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 보노보노 - bogsuneun naui geos bonobono

 예전부터 주인공 의 머리색깔이 왜 녹색인지 궁금했다. 이 영화는 2002년 작인데, 2000년대 초반에 염색 머리가 유행하긴 했지만 굳이 녹색으로 염색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게다가 녹색은 너무 튀고 흔하지 않은 색인데, 왜 굳이 청각장애인이나 노동자 계급인 류의 머리색깔은 녹색인지가 궁금했다. (차라리 붉은 색이라면 이해가 갔을 텐데)

영화를 보다보면 녹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박 사장의 딸과 류와 박 사장이 죽음을 맞게 되는 물가 주변에는 녹색 식물들이 자란다. 깊은 물속은 어두운 녹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한 보통 시체가 물에 빠져죽은 후 색깔이 푸르뎅뎅한 녹색을 띤다고 하지 않는가. 딸의 죽음을 목격하고 통곡할 때 박 사장은 녹색 잔디를 잡아 뜯고, 박 사장 혼자 남은 집안의 창틀과 집안의 조명도 녹색 빛깔이다. 심지어 박 사장을 찾아온 형사의 옷 색깔도 옅은 카키색 빛깔이다. 한 편으로 박 사장의 딸과 류의 누나의 시체가 발견되어 병원에서 해부를 할 때 병원 내부의 엘리베이터, 수술대, 의사가 입은 수술복 모두 녹색계통이다. 그렇게 보면 녹색은 죽음과 맞닿아 있는 색이라는 생각도 든다.

류가 여자 친구와 누나의 죽음을 목도하고 광기에 사로잡혀 칼날을 휘두를 때 입은 옷은 붉은 색 잠바이다. 녹색과 빨간 색은 유난히 더 대조를 이루는 보색계열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후 류가 입은 의상과 류의 머리 색깔 또한 굉장히 도드라지게 대조가 된다. 피 색깔을 더 선명하게 보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할까. 박 사장과의 대결구도에서 지고, 물가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 녹색 머리를 한 류의 입에 고인 피는 그래서 유독 더 빨갛게 느껴진다.

이 영화는 묘하게 대칭구조를 이룬다. 여러 장면들도 자세히 보면 굉장히 균형이 갖추어져 있는 구도 속의 프레임이다. 심지어 극 중 스토리의 전개과정도 구조를 이루고 있다.

1. +여자친구, 누나<-------------->박 사장+

우선 는 전형적인 노동자 계급이다. 이 영화는 계급적 전형에 속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박 사장은 류를 해고했고 경기가 어려워져 해고한 다른 노동자의 칼부림에 왼쪽 손에 상처를 입었다. 류는 자신과 소통이 가능한 몇 명 안 되는 사람인 여자 친구와 병을 앓고 있는 누나가 있고, 박 사장에게는 이혼한 전처가 두고 간 딸이 있다.

2. 류의 누나의 죽음----->박 사장의 딸의 죽음------>류의 여자 친구의 죽음------>류의 죽음------>박 사장의 죽음

영화에서는 연쇄적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류의 누나와 박 사장의 딸의 죽음은 타살은 아니지만, 그들의 죽음을 계기로 복수가 시작되고, 류와 박 사장의 대립구조가 성립하게 된다. 박 사장은 류와 류의 여자 친구가 자신의 딸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보고서 이들이 정말 악의를 가지고 자신의 딸을 살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모른 척 하고,(류의 여자 친구가 딸을 죽게 만들어 미안하다고 사과하지만 잔인하게 담요로 다시 얼굴을 덮는 장면) 류에게 네가 착한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널 죽이는 걸 이해할거다.”라며 살인을 감행한다. 확실히 복수를 감행해나가는 데 있어서도 박 사장은 류 보다 우월한 입장에 있었다. 돈이 있었고 덕분에 형사에게 중요한 정보를 얻기도 했으며, 고급 살인 기구(예를 들면 전기 충격기로 치명상을 입히는데, 류는 고작 칼이나 몽둥이를 휘두르고 다닌다)를 들고 다닌다. 류가 박 사장과의 대결구도에서 지고,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나는 결국 이 영화는 자본가의 승리인가?’라고 생각했다.

3. 결국은 무정부주의자의 승리?

마지막에 박 사장도 칼부림을 당하는데, 류의 여자 친구가 속해있던 단체의 테러집단들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 결국 복수의 연쇄는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종결된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 그리고 무정부주의자의 승리라고 볼 수도 있을까?

대놓고 빨간 찌라시에 재벌 해체, 신자유주의 타파, 노동 해방을 써서 부르짖는 의 여자친구의 캐릭터와 결국은 자신이 해고해서 고통으로 몰고 간 사람들을 외면하는 박 사장의 전형적인 계급 구조 때문에 이 영화는 계급 간 대립을 교묘하게 담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전반적으로 카메라의 시선이 냉정하다. 인물들이 정면을 노려보듯 쳐다보는 모습을 클로즈 업해서 많이 찍었고, 각 장면들은 매끄럽게 연결되기보다는 화면이 사라졌다가 새로운 화면들을 바로 보여준다.

+) 박 사장의 딸이 보노보노를 열심히 시청하는 장면이 있다. 너구리와 숨바꼭질을 하는 장면에서 류는 자신의 누나가 어디 갔는지를 찾고 아이는 언니가 샤워 중이라고 대답한다.” 같이 즐겁게 만화를 보다가 사실은 자신의 누나가 자살을 한 채로 물을 틀어놓은 것을 발견하고 충격에 휩싸인 장면에서 만화는 너구리가 켁켁거리며 죽는 듯한 장면을 보여 준다. 귀여운 보노보노가 죽음과 관련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해버리고 말았다는.

몸이 아픈 누나의 장기이식을 위해 납치해 온 아이

그러나 아이는 굉장히 즐겁게 잘 지낸다.

누나가 자살한 사실을 알고 류가 망연자실할 때

유선이가 보던 보노보노에서도 너구리는 목이 졸려 죽어간다.

형사가 망연자실해 있는 박 사장의 집을 찾아왔다.

집안도, 창틀도, 형사의 옷도 녹색 빛깔이다.

류가 라디오 사연을 엽서에 보내면서 그린 그림

그림 조차도 묘하게 아름답다.

역시나 눈에 띄는 것은 녹색 머리와 녹색 바지.

음울하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 물가.

의외로 깊지는 않았다는;;

여자친구의 죽음을 알고서도 티를 낼 수가 없어,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여자친구의 시체의 손을 몰래 잡은 류

굉장히 마음아픈 장면이었다.

박 사장은 결국 잔인한 방법으로 류에게 복수를 한다.

녹색 머리 색깔과 빨간색 잠바, 그리고 얼굴의 빨간 피가 아주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류의 여자친구인 영미의 복수를 위해 심판하러 온 무정부주의자들

연거푸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영미와 닮았다.

류와의 복수를 향한 승부에서 승리를 거두며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믿었던 박 사장이

결국 죽임을 당하면서 자신의 손바닥을 쳐다본다.

왼쪽은, 자신의 해고로 칼부림을 하던 노동자를 막다가 생긴 흉터이고

오른쪽은 무정부주의 테러리스트들에게 지금 당한 상처.

대칭 구조를 이룬다. 결국 복수는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왼쪽의 흉터를 감싸고 '복수는 나의 것'이라며 열심히 복수를 했지만,

다시 그는 똑같이 복수를 당하고 만다.

선명한 대칭적 흉터가 복수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