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80g 100g - jong-i 80g 100g

의문점이 다섯 개를 넘어가는 순간 결국 서점으로 향했다. 책을 만들려 할 때야 비로소, 술술 넘겼던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꼼꼼하게 챙겨보게 됐다. 글도 많이 봐야 글쓰기 솜씨가 늘듯이 책 디자인도 많이 '보아야' 느는 모양이다. 

   일단 서점에서는 네 가지를 체크할 필요가 있다.

장르 / 판형 / 제본 / 종이 재질

1. 장르

평소에 에세이를 잘 안 읽는지라 책 조사를 위해 바로 서점을 찾았다.

   책은 장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공통된 성격을 갖는다. 역사서라면 서술하는 과거 시점에 대한 연혁과 참고 문헌이 본문 뒤에 따를 수 있고,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고전 소설을 묶어낸 책이라면 해당 소설에 대한 출판사의 서론과 주해가 소설 앞뒤로 붙어있을 수 있다. 

따라서 서점에 방문한다면 내가 선택한 장르의 책은 대체로 어떤 형태(판형)를 띠고 어떻게(목차) 구성됐는가, 무엇을 포함하며 어떻게 내용을 전개하는지 관찰하여 참고할 만한다.

2. 판형 (책의 크기)

   책의 판형 결정은 무척 중요하다. 책의 크기에 따라 손에 잡히는 느낌이 다르며, 책을 마주한 순간의 분위기도 미묘하게 달라진다. 책의 장르로 예시를 들어보도록 하자. 사진집은 보통 가로나 세로가 상대적으로 무척 긴 판형을 보편적으로 사용한다. 많은 역사적 사실과 그를 밑바탕할 사설, 증언과 사실을 덧붙이기 위해 역사서로는 큰 판형을 많이 사용하며, 소설책은 두 손으로 들기 적당한 크기를 애용한다. 

   나는 "1인 출판" 수업을 들을 당시, 사장님의 추천으로 판형을 에세이나 소설에 많이 사용되는 B6로 선택했다. 판형이 국전지나 사륙 전지를 벗어나면 가격이 많이 비싸진다는 소릴 들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우리가 읽는 책들이야 손바닥 만한 사이즈이며 기껏해야 무릎 위를 다 덮을 정도라지만, 실제로 인쇄소에서 책을 찍어낼 때는 A4 용지의 8배만 한 종이를 사용한다. 

 A4 용지의 8배만 한 종이를 국전지라고 하며, B4의 8배만 한 종이를 B판형 혹은 사륙 전지라고 한다. 이 두 팔을 쫙 펼쳐 들어도 휘는 종이 수백 장에 잉크를 찍고 겹치고 쌓아 제본(엮는 일)*하여 책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종이 규격(A1, B1)에 벗어나는 사이즈를 선택할 경우, 잘라 버려지는 종이가 많아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 예를 들어, 내가 B6로 책을 만들 경우, B1에는 B6가 앞뒤로 총 64번 들어간다. 이 말은 곧 B1 한 면에 B6를 32페이지, 그리고 반대면에 다시 32페이지를 안칠**(인쇄) 수 있다는 소리다. 때문에 이 판형(A1, B1)에서 벗어나는 종이를 사용할 경우 종이를 더 많이 사용해야 해서 가격이 올라간다. 

** 왜인지 모르겠는데 출판업계 사람들은 '종이를 안친다'라고 하더라.

3.  제본

제본은 크게 양장과 무선 제본, 중철제본으로 나뉜다. 

1. 양장

   양장은 무척 두꺼운 하드 커버가 겉표지를 감싸고 있는 제본 형식이다. 띠지는 기본이요, 책머리에는 끈이 데롱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독립출판물 중에는 양장 제본한 책을 찾아보기 힘들다. 왜냐, 비싸기 *** 때문이다. 

2. 무선제본은 아마 독립출판뿐만 아니라 최근 출판사에서도 가장 애용하는 제본 형식이지 않을까 싶다. 최근 독자들도 책을 굳이 두껍고 무겁게 들고 다니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무선 제본된 책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

3. 중철제본은 쉽게 말하자면 스테인플러로 가운데를 집는 제본이다. 32페이지 내외의 책을 묶을 때는 안성맞춤이다. 휴대하기도 간편하며 들고 다니기 쉬워서 지하철 안이나 이동 중에 읽기에 좋다.

