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1사단 전차대대 - haebyeongdae 1sadan jeonchadaedae

해병 1사단 전차대대가 K1전차에서 k1A2전차로 교체후 다락대에서 사격훈련

해병대는 해병대 1사단 전차대대는 지난 5월 28일부터 6월1일까지 경기도 연천군 다락대훈련장에서 전차포 사격훈련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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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대 사격장에 전개해서 사격중인 해병 1사단 전차대대 K1A2전차 (사진:해병대)

해병대 1사단 전차대대는 K-1 전차에서 44구경장 120mm 활강포를 탑재하고, 피아식별장비와 전후방 감시 카메라를 장착, 디지털 전장관리체계,항법장치 등 장착한 K1A2로 교체한 후  비공개로 한 5월 30일 여단급 상륙훈련에서 첫투입을 하면서 공개했다. 

해병 1사단 전차대대는 120mm 전차포 운용 및 사격능력 집중 숙달을 통해 바뀐 전차 화력과 일신한 화력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확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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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대 사격장에 전개해서 사격중인 해병 1사단 전차대대 K1A2전차 (사진:해병대)

K1A2 전차는 계획상 올해부터 교체가 들어가서 해병대의 지상화력을 한층 강화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향후 오랜기간 K1A2 전차가 해병대의 주력 전차로 운용될 것이다.

다양한 전장 환경에서의 작전 수행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390km가 넘는 원거리 지역으로 전개하는 일련의 과정을 훈련하며 직책별/세대별 임무와 역할을 이해하고 점검하는 계기로 해병대는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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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대 사격장에 전개해서 사격중인 해병 1사단 전차대대 K1A2전차의 120mm 활강포에서 위력적인 불꽃이 나오고 있다. (사진:해병대)

[디펜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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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1사단 전차대대 K1A2 전차들이 주둔지에서 390여 km 떨어진 경기도 연천군 일대 훈련장에서 실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해병대1사단 제공

해병대1사단은 2일 “장거리 임의지역 전개 절차와 일발필중의 사격 능력 숙달을 위한 전차대대 전차포 실사격훈련을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경기도 연천군 일대 훈련장에서 수행했다”고 밝혔다.

수백 ㎞를 이동해 펼친 이번 훈련에는 김영호 대대장을 비롯한 장병 100여 명, K1A2 전차 등 장비 20여 대가 참가했다. 훈련은 특히 사단 주관의 K1A2 전차 전력화 임무 수행 능력 평가를 병행해 의미를 더했다.

임의지역 전개 훈련은 해병부대전개계획(MDP: Marine Deployment Program) 개념을 적용해 실시했다. MDP는 다양한 전장 환경에서 작전 수행 능력을 배양하는 것으로, 상륙작전 임무·특성과 연계해 병력·장비를 원거리로 이동시켜 숙달하는 개념이다.

부대는 이러한 개념에 따라 경북 포항에서 약 390㎞ 떨어진 임의지역으로 병력과 장비를 탑재해 기동시키고, 실사격 훈련을 했다. 더불어 전술컴퓨터 운용, 위험 예지 판단 등 위험성 평가를 포함한 전력화 임무 수행 능력 전반을 검증받았으며, 전력화된 K1A2 전차 단차별 영점·숙지·자격 사격을 하고, 전장 상황을 가정한 단차·소대·중대 전투사격으로 장비 운용 능력을 극대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김영호 대대장은 “400여 발에 달하는 집중 사격훈련으로 전차부대라는 정체성과 자신감을 배양했다”며 “무엇보다 임의지역으로 전개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해병대와 직책별·제대별 임무·역할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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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전차대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해병대 공군 지상전투센터 디나인 팜스(Disnine Ground Compating Center Disnine Palms)를 거점으로 한 미 해병대의 갑옷 대대였다. 마지막으로 해병 1사단과 I 해병 원정대의 지휘 아래 떨어졌다. 이 부대는 2021년 5월 대규모 갑옷 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대 설계 2030의 일환으로 해체되었다.[1]

휘장

제1 탱크 대대의 팔 외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과달카날에서 사용했던 M2A4 탱크 뒤 주홍색 테두리와 큰 숫자 '1'(1해병사단 글꼴)을 주홍색으로 칠한 청색 방패가 대각선 번개(왼쪽 위쪽에서 오른쪽 방패 아래 방패까지 스트라이크) 뒤에 모두 있다. 볏은 녹색 월계수 안에 들어 있는 은과 금으로 된 해병대 상징물이다. 팔 위 금 현수막에는 '제1 전차 대대'가, 팔 아래에는 '8·과달카날-1942'가 주홍색으로 새겨져 있다.

