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성탄 특별 프로젝트 "Dear Jesus" 프로젝트 Show
"(마2:10-11)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나심을 기뻐하며, 소중한 주님께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생일을 맞이하여 순종의 선물을 드리는 자리로 초청합니다. •신청 기간 11/27~12/4(주일, 2주간) •진행 기간 12/17~12/25 젊은이예배 전 [신청 문의] 양수민 자매 기독교에 의하면 온 인류의 구세주(메시아)이자 성부(聖父), 성령(聖靈)과 다른 위격(페르소나)이되 본질(essence) 및 본성(nature)은 같은 자로, 그의 실체(substance)는 신이다. 기독교의 입장에선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진 책의 진(眞) 주인공이며 책의 전반부 자체가 이 사람의 등장에 대한 복선이다.[26]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100% 거짓 없는 신이면서 또한 100% 거짓 없는 인간이며, 창조되지 않은 자,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한 자이다. 그는 창조주임에도 피조물들을 위하여 스스로 제물이 되어 죽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삼위일체론. 물론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초기 기독교 종파도 있었지만 일찍이 사라졌다.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기독교 종파들은, 서방의 가톨릭이든, 동방의 정교회이든, 이집트의 콥트 교회이든, 에티오피아 정교회이든, 네스토리우스파의 후예인 아시리아 동방교회이든 간에 구체적인 해석은 갈릴지언정, 삼위일체의 기본 개념, 즉 세 페르소나가 한 실체를 이룬다는 교리는 공유한다. 또한 이 기본 개념에 대한 정의도 콘스탄티누스 1세때 나온 것이라 늦은 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엄밀한 정의가 늦게 나왔다는 뜻이지, 삼위일체 개념 자체가 갑툭튀한 것은 아니다. 복음서에는 예수가 성부와 동질성을 가진다고 해석될 구절이 많았고, 반대로 구분을 암시하는 듯한 구절도 많았다. 여기서 양극단[27]을 우선 쳐내고, 그리스 철학을 통해 복음서의 고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고 한 결과물이 지금의 삼위일체 정의이다.
4.1.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예수의 정체[편집]기독교는 탄생 시점에는 일단 예수를 메시아, 그리스도로 보았다. 하지만 이조차 기존 유대교의 메시아 관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유대교의 메시아는 세속적인 군주, 정확하게는 '유대 민족을 이끌 정치적인 지도자 혹은, 압제받는[30] 유대 민족을 정치적으로 해방시킬 영웅' 이었는데, 기독교에서는 세상의 종말 때 이 세상을 심판할 구세주의 개념으로 바라본 것. 이 때문에 초기부터 정통 유대교 신학과 마찰이 있었고, 사도 바오로에 의해 헬레니즘 세계에 기독교가 퍼질 때는 신의 아들이라는 개념이 기존 그리스 신화에서 흔히 나오는 반인반신과 혼동이 되어 또 마찰이 있었다. 심지어 지금도 반기독교에서 언급되는 떡밥인 "예수는 마리아와 로마 병사 사이에서 난 사생아다." 따위의 패드립 역시 그때에 생긴 주장이다. 어쨌건 그에 따라 기독교는 유대교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다구리를 맞았고, 예수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받았다. 이를 희랍 철학적 언어를 사용하여 설명한 것이 바로 삼위일체론이다.[31]
[33]
기독교적 관점에서 예수의 정체를 유추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은 요한 복음서이다. 요한 복음서는 예수는 한처음에[34] 하느님과 같이 있었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문장에서 예수는 하느님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35]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라는 말로, 예수가 인간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 고백하는 초월자를 뜻하는 말인 야훼는, '나는 있다', '나는 나다' 등의 뜻이며 영어로 하면 'I AM'이 된다. 그런데 인용한 구절들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I AM으로 소개하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 자신을 야훼라고 드러냈다.[39] 4.1.1. 혈통[편집]성경에 따르면, 즉 마태오 복음서 1장에서 기록된 예수의 계보에 따르면 예수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라고 나온다.[50] 루카 복음서 마찬가지로 예수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라 주장하며 계보를 서술했지만, 마태오 복음서의 족보와는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이 족보의 차이는 신학계에서 자주 다뤄진 떡밥이었다. 4.1.2. 구약[편집]흔히 예수가 구약의 율법을 폐지하였다고 표현되지만, 이 표현에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예수 자신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가 보는 구약의 율법은, 예수가 폐지한 것이 아니라 완성한 것이다. 또한 같은 원리로, 신약은 구약을 폐지하지 않는다.