***예를 들어 책 100권을 무선제본으로 뽑을 때 100만 원이 든다면, 양장으로는 200만 원이 든다.

**** 덕분에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양장본이 나올 때는 그 가격이 무지하게 오르지만. 하지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싸게 살 사람들은 무선제본판으로 사고, 그 책의 가치를 높게 치는 사람들이 양장을 모으는 일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4.  종이 재질

   책을 읽으면서 종이의 질감을 느껴보신 적이 있는지요?

   책이 다 같은 책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만져보고 뜯어본다면 아주 큰 차이가 존재한다. 일단 집게손가락으로 종이를 문대 보자. 사진집은 조금 도톰한 것이 미끄덩거리고, 소설책은 빳빳하고 바스락거리는 느낌이 좋아 잔뜩 만져보고 싶지만 너무 얇아서 함부로 만지지는 못하겠다. 

처음에는 아무리 만져봐도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지만 자꾸 다른 재질과 무게의 종이를 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취향에 맞는 종이를 찾을 것이다. 

* 아래에 종이 재질의 차이를 잘 설명해주는 글과 사진이 담긴 사이트를 첨부합니다.

//www.redprinting.co.kr/product/guide/digital_option/13

책에 많이 사용하는 종이 재질로는 크게 네 가지 정도가 있다.

미색 모조지 80g  => 종이가 너무 얇고 누렇게 보여 후에 백색모조지 100g으로 바꿨다.

1. 미색 모조지 / 백색 모조지  80-100g

   - 모조지는 글이 많은 책의 본문 종이로 많이 사용된다. 미색은 약간 누런 끼를 띄며 글을 읽을 때 눈이 덜 피로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백색은 하얀 표면 덕분에 사진을 인쇄했을 때 미색보다는 색감이 잘 살아나 글보단 사진이 중심이 책에 많이 사용한다.

랑데뷰 100g  => 실장님의 실수로 아주 비싼 종이를 사용해서 가제본을 뽑아봤었다.

2. 랑데뷰 / 아트지 / 스노우지 210 - 310g

   - 이 세 가지 종이 재질은 빤딱하고 할까, 모조지보다 색감 표현이 좋아** 책의 표지나 사진집 내지로 많이 사용한다.  랑데뷰와 아트지, 스노우지.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무척 재미있는 사실은 이 고급지들의 차이점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확실하게 랑데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엽서를 뽑을 때 필름 카메라의 빈티지한 느낌을 잘 살려주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랑데뷰를 선호한다. 

** 때문에 얘들은 1번보다 비싸고 고급지(紙)다.  계속 돈 얘기를 하게 되어 마음이 불편하지만 모든 출판, 유통 비용을 홀로 대야하는 만큼 이런 사소한 요소에 예민해질 수 밖에 없다. 

*** 처음에는 시험해본다는 느낌으로, 다양한 종류의 종이로 엽서를 뽑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종이에 따른 사진의 느낌이 너무 달라 예상외로 크게 놀랄 수도 있다.

   책은 또한 그램 수에 따른 차이가 무척 크다. 본문으로는 미색/백색 모조지 80g-100g을 사용하는 편이며, 표지로는 랑데뷰/아트지 260 -320g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모조지 80g은 너무 얇기 때문에 뒷면의 글씨가 비춰보며 가독성을 해칠 수 있으며, 모조지 120g 이상을 사용한다면 책이 생각보다 너무 두꺼워진다. 또한 표지를 너무 얇게 할 경우 책이 주는 무게감이 없으며, 너무 두껍게 한다면 책을 펼칠 때 너무 뻑뻑해서 표지와 본문이 이중 분리될 수 있다.

이렇게 따질 것이 많다니. 지금까지 책의 뭘 보고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하긴, 우리가 휴대폰을 매일 들고 살지언정 그 안을 구성하는 반도체는 모르며,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전공자나 기술자가 아니면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책을 만들려 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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