과달카날 전투는 1942년 8월에 시작되어 대대의 첫 전투 행동이었고 M2A4 전차는 대대가 처음 사용한 전차였다. 게다가 이 대대는 M2A4 전차를 전투에서 사용한 유일한 미군 부대였다. 이 탱크의 사용은 대대의 첫 전투 행동을 기념한다. 요우링 방패는 기마전사와 장갑전사의 독특한 장치로 윗부분을 잘라서 무기를 더 잘 휘두르게 한다. 방패의 색깔과 제1해병사단 숫자 "1"은 대대를 모사단과 동일시한다. 번개는 속도, 충격 효과, 화력을 나타낸다. 월계관은 툇마루에 있는 상으로, 대대의 용기와 용맹과 희생을 회상한다.

이 무기는 적어도 1970년부터 다양한 형태로 해병대 기록에 존재해 왔다. 다른 변형이 존재하며, 종종 다른 모양의 방패나 1 해병 사단의 다이아몬드 휘장에 무기("1", 탱크 및 번개 볼트")의 엠블럼을 배치하고, 종종 보다 현대적인 탱크를 원래의 엠블럼으로 대체하고 때로는 엠블럼을 재배열한다. 이 후기 장치(해병사단 1사단 다이아몬드 휘장 위의 숫자 '1'과 탱크, 번개 등)는 흔히 대대의 특색 있는 단위 휘장(또는 배지형 장치인 DUI)으로 쓰인다.

(출처: "미 해병대 지상부대 휘장").")

미션

제1해병사단에 수륙양용 및/또는 해상전투부대 형태로 전투력을 제공하기 위해 기동, 갑옷 보호 화력 및 충격작전을 활용하여 해안에서 작전을 실시하여 적과 접하고 파괴한다.[2]

제1전차대대는 독립된 대대로서 육군 제1해병사단에 장갑자산 제공과 더불어 그들의 고용에 대한 대전차 시스템과 직원들의 전문지식을 제공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역사

제1전차대대는 1941년 11월 1일 노스캐롤라이나주 해병대 기지 캠프 르쥔(Lejune)에서 기동되어 제1 해병사단에 소속되었다. 이때 본사 및 서비스사와 B사가 조직되었다. A사는 이 활성화 이전에 존재했었다. 이 유닛은 원래 1940년 8월 1일 3d 탱크 컴퍼니로 활성화되었다. 1941년 5월 1일 탱크 대대 A사로 재편성 및 재설계되었다. 그 대대의 다른 회사들은 1942년 초에 활성화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그 부대는 이후 남태평양으로 명령을 받고 1942년 봄에 그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 대대의 기업들은 결국 사모아와 뉴질랜드에 배치되었다. 대대로부터 부대를 위한 첫 전투 작전은 과달카날 운동으로, 유명한 M3 스튜어트 경전차인 M2A4 경전차를 탑재했다. 1942년 8월 7일, A사와 B사는 제1 해병사단의 일본 보유 섬 상륙작전에 참가했다. 다음 달에는 피비린내 나는 능선 전투에서 보병 부대를 지원하는 대대 M2A4 경전차가 보였다. 두 회사는 해병 1사단이 육군에 의해 구제되는 연말까지 적과의 교전을 계속했다. 이 시기 제1전차대대의 캠페인은 미 해병대 제1전차대대에 배속되는 동안 제2차 세계대전의 M2A4 경전차가 경험한 유일한 전투였다는 점에서 독특했다.[3] 그 후 사단은 1943년 1월 호주로 옮겨져 제1 전차대대의 부대가 다시 한 번 재회하게 되었다.