가톨릭 성경 개신교 개역개정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54] 이사야서 52장 13절-53장 12절[55] 이 구절은 이른바 '야훼의 종'으로 불리는 이에 대한 구절로, 타인의 악행과 죄악을 짊어지고는 재판을 통하여 죽는다. 그러면서도 이 종은 초월자에게 벌 받은 자로 여겨지며,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다. 예수는 바로 이 '야훼의 종'의 행적을 자신의 삶을 통해 실현하였고, 그렇기에 스스로가 구약에 이미 예고되어 있는 그리스도(메시아)임을 주장하였다.[56] 또한 예수는 나자렛에서는
라며 이사야 61장 1-2절을 칠십인역에 따라 자유롭게 인용하여, 자신이 구약에 예고되어 있는 그리스도(메시아)임을 강조했다.[57] 그 밖에도 자신이 요나의 기적을[58] 보여주겠다고 말하고, 빵으로 장정 5천 명 이상을 먹인 기적에서는 출애굽기의 만나 및 예언자 엘리사의 기적을 자신에게 연관시킨다. 또한 신명기에는 모세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신명기 마지막 부분에서 모세가 수명을 마치고 난 후, 후일담 격으로 나오는 구절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이 있다.
4.2. 이슬람의 관점에서 본 예수[편집]
[ 펼치기 · 접기 ]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아담 이드리스 누흐 후드 살리흐 여섯째 일곱째 여덟째 아홉째 열째 이브라힘 루트 이스마일 이스하크 야쿠브 열한째 열둘째 열셋째 열넷째 열다섯째 유수프 아이유브 슈아이브 무사 하룬 열여섯째 열일곱째 열여덟째 열아홉째 스무째 둘키플 다우드 술라이만 일야스 알야사 스물한째 스물둘째 스물셋째 스물넷째 마지막 유누스 자카리야 야흐야 이사 무함마드
4.2.1. 기독교와의 차이점[편집]이슬람에서 예수는 모세, 무함마드와 같이 하나님이 인류에 내린 예언자 중 하나이다. 이슬람에 대한 무지로 인해 이슬람이 기독교의 적이니 예수를 싫어할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슬람과 기독교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로 뿌리가 같다. 기본적인 연대기와 행적, 기적 등은 기독교와 같지만, 몇 가지 결정적인 기독교와의 시각차가 있다. 결정적으로 기독교와 다른 점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한다는 점. 이슬람에 의하면 하나님에게는 "부모도 아들도 없고 딸도 없다."고 한다.[74]
B.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꾸란이 말하는 건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다"(wa ma salabuhu)이지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다"(wa ma slulba)가 아니다.무슬림 학자 Abdullah Yusuf Ali에 따르면, 꾸란은 단지 예수가 '유대인들에게' 죽은 게 아님을 명시할 뿐이다.[83] 다른 무슬림 학자인 Mahmoud M. Ayoub 역시도, 해당 꾸란 구절이 십자가 죽음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고 풀이한다. '자기네가 마리아의 아들 메시아 예수를 죽였다'고 유대인들이 착각하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교만을 말하는 것이며, 꾸란은 이 교만을 책망하고 있다는 것이다.[84] 이 해석에 의하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능동적인 결정에 의한 것이지 유대인들의 음모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녀서가 아니며, 그렇기에 꾸란은 유대인'이' 죽인 건 아니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4.2.2. 기독교의 영향[편집]무함마드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은 건 분명하다. 꾸란의 예수 관련 구절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정경 복음서와 외경 복음서 등을 의식한 흔적이 발견되며, 가령 꾸란 3장에서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가 마리아와 가지는 인간관계, 마리아의 어린 시절은 외경인 야고보 원복음서에서 강력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꾸란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7세기 초 저작물인 차명-마태오 복음을 연상시키며, 예수가 진흙으로 참새를 만들었다는 꾸란 3,49의 이야기는 외경인 토마 유년기 복음서에 나온다. 나병 환자를 살리고 눈먼 이를 보게 했다는 꾸란 속 기적 묘사는 당연 정경 복음서에도 나온다. 곧 어떤 식으로든 아라비아의 (그것도 풍부한 외경 전승을 간직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한때 거상이던 무함마드가 접했음은 분명하다. 5. 생애[편집]5.1. 일러두기[편집]역사적 예수, 곧 역사 비평적 방법론의 관점에서 본 예수의 생애에 대해 작성하였다. 5.1.1. 사료로서의 복음서[편집]고대의 많은 역사서들이 그렇듯이, 복음서 역시도 사건을 있는 그대로 녹음/녹화한 기록이 아니며, 그렇기에 사료 비평의 대상에 포함된다. 특히 교회는 예수가 부활하였으며 교회와 함께하고 현존한다고 믿었기에, '지상에서 활동하신 과거의 예수'와 '부활하신 지금의 예수'가 복음서에 혼재되어있다.
