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엘리시움 쿠노 공략 - diseuko ellisium kuno gongly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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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는 북유럽 발트 3국의 국가 중 하나로, 구소련권에도 속하는 나라다. 역사는 꽤 오랫동안 여러 나라 (독일, 러시아, 스웨덴, 폴란드)의 각축장이었다. 특히 독일은 중세 시절에 에스토니아인들을 농노로 삼고 지배자 계급으로 군림했다. 그 후로는 러시아 소유였다가 1차 세계 대전 이후 소비에트 혁명이 일어나면서 독립했다. 이때 독일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소련이 다시 차지했다. 소련이 사라진 1990년대 이후, 유럽 연합과 NATO에 가입하는 등 친서방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과 러시아의 알력 다툼에다 지금은 서방 국가랑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나라가 얼마나 혼란스러운 격전지였을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동유럽과 북유럽... 경계선에 있는 국가는 대체로 평탄치 못했고, 그 굴곡은 여전히 남아있다. 유감스럽게도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심지어 국민들의 반러 감정이 심한 나머지, 나치 SS에 복무했다는 사실을 내세울 수 있는 국가라는 비판이 많다. 이에 대해 자국에서도 2차 세계 대전 시절 친러와 친독으로 나눠 벌어진 동족상잔을 다룬 영화 [1944]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에스토니아의 인지도는 유럽 기준으로 보자면 변방에 가깝다. 심지어 자국민들 역시 Skype 제작국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할 정도다. 사실 발트 3국 자체가 주목도가 낮은 편이긴 하다. 예술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아서 현대 음악가인 아르보 패르트 정도가 국제적인 스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엔 상술한 [1944]가 반향을 일으켰고, [성난 화가]라는 에스토니아 배경 한국 영화가 있었지만 유명하다곤 보기 힘들다. 유튜브 채널을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라이프 오브 보리스의 보리스 거주지로 알고 있을 것이다. (참고로 보리스는 에스토니아인은 아니다.) 다만 음악을 매우 좋아하는 민족이라는 사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아르보 패르트의 출생지라는 것도 그렇고 1990년대 민주화 혁명도 노래 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에스토니아인들은 노래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에스토니아에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게임이 도착했다.


"We are family, Get up everybody and sing"

 

"한때 사랑을 했는데 그건 가스였고 곧 유리로 된 심장이 드러났지. 마치 진짜 같아 보였는데, 불신이 가득한 것을 알게 됐지. 사랑은 뒤로 가버렸어."

 

CRPG 게임이지만, 무기를 들고 다니며 전투로 경험치를 얻는 타입은 아니다. 오히려 어드벤처 장르에 가깝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CRPG 게임이다. 이 게임에는 CRPG에 기대할법한 장르적 요소가 있다. 주사위 체크, 능력치, 장비, 사이드 퀘스트, 체력/정신력 게이지, 아이템 수집 및 사용 등등... 하지만 이 게임은 일반적인 CRPG 게임이라 보기엔 범주를 넘어서는 특이함이 있다. 우선 장르에서 예측했지만, CRPG의 주류라 할 수 있는 판타지나 던전 탐색하고는 상관없는 CRPG다. 전투는 특정 시점에서 딱 한 번 등장하는데, 액션 없는 능력치 체크나 다름없어서 사실상 없다. 대신 다양한 상호작용을 해가며 대화문을 읽어가면서 선택지를 고르는 게 주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잡설로, 짧은 문단이 여러줄 나오는 대화문 연출은 SNS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 점에서 [디스코 엘리시움]은 검슈나 트레일 오브 크툴루 같은, 추리/탐정형 TRPG에 가깝다. 이 때문에 주사위와 판정 개념 역시 추리와 관련된 요소들로 이뤄져 있다. 어떤 지점에서는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화면 시점이나 사이코드라마풍 분위기 등에서 1998년에 나왔던 수작 어드벤처 게임 [새니토리움]하고 비슷한 지점이 있다. [새니토리움] 제작사가 이전에 [던전 앤 드래곤] 원작 RPG 게임을 만들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다만 능력치와 판정, 퀘스트 진행의 자유로움, 그리고 이런 디자인들을 창의적이고 치밀하게 재정의한 디자인 때문에 최종적으로 [디스코 엘리시움]은 RPG 장르에 안착하고 있다.

 

게임이 주는 시트로 플레이할 수도 있고,

 

직접 포인트를 찍어서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 많은 인격이 말을 걸어온다고 보면 좋다.

 

우선 [디스코 엘리시움]의 기술 시스템을 살펴보자. 게임 시작 시 플레이어는 준비된 캐릭터 시트를 선택하거나 스스로 만들 수 있다. 스스로 만들 때 각 분류별로 최대 6점을 찍을 수 있으며, 점수가 높은 기술 분류가 우위를 차지한다. 한편 시그니처 기술을 선택해 원하는 초기 기술 수치에 1점 가산점을 줄 수 있다. 기술 분류는 지식, 감성, 신체, 운동 총 네 개로 나뉜다. 지식은 지적 능력과 관련된 분류로, 탐정의 추리 능력과 관련된 기술이 배정되어 있다. 감성은 심리적인 능력과 관련 있으며 상대방의 마음 상태나 심리에 대한 능력치들이 있다. 신체와 운동은 신체 능력을 다루고 있는데, 전자는 신체 능력 자체를 다룬다면 후자는 신체 활용에 대한 능력치들이 포진되어 있다. 전투가 없는 게임답게 경험치는 전투 대신 한 퀘스트를 클리어하거나 대화를 통한 진전이 있었을 때 획득할 수 있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참신함은 개별 기술을 인격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여기다 단순히 기술을 인격으로 설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캐릭터를 부여하고, 적극 게임에 개입하게 하고 있다. 설정에서 [인사이드 아웃]이나 [유미의 세포들]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디스코 엘리시움]은 한 술 더 떠 다중 인격처럼 플레이어에게 참견하는 모습을 보인다. 플레이어는 이 기술=인격들과 소통하거나, 설득하거나 아니면 무시하면서 사건을 파헤쳐야 한다. 보통은 설정한 캐릭터 시트에서 가장 점수가 높은 기술 분류에 속한 인격들이 우위를 차지해 대화를 주도하는데 종종 무작위 확률로 다른 인격들도 등장하기도 한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그 점에서 사이코드라마 게임이기도 하다.

