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세탁기 타는 냄새 - deuleomsetaggi taneun naemsae

드럼세탁기 타는 냄새 - deuleomsetaggi taneun naemsae
세탁기에서 불이 날 뻔 했어요 그런데..

열받아아 2016.03.10 12:55 조회53,136

서울의 한 빌라에 사는 만 3년차 신혼부부(?)입니다.

결혼하고 살림을 좀 해 보신 분들이 더 공감해주실 것 같아 여기에 글 올려요. 

어제 오후에 남편이랑 집에서 5분 거리의 시장에 다녀와서 현관문을 여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더라고요.

뭐지.. 하면서 중문을 여는데 집안을 꽉 채운 매캐한 연기...

그리고 뭔가가 타는 것 같은 역한 냄새...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어 우왕좌왕 하는데

남편 왈, "내가 세탁기 돌려놓고 나갔었는데.... 혹시?"

둘이서 세탁기가 있는 주방 옆 다용도실로 달려가보니... 맞네요. 

다용도실은 더 심하게 연기로 가득 차 있었고, 연기의 진원지는 세탁기....

정말 세탁기에서 연기가 난 게 맞는지 손을 대보니

 "아 뜨거!" 소리가 날 정도로 뜨거웠어요.

놀라서 남편이 얼른 전원 버튼을 껐는데,

저는 그 순간부터 눈물만 그렁그렁.

오만가지 생각이 순식간에 다 나더라고요.

만약 5분 거리의 동네 시장이 아닌, 더 먼 곳에 갔더라면 어쩔 뻔 했나,

일찍 발견해서 다행이다.. 

얼른 세탁기 윗면에 써 있는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너무 불안하니 오늘 중으로 AS기사님을 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때 시간이 4시 44분)

상담하시는 분도, 자기도 이런 전화 받는 건 처음이라며 놀라셨겠다며

 최대한 빨리 보내주시겠다고 했고, 10분도 안 돼서 AS기사님한테 연락이 오더니

일단은 전원코드를 뽑아놓으라고 하시고선 바로 집으로 도착. 

한참을 보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 기사님: 모터에 뭐가 잘못 들어가면 (동전이나 끈 같은 거)

               모터가 계속 돌아서 그럴 수도 있다.

- 나 : 지금 모터에 뭐가 껴 있는 거예요?

- 기사님 : 그런 건 아닌데...

- 나 : 이물질이 있더라도 그게 모터까지 들어가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원인이 뭐예요?

- 기사님: 뜯어봐야 안다. 

결국 세탁기를 뜯었고,

결론은 모터에 부품이 뭐 하나 망가졌는데

고치려면 수리비가 30만원.... 30만원!!!! 

지금 집에 불이 날 뻔 했는데, 그걸 30만원을 내고 고쳐야 되냐고 물었더니

네.. 그렇대요.

내 잘못으로 고장이 난 게 아닌, 세탁기의 결함 아니냐, 물었더니

그래도 돈 내고 고쳐야 한대요.

그럼 나는 어디다 전화를 걸어서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바로 360-8282 번호 알려줬고

상담직원 통해서 대외협력파트장이란 분하고 연결이 됐어요.

상황을 간략하게 듣더니 자기가 AS 기사랑 통화를 해봐야겠으니 바꿔달래요.

그래서 바꿔줬더니 한참 통화를 하고 나선

대외협력파트장 하는 말.. 

"원래 부품만 갈아주면 되는 건데 모터를 통으로 그냥 갈아주겠다.

회로가 고장난 비용 15만원만 내면 된다" 

헐.... 절반이 깎였는데 뭔가 거지 적선받은 느낌...

되게 선심쓰듯이 특별히 갈아주겠다는 뉘앙스. 

그리고 이어지는 '소비자 탓'...

"세탁기를 돌려놓고 나가지 않았느냐.."

?????? 그럼 안 되는 거였군요?

빨래 돌릴 때면 집안에 사람 꼭 있어야 하나봐요.

그래서 제가, 맞벌이 부부들 중 많은 분들이 

아침에 돌려놓고 저녁에 와서 널지 않냐, 했더니

묵묵부답... 

그럼 나는 이 상황을 소비자보호원 같은 데 말해야 하냐 했더니

말해도 된다, 그러면 소보원에서 자기네한테 연락이 올 거다,

하지만 바뀌는 건 없을 거다..

그리고 또 하는 말이  

"화재가 난 건 아니지 않느냐". 

네. 운이 좋아서 불이 안 났죠.

그런데 제가 만약 시장 갔다 온 게 아니라

더 먼 곳에 갔다왔다면요?

일반 맞벌이 부부들이 하듯이

아침 출근 전에 빨래 돌려놓고 나갔다면요?

실제로 저희 부부도 그런 적 많았는데

만약 그때 이런 일이 생겼다면요? 

(원래 표준 코스로 돌리면 한시간 반쯤 걸리는데,

저때는 연기가 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시간이 한 시간 넘게 남아있었어요.

장 본 시간은 길게 잡아봐야 대략 한 시간 정도구요.

시간은 줄지 않고 계속 돌고 있었던 거예요) 

만약 어린아이가 혼자 집에 있었거나,

아님, 제가 세탁기를 돌려놓고

안방에서 문 닫아놓고 세상 모르고 잠이 들었다면요?

진짜 만약에 진짜 만의 하나라도 실제로 불이 났다면,

저희 집만 불나고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신축빌라인데 여기 옆집 아랫집 윗집 다 불 옮겨붙으면

저희는 무슨 돈으로 그걸 다 물어주죠?

아... 너무 멀리 나갔나요?

하지만 충분히 있을 뻔한 상황이라고 봐요.