분명히 복음서는 역사적 예수의 사진이 아니며, 그보다는 각 저자가 자신의 화풍으로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거짓 형제'들을 경계하던 초대 교회 공동체들은 유다풍 그림, 거친 펜선 그림, 희랍풍 그림, 빛과 어둠의 미장센이 가득한 그림이 자신이 증언하는 예수의 모습과 일치함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이 4장의 그림을 (물론 사진이 아님을 전제하면서도) 사료로 삼아 예수의 모습을 짚어볼 수 있는 것이다. 5.2. 탄생 배경[편집]예수의 조상이나 가계는 역사적으로는 불분명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당시에 귀족이나 제사장 출신도 아닌 서민의 집안에서 가계를 기록하는 경우는 없었고 대체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가까운 조상 정도의 계보나 자신이 어느 지파 소속인지만을 기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성경 기록에서 기적이나 신비적인 사건을 제외하고 본다면, 로마 제국의 사실 상 식민지인 이스라엘 왕국[91]의, 북부 지역인 갈릴래아 지방의, 촌락 나자렛에서 목수 요셉과 성모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지파에 대해서는 바오로의 서간에서 "유다 지파임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서술되어 있다. 바오로가 유대인이기에 예수가 다윗의 후손으로서 메시아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내세운 근거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다윗과 같은 유다 지파라는 것만으로는 다윗의 후손이라는 증거로는 상당히 빈약하다. 대다수의 역사적 예수론에서는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 자체를 의심하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족보는 메시아는 다윗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하는 유대인들의 사상을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인 결과 "신학적 진술의 역사화"로서 형성된 것이라고 본다.[92] 5.3. 탄생[편집]예수의 탄생을 경배하는 목자들
5.4. 공생애 이전의 삶[편집]
5.5. 공생애[편집]
예수는 모종의 이유로 세례자 요한과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루가의 복음서에서는 30살 즈음에 공생애를 시작했다고 기록한다.
비슷하게, 요아힘 그닐카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또 하나의 오해는, 예수가 종교적 개인주의자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유다인이었으며, 유다교에서는 하느님의 백성이 늘 관건이었다. 따라서 종교적 개인주의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신사와 종교사 그리고 종교의 구조를 보더라도 그러했다."(클라우스 베르거, 《예수》 2권, 전헌호 옮김, 성바오로, 2013, 246쪽)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그리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이사야 62장 5절) 예수의 활동은 언제나 어디서나 '백성'을 향한 정향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개인을 향해 결단을 호소할 때도 그를 이 백성의 일원으로 바라본다. 예수의 구원 제시를 개인 치유로 이해한다면 몹시 오해가 될 것이다."(요아힘 그닐카, 《나자렛 예수》, 정한교 옮김, 256-257쪽) 물론 1세기 그리스도교가 예루살렘 성전의 사제들(사두가이)과 어느정도의 긴장 관계를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사제들과의 긴장은 바리사이 역시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바리사이들이 사두가이들과 긴장을 이루었다고 해서 바리사이를 종교적 개인주의자 혹은 성전 혐오자로 볼 수 없듯이, 예수(그리고 그의 제자들) 역시도 성전 혐오자가 아니었다. 클라우스 베르거(Klaus Berger)가 지적했듯이, "성전을 이스라엘의 심장으로 보는 사람만이 성전이 파괴되는 것 때문에 고통을 느끼며 슬퍼할 수 있었다."
