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프로파일 러 박 - sigeuneol peulopail leo bag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치직…치직…. 무전이 울리면 모두 긴장합니다. 화제의 드라마 '시그널' 얘기죠. 주인공인 박해영 경위(이제훈 분)는 유능한 프로파일러로 나옵니다. 박 경위의 입을 빌려 프로파일러의 직업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 "경찰들이 서울 한복판서 씨름할 때, 넌 달 위에서 날 봐야 해!"

안녕하세요. 서울광역수사대 박해영 경위입니다. 당신은 오후 시간대에 이 기사를 스마트폰으로 읽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드라마에 관심이 많고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것으로 추정도 해봅니다. 따라서 당신은 사무실서 일하는 일반 직장인이며 IT 기기에 거부감이 없는 30대 전후의 젊은 층입니다. 또 댓글을 남긴 것으로 보아 자신의 의견을 내는 데 적극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겠죠.

놀라셨나요? 제 직업은 프로파일러(Profiler)입니다. 차수현 선배님은 말씀하셨어요. "넌 사건을 저 멀리 위에서 점처럼 봐야 해."

전 의미가 없어 보이는 정보 속에서 이야기를 찾아냅니다. 흩어진 정보를 추려 패턴을 읽습니다. 단순히 '범인이 누구냐'에 그치는 게 아니라 동기, 가정환경, 앞으로의 움직임까지 예측하죠. 제가 장기미제전담팀에 들어간 것도 그래서입니다.

경기 남부 연쇄 살인 사건, 대도 사건 등 영원히 미궁 속에 빠질 뻔한 비극을 제가 아니었다면 해결할 수 있었을까요? '박 경위 같은 사람만 있으면 범인 다 잡겠네'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프로파일링이란 단어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입니다.

프로파일링을 설명하는 데 미국을 빼놓을 순 없겠죠. 영화 '양들의 침묵' 실제 모델이기도 한 로버트 레슬러는 대표적인 프로파일러입니다. 대표적인 일화를 들려드릴까요? 197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사건이 그렇습니다. 그가 피해자의 시체를 보고 "범인은 25~27세의 독신 백인 남자에 정신 병력을 가졌으며, 학력은 고졸 또는 대학 중퇴"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전설이죠.

◇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요, 범인은. 만약 우리 주위에 있다면?"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는 강동서 현장 감식 요원인 권일용 경위(현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경감)였어요. 프로파일링 수사 기법은 2000년 2월 서울청이 과학수사계에 범죄행동분석팀을 설치하면서부터 시작됐고요. 초반엔 경찰 내부의 거부감으로 큰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다른 팀 선배들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죠. "현장도 모르는 놈이랑 일하라고?"

2004년 희대의 연쇄 살인마, 유영철 기억 하십니까? 21명의 무고한 인명을 처참하게 살해했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 마 살인사건'에 경찰 또한 당혹스러웠습니다. 아무런 이해 관계없이 발생하는 살인…. 결국 경찰은 뒤늦게 프로파일링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사건이 끝난 그해 7월에 생긴 일이죠.

유영철 사건이 가져온 변화는 컸습니다. 경찰 내에 프로파일러가 양성되고 수사력 강화를 위해 인력도 대폭 늘리기로 결정합니다. 또 중요 피의자의 수법과 행적 등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했죠.

◇ "피해자의 죽음도 난 기억할 겁니다."

전북 지역 1호 프로파일러인 김성환 경장은 "전혀 모르는 범인의 행동을 파악하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시그널' 첫회의 김윤정 유괴사건 보셨나요? 범인과의 심리전은 그렇게 피를 말립니다.

물론 보람도 있습니다. 심리전에서 이겼을 때 범인은 입을 열게 되죠. 2008년 3월 발생한 안양 어린이 살해사건 기억나십니까? 당시 피의자는 살해 사실은 시인했으나 동기를 밝히지 않아 애태웠어요. 그러나 프로파일러와 10시간이 넘는 팽팽한 기 싸움 끝에 결국 눈물을 흘리며 무너졌죠. 동기뿐만 아니라 다른 범죄도 자백한 겁니다. 이때 프로파일러가 당시 경찰청의 범죄행동분석팀에서 활동하던 권일용 경위(현 경감)입니다.

이제 프로파일러는 경찰 조직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입니다. 2006년 정남규 사건, 2007년 제주 여아 성추행 살인 사건 등은 프로파일러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특히 2009년 1월 발생한 강호순 사건! 군포 부녀자 연쇄 살인범인 그는 4~5명의 프로파일러와 심리전 끝에 "이미 살해한 2명 외에 5명을 더 죽였다"고 자백했죠.

◇ "100년 후라도 DNA 검출은 가능해. 현대 의학이 피해자에게 준 선물이지."

프로파일러의 진가는 검거 이후가 아닙니다. 범인 검거 순간에도 우리가 필요하거든요. 2010년 3월 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 사건이 그랬습니다. 당시 피의자인 김길태가 검거된 상황을 복기해 보겠습니다.

프로파일러들은 김길태가 범행 현장을 멀리 벗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습니다. 범죄 이력과 생활 습관, 심리 등을 토대로 낸 결론이죠. 아니나 다를까. 그는 범행 현장에서 불과 200~300m 떨어진 곳에서 붙잡혔습니다. 드라마 속 경기 남부 연쇄살인 사건에서 '지오프로스'(Geopros·범죄지리정보시스템)를 통해 범죄를 예측했던 것의 실사 판입니다.

◇ "미제 사건은 사랑하는 이가 왜 죽었는지도 몰라…. 하루하루가 지옥이지."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재한 형사님은 늘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경찰이 해야 할 일을 잊지 말자면서요. 프로파일러의 자격은 어쩌면 이것이 아닐까요? 민첩함이나 분석력 등이 아닌, 사건을 붙잡는 끈기. 드라마처럼 미래를 바꾸진 못하더라도 앞으로 나올지 모르는 범죄를 막고 피해자를 한 명이라도 줄이고자 하는 의지.

저 역시 억울하게 형을 잃었기에, 범죄에 희생당한 가족들의 심정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절박함은 곧 분노로 이어지죠. 그 한(恨)을 풀기 위해 전 오늘도 뜁니다. 아, 잠시만요. 무슨 소리가… 치직…치…치칙….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6/03/09 16: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