 

퍼크 시스템의 참신한 해석이라 할 수 있는 생각 캐비닛.

 

어떤 생각을 내면화하느냐에 따라 진행에도 영향을 미치니 잘 파악해놓자.

 

이를 잘 보여주는 시스템이 생각 캐비닛이다. 일정 시간 동안 판정에 제약을 받은 뒤, 가산점과 추가 선택지를 받는 퍼크 개념이라 생각하면 좋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플레이어는 어떤 생각이나 개념을 제안받거나 획득할 수 있다. 이 제안받은 생각이나 개념을 생각 캐비닛 메뉴에서 장착할 수 있다. 내면화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생각을 잊거나 세 개 이상 장착하려면 기술 포인트가 필요하다. 다만 한번 잊은 생각은 다시 획득할 수 없으므로 생각 잊기를 할거라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나 개념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획득할 때도 있지만, 사람 간의 대화 이외에도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주인공 머리 위에 둥근 버튼이 뜰 때가 있다. 이 버튼을 누르면 인격이 주인공에게 말을 걸면서, 생각이나 사상을 제안하기도 한다.


생각 캐비닛의 매력은 [폴아웃] 시리즈나 여타 CRPG에서 볼 수 있었던 퍼크 시스템이 롤플레이에 개입하면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Indirect Modes of Taxation'라는 생각이 있다. 이 생각은 초자유주의/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생각이다. 이 생각을 얻으려면 아파트에서 얻은 신발을 신고, 에브랏과 조이스에게 뇌물을 받은 뒤 자본주의적인 주장을 따르다 보면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캐비닛에 집어넣어 내면화하면 초자유주의/자본주의 선택지에서 추가 금전을 획득할 수 있다. 당연하겠지만 기술 점수 나아가 판정에 영향을 미치는 내면화 보상도 있다. 지금까지 퍼크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은 롤플레이 개입은 적었고, 일종의 부가 효과에 가까웠다면 [디스코 엘리시움]은 롤플레이와 사상, 보상 간의 연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 RPG 게임이 하지 않았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주사위 자체보다는 주사위 판정을 구성하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판정에 실패하여 이런 (삐-)를 하더라도 진행이 된다.

 

판정과 확률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주사위 자체가 특이하게 쓰는 게임은 아니다. [디스코 엘리시움]가 채택하고 있는 주사위는 일반적인 육면체 주사위 2개다 (2d6). 보통 TRPG에서 주사위를 다양하게 쓰는 걸 생각해보면 [디스코 엘리시움]의 주사위 체계는 좀 질박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한 구석이 있다. RPG 게임이 그렇듯이, [디스코 엘리시움] 역시 이 주사위를 굴려서 행동 성공 여부를 판정하고 있다. 판정은 능동적 판정과 수동적 판정으로 나뉜다. 판정 난이도 점수는 최저치가 11이고 최고치가 20으로, 판정 결과에서 고저가 표시된다.


진짜로 독특한 점은, 판정 구성이다. 먼저 [디스코 엘리시움]은 해당 행동에 대한 성공과 실패가 딱딱 긍정과 부정으로 나누지 않는다. 성공했음에도 더 나빠지는 때도 있고, 반대로 실패를 했음에도 뜻밖의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처절히 실패하고 울먹거리고 있으면 사람들이 동정해 더 좋은 결과를 얻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판정 시스템은 피아스코나 던전월드처럼 실패를 해도 다른 결과로 이어지는 종류의 TRPG에 가깝다. 왼쪽 아래에 게이지로 이뤄져 있는 체력이나 정신력 관리를 하지 못했거나 극단적인 선택지를 고르지 않는 이상, 게임 오버될 확률이 낮다. (대신 회복 아이템은 꾸준히 챙겨두길 추천한다.) 때문에 인격이 제안하는 선택에 대해서 나름 생각이 필요하겠지만, 실패에 겁내지 않아도 된다. 다만 후반부부터는 판정이 강요되는 퀘스트가 등장하기에 어느정도 육성과 장비를 통한 보정을 해야할 필요는 있다.

 

일반적인 주사위 판정 시스템에 가까운 능동 판정 선택지.

 

행동들이 능동 판정 가산/감산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고심할 필요가 있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판정은 능동적 판정과 수동적 판정으로 나뉜다. 먼저 능동적 판정을 살펴보자. 능동적 판정을 플레이어가 이 판정을 굴릴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대화 도중 메시지가 뜨는 판정 선택지를 일컫는다. 플레이어는 이 선택지를 눌러서 주사위를 체크한 후 행동을 할 수 있다. 위 스샷에 있는 "[의지 - 중간/10] 캐비닛 뒤지는 데 집중한다"라는 선택지를 살펴보자. 이 선택지는 "[기술명 - 기술/난이도 점수] 행동"이라고 보면 된다. 능동적 판정의 점수 체계는 2D6 (주사위 굴림) + 능력치 값 + 기술 값으로 이뤄져 있다. 이 판정이 11 이상이 되어야지 성공 판정이 뜬다.