5.6. 죽음과 부활[편집]
예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야말로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로, 신이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약속을 지켰음을 나타내는 표징이다. 대부분의 기독교 종파들은 부활절을 중요한 축일이자 명절로 기념하고 있다.
그 후 베드로 일행이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고 예루살렘 일행의 빈 무덤 발견을 전해 듣게 되면서 극도의 종말론적 기대가 공동체를 압도한다.[138] 그리고 오순절에 성령 강림 체험을 하면서 교회사의 시작이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BBC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일부 해석에서는 예수가 물리적으로 유사 부활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요약하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점은 사실이나, 6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매달렸던 점[159]을 근거로 하여 예수는 단기적으로 의식을 잃었고 십자가에서 내려져 사망판정을 받은 뒤 무덤에서 기적으로 의식을 회복하는 현대 의학 관점에서 '소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160][161][162] 이러한 해석에서는, 이후 예수가 망명하였으며 망명한 예수를 후대에서 신격화하기 위해 예수가 하늘로 승천한 것으로 성경을 가미한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 소수 견해[163]와 전승에서는, 제자들을 찾아가 부활을 보인 후 로마 제국의 정치적 영향이 미치지 않는 인도로 망명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이러한 주장과 전승은 예수의 무덤이 인도의 카슈미르에 존재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오직 인도의 시로말라바르 가톨릭-말랑카라 시리아 정교회의 전승과 그 전승을 확대해석한 측 뿐으로, 그들의 전승을 기록한 토마스 행전[167]의 속보성은 비교적 늦은 관계로 신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되지는 않고 있다.[168] 한편, 예수가 십자가에서 찔린 창으로 인해 현대의학적으로 소생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시각[169], 소생했더라도 이미 심각한 부상을 입은 신체로 인해 제자들을 찾아가 신적인 이미지를 주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다른 연구결과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어깨가 탈구됐고, 그 상태에서 십자가에 매달리면서 동맥이 파열된 것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5.6.1. 성경에 따른 부활 이후의 행적[편집]예수/부활 이후의 행적 문서 참조. 5.7. 별개 문서가 있는 복음서의 일화·비유[편집]
6. 예수의 사상과 기독교[편집]근대에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가 늘어나면서, 오늘날에는 예수의 사상을 역사 비평적 방법론으로 해석하려는 많은 시도가 나오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은, "예수의 사상은 그리스도교와 일치하는가?"라는 것이다. 이 문서에서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예시는 다루어볼 수 있을 것이다.
안젤로 아마토Angelo Amato의 경우는 예수가 "메시아"라는 말을 입에 담지는 않았으나 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비슷하게 요아힘 그닐카(Joachim Gnilka)는 예수가 친히 메시아라고 말한 바는 없지만, 예수의 사명의식이 메시아라는 주제를 잘 묘사하고 있다고 본다. 즉 직접적인 발설은 없었으나, 예수는 메시아 사명의식을 지녔다는 것이다.[183]
오히려 복음서는 '이스라엘의 신랑'으로 묘사되는 하느님의 위치를 예수에게 적용하여, 유다인에게 매우 도발적인 말을 한다.
