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연 끊기 - appalang yeon kkeunhgi

아빠때문에 너무숨막히고 힘들어서 아빠랑 대판하고 거의 연끊었거든
참아보고 내가 어땠는지 어떤지 말해봐도 점덤더 심해져서 아빠의 그 강압적이고 부정적인 말투 듣는것만으로도 스트레스받고 힘들었어ㅠㅠ
결국 남보다도 못하더라고...진짜 남보다도 못하다는 생각밖에 안들더라.
다른부모들은 다 자식 걱정이 먼저인데 떠올려보면 좋은말 한마디를 들을수가 없었더라. 항상 내가 뭘했는지 아빠가 컨트롤하려는게 먼저..내가지금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뭔지는 관심도없고..내 나이30에 본인이 원하는대로 내가 안하면 버럭 화부터내는...할머니가 조금만 조언해도 할머니한테 버럭화부터 내면서 나에대한건 하나하나 본인이원하는데로 컨트롤하고 내결정에대한 존중이라곤 받아본적이 없었어...그걸 30년이나 지나서 확실하게 알았네...그냥 가족들은 다 이런줄 알았어...
엄마는 아빠가 저러는거에 대해서 방관자였고...말해도 그렇게 심한줄 심각한줄 몰랐다 부모도 처음이니까 몰라서그런거더 결국은 너가 그냥 네네하고 넘어가라 싸우지말고. 가 끝이더라고.

근데 이번에 외할아버지제사라고 연락이왔는데
가야할까?
그래도 제사는 가야하지않나 하는데 아빠만날생각하니까 벌써부터 숨이턱턱 막혀...


익명에 글 제목이 다소 자극적인 점 양해바랍니다
더한 제목도 쓸수있었는데 그럼 글을 올릴수없으니..
저는 올해로 꽉찬 40이되었고 미혼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자식은 저 혼자이고 회사는 그럭저럭 잘 다니고있습니다 연봉 7천정도니 그냥 혼자 지내기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애비라고 칭한 분은 제가 대학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변변한 벌이가 없었고 고등학교때부터 대학2학년때까지 할머니집 남은 방에서 세식구가 전전긍긍하며 지냈습니다
좁아터진 방에서 지내기싫었던 애비는 1년정도 가출(?)한 적도 있습니다ㅎㅎ
어느날 돌아와서는 아무일 없다는듯이 같이 또 살았죠 어머니가 고생이셨죠 그 고생을 다쓰면 너무 길어지니....

여튼 어찌어찌 모은돈으로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되었고 제가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되지않아 근처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되었습니다
딱히 이사를 갈 생각도 없었는데 애비라는 분이 더 넓은 아파트를 원했는지 갑자기 제 명의로 아파트를 계약하자고 하더군요 대략 10년전도 쪼금 넘은 때이군요
전 반대를 했으나 어머니도 못이기는척 해주라고해서 제 명의로 대출을 받아서 이사를 갔ㅈ습니다
대출을 받을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였죠..
이미 애비는 신불자에 어머니도 뭐 전업주부셨으니

그후 7년?8년정도를 대출이자를 온전히 제가 다 부담했고 나중에는 원리금까지 같이 갚아나가다보니 부담이되더군요
그 기간동안 애비는 단 한번도 대출이자를 낸적도없고 물어본적도 없습니다
세식구 같이 온전히 우리집에서 살고 있으니 그냥 좋게 생각했습니다
입사 후에 시간이 흐르고 30중반이되니 결혼도 해야하고 이미 그 전에 분가를 해서 독립을 했었어야했는데(아직도 좀 후회가 됩니다) 딱히 모아놓은 돈이 없더군요..ㅠㅜ 월에 원리금에 이자에 부모님 보험비에 저도 써야하는 돈에..
그때즈음 애비라는 분은 저에게 연락하여 돈을 빌리기 시작합니다 뻔하죠 도박입니다
제가 유년기때 돈좀 벌었던 애비는 도박으로 가산 탕진하더니 제가 회사에서 자리좀 잡을때즘 저에게 돈을 빌려 뭔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밝히지않아도 뻔하죠...천만원정도 나누어 빌려준거같네요
일하고 있는데 연락와서 돈빌려달라고 추궁하면 사람 진짜 돌겠더군요 무슨 사업을 하다가ㅈ어려움에 처한것도 아니고 하아...