이 선택지에 마우스를 올리면 확률 메시지를 볼 수 있다. 조금 전 선택지 같은 경우 마우스를 올려보면 "의지: 1 평범Even 42% +1 의지가 집중을 생각했다. 이 판정은 백색 판정입니다. 다시 도전할 수 있습니다. 실패 주사위 1/1, 성공 주사위 6/6"라는 창이 뜬다. 창의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자. 의지: 1은 해당하는 현재 기술 점수를 의미한다. 그다음 "+1 의지가 집중을 생각했다."를 보자. 이 부분은 행동을 통한 가산/감산점이라 보면 좋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서 다양한 선택지나 행동을 할 수 있는데, [디스코 엘리시움]은 능동 선택지와 관련된 행동으로 판정 가산/감산점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선택지나 행동을 고를 때도, 판정과 관련이 있는지 한번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 가산/감산점 시스템과 판정 시스템 간의 연계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치밀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다. 예를 들어 시체가 발견된 장소에서 쿠노라는 성격 더러운 소년을 만날 수 있다. 이 쿠노를 설득하는 능동 판정 선택지는 공감 판정인데, 판정 기준이 레전더리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공감 혹은 공감 기술이 속한 감성 분류 능력치가 높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근처에 있는 소녀 쿠노네스에게 말을 걸었거나 (+1), 시체를 총으로 쏴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던가 (+2), 총알 찾는 걸 봤다면 (+3) 충분한 가산점을 받아서 성공할 수 있다. 반대로 이런 행동을 하지 못했거나 쿠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선택지를 골랐다면 감산점을 받기 때문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본작엔 약물 및 장비를 통한 능력치 강화/보정 시스템 역시 이 가산/감산점 시스템과 연계해 능동적 판정 확률을 올리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도전하고 싶은 능동적 판정을 만났다면 최대한 준비하는 것도 게임을 즐기는 방법의 하나다.

 

백색 판정 같은 경우, 한번 실패했다면 다른 곳에서 점수를 얻어 기술을 올려 다시 도전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다음 '이 판정은 백색 판정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자. 능동적 판정은 도전 여부에 따라 백색 판정과 적색 판정로 나뉜다. 백색 판정은 설명 그대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판정을 의미하며 적색 판정은 한 번밖에 도전하지 못하는 판정을 의미한다. 보통 백색 판정 같은 경우 능력치 포인트를 다시 찍으면 재도전할 수 있기 때문에, 실패했더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적색 판정은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많고, 퀘스트 내에서는 중요한 상황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실패를 장려하는 게임이지만, 적색 판정 같은 경우 전체적인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나타난 주사위는 성공/실패 주사위다. 확률 무시하고 무조건 실패하거나 (1) 무조건 성공하기 때문에 (6) 별다른 가산/감산점 없이도 최소 3%의 성공/실패 확률이 있다고 봐야 한다.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없는 수동 판정. 안 그래 보이지만, 물밑에서는 판정이 한창 진행 중이다.

 

주도권을 가진 기술 분류나 기술이 가능한 행동 선택지로 진행되는 게임이라 보면 좋다. 이 때문에 다른 선택지를 보려면 캐릭터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 수동적 판정으로 넘어가 보자. 상술했던 가산/감산점 메시지를 다시 살펴보면, "+1 의지가 집중을 생각했다"라는 항목이 있다. 보면 알겠지만, 판정 내용이 묘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플레이어가 선택하거나 행동해서 얻은 가산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 인격인 의지가 알아서 판정하고 통보한 판정으로 가산점이 주어졌다고 보면 좋다. 비록 판정 당시 의지는 집중하는 데 실패했지만 어찌 되었든 관련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능동적 판정에도 추가 가산점을 받은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수동적 판정은 능력치 인격들이 알아서 계산해서 성공/실패 판정을 내린 뒤 플레이어에게 선택지를 통보하는 방식이라고 보면 좋다. 대신 능동적 판정과 달리 6+능력치 값+기술 값이라는 주사위 개념이 빠진 간결한 판정 체계로 이뤄져 있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게임 디자인이 일반적인 CRPG랑 달라지는 부분도 이 수동적 판정이 인격으로 구성된 기술 시스템과 만나는 지점에서다. 이 게임의 수동적 판정은 일종의 공기처럼 플레이어가 파악할 수 없도록 교묘하게 물 밑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게임이 일반적인 CRPG 게임에서 볼 수 있는 '능력치가 낮아서 이 선택지를 선택할 수 없음.' 메시지 자체가 없다. 특정 기술 분류 나아가 기술이 주도권을 잡는다면 관련된 선택지만 나타나고 관련되지 않은 선택지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는다면, 게임이 처음에 제안하는 캐릭터 시트 중 상반된 시트를 선택해서 동시에 또는 2회차 플레이해보길 바란다. 대표적으로 노조위원장 에브랏과 의자 앉기 문제로 눈치 싸움을 하는 부분을 들 수 있다. 이 의자는 앉으면 체력 대미지를 입으며 에브랏의 의도대로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의도한 스케일로 만들었으면 어떤 괴물이 탄생했을지 짐작도 안 갈 정도다.

 

RPG 장르의 롤플레잉이 무엇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게임이다.

 

여기서부터 캐릭터 기술이 어떻게 설정했느냐에 따라 진행이 달라진다. 필자 같은 경우, 1회차에서 지성 기술 위주 캐릭터로 플레이했을 때, 에브랏에게 저항하는 선택지가 떴지만 선택할 수 없었고 2회차에서 신체 분류 점수가 높은 캐릭터로 플레이했을 당시, 의지가 '나는 버틸 수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저항하는 선택지 자체가 뜨지 않았다. 인터넷상 소감을 하나 더 인용하자면, 감성과 운동 위주의 캐릭터를 만들었더니 저항하는 선택지와 결과가 떴고, 눈치 싸움 끝에 앉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다 생각 캐비닛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관련 선택지들까지 추가하면 텍스트 분량이 왜 방대한지 대충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1980년대 텍스트 어드벤처와 RPG의 자유로움과 풍부함을 숭앙하는 게임이며, 그 성취를 동시대 비디오 게임으로 이끌어오고자 한다.