또한 연대기적으로 복음서보다 더 오래된[187] 필리피서의 찬가(2,6 이하)의 경우, "바오로 이전의 전승으로 보이는 여러 요소를 가진 이 찬가는 아마도 분명히 전례에서 기원했을 것이다."[188] 물론 그리스도교의 교의라는 게 한 둘이야 아니지만, 바오로의 위치를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7. 예수 이후[편집]이 문서는 이 문단은 토론을 통해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서술을 하지 않기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편집권 남용으로 간주되어 제재될 수 있습니다. 아래 토론들로 합의된 편집방침이 적용됩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편집권 남용으로 간주되어 제재될 수 있습니다. [ 내용 펼치기 · 접기 ] 토론 -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서술을 하지 않기 토론 - 합의사항2 토론 - 합의사항3 토론 - 합의사항4 토론 - 합의사항5 토론 - 합의사항6 토론 - 합의사항7 토론 - 합의사항8 토론 - 합의사항9 토론 - 합의사항10 토론 - 합의사항11 토론 - 합의사항12 토론 - 합의사항13 토론 - 합의사항14 토론 - 합의사항15 토론 - 합의사항16 토론 - 합의사항17 토론 - 합의사항18 토론 - 합의사항19 토론 - 합의사항20 토론 - 합의사항21 토론 - 합의사항22 토론 - 합의사항23 토론 - 합의사항24 토론 - 합의사항25 토론 - 합의사항26 토론 - 합의사항27 토론 - 합의사항28 토론 - 합의사항29 토론 - 합의사항30 토론 - 합의사항31 토론 - 합의사항32 토론 - 합의사항33 토론 - 합의사항34 토론 - 합의사항35 토론 - 합의사항36 토론 - 합의사항37 토론 - 합의사항38 토론 - 합의사항39 토론 - 합의사항40 토론 - 합의사항41 토론 - 합의사항42 토론 - 합의사항43 토론 - 합의사항44 토론 - 합의사항45 토론 - 합의사항46 토론 - 합의사항47 토론 - 합의사항48 토론 - 합의사항49 토론 - 합의사항50
8. 역사적 예수[편집]자세한 내용은 역사적 예수 문서 를 의 번 문단을 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9. 실존 여부[편집]자세한 내용은 예수/실존 여부 문서 를 의 번 문단을 의 부분을 10. 한국에서의 인식[편집]크게 광신도, 참 그리스도인, 일반 신자[200], 예수를 인간으로서만 존경하는 사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 기독교의 '적극적인 전도 활동'으로 반감을 가져 예수, 정확히는 '불신 지옥'[201]하는 예수를 증오하는 사람 정도로 나눌 수 있겠다.
11. 예수 어록 전승[편집]자세한 내용은 예수 어록 전승 문서 를 의 번 문단을 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공관복음서 중 가장 연대가 빠른 것은 마르코의 복음서이다. 나머지 두 복음서는 마르코를 토대로 작성되었는데, 마르코 외에도 또하나의 출전 전승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예수의 어록 형식을 띄고 있으며, 이는 '어록 출전'(Spruchquelle 혹은 Logienquelle), 약칭 'Q'(Quelle)라 불린다. 11.1. 예수의 화법[편집]공관복음서와 요한의 복음서에서 예수의 화법은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공관복음에 자주 나오는 "하느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요한복음에서는 단 2번만 사용한다.(3, 3.5). 그 대신 "생명" 또는 "영원한 생명"이 강조되며, 세상,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들에게서 받는 영광 등의 주제가 예수에게서 말해진다. 이러한 차이들 때문에 19세기 초부터 요한 복음서의 예수 증언이 가지는 역사성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곧, 요한복음서의 예수에게서 강력하게 드러나는 신학적 성격이 역사와는 다른 관념에 부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이 연구에서는, '이것 아니면 저것' 곧 '역사 아니면 신학'이라는 과거의 양자택일에는 비판적으로 바뀌었다. 곧 요한 복음서의 예수가 가지는 역사성에 대한 해답은 전에 생각하던 것 보다 더 복합적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저자는 유대 독립전쟁 때문에 서기 1세기 초의 팔레스티나와 단절된 것으로 보이지만, 지리와 연대에 관한 자료들, 유대 지방과 로마 제국의 제도에 관계되는 사항들에 대해서 증언을 하고 있으며 당시 생활상에 대해 해박하다. 또한 저자는 스스로를 예수에 대한 목격자 곧 증인으로 여기며, 적어도 다른 이들에게 인정을 받는다.(19, 35; 21, 24)[205] 이러한 면모들은 근대에 강력히 제기되었던, 요한복음서 예수의 역사성 논쟁에 대하여 의문을 품게 한다. 아무튼 이 부분은 워낙 온갖 추측과 떡밥과 썰이 난무하는지라, "이런 이런 말투가 역사적 예수의 말"이라는 식의 단정에는 경계가 필요하다. 애초에 이런 면모 때문에 '역사적 예수'라는 게 현대에는 다 식어버려 유행이 지난 떡밥이 되어버린 감도 있고. 12. 예수에 대한 이모저모[편집]12.1. 성격[편집]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을 해야 하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직설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12.2. 결혼 여부[편집]