그해 말 대대는 뉴기니로 이동해 뉴브리튼 작전인 케이프 글로스터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탱크 1대대를 비롯한 해병 1사단 부대들은 1943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 케이프 글로스터를 향해 수륙 양륙작전을 벌였다. 대대 탱크들은 즉시 해안가 확장 운동에 투입되었지만, 일본인들의 저항뿐 아니라 집중호우와 험한 지형에 의해 진척이 방해되었다. 남은 한 달 동안, 그리고 1월 초에 해병대는 일본군과 심한 접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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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기니에 위치했던 B사는 1944년 1월 12일 그곳의 육군 병력을 지원하기 위해 뉴브리튼의 아라웨 지역에 상륙했다. 대대 부대들은 봄까지 뉴브리튼을 위한 투쟁에 전념했다. 그러나 5월 초까지 제1 전차대대의 모든 요소가 뉴 브리튼과 뉴기니에서 모두 철수되어 러셀 제도의 파바부 섬으로 재배치되었다.

팔라우 그룹에서 펠레리우를 습격하고 포로로 잡은 것은 이 대대의 다음 전투 임무였다. 1944년 9월 15일, 이 섬에 처음 착륙하는 데 참여하였다. 제1전차대대는 이 캠페인 기간 동안 적군을 물리치는 데 현저한 공을 세웠다. 대대를 위한 치열한 전투가 또 2주 동안 계속되었다. 1944년 10월 2일 철수한 뒤 러셀 부대에 재배치되었다.

제1전차대대의 마지막 전세는 오키나와에 대한 공격이었다. 1945년 4월 1일부터 이 대대는 일본으로부터 이 섬 요새의 통제권을 빼앗는 데 적극적으로 임했다. 전투 중 전투의 격렬함은 대대 전차 28대가 파괴되고 163대가 파손된 것에서 나타난다.

이 전투의 중단은 10월 초 톈진 점령 임무를 위해 대대를 북중국으로 배치한 데 이은 것이다. 1947년 1월 B사를 뺀 대대는 중국에서 책임을 면하고 괌에 명령을 내렸다. 4개월 후 또 다른 이적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A사를 제외한 부대가 미국으로 반환되었다. 이 대대는 1947년 5월 1일 캘리포니아주 해병대 기지 캠프 펜들턴에 도착했고, 이후 3년간 주둔했다.

한국 전쟁

1950년 6월 공산군이 남한을 침공한 직후, 이 대대는 극동을 향해 진격할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대대의 첫 번째 요소는 1950년 8월 2일 전쟁 지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부산항에 상륙하여 즉시 적에 대한 작전에 착수했다. 현재 A사가 재연결된 이 대대는 9월 15일 인천에 상륙하는 수륙양용함에도 참가했다. 제1전차대대는 3년 동안 북한군과 중국공산군 양군과 교전했다. 미국으로의 재배치는 1955년에 마침내 이루어졌다.

제3차 세계 대전 동안 제3 탱크 대대는 화학전 서비스 부서에서 다음과 같이 동축 화염방사기로 M4-A3R8 셔먼 18명을 받았다. 화염 탱크 그룹 Seabee가 생산했다. 전후에 그 탱크들은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사이에 분산되었다. 군단은 이 중 9명을 모아 제1전차대대의 구성원으로 한국에 파견된 화염병 소대를 편성했다.

베트남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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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전차 대대 전차는 베트남 분쟁으로 인해 개량된 M48 전차를 받았다.48을 받았다.

1966년 3월 제1전차의 M48A3 패튼 전차[4] 대부분이 베트남(남베트남)에 배치되었다. 이 대대의 모든 부대는 5월에 베트남에서 재회했다. 극장에 도착한 이 대대는 I군단(MR-I)으로 더 잘 알려진 군사지역 I(Mr-I)에서 활동하는 해병 1사단 부대를 베트콩, 북베트남군에 대한 전술작전에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제1전차대대는 1970년 3월까지 적극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때 그 대대는 캠프 펜델튼으로 돌아왔다.

걸프 전쟁과 1990년대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제1전차대대는 사우디아라비아 제1해병원정대에 배치됐다. 9월 7일, 이 대대는 해상 전치사 3중대의 M60A1 전투 탱크를 완비했고, 1990년 사막 방패 작전 당시 창설된 다국적군의 장갑 중추로 사우디아라비아 알 주바일로부터 배치되었다. 1991년 2월 24일 제1전차대대는 작전 한 달도 안 돼 쿠웨이트로 진입하는 태스크포스 파파베어 공격에 앞장섰다. A사는 Task Force Ripper를 지원하고 있었다. 2월 27일까지, 1 탱크 대대는 쿠웨이트 국제 공항에 도착했고 모든 이라크 군대는 파괴되었다. 휴전은 2월 28일에 성립되어 1991년 4월까지 대대는 라스 플로레스 캠프 펜들턴으로 귀향했다. 1992년 6월 2일 제1전차대대의 색상이 캘리포니아주 해병대 항공 지상 전투센터 29 팜스로 옮겨졌다.