사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제작 사정상 원래 계획에서 많이 축소된 게임이다. 이 때문에 메인 퀘스트만 한다면 20시간 정도로 길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이런 디자인들 때문에 [디스코 엘리시움]의 세계를 전부 파헤치는 건 5~60시간 거뜬히 걸릴 정도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인격=기술이 그 자체로 부副 게임 마스터가 돼서, 알아서 판정하고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내고 아니면 숨겨버리는 TRPG를 상상하면 좋다. 하지만 동시에 [디스코 엘리시움]의 디자인은 컴퓨터 게임이기에 가능한 디자인이다: 일반적인 오프라인 TRPG에서 여러 명의 부 게임 마스터가 앉아서 플레이어에게 판정을 내리고 있으면 어떤 혼란이 발생할지 짐작 갈 것이다. 그 점에서 [디스코 엘리시움]은 CRPG가 할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인상적인 답을 내놓고 있다. 만약 RPG를 캐릭터를 연기하고, 선택과 보상을 얻는 게임이라고 본다면, [디스코 엘리시움]은 그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뜻밖에 선형적인 부분이 있는데, 그 선형성이 잘 느껴지지 않게 연출해내고 있다. 칭찬 맞다.

 

다만 본격 추리물을 생각하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게임은 진상 자체는 크게 중요치 않은 네오 누아르 게임이다.

 

구축한 퀘스트와 기술 간의 촘촘하고 유기적인 관계와 여파는 강력하고 인상적이지만, 동시에 그 한계가 명백하게 보이는 게임이기도 하다. 이런 한계는 다회차를 할수록 강하게 드러나는데 기본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서사 구조가 회차를 반복할수록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곧장 말해 의외로 선형적이고 (특히 특정 요일 이후에만 가능한 시간 강제 퀘스트가 좀 있는 편이다.) 퀘스트의 진상에 플레이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 적다. 이 때문에 진정한 의미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게임이기보다는 하나의 진상을 파고들면서 가능한 가짓수에서 캐릭터를 연기하는 걸 즐기는 게임에 가깝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혁신적인 게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주어진 틀에서 꼼꼼히 공부하고 새로이 재해석하는 데 성공했다"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기본 텍스트 수준이 좋은데다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워낙 재미있다 보니, 이런 한계를 잘 느끼기 힘들다. 일단 플레이어가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 성향만 해도 총 네 가지인데다, 생각 캐비닛 요소 같은 다양한 조합으로 새로이 등장하는 선택지 수만 해도 엄청나게 많다. 구상에만 10년 이상 들이고, 실 제작도 5년 걸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고된 수작업의 결과물이라 보는게 좋겠지만 말이다. 결정적으로 이런 디자인은 어느 정도 의도한 경향이 있다. 후술하겠지만 [디스코 엘리시움]은 본격 추리 게임이 아닌 필름 누아르 (정확히는 네오 누아르) 게임이다. 이런 장르에서는 '진상'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경향을 보인다. '진상'을 더듬어가는 과정이 훨씬 중요한 장르라 할 수 있는데, [디스코 엘리시움]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집중하며, 실패를 장려하는 디자인하고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만약 본격 추리물이었다면, 생겼을 단점을 장르 선택으로 잘 메꿨다고도 할 수 있겠다.

 

어찌 보면 주어진 조건 내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뽑아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디스아너드] 팬이라면 취향을 저격할 부분이 많다.

 

좋은 건 게임 디자인뿐만이 아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당당하게 그래픽이 좋다고 할 수 있는 게임이다. 이런 단순한 아이소메트릭 시점 게임 그래픽이 얼마나 좋아봐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알렉산드르 로스토브가 이끄는 [디스코 엘리시움] 아트 팀은 원하는 미적 감각이 뭔지 잘 알고 그걸 기술적으로 구현할 줄 안다. 렘브란트, 일리야 레핀, 제니 새빌, 바실리 칸딘스키, 알렉스 카네브스키 같은 회화 전통에 영감을 받은 유려한 질감을 위해 텍스처와 모델링에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짐작이 안 갈 정도다. 전체적인 그래픽 질감은 [디스아너드]하고 비슷하다. 회죽 빛 색감 위주로 옛 제국주의 잔재 위에 기계적인 이미지가 유화 풍으로 구현되었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디스아너드]가 2012년 게임이고 [디스코 엘리시움]이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한 걸 생각해보면, 영향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명백히 1980년대 페레스트로이카 시절 동유럽을 연상시키지만, 기술적 발전 양태나 생태가 현대랑 사뭇 달라서 낯설게 느껴진다. 동유럽풍 고딕 SF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민 전선은 더 이상 여기서 살지 않는다


월요일에 오고 나면 목요일의 누더기를 어찌 할까.

여자는 다시 일요일의 광대에게 몸을 기대고 문 뒤에서 울겠지.

-The Velvet Underground, 'All Tommorow's Parties' 中

 

한때 사랑을 했었고, 그건 참으로 고결했지. 곧 내가 미쳐가고 있단걸 깨달았어.

마치 진짜 같았지만 난 눈이 멀어 있었지. 불신으로 가득한 채.

-Blondie, 'Heart of Glass' 中

 

시상식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한 감사 인사를 남겼을 정도니 [디스코 엘리시움]의 정체성이 어떨지는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정치적인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정치나 사회, 역사, 이념을 언급하지 않고 리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빼는 순간 아무것도 말할 수 없게 돼버리기 때문이다. 작중 설정을 살펴보자. 간과하기 쉽지만, 이 세계는 현실이 아닌 엘리시움이라 불리는 가상의 세계다. 감이 빠른 사람이라면 메인 메뉴 화면에 날아다니는 비행기구에서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1980년대 동유럽에 맞춰져 있지만 말이다. 배경이 되는 곳은, 엘리시움 내 인슐린데라는 대륙에 있는 도시 레바숄이다. 인슐린데 말고도 다른 대륙들이 있고 대륙에 국가들이 있다. 다만 페일이라는 기이한 안개 현상으로 교통이 발전하질 못해 세계가 구체로 이뤄져 있다는 걸 알지 못하며 대륙 간 교류 역시 활발하지 못하다. 꽤 암울한 뒷설정으로 이 페일은 실은 멸망의 징조라는 설이 파다하다.