예수는 총각으로 살았고 아내와 자녀가 없었으며, 적대자들에게 고자라는 욕설을 들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딱히 예수가 결혼을 했다 안 했다를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가 유부남이라는 음모론이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예수가 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했다는 설, 또는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다는 요한의 복음서 중 카나의 혼인잔치가 예수 본인의 결혼식이라는 설, 프랑스의 시조라는 설 등이 있다. 3번째의 경우 예수는 사위에게 나라 하나를 만들어주고 그 나라의 초대 황제를 시켰는데, 그 나라가 바로 메로빙거 왕조이며 오늘날의 프랑스의 근본이라는 주장. 특히 이 음모론들은 댄 브라운이 관련 음모론들을 이용해서 다빈치 코드 소설을 써서 대중에게 엄청 유명하게 알려지는 바람에 신학자들은 물론 역사학자들도 골머리를 썩인 적이 있다. 심지어 고대의 파피루스를 누가 위조하여 ‘예수에게는 아내가 있다’는 식의 글을 만들어 학자들조차 속아 넘어간 적도 있다.# 본 문서에서 결혼 여부가 문단이 따로 생길 정도로 길어진 것도 그 영향이 있다고 할 것이다.
또 혈연을 매우 중시했던 유대인들의 관념 상 예수에게 아내나 자녀가 있었으면 그들이 성경이나 서간 등에 언급되어야하고, 초기 교회의 지도자가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성 있다. 하지만 초대교회의 지도자는 베드로였고,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의 형제 혹은 사촌 형제인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맡았다. 이 야고보는 예수가 활동할 때는 미쳤다며 나자렛 회당에서 쫓아냈지만 예수 부활 이후 믿게 된 사람이다.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를 맡은 건 예수와 그나마 가까운 혈연 덕이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예수는 비혼 독신을 평생 유지했을 것이다.
12.3. 외모[편집]12.3.1. 회화의 묘사[편집]예수 성심(聖心) 그리스도의 두상, 워너 샐먼 작(1941) 미술에서 일반적으로 묘사되는 모습이자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예수의 외모. 상당히 구체적이고 일관적으로 묘사된다. 어깨까지 닿는 정도의 길이의 갈색 곱슬머리에, 앞머리를 옆과 뒤로 넘겨 늘어뜨렸다. 그리고 약간의 수염을 기른, 긴 얼굴형의 젊은 남성이다. 체격은 마른 편이다. 체팔루 대성당, 이탈리아 시칠리아, 12세기 하기아 소피아 성당, 터키 이스탄불, 13세기 이 예수의 묘사는 이콘 양식의 하나인 '크리스토스 판토그라토(전능하신 그리스도)'에서 유래된 것이다. 판토그라토는 전능하다는 의미로, 예수가 의자에 앉아 왼손엔 성경을 들고 정면을 보며 오른손으로는 축복을 의미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이콘 양식이다. 라벤나의 갈라 플라치디아의 영묘의 모자이크, 5세기(左) 라벤나 대성당의 모자이크, 6세기(右) 성 카테리나 수도원, 이집트 시나이 반도, 6세기 그러다가 4세기에 기독교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공인되고서 기독교 미술이 활발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4~7세기까지 동안 예수의 묘사는 통일되지 않았고, 각 지역의 교회의 신학적 이해가 반영되어 서로 다른 모습의 예수를 묘사했다. 주로 이탈리아와 그리스 지역에서는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예수를 기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타나는 신과 비슷한 신적인 존재로 이해했고, 그에 따라 아폴론의 묘사의 영향을 받은 것이 명백한 수염이 없고 강건하며 전사적 면모가 느껴지는 예수가 주로 나타났다. 반면 예수가 직접 돌아다니며 활동한 장소인 레반트 지역의 교회는 예수를 역사적인 인물로써 이해했고, 이교도적 문화를 차단하고 싶어했다. 그에 따라 시리아와 이집트 등 레반트 지역 교회에서 묘사한 예수가 바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예수 모습의 직접적인 원조다. 정교회와 오리엔트 정교회 등 동방교회는 이에 대해 수염과 긴 머리는 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모습이며 이교도적 영향으로부터 역사적 예수의 초상을 지켜내는데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토리노의 수의에 새겨진 화상을 복원한 모습 이슬람측 페르시아 세밀화에서 묘사된, 설교하는 예수 12.3.2. 