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파크 도서에서 과학 분야를 담당한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독자들에게 어떻게 좋은 책을 알리고, 추천할 수 있을까?" 과학 문외한으로서 고민이 많았죠. 문득, 한 달에 한 번씩 '과학 전문 출판사 담당자-책 만드는 사람을 만나자'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만나서 뭐하냐고요? 그냥 수다 떠는 거죠. 과학책과 관련한 수다. 과학책 만드는 것에 대해, 독자들의 반응에 대해. 수다 떨다 보면 '뭐라도 얻어 걸리지 않을까?'라는 기대로 말이죠. 과학책을 매개로 펼치는 수다의 장, <월간 자연과학>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기자 말
☞ [지금 만나러 갑니다①-1] 사이언스북스 노의성 편집장 인터뷰 - 사이언스북스(이하 "사북)에서 "칼 세이건 살롱"을 진행 중이시죠? "칼 세이건 살롱"으로 행사 이름을 붙인 이유는 '살롱'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면서, 자유로운 탐구의 정신으로 다양한 과학 주제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장을 만들어보려고 한 거에요. 출판계가 답보상태에 빠져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독자를 발견해내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독자가 책을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기보다 우리가 독자를 발견해서 책을 읽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기획했습니다." - 그렇군요. 행사 내용을 조금 더 알려주세요. 참고로, 2016년이 되면 칼 세이건 서거 20주기가 됩니다. 1996년도로 기억합니다. 백혈병으로, 60대 초반에 일찍 돌아가셨어요. 서거 20주년 기념으로 칼 세이건 전집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사이언스 클래식' 시리즈에 칼 세이건 책이 일부 있고, <콘택트>도 단행본으로 따로 나와 있는데, 독자들이 조금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하나로 묶어 전집을 내려고 합니다." - <콘택트>는 소설이죠? 대학 때 영화 콘택트를 정말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조디 포스터가 탐구 정신이 가득한 과학자로 역할을 맡아 열연했었죠. 그러고 보니 칼 세이건의 교수의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매우 다양한 것 같아요. 아무튼, 칼 세이건의 다양한 관심을 담을 수 있는 전집 출간하는 것, 그전에 먼저 "칼 세이건 살롱"으로 독자들을 꾸려보려고 합니다. 독자들과 소통을 강화하고, 칼 세이건을 읽는 독자들을 출판사가 함께 만들어가고자 하는 게 목표입니다." - 독자를 발굴하고,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 기획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회사 표어가 "과학의 대중화"인데요, "칼 세이건 살롱"이 이를 달성하기 위한 일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그밖에 진행 중인 것이 있다면 소개 부탁합니다. 한 가지 소개해 드리자면, '아시아 태평양 이론물리센터'라고 하는 이론물리학 연구기관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진행하는 대중화 사업이 있어요. 그곳과 결합해서 몇 가지 사업을 같이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책 대 책"인데요, 주제별로 두 권의 책을 골라 전문가 또는 작가가 각각 비교 서평을 쓰고 서평이 게재된 후 서평자들이 모여 북 토크를 진행하는 형식이었습니다. 그것이 작년에 <책 대 책>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돼서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과학자들은 대체로 글 쓸 시간이 없어요. 또한 사회적으로 발언할 기회가 많지 않죠. "책 대 책"과 유사한 형태의 기획으로, 과학자들의 입말, 토론한 것을 프레시안 웹상에 "과학수다"라는 꼭지로 연재 했습니다. "과학수다" 역시 곧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고요." - 카이스트 명강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카이스트 교수님을 모시고 대중 강연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년에 두 번째 책 <1.4킬로그램의 우주, 뇌>를 접하면서 알게 됐어요. "카이스트 명강"은 대학 본부가 대전에 있는데, 서울을 비롯해서 멀리 떨어져 계신 분들에게 카이스트 석학의 대중강연을 제공하고 그 내용을 책으로 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연속 강의입니다.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니라, 과학자들이 시민의 도움을 받아 어떤 연구를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과학 연구가 한국사회 넓이를 얼마만큼 넓힐 수 있을지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자리입니다. 과학이라는 것이 커피 한 잔 두고 수다를 떨 수 있을 만큼 재미있는 주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고요. 올해도 하반기에 새로운 카이스트 명강을 준비 중입니다. 가능하면 더 많이 독자들과 소통 할 수 있는 수단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 "카이스트 명강" 역시 주입이 아닌 이해와 소통이군요. - 출판계에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단군 이래 불황"과 "필자 기근"입니다. 과학분야는 어떤 형편인지, 어떻게 국내 저자를 발굴하시는지요? 일제강점기 이후 해방을 맞이한 시기를 우리 말과 글로 지식을 새롭게 유통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잡으면, 사실 그 역사가 매우 짧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우리말로 지식을 유통하는 필자가 많이 늘어났고, 잠재적인 글쓰기 역량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문제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인데, 구슬을 엮을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거라고 생각해요. 