이라크 전쟁

1 탱크 대대는 2003년 이라크 자유 작전 당시 이라크 침공에 참가했다. 그들은 브라보 사의 에드워드 친 상병(3대대 4 해병대 부속)이 미국 국기를 철거하기 전 피르도스 광장에 있는 후세인의 동상 위에 올려놓을 때 참석했다. 이후 팔루자 시 인근과 주변에서도 비질런트 리졸브 작전에 참여했다. 제1 탱크 대대는 이라크 자유 작전 기간 동안 장갑 지원으로 해병대 보병대의 지원으로 운용되었다. 계속되는 임무 이동으로 인해, 대대원들은 임시 보병이나 임시 전투 기술자로도 배치되었다. 현재 제1전차대대는 M1A1 에이브람스 주력 전차 58대를 갖추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2011년 1월 1일, 제1 탱크 대대인 D사는 아프가니스탄의 캠프 가죽넥에 배치되었고 헬만드주에 있는 M1A1 메인 전투 탱크를 고용한 최초의 미국 기계화 부대였다. 이 탱크 회사들은 국제 보안군-아프가니스탄 지원을 위해 배치되었다. D사는 2011년 1월부터 7월까지, A사는 2012년 1월부터 7월까지, D사는 탱크사로 2013년 1월부터 7월까지 배치했다.[2] 이때 C사는 노선 정리 업체(2011년 10월~2012년 5월)로, H&S사 요소를 갖춘 B사는 자문 팀(2012년 1월~2012년 7월)으로 배치했다.

해체

1 탱크 대대는 2021년 5월 21일 캘리포니아 주 MCAGCC 29 팜스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이 불능화는 사령관의 병력 설계 2030 구상의 일환으로 해병대의 대규모 구조조정의 일환이었다. 해병대는 인도-태평양에서 작전할 수 있는 더 많은 원정대 형성과 함대 기동 지원으로 장거리 정밀 화재를 제공하기 위해 더 큰 규모의 갑옷 형성을 해제하고 있다.[1]

주목할 만한 전직원들

  • G. 마이클 홉프 USA 투데이(USA Today)의 종말론 후 시리즈의 베스트셀러 작가 THE NEW WORLD. 홉프는 대대가 캠프 펜들턴의 라스 플로레스(Las Flores)에 주둔했던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대전차(TOW) 1 전차대대의 일원이었다. 그는 걸프전 참전 용사다.
  • 팔루자 전투에서 이라크의 베테랑인 건너리 병장 닉 포파디치는 중상을 입었다.

참고 항목

  • 미국 해병대 대대 목록
  • 미국 해병대 조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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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미국 해병대의 웹사이트나 문서의 공개 도메인 자료를 통합하고 있다.

참고 문헌 목록

  • Rottman, Gordon L. (2002). U.S. Marine Corps World War II Order of Battle – Ground and Air Units in the Pacific War, 1939–1945.’’. Greenwood Press. ISBN 0-313-31906-5.
  • 스타리, 돈 A. 일반 베트남의 기마 전투. 베트남 연구; 1978년 육군성.
  • 자갈로아, 스티븐 J. M3 & M5 스튜어트 라이트 탱크 1940-45. 오스프리/뉴 뱅가드 출판사; 1999. ISBN 1-85532-911-5.

특정

  1. ^ Jump up to: a b Athey, Philip (26 May 2021). "Marine Corps deactivates its final active-duty tank battalion". Marine Corps Times. Sightline Media Group. Retrieved 27 May 2021.
  2. ^ Jump up to: a b [1], 홈 페이지
  3. ^ 자갈로냐, 페이지 15, 27(플레이트 C)
  4. ^ 별자리 페이지 53

  • 제1 탱크 공식 웹사이트
  • B. Co., 제1 탱크 베트남 웹사이트
  • USMC 베트남 유조선 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