레바숄은 인슐린데 대륙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로, 원래 파시스트 제국이었던 곳이다. 그러다가 먼 옛날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코뮌 정부가 생겼다. 하지만 이웃 나라의 연합이라 할 수 있는 코올리션의 간섭으로 정부가 무너졌다. 작중 시점에서는 붕괴 이후 40년 동안 무정부 상태로, 주변 국가들이 자기 세력권에 들이려고 밑작업을 하고 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이 레바숄의 항구 지역인 마르티네이즈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레바숄에서 유일하게 작동하는 행정/치안 조직인 시민 민병대 (소련 시절 소속 국가들 사이에서는 경찰 조직을 일컫는다.) 대원이다. 살인 사건 수사로 마르티네이즈에 출동한 주인공은 모든 기억을 잃고 다음 날 깨어난다. 이 설정에서 기시감이 든 역사 애호가들이 있다면 정확히 봤다. 이 세계의 역사는 에스토니아 역사랑 혁명 직전 러시아 제국의 역사, 프랑스 파리 코뮨의 흥망성쇠가 혼합되어 있다.

 

'가자! 노동해방'의 원곡 '야넥 비시니예프스키가 쓰러졌다'가 나오는 영화기도 한 안제이 바이다의 [철의 사나이].

 

에스토니아의 노래 혁명은 당시 발트 3국에서 일어난 혁명하고도 연계를 맺으며 진행됐다.


노래 혁명의 주역이지만, 자국에서는 여러 논란이 많은 에스토니아 정치인 에드가 사비사르.

 

한국인 관점에서는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질 세력 설정이 눈에 띈다.

 

게임 속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스토니아가 소련 체제에 있었던 나라라는 걸 상기해야 한다. 노동 운동이나 사상사를 조금이라도 접한 한국인이라면, [디스코 엘리시움]가 묘사하는 체제에서 혼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노조나 자본 같은 개념이 서방 자본주의에서 통용되는 개념과 반대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반에 보겠지만, 파업 중인 공장 앞에서 일하고 싶다고 투쟁하는 노동자가 대표적이다. 이 사람은 '자유 노동'과 '자유 경제'를 주장하며 파업을 그만두라고 외치고 있다. 반대로 노조위원장인 에브랏 클레어 역시 "혁명 동지"들이 상상할법한 "반동 돼지 간나"처럼 음험하고 권력에 쩌든 사람처럼 그려진다.


이런 묘사는 노동 운동을 다루는 소비에트 시절 동유럽 작품군에서 볼 수 있는 노동 투쟁 묘사의 변주에 가깝다. 대표적으로 안제이 바이다의 [철의 사나이]가 있다. 이 영화는 폴란드 자유 노조 투쟁사를 다루고 있는데, 폴란드인들이 스스로 만든 자유 노조와 소비에트 정부가 지명한 당원들로 이뤄진 공산당 노조 간의 대립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동유럽의 노동 투쟁은 소비에트 연합 공산당에서 독립하기 위해 민족자결주의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이 민족자결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자유 노조는 서구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끌어들이며 중도 좌파적인 관점에서 소비에트의 관료화된 노동조합을 저항하고자 했다. 에스토니아 역시 에드가 사비사르가 이끌던 에스토니아 인민전선 같은 단체가 비슷한 노선을 주창하며 노래 혁명을 이끈 바 있다.


[디스코 엘리시움]에서 등장하는 자유주의-자본주의에 친화적인 노동자와 노동 조합 간의 대립 역시 비슷한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처럼 권력을 쥔 자본가가 노동 조합을 만드는 것 자체에 대해 탄압했던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묘사다. 주목할 점은 이런 반 소련 운동 단체들은 소련 붕괴 및 독립 이후 대체로 주류 보수화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폴란드 자유 노조도 비슷하게 주류화되었으며, 에드가르 역시 에스토니아 자국에서는 혁명 영웅임과 동시에 도청과 부정부패, 친러주의, 국적 의혹으로 국민에게 곱지 못한 시선을 받고 있다. 그 점에서 1990년대 이후 동유럽/소비에트 연방 국가들은 어찌보면 혁명과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이 휘발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전반적으로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이 겪어야 했던 혼란들을 반영하지 않았나 싶은 부분이 있다.

 

심지어 내부 인격들조차 지지하는 정치 성향이 있을 정도다.

 

이 지점에서 [디스코 엘리시움]은 [철의 사나이]와 방향성을 달리한다. [철의 사나이]에서는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독선에 대한 반발과 민족적 자립주의, 서구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아볼 수 있었다. 반대로 [디스코 엘리시움]의 레바숄은 혁명의 환상과 이상주의가 소멸한 곳이다. 남아있는 것은 무주공산이 된 수도를 차지하려는 정치적 이익 집단의 복마전이다. 진상을 쫓아 마르티네이즈를 돌아다니다 보면 레바숄이 자유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인종차별, 우생학 같은 다양한 이념들의 전쟁터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심지어 꽤 노골적인 캐리커처도 있다. 영국 억양을 쓰는 자유 자본주의자인 중년 여성 조이스는 초상화를 보면 누굴 패러디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레바숄 전체를 지배하는 사상 체계는 아나코 생디칼리즘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낯선 용어니 설명을 하자면, 일단 생디칼리즘은 경제 용어다. 노동자들이 산업을 소유하고 경영하는 경제기구체제, 나아가 이런 뜻을 공유하는 정치적인 이익 집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나코 생디칼리즘은 여기다 정치사회적인 관점이 강하게 반영된 사상이라 보면 좋다. 생디칼리즘의 관점을 정치 사회적으로 확장시킨, 기업가 없는 노동자 자주 경영이라고 좀 감이 잡힐지 모르겠다. 한국에도 알려진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가 대표적인 아나코 생디칼리즘 지지자다. [디스코 엘리시움]이 이런 체제가 된 이유는, 외세인 코올리션 체제가 기존 코뮨 자체를 박살 내고 세금 없는 완전자유무역주의를 도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정치 지형에 맞춰 주인공 내부 인격이 지지하는 정치 성향도 있다. 예를 들어 화술은 공산주의를 지지하지만 반대로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인격도 있고, 현실의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랑 같은 도덕주의자 Moralist를 자청하는 인격도 있다. 심지어 공감은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급진적인 진보를 지지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인격들의 주장을 거부하고 정치적 무관심 또한 표현할 수 있다.