저기까지 가지 않은 게 진짜 하늘이 도운 거죠. 

아 ㅋㅋ 근데 진짜 더 어이없는 게

제가 본사랑 통화하고 있는 사이에

AS기사님을 전담마크하고 있던 남편이

모터 5년 무상보증 스티커를 발견했나봐요.

그걸 기사님한테 말했더니

아 그럼 30만원이 아니라 15만원이라고 ㅋㅋ 

그리고 남편이 고객 부주의로 인한 게 아니면

부품 무상으로 갈아줘야 하는 거 아니냐

처음부터 문제가 있던 거 아니었냐고 하니까

"사람도 아프게 태어나는 사람 있고, 건강한 사람 있잖아요." 

엥? 저희는 아프게 태어난 세탁기를 입양해온 건가요? 

결국 안 고친다고 했어요.

이거 고쳐도 불안해서 못 쓰겠다고요. 

기사님 가시고 난 후 보니, 집안이 말이 아니네요.

난장판 된 다용도실.. 빠지지 않는 연기 냄새..

물에 젖은 빨래 한 무더기까지.. 

결국 이날 열받아서 남편이랑 집에서 불고기에 소주 두 병 마시고

"세탁기 사버려!" 하고 동네 가전제품매장까지 걸어갔는데 이미 문 닫음 ㅋㅋ  

혹시라도 이 글 읽으시는 분들 중에

제가 보상을 바라고 쓴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보상 바라지 않아요.

툭 까놓고 말하면, 세탁기가 못쓰게 된 거 말곤, 손해본 게 없으니까요.

불이 난 것도 아니고, 연기냄새 며칠 있으면 빠지겠죠.

물에 젖은 빨래는 뭐 빨래방에 맡기면 몇 천원 나오겠죠.

정신적 피해보상금? 바라지도 않아요. 소주 두 병에 다 풀렸어요.

제가 바랬던 건 딱 한 가지예요.

"무상수리"

무상수리 해주면 일단 급한 빨래 처리하고

다른 세탁기 사면 되니까요.

결혼한 지 만 3년 만에 혼수로 산 가전제품을 바꾸게 될 줄은 몰랐지만 뭐 어쩌겠어요, 

제 생각은요. 자동차 리콜이랑 비슷하다고 봐요.

자동차에 안전상 결함이 생기면 리콜해주잖아요.

가전제품에서 화재의 위험이 있다면..

무상수리를 해주거나 교환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남편은 옆에서 '다음에 세탁기 살 때는,

화재의 위험이 있을 때 자동으로 전원 차단되는 걸로 사자'고 하는데,

그런 기능은 사실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사실 이때는 무상"교환"까진 생각지도 않았는데 제가 너무 물렁한 소비자였나 봐요.

기사님 간 후에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지역맘카페 같은 데 경험담이 몇 개 보이더라고요.

삼성이나 엘지는 이런 경우 7년된 세탁기도 무상교환해줬대요.

이 분들도 화재까진 아니고 집에 연기 꽉 찬 정도요.

본사에서 직접 와서 사과하고 무상교환해줬대요. 

그분들이 딱히 진상고객 같지도 않았어요.

그냥 상황파악한 후에 무상교환...  

저는 D사 클라* 드럼세탁기에요.

그런데.. 인터넷에 보이는 몇몇 경험담 중에

본사에서 배째라 하는 경우는 전부 D사 클라* 세탁기네요.

대응방법이 다 똑같아요. 돈 내고 고쳐라. 

제가 이런 글 쓴다고 그분들이 달려와서 죄송하다 무상교환해주겠다며

180도 변하진 않으시겠죠. 눈 하나 깜짝 안 하시겠죠.

근데요, 저도 속상한 건 어디다 털어놔야겠어요.  

감정적 하소연을 조금 더 하자면...

저는 어제의 상황이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 이랑 비슷한 거 같았어요.

인력거꾼이 그날 따라 엄청 돈벌이가 좋아서 술도 먹고

아픈 아내가 먹고 싶다던 설렁탕까지 테이크아웃해서

완전 기분 째져서 집에 돌아왔는데

아내가 죽어있잖아요.

뭐 그 정도까진 아니겠지만,

어제 시장 보고 남편이랑 돌아오면서 기분이 참 좋았었어요.

인생의 소소한 행복이라고 할까요?

그날 새 일거리도 하나 들어왔고 (프리랜서예요)

다이소에서 냉장고정리용 바구니도 1000원에 사고

사고 싶던 목욕의자도 촌스럽지 않은 색깔을 딱 발견해서 사고

어느 채소가게 양파가 더 싱싱한가 남편이랑 이리저리 다니며 토론(?)하고

저녁은 뭘 먹을까, 전날 남편이 불고기맛집에서 사온 불고기를 오늘 저녁에 먹을까,

결혼 전에는 계란 한 판, 대파 한 단 같은 거 들고 다니기 창피해서

소포장 된 걸로만 사고 그랬는데 남편이랑 다니면 그런 거 왠지 창피하지도 않고

두부며 양파며 미니양배추에 고추부각까지 잔뜩 사고 옆구리에 대파 한 단 딱 끼고

손잡고 돌아오는 길이 참 좋았어요. 

그래서 남편이랑 둘이 지금 참 행복하다 말하기도 하고요.

그러고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었더니 OMG 집에 연기가 가득 차 있었던 거예요. ㅠㅠ  

아.. 글을 어떻게 끝맺어야 하죠?

아무튼.. 세탁기 구매하실 분들, 웬만하면 큰 회사 걸로....

저는 오늘 밤에 홈쇼핑에서 세탁기 방송한다는데


(**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세탁기 사진 올렸더니

상표 가리라는 분이 계시네요. 일단 사진 내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