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 치기 가을 여행 - dang-il chigi ga-eul yeohaeng

당일 치기 가을 여행 - dang-il chigi ga-eul yeohaeng

아침마다 두꺼운 옷을 꺼내 입기 시작하면서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벌써 가을이래. 하루하루 추워지는 날씨에 그마저도 순식간에 지나가 버릴 것만 같다. 가을을 이대로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지만, 여행을 떠나기에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여유가 없어 망설이게 된다. 가을을 즐기고 싶다고 해서 자유롭게 이리저리 다닐 수도 없는 시기. 소문 난 단풍 명소, 핑크뮬리 포토존 등 가을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을 가자니 아직 잠잠해지지 않은 코로나가 걱정이다.

거리두기를 충분히 지키면서도, 시원한 가을바람 맞으며 단기간에 자연에서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곳 어디 없는지 고민된다면. 예스러움이 물씬 풍기면서 아름다운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강화도로 향해보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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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강화도, 볼 것도 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가을이라 더 특별했던 강화도의 매력을 소개한다. 역사 여행부터 낭만 가득한 카페, 입이 떡 벌어지는 황홀한 자연경관까지. 어느 하나 부족할 것 없이 알찬 강화도 힐링 당일치기 여행, 함께 떠나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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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미정·월곶돈대 -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강화 8경에 꼽힐 만큼 남다른 절경을 자랑한다는 연미정. 강화도 동네 전경부터 한강과 임진강의 만남의 장인 연미정 앞바다까지 높이 올라 한눈에 바라보고 싶어 강화도 여행의 가장 첫 번째 코스로 찾았다.

연미정 근처에 도착하자 동네 곳곳에서 느껴지는 옛 감성 가득한 삶의 흔적들. 도시에서 더는 찾아보기 힘든 작은 것들 하나하나에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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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곶돈대로 오르는 길 오른쪽으로 보이던 조해루. 조해루 바로 앞에는 군부대가 위치해 있어 사진 촬영이 제한된다. 월곶돈대에 도착하자 바로 보이는 정자 연미정. 그리고 500년 된 느티나무. 정묘호란 때 조선 선조가 청나라에 굴복하여 강화도 조약을 맺은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드라마 "왕은 사랑한다" 촬영지라 곳곳에 포토존도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연미정에 이르는 해변길을 따라 설치된 이중 철조망을 만나면서 북한이 가까워진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손에 잡힐 듯한 북한땅까지 보이는 강화도 최고의 '뷰 맛집'이라는 점이 연미정의 가장 큰 매력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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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정은 지붕 선이 아름답다. 하늘을 향해 올라간 처마선에 달이 걸린 풍경이 아름다워 달맞이 하는 곳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연미정을 사이에 두고 원래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작년 9월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보호수 하나가 부러졌다. 500년이 넘는 세월을 버틴 거목이 태풍으로 무너졌다니,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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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 성공회 강화성당·용흥궁 - 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연미정에서 내려와 동서양 문화가 아름답게 공존하는 최초의 한옥 성당 대한 성공회 강화성당으로 향했다.

서양식 성당에 익숙했던지라 처음 강화성당을 봤을 때 성당보다는 산속의 사찰에 온 것 같았다. 외부는 전통 한옥 양식,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져 독특한 느낌이 나는 성당이다.

성당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웅장하고 견고한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한옥 건물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으니 신기하면서도 조화롭게 느껴졌다. 클래식한 전등과 원목으로 구성된 성당 안은 화려한 유럽 성당들과 차별화되는 매력이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성당 내부는 관람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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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에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 성당 주변을 더 산책했다. 그러던 중 '종교 이야기길' 안내판을 발견했다. 골목으로 들어가면 조선 후기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던 용흥궁을 볼 수 있다. 우연히 찾아간 곳이지만, 마치 사극 드라마 세트장에 온 것 같이 아기자기하게 구성된 모습이 사진 명소로 제격이었다. 좁은 골목길에 아담한 규모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도 지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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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성공회 강화성당과 마찬가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주변을 산책하기만 해도 충분히 힐링 되는 공간이다. 잠시 앉아 한적하고 고요한 주위를 살피니 복잡한 현대 삶에서 벗어나 혼자만 조선 시대에 잠시 와 여유를 즐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골목과 어울리는 꽃들과 싱그러운 나무를 천천히 감상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비록 코로나19로 제약이 따랐지만, 연미정과 대한 성공회 강화성당 인근에서 간단하게나마 즐겁게 역사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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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토크라피 - 인천 강화군 화도면 해안남로 1691번길 43-12 강화도는 예쁜 카페가 많기로 유명하다. 바다 뷰, 꽃이 예쁜 곳 등 다양한 컨셉의 카페가 가득해 강화도에서 '카페 투어'만 다녀도 실컷 즐길 수 있다.

코로나로 길어진 집콕 생활에 지쳐 갑갑한 요즘. 야외 테라스에서 탁 트인 바다를 보며 시원한 바람을 맞고 싶어 동막리 해안을 볼 수 있는 오션뷰 감성 카페를 찾았다.

토크라피는 강화도 카페 중에서도 바다를 포함한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제2주차장까지 있을 정도로 강화도 대표 '뷰 맛집 카페'로서의 명성을 구축해오고 있다.

