehandlung der Soldatinnen undSoldaten) 등 차별금지법을 두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관련 법안은 민간인과 군인을 대상으로 인종, 민족적 출신, 성별, 종교・세계관, 장애, 연령 또는 성적 정체성을 사유로 하는 차별을 예방하고 배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자들은 “우리나라의 경우도 일단 일반법으로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한 이후 형법 개정을 통해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규정을 추가・보완하는 방식으로 당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독일은 SNS상 혐오 표현과 관련해 ‘네트워크집행법’이라는 특별법을 제정해 기존 형법에 위배되는 표현물만을 적용 대상으로 해서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을 경우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독일에서는 소셜네트워크를 비롯한 인터넷 망에 일정한 범죄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게시물은 국가가 직접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망 사업자에게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SNS상에서의 표현행위의 내용을 규제하는 방안에 대해 입법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며, 이러한 입법내용은 향후 우리나라의 관련 입법에도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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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언론법제연구보고서.

영국은 1986년 공공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제정된 공공질서법에 따라 반인종주의를 주장하는 표현도 처벌대상이 된다.

연구자들은 "영국의 공공질서법은 선동 행위를 규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혐오표현의 대상이 되는 집단 구성원 개인에 대해 이루어진 표현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지적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다만 공공질서법에 괴롭힘 규정을 두고 개인적 법인 침해 범죄를 적용하고, 인종과 성차별, 장애 등에 관한 차별금지법을 하나로 통합한 평등법을 제정해 보완하고 있다.

SNS상 혐오 표현에 대해서는 범죄 및 질서위반법에 따라 ‘피해자의 장애, 인종, 종교, 성적지향, 트랜스젠더 정체성에 대한 범죄자의 적의를 동기로 이루어지는 범죄행위’를 가중처벌하고 있고, 지난해 혐오표현 대응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 중이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표현의 자유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정서가 지배적이고, 수정헌법 제1조에 따라 혐오표현 규제 법률이 제정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의 차별금지법으론 1991년 민권법, 장애인법,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 평등임금법 등이 있다. 미국의 혐오범죄 연방법률로는 2009년 매튜 세퍼드와 제임스 버드 주니어 혐오범죄방지법, 평온한 주거권에 대한 불법방해죄법, 종교재산침해, 교회방화방지법, 권리방해공모법이 있다. 연구자들은 “혐오표현 판단에 있어 미 법원은 대면성의 요건, 실질적 위협을 중요하게 판단하고 있다”며 “법원은 ‘십자가를 불태우는 행위가 모두 제한되지는 않지만 십자가를 불태우는 것이 협박(intimidation) 수준에 이르렀을 때 금지될 수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지난 2017년 ‘헤이트스피치 억제법’을 제정했지만, 벌칙 규정 설치가 보류되면서 제정 당시 축소됐던 ‘혐오데모’도 증가세에 있다고 전했다.

이에 일본 법무성은 혐오표현 등의 구제 조치의 대상을 개인만이 아니라 집단으로까지 확대시키는 지침을 각 지방 법무국에 통지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결정은 관련자와 오랜 검토를 거쳐, 최근 발생하는 혐오표현이 집단이나 불특정 다수인에 대해 이루어지는 경향이 높은 반면, 이에 대응할 수 없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지방법원은 혐오표현에 반대하는 뜻을 개진하기 위한 게시물의 경우 공익성을 인정해 혐오 표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오사카 지방법원은 타인의 게시물을 퍼오거나 정리한 혐오표현과 관련한 게시물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청구를 인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