2년전쯤 술먹고 집에 들어가는데 집앞 놀이터에
애비랑 낯선 여자가 같이 있습니다
술도 먹어서인지 이성을 잃었습니다
집에 올라가서 옷갈아입고 어머니 걱정하실까봐 잠깐 나간다고ㅈ후다닥 내려가서 두년놈에게 갔습니다
뭐하냐?
애비에게 던진 말입니다 그동안 담아온게 폭발했죠
년에게 물어봅니다 누구세요? 당당히 얘기하네요
이 분(애비) 여자친구라고..
애비 멱살잡고 울부짖었습니다
집앞에서 이렇게 만나다니 아무도 모르는곳에서
쳐만나도 되는걸 어머니도 집에 계신데 집앞 놀이터에서...니가 애비냐고 사람이냐고

집에 들어가서 분을 삭히고 있는데 애비가 들어오더만 호로새끼라고 욕합니다
애비가 그모냥이니 새키도 호로새끼지 이 XX놈아

당장 집에서 나가라고 했더니 돈달랍니다
2천만원 주면 나가겠다고ㅎㅎㅎ
어머니께서 나중에 저를 만류합니다 저 인간 저런거 30년넘게 봤는데 불쌍하니 냅두자
저렇게 집나가면 어디서 밥도 못먹는다고..

저라도 나가려고 집팔고 분가하려는 도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부모님은 몇년전에 법적으로 이미 이혼을 했더군요
집을 팔고 전세로 이사와서 제가 살 집을 보려고했는데 갑자기 주택자가되면 전세금 대출을 환수당하더군요...전세담보금 이자, 주담대출 이자 제가
미혼에 애도 없으니 감당할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대출 자체가 저리되니 1년넘게 또 세식구 같이 살고있습니다

그 난리통에 애비는 어찌어찌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같이 있지만 얼굴보고 얘기도 안합니다
어차피 평일은 퇴근하면 잠깐 보는 얼굴이고 주말이 좀 괴로울뿐이네요
여자문제요? 해결안됐습니다 아직도 만나고있는거같습니다
어머니 핸드폰 카톡을 보게되었는데..애비랑 카톡한 내용이 참..
얼마전부터는 낮에 쳐나가면 새벽에 들어오는데
뭔짓 하는지는 모릅니다 알고싶지도않고 솔직히
나갔다가 들어오지 않았으면 하구요
오늘은 갑자기 나가더만 문자가 왔습니다
돈좀 입금하라고...ㅎㅎ 담주에 주겠으니 짜증내지말고 달라고

오늘 결정했습니다 저 인간과 연을 끊기로..
월세라도 제가 나가기로..
도대체 저는 40먹을동안 뭐한건지 자괴감도 들고
조금 더 영민하게 하지 못한거 조금 더 돈을 모으지 못한거..

너무 긴글이 되었네요 푸념할곳이 없어 해봅니다..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하는 날입니다. 새벽 4시 30분에 맑은 종소리를 내보내며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행자 만일결사 중 제10차 천일결사, 제6차 백일기도 중 76일째 기도를 시작하겠습니다.”

예불,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한 후 스님이 오늘 읽은 경전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먼저 지난 76일 동안 꾸준히 기도를 해 온 초심자들을 격려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람을 평가할 때는 대부분 그 사람이 타고난 재능을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흔히 ‘이 사람은 이걸 타고났다’, ‘저 사람은 저걸 타고났다’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재능

그러나 가장 소중한 재능은 부지런함입니다. 불교에서는 다른 말로 ‘정진’이라고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도 열반에 드실 때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이 ‘수행자는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해야 한다’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꾸준히 지속해가는 것은 그 어떠한 재능보다도 자신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큰 힘이 됩니다.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 꾸준한 정진보다 더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도 삶을 살면서 자꾸 타고난 재능을 기준 삼아서 실망하곤 하는데, 그런 재능보다 꾸준히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꾸준히 정진해 나가는 사람보다 나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타고난 재능은 지금 와서 한탄한다고 바뀌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보고 내게 주어진 것을 점점 키우는 길은 오직 정진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루도 쉬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는 것이 해탈과 열반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꾸준한 노력과 정진의 과정을 거쳐서 자유와 행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려고 하지 않고, 마치 일확천금을 한 번에 벌려고 욕심을 내는 것처럼, 마치 하룻밤 자고 일어나서 출세한 모습을 꿈꾸는 것처럼, 과정과 노력 없이 좋은 결과를 만들려는 욕심으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수행마저도 그런 욕심으로 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도 하다가 그만두는 것을 반복하게 되고, 정진하는 도중에 망설이고 회의를 느끼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있고, 믿음이 있고, 실천을 통해서 작게나마 체험한 바가 있다면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방향이 잡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남은 일은 꾸준히 정진해나가는 일밖에 없습니다.”