'대화와 관계를 위한 카페'. 이전에는 별 의미 없이 다가왔을 설명이지만 코로나로 부쩍 지인들과의 만남과 대화가 부족해진 상황에 이 글귀를 접하니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음에 꽂힌다.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당연하다고 느껴졌던 일상이 너무도 그리운 요즘.

실내 자리도 좋지만, 이 카페를 찾은 목적이었던 오션 뷰 테라스로 향했다. 바로 앞에 펼쳐진 서해바다를 보니 가슴이 뻥 뚫린다. 찾기 다소 어려운 곳에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던 순간. 절로 '이런 곳이 있다고?'라는 감탄이 나온다.

카페 구석구석을 다니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인기 만점 새하얀 고양이. 카페와도 정말 잘 어울리는 귀여운 고양이 역시 이 카페의 매력을 한층 끌어올린다.

오전에 열심히 돌아다녀 당 충전이 필요하다고 느끼던 찰나, 고소한 빵 냄새가 발길을 카페 안쪽으로 이끌었다. 향은 말할 것도 없고, 먹음직스러운 비주얼까지.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군침이 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집게를 잡았다. 먹음직스러운 빵들 사이에서 한참을 방황하던 집게가 드디어 빵 하나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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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메뉴는 아몬드 크루아상(8000원), 아인슈페너(7000원), 그리고 라벤더 레모네이드(7000원). 다소 비싼 가격이지만 '이걸 아까워서 어떻게 먹나' 싶을 정도로 예쁜 비주얼에 '기꺼이 이 돈 주고 사 먹을 만하다'라고 생각했다. 빵과 음료 모두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단순히 '인스타 감성 카페'로 알려져 예쁘기만 한 카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았다. 빵은 너무 달지 않아 계속 손이 갔고, 아인슈페너는 부드러운 크림과 커피의 조합이 예술이었다. 에이드는 라벤더 잎을 진하게 우려 향기로우면서도 깔끔했다. 여름에 마셨으면 그 청량함이 배가됐을 것 같다.

가을바람 맞으며 '낭만 한 잔' 하다 보니, 어느새 노을을 보러 갈 시간.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뒤로하고, 더 예쁜 강화도를 만나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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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모도 칠면초 군락지 - 인천 강화군 삼산면 석포리 950 가을을 맞아 강화도를 찾은 가장 큰 이유였던 칠면초. 찾아가는 내내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사진으로만 봐왔던 '바다의 붉은 단풍'이 정말 눈 앞에 펼쳐질지. 혹여나 너무 늦은 건 아닌지. 칠면초가 핵심인데 막상 보니 실망스러운 모습이라면 가을 강화여행의 기억이 좋게 남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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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기 전에 칠면초를 보기 위해 부지런히 석모도로 향했다. 어렸을 적 가족들과 이 섬을 갈 때 차를 배에 싣고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던져주며 바다를 건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젠 다리가 놓였다. 석모도를 향하는 다리를 건너면서 창문 너머 바라본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마음은 급했지만, 도저히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운 광경에 차를 세워 그 아름다움을 눈과 사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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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길이 약간 어려워 헤매던 끝에 눈 앞에 펼쳐진 붉게 물든 칠면초. 다행히 늦지 않았구나. 여행 내내 즐거우면서도 마음 한편에 긴장과 걱정이 동행했는데, 붉은 바다를 마주하자 그 불안한 감정들을 완전히 떨쳐내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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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가 칠면초 명소로 잘 알려진 곳은 아닌데, 그래서 더 한적하게 즐길 수 있었다. 난생처음 본 칠면초를 강화도에서 여유롭게 만끽할 수 있어서 그저 행복했다. 한해살이풀인 칠면초는 녹색, 회색, 자주색 등 그 색깔이 자주 변한다. 여름에 녹색이던 칠면초는 가을에 들어서면서 붉게 물들고, 11월 즈음이면 회색빛으로 마른다. 붉은 빛깔의 칠면초를 보기 위해서는 10월 안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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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으로 찍은 하늘에서 바라본 칠면초와 바다의 조화. 사진에서는 실제 색감을 완벽하게 담지는 못하지만 '바다에도 가을이 왔구나' 실감하게 한다. 초가을에만 볼 수 있는 진귀한 광경이다. 칠면초의 아름다움에 반해 쌀쌀한 날씨를 잊고 한참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쉬움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강화도와 작별하는데, 예쁜 노을이 잘 가라며 배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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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올게, 가을마다 올게. 다소 즉흥적으로 떠난 강화도 가을 여행,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강화도 가을 명소 하면 딱 떠오르는 무엇인가가 없다고 생각해 큰 기대 없이 갔는데, 매년 가을을 강화에서 보내고 싶을 정도로 제대로 힐링하고 돌아왔다. 이렇게 예쁜 곳을 여태 몰라봤다니.

당일치기로 다녀와 미처 못 가본 강화도 명소가 많다. 해외여행 한 번 갈 것 아껴 강화에 몇 번이고 더 방문하고 싶다. 내년 가을에는 강화도가 또 어떤 감동으로 다가올지. 벌써 내년 가을이 기다려진다.

[강예신 여행+ 인턴기자 / 사진=유건우 여행+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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