 

상당히 충격적인 뒷설정이 있는 돌로레스 데이. 작중 세계에서는 이런 성인(聖人)을 이노센스라 부르며, 강력한 정치적 상징으로 꼽힌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탁월함은 사상을 지지하는 인물들에게 입체적 깊이를 부여해, 사상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부분에 있다. 기본적으로 레바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중에서도 지탄받는 인종차별주의나 우생학을 제외하면,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공산주의자로 노동자들의 친구를 자청하는 에브랏은 마약이나 조직범죄 같은 어두운 영역에 손을 대고 있고 자유노동을 권장하는 자본주의자인 조이스 역시 위선적인 오만함과 더불어 뒤가 구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구 민주주의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자연히 관심을 두게 될 도덕주의 역시, 무주공산을 이용해 레바숄을 장악하고 이득을 얻으려는 타국의 찝찝한 의도가 있다는게 드러난다.


돌로레스 데이로 대표되는 이노센스에 대한 설정은 그 점에서 흥미롭다. 작중 세계에서 이노센스는 강력한 정치적 상징이자, 아이콘 같은 성인을 지칭하며 '역사의 필연성'으로까지 묘사된다. 요컨대 과거의 영광을 상징하는 캐릭터라 할 수 있는데, 후반부 교회에 들어서면 돌로레스 데이조차 특정 지역에서 끔찍한 학살에 관여했다는 게 밝혀진다. 참고로 무정부 상태인 작중 시점에서는 돌로레스 이후 새로운 이노센스는 없고 가짜 이노센스만이 판을 치고 있다. 이 설정만으로도 [디스코 엘리시움]에 도사리는 공허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Do You Like Disco Music? (or Rock Music)


밴: '카사블랑카 레코드와 테이프 사'에서 일하는 친구 말로는 2개월 전에 디스코 음반 판매가 바닥까지 떨어진 뒤 갑자기 죽었대, 끝이래.


조시: 저런, 슬프다.

 

데스: 우린 늙어가고 있어. 우린 살면서 끝난 기간을 겪었잖아. 마치 약간 죽는 것과 같아.


조시: 디스코는 절대 끝나지 않을 거야. 우리 마음과 가슴 속에 언제나 살아 있을 거야.

이런 것은, 이 크고, 이 중요하고 이 위대했던 건 절대 안 죽을 거야. 수년 동안 아마 여러 해 동안 디스코는 구식이고 웃기는 것으로 생각될 거야.

잘못 설명되고 풍자되고, 비웃음 받고 더 나쁘게는 완전히 무시될 거야.

존 트라볼타, 올리비아 뉴튼 존, 흰색 폴리에스터 정장 그리고 '플랫폼 슈즈'와 이런 것에 대해 비웃을 거지만...

 

우린 그런 것들과 아무 관계없었고 여전히 디스코를 사랑했어.

이해 못했던 사람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야. 디스코는 무엇보다도 훨씬 더 많고 더 좋은 것이었어.

디스코는 영원히 갈 만큼 너무 멋지고 너무 재미있어. 언젠가 돌아와야 해. 우리 생전에 다시 오기를 바랄 뿐이야.

-위트 스틸먼, [디스코의 마지막 날들] (1998) 中


본작의 조타수인 로버트 쿠르비츠. 예술계에서 활동하다 게임 제작으로 넘어온 경우라 할 수 있다.

 

이쯤 해서 제목에 디스코가 왜 들어있는지 궁금해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디스코 엘리시움]의 총괄하고 있는 작가 로버트 쿠르비츠Robert Kurvitz의 이력을 살펴봐야 한다. 로버트 쿠르비츠는 에스토니아 내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예술가로 유명하다. 소설도 썼는데 [디스코 엘리시움] 속 세계관 역시 쿠르비츠가 2013년 자국에서 발표한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중 주목해야 할 이력이 있다.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Ultramelanhool 가수와 작사가 경력이다. 한마디로 음악가로서 경력과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쿠르비츠는 [디스코 엘리시움]에서 상술한 정치 사회적 상황을 음악 문화와 사조랑 연계하고 있다. 성우진에도 뮤지션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그렇기에 음악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두말할 나위가 없는 [토요일 밤의 열기]와 1970년대 뉴욕 디스코 문화를 회고하고 있는 위트 스틸먼의 [디스코의 마지막 날들].

 

와이번스 팬들이 사랑하는 김트리오의 연안부두는 희자매와 함께 한국 디스코 음악의 상징이기도 하다.

 