역사적 예수[편집]유럽권과 아메리카권은 인종에 관해 다소 민감한지라 예수의 인종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오간다. 예수의 실제 모습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영국의 맨체스터 대학의 리처드 니브 교수가 다큐멘터리 <Son of God>을 통해 공개한 예수의 재현도 이 재현도는 시리아 지방의 유대인 군락에서 발굴된 두개골 3개를 가지고 복원한 것이며, 예수의 신장 역시 당시 평균 신장인 155~166cm이고 체중은 50kg으로 추측했다.출처1출처2 단, 이 설명을 보면 알겠지만 정확히는 예수 본인의 재현도라기보단 그 시대 당시의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평균 외모 재현도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심지어 평균이라고 치기에도 표본의 수가 상당히 작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2천 년 뒤 미래인들이 서울에 살았던 특정인의 얼굴을 복원한답시고 부산 사람의 두개골 3개로 평균을 내고 그걸 "이것이 당신의 얼굴입니다"라고 주장한다고 생각해보자. 이것을 복원도라고 부르기엔 매우 부적절하다. 같은 인종에 같은 민족이라도 외모는 개체별로 정말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으니, 실제 정확한 예수의 모습(얼굴 및 체형)은 아무도 모를 뿐더러 이 '복원도'와 같을 가능성도 적다. 단지 평균의 모습에 가까울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것을 근거로 말한다면, 이 복원도를 바오로나 베드로나 세례자 요한이나 이스카리옷 유다의 모습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일반인들에게는 수혈 거부로 문제를 일으킨 사이비종교로 더 많이 알려진, 소수 종파인 여호와의 증인 역시 역사적 고증을 명분으로[220] 저 복원도와 유사한 모습의 예수 초상을 주로 사용한다. 12.3.3. 신학적 예수의 모습[편집]
13. 가공 매체에 등장한 예수[편집]자세한 내용은 예수/가공 매체 문서 를 의 번 문단을 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14. 여담[편집]서구권에서는 놀랐을 때 감탄사로 이 사람이나 이 사람의 아버지, 아니면 이 사람의 어머니 등을 자주 찾는다. 영어의 경우 Jesus Christ!, 혹은 Oh my God! 프랑스어의 경우 몽디외(Mon Dieu), 이탈리아어의 경우 맘마미아. 특히 맘마미아는 단어의 모양만 보면 그냥 '나의 엄마'인데, 진짜 엄마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성모 마리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여간 예수가 서양에 문화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1]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콘 중 하나이자 가장 유명한 정교회의 이콘 양식이다. 예수의 손가락은 ΙΗϹΟΥϹ ΧΡΙϹΤΟϹ(그리스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양을 하고 있다(검지가 Ι, 중지가 Ϲ, 약지와 엄지가 Χ, 새끼손가락이 Ϲ).[2] 정의상으로는 AD 원년(1년)이 예수의 출생 연도여야겠지만, 서력기원이 원년을 정의할 때 오차가 있었고, 오늘날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출생 연도는 기원전 4년이다. 이는 학자들에 따라 어떤 기록을 사용하냐에 따라 생년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인데, 예수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크게 유명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여러가지 추정은 서력기원 문서를 참고하도록 하자.[3] 성경에 의하면 이후 부활 및 승천. 그리스도교에선 이 두 날을 주님 부활 대축일(부활절) 및 주님 승천 대축일로 기념한다.[4] 공생애 이전의 삶 문단 참조.[5]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예수는 본성(natura)적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그것이 나자렛의 요셉과의 가족 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루가 복음서 2장 33절에서는 요셉을 아버지(patēr)라 명시하고 있으며, 신약이 예수를 "다윗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도 예수와 요셉의 가족관계를 전제할 때 성립된다.[6] 그리스도교 교리 상 예수는 본성(Natura)에 의하여 하느님의 외아들인 반면, 그리스도인은 은총(Gratia)에 의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하느님의 자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