출판사와 편집자의 역량이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출판 잠재력에 비해서 부족한 상태라고 평가하는 것이 정확한 진단인 것 같습니다. 과학책 편집자들이 분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네요. 이석영 교수님이 쓰신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이 한 300쪽 정도 되는 단행본인데요, 이것이 대학 내 평가기준에서는 10페이지짜리 논문에 비해 반 정도의 점수를 받습니다. 10페이지 영문 논문 한 편 쓰는 게 훨씬 유리한 거죠. 과학자 선생님들이 과학 단행본을 써야 하는 이유가 없습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 과학 단행본을 집필하신 분들을 만나보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눠야 한다는 사명감이 투철하십니다. 이런 필자들을 어떻게 출판계로 끌어들일 수 있는가 고민 끝에 나온 게 "카이스트 명강"이기도 하죠. 선생님들이 책을 쓸 시간이 없고, 이득이 없는 상황에서, 현장에서 실제로 연구하고 자신의 제자들을 키워낼 때 하는 이야기를 끌어내면서 강연도 하고 책도 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고안한 겁니다. "카이스트 명강" 같은 기획으로 다룰 수 있는 주제는 방대한 반면, 이것을 엮어낼 수 있는 편집 역량은 부족하다고 봅니다. 저희가 역량이 된다면 카이스트 명강을 한 달에 한 번 정도 진행하고,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낼 수 있을 텐데 현재는 일년에 한 번 진행하고 있어요. 편집자들과 출판사의 역량을 키워내는 게 출판사의 과제입니다. 저희가 더 분발해야겠죠." - 올해 주목해야 할 과학 이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덧붙여 올해 예정인 출간 리스트도 살짝 공개해주시죠. <수소폭탄 만들기(원제 : Dark Sun)>라는 책도 준비 중입니다. 퓰리처 상 수상 경력이 있는 과학 저널리스트 리처드 로즈의 <원자폭탄 만들기> 후속편이에요. 수소폭탄 만들기에 열을 올렸던 지난 냉전사를 과학적으로 조명한 책입니다. 대한민국 해방 후 70년 동안 우리 사회를 규정해 온 국제 정세가 무엇이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과학기술사입니다. - 마지막으로 사북 책을 수준별로 추천해주신다면? 공룡이라는 출발점에서 지구과학이나 생물학자들이 나오고, 천체 사진 찍고 별을 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우주, 천문학자, 물리학자, 수학자 부류가 생겨요. 실제로 감각기관으로 접할 수 있는 자연을 "자연사", "natural history" 라고 하는데요, 영미권에서는 그 분야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요. 거기서부터 과학이 시작되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많이 다르죠. 왜냐하면,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자연과 격리되거든요. 칼 세이건이 이야기했던 탐구의 자유가 그때부터 꺾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만약 과학 입문을 다시 하려는 분들이라면 자연사 책들을 읽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과 같이 읽으면 좋겠죠. 최근에 나온 <별빛 방랑>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천체 사진을 담은 책이죠. DK 백과사전 <우주>에 비했을 때 전혀 꿀리지 않는, 실제 자연사를 경험할 수 있는 책입니다. 그밖에 곤충학자이신 한영식 선생님이 쓴 <딱정벌레 왕국의 여행자>, <꿈틀꿈틀 곤충 왕국>, 그리고 김소희 선생님이 쓰신 <아zoo 특별한 동물별 이야기>가 있습니다. 청소년 책들이긴 한데, 아이들과 함께 과학에 접근하려고 할 때 부모와 아이가 같이 과학에 관심을 갖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 이론이나, 수학은 자연사와 출발점이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요, 수학자들은 숫자 자체가 일종의 자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학적 재능은 자연사에서 발견될 수 있는 재능과는 조금 다르다고 봐요.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은 뇌구조도 다를 것 같습니다. 유전자도 다를 수 있고요. 하하. 수학파트와 관련해서 공부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수학의 파노라마>라는 책이 있어요. 그림과 사진을 보면서 수학이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수학을 접하면 좋은지 영감을 주는 책이에요. 수학사를 다루고 있죠. 다른 수학책을 읽더라도 그 주제가 전체 수학사 중에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라, 수학 분야 독서의 출발점으로 삼기 좋습니다. 과학사나 수학사 책을 읽는 것으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코스모스> 같은 책을 중간에 읽어주시면 좋겠죠? 그리고 최고급 독자라면 "사이언스 클래식" 시리즈에 도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두께가 어마어마하지만, 목침으로 삼을 수도 있는 장점이 있답니다. 도전해보세요." 한 시간 남짓 이어진 대화, 편집장님께서 워낙 말씀을 잘 하셔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칼 세이건을 설명하시면서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자세를 역설하셨던 모습, 그리고 편집 역량을 더 키워야 한다고 정직하고 겸손하게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았습니다. 당당함과 겸손함은 오랫동안 좋은 책을 만들어온 내공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독자를 기다리는 것에서 독서문화를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노력, 출판사와 서점이 함께 힘써야 하는 부분이겠죠? 저도 분발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현기 시민기자는 인터파크도서 자연과학 분야 MD입니다. 이 기사는 인터파크 도서 <북피니언>에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