먼저 디스코라는 장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부분은 '촌스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원색 옷들과 나팔바지, 16비트 박자, 아프로 헤어… 화려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유물로 여겨질 것이다. 디스코는 1970년대 미국 동부 뉴욕/필라델피아 흑인 클럽 문화에서 등장한 음악 장르다. 선조로는 소울, 펑크Funk, 라틴 음악을 두고 있다. 초기엔 인종, 성별, 성적 취향을 넘어서 디스코 아래 모두가 평등해질 수 있다는 구호를 내세운 대안 문화적인 성향이 강했다. 주류로 편입되던 록 음악에 반대하는 성향도 있었다. 그러다가 비 지스가 사운드트랙을 맡은 [토요일 밤의 열기]를 통해 흑인 문화를 넘어서 주류 문화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심지어 흑인들은 주류 디스코 열풍을 록 음악이 그랬듯이 백인들이 자신의 문화를 빼앗았다고 여길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전성기를 누리던 디스코는 '디스코는 구리다!'이나 '디스코 폭파의 밤' 같은 폭동으로 대표되는 반대 세력에 맞부딪쳤다. 디스코는 주로 나이를 먹어가던 클래식 록 문화하고 대립각을 세웠다. 디스코가 등장할 당시만 해도, 1960년대 인기를 끌었던 록 밴드들은 대부분 고도로 복잡한 작곡과 연주, 가사를 내세워 고급지고 예술적인 분위기를 지향한 프로그레시브 록이나 메탈로 진화했다. 이런 변화는 얻은 것도 있지만 동시에 말초적 쾌감과 단순함을 잃기도 했다. (펑크 록의 반발도 이런 변화랑 연관이 있다.) '디스코는 구리다!' 캠페인 역시 클래식 록 음악을 틀지 못하던 DJ의 반감에 가까웠다. 사실상 촌극에 가까웠던 사건이었지만, 여파는 심각했고 결국 디스코는 수그든다. 그럼에도 특유의 리듬과 전자음 사용 방식은 펑크 록, 일렉트로닉 음악, 팝에 큰 영향력을 남겼다. 로버트 쿠르비츠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리더였고, 성우진에 디스코를 천시하는 장르인 메탈 음악가들이 참여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상당히 아이러니한 구석이 있다.


디스코와 이념 간의 연계라니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빅토르 초이를 위시한 초기 러시아 록을 다룬 키릴 세렌브렌니코프의 [레코]. 에스토니아인들의 디스코에 대한 감정 자체를 파악하긴 어렵지만, '끝나버린 소비에트 시대의 잔재'로 다가온다는 것 정도는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속 디스코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현실과 같이 화려했지만 초라하게 사그라진 음악 장르다. 작중에서 디스코를 언급하며 그리워하며 사람들은 대체로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중노년 캐릭터들이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디스코는 화려했던 혁명의 열기지만 동시에 혁명의 후폭풍을 맞고 쇠락한 문화적 상징이다. 실제 에스토니아인이 동시대의 디스코를 어떻게 생각했는지까지는 파악하기 힘들겠지만, 핀란드랑 가까웠던 발트 3국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일부 러시아 지방이 동시대 서구 대중문화를 접하기 쉬웠던 걸 생각해보면 (빅토르 초이와 키노 팬이라면 감이 잡힐 것이다.) 디스코가 소비에트 붕괴 이전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정도는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브리티시 시 파워는 2010년대부터는 다소 화제에서 멀어진 모양새였는데, 이번 사운드트랙으로 새로운 팬층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정작 [디스코 엘리시움]의 음악을 담당한 브리티시 시 파워는 디스코랑 별 상관이 없다. 2000년대 초반 영국에서 결성된 브리티시 시 파워는 인디 록을 하는 밴드다.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붐이 한창이던 2003년 [The Decline of British Sea Power]라는 데뷔 앨범으로 평단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지만, 사실 이들은 대중적인 인기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Do You Like Rock Music?]가 영국 차트 10위에 오른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정규 앨범을 발표하는 와중에 이들은 사운드트랙 작업에 관심을 보였는데, [북극의 나누크]로 유명한 로버트 플래허티가 감독한 초기 무성 다큐멘터리 [아란의 사람들] (이 사운드트랙에 있던 Tiger King은 [디스코 엘리시움] 사운드트랙에도 재수록되었다.)나 [From the Sea to the Land Beyond]에 참여한 적이 있다.


어떻게 이들이 로버트 쿠르비츠와 ZA/UM하고 연결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제작진은 열성 팬이었다고 한다.), 브리티시 시 파워는 게임이 원하는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를 제대로 제공해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브리티시 시 파워는, 에코 앤 더 버니멘이나 조이 디비전 영향을 받은 어둡고 거친 포스트 펑크 록에다 앰비언트풍 음향과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웅장한 멜로디가 결합한 음악을 하는데 [디스코 엘리시움]의 사운드트랙 역시 비슷한 기조로 이뤄져 있다. 비록 사운드트랙 특성상 보컬 비중은 많이 줄어들고 앰비언트 성향이 강해졌지만, 'Whirling-In-Rags' 연작이나 'La Revacholiere', 보트 탈때 등장하는 'Burn, Baby, Burn' 같은 곡들은 브리티시 시 파워 팬들이라면 반길만한 귀에 감기면서도, 쓸쓸하고 웅장한 감수성으로 차 있는 곡이다. 특히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La Revacholiere'은 밴드가 쓴 곡 중에서도 인상적인 곡 중 하나에 들 수 있다.


"난 행복에 익숙하지 않아요. 웃기기도 하고 아프기도 해요!" "아래를 보지 말아요. 늘 위를 봐요!"


날잡고 텍스트만 내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임도 오래간만이었다. 물론 어렵긴 하다.

 

캐릭터 메이킹 수준이 뛰어난데 심지어 인종차별 욕설을 달고 다니는 꼬마 쿠노조차도 의외로 매력적이라 느낄 정도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최대 강점은 이런 무수한 정치사상이나 문화적 요소들이 캐릭터와 플롯 속에 매끄럽게 융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이 캐릭터는 저 이념을 대표한다! 이 문화적 요소를 상징한다! 수준을 넘어서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납득이 됨과 동시에 그들의 사상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수준이 높다. 무엇보다도 텍스트 질이, '정말 비영어권 화자가 이런 영어 텍스트를 썼다고?' 싶을 정도로 좋다. (덧붙이자면 에스토니아는 전반적으로 영어를 잘하는 국가라고 한다.) 반대로 말하면 영어권 화자가 아니면 이 텍스트를 온전히 즐기기엔 다소 벅찰지도 모르겠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영어는 단순히 어렵거나 많거나 수준이 아니라, 일관된 미적 감각과 사상을 구체화하기 위한 도구다. 심지어 대문자로 현지인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어려운 조어만 써대는 극한의 우생학 파시스트 캐릭터가 등장할 정도다. 하나라도 허투르게 잘못 번역하면 분위기를 망칠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 텍스트를 한국어로 즐기고 싶다는 욕망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사운드트랙도 그렇고 [디스코 엘리시움]의 전체적인 감수성은 포스트-나 블랭크 제네레이션의 텅 비고 공허한 감각에 가깝다. 살짝 언급하기도 했지만, [디스코 엘리시움]은 이런 공허함을 담아낼 장르를 정확히 찾아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훌륭한 필름 누아르 (정확히는 네오 누아르)다. 이 게임엔 누아르가 가지고 있는 장르적 특성을 전부 갖추고 있다. 우울한 탐정, 배배꼬인 범죄, 팜 파탈, 사건의 해결보다는 여파와 과정이 중시되는 서사 진행, 맥거핀처럼 다뤄지는 진상, 표현주의풍 아트워크가 대표적이다. 결말 역시 추리물보다는 누아르의 그것에 가깝다. 여기다 경찰 수사물이 곁들어지면 [디스코 엘리시움]의 세계가 탄생한다. 제작진 역시 [트루 디텍티브], [더 실드], [더 와이어], 대실 해밋 같은 이름들을 언급하고 있다.


북유럽과 동유럽의 건조한 블랙 유머를 좋아한다면 꽤 취향에 맞을 것이다.

 

레이브 음악이 1980년대 말부터 등장해 동독을 비롯한 소비에트권에서 제법 인기를 끌었다는 걸 유념한다면 이 친구들도 그냥 튀어나온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공허한 감수성에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기괴하고 초현실적인 유머와 악몽을 덧붙이고 있다. 연인과 헤어져 버리고 현실에 찌들린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 뇌내에서 벌어지는 오싹하고 기이한 악몽, 혼란한 사회 속에서 악다구니를 벌이거나 지나치게 무기력해져 버린 사람들, 동유럽의 엄숙한 관료주의에 대한 풍자, 사라지지 못하는 역사의 망령들, TRPG가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자조적인 농담이 등장한다. 이 어두운 유머 감각엔 동유럽이나 북유럽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무덤덤함과 기벽적인 개성이 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그 점에서 알렉세이 게르만이나 키라 무라토바 같은 페레스트로이카 전후 무기력한 혼란상을 다룬 동유럽/러시아 블랙 코미디의 충실한 후계자라 할 수 있다. 물론 제작진이 밝혔듯이 스뚜르가츠끼 형제 같은 동유럽 SF나 데이빗 린치 (기술 Inland Empire는 린치에 대한 헌정이다.)나 차이나 미에빌 같은 위어드 픽션의 거장들도 거론해야 되겠지만 말이다.


물론 텅 빈 감각이나 오싹한 유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누아르는 바닥에 떨어진 영혼들을 냉철히 살펴보면서도, 그들에 대한 연민과 구원을 얘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디스코 엘리시움]도 그런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디스코 엘리시움]이 선택한 메시지는 놀랍게도, 희망과 구원이다. 그것도 지극히 논리적이고 개연성이 있어서 이 결말 말고는 다른 방향을 생각할 수가 없을 정도다. 첫번째 단서는 서브 퀘스트에 등장하는 청년들이다. 이들은 이 게임에서 등장하는 음악 사조 중 가장 '미래지향적'인 음악 장르를 사랑하고 있다. 바로 레이브다. 레이브가 1980년대 말부터 유행했던 걸 생각해보면, 디스코가 사라진 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들은 추악한 어른들이 유통한 약물에 취해 있어도 기본적으로 선량한데다 과거의 유물 교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려고 하는 에너지가 있다. 퀘스트의 방향 역시 레이브 클럽과 음악을 만들려는 이들을 지원해주고, 마약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노력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물론 모든 게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지만 말이다.


'이상주의'라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굉장히 단단한 '이상주의'라 감동적인 구석마저 있다.

 

두번째는 메인 스토리 누설이 있는 관계로 길게 말하지 못하지만, 음악적 요소를 포함한 초현실적인 기적과 희망에 가깝다. 이 기적은 하찮은 진상과 바꿀 수 없는 현실이라는 필름 누아르적인 결말에 덧붙여져서 훨씬 절실하게 다가온다. 현실은 실망스럽고, 구태와 악습은 바꿀 수 없고, 진상은 시시하다. 하지만 언제나 아름다움과 희망은 있고, 너무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말자고 [디스코 엘리시움]은 말한다. 다소 뚝하고 끊기는 것처럼 보여도, [디스코 엘리시움]의 결말에 울림이 있다면 쉽게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는 성숙한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사상을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진짜로 잃어서는 안 되는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주제 의식은 현시대에 많은 걸 시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결말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게임 디자인하고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점에서 게임 디자인과 주제 의식 간의 유기적인 조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한몫한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그 점에서 형식과 내용의 조화를 이뤄낸 비디오 게임이기도 하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장르와 디자인에 대한 깊은 이해, 치밀한 설정과 고민이 담긴 텍스트 위에 펼쳐지는 강력하고도 인상적인 스토리텔링, 독창적인 시청각 연출을 지닌 RPG 게임이다. 이 게임은 평범한 탐정 어드벤처/RPG처럼 보이지만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왔던 RPG의 역할수행 (롤플레잉)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청하며 플레이어의 역할수행 그 자체를 온갖 사상과 선택으로 이뤄진 복잡한 현실의 영역까지 데려간다. 그리고 그 영역 위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절실한 질문을 던진다. 물론 순수히 탐정 어드벤처/RPG로 즐겨도 [디스코 엘리시움]은 충분한 포만감을 안겨주는 게임이다.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필름 누아르라는 관점에서 보면 더할 나위 없는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궁극적으로 고된 '수작업'로 만들어진 게임이라서 이뤄낸 성취를 후속작에서는 이을 수 있을지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디스코 엘리시움]이 이뤄낸 성취가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 영어의 압박을 이겨내고 즐길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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