이어서 오늘 읽은 경전의 내용에 대해 자세히 해설을 해준 후 마지막으로 주말에 으뜸절과 실천 장소에 봉사를 하러 오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요즘은 수확의 계절입니다. 곧 벼를 베어야 하고, 고구마도 캐야 하고, 들깨도 털어야 합니다. 일거리가 아주 많습니다. 전법활동가들은 자기가 맡은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진행을 충실히 해야 하지만, 일반회원들 중에서 혹시 시간 나시는 분들은 좋은 가을 날씨에 봉사활동에 많이 참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도 이 법문이 끝나면 곧바로 밤을 주우러 나가야 합니다. 또 오늘은 겨울 채소를 심는 날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조금 더 마음을 내셔서 각 실천 장소에서 봉사활동을 해주십사 요청드립니다.”

생방송을 마친 후 스님은 작업복을 입고 밤을 주우러 갔습니다.


오늘도 고무 대야가 가득 찰 정도로 밤을 많이 주웠습니다. 먼저 큰 통 물에 담근 뒤에 물에 뜨는 밤은 벌레가 먹었을 가능성이 커서 우선 건져냈습니다. 그리고 3단으로 물을 받아 밤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한 후 마당에 천을 깔고 밤을 분류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벌레 먹은 밤과 성한 밤을 분류한 후 다시 성한 밤을 대, 중, 소로 분류했습니다. 벌레 먹은 밤은 대, 중, 소로 분류했습니다. 분류한 밤을 햇볕에 잘 말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선물용 밤을 엄선하여 포장을 했습니다. 깨끗한 밤을 비닐에 담아 저울에 무게를 달았습니다. 1kg이 될 때까지 밤을 더 넣거나 빼거나 조정하며 하나씩 정성껏 포장을 했습니다. 밤을 포장하는 중에도 더 좋은 밤을 넣기 위해 또 고르고 골랐습니다.

같이 일하던 행자님이 정성을 다해 밤을 포장하는 스님을 보고 말했습니다.

“스님의 이 정성을 선물을 받는 사람들이 과연 알까요?”

“알면 뭐하고, 모르면 뭐해요.” (웃음)

스님은 웃으면서 다시 밤을 날랐습니다.

한참 동안 포장을 한 것 같은데 몇 봉지인지 세어보니 10 봉지밖에 안 나왔습니다.

“스님, 몇 봉지나 더 만들어야 해요?”

“70봉지를 만들어야 돼요.”

함께 일하던 행자님의 눈이 갑자기 풀렸습니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서 1차로 선물 포장 작업을 마무리하고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전 10시부터는 밭에 마늘을 심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대구 수성지회에서 봉사자들 몇 분이 와서 농사일을 함께 도왔습니다.

이랑 하나를 봉사자들이 맡고, 스님과 향존 법사님이 다른 이랑 하나를 맡아서 마늘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일찍 평이랑을 만들고 유공 비닐을 멀칭해 두어서 마늘을 심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마늘을 열심히 심고 있는데 땅 속에서 땅콩이 나왔습니다.

“스님, 땅 속에서 땅콩이 계속 나오는데, 간식으로 먹어도 돼요?” (웃음)

“네, 엊그제 이 밭에서 땅콩을 수확해서 그래요.”

땅콩 수확을 마친 밭에 곧바로 마늘을 심었습니다. 구멍마다 마늘을 쏙쏙 넣어주기면 하면 되어서 일이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구멍이 정말 많네요. 한 손으로 심을 게 아니라 두 손으로 심어야겠어요.”

스님은 두 손으로 마늘을 심어 나갔습니다. 마늘 심기를 스님보다 훨씬 일찍 시작한 봉사자들보다 스님이 저만치 앞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손이 느려서 농사지어서 먹고 살기는 어렵겠어요.” (웃음)

“저는 마늘은 못 심어도 고추는 잘 땁니다.”

“그럼 고추 밭에 가서 일하겠다고 신청하지 그랬어요?”

“다음에는 그렇게 할게요.”

봉사자들에게는 스님과 마주 앉아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좋았습니다.

“스님, 너무 영광입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그럼 주말마다 봉사를 하러 오세요.” (웃음)

마늘을 심은 후에는 흙을 덮어 주었습니다. 봉사자들은 모종삽으로 구멍마다 흙을 덮어주고, 스님과 향존 법사님은 삽으로 흙을 한 번에 뿌리고 구멍마다 손으로 흙을 모아 주었습니다. 일하는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속도는 스님과 향존 법사님이 더 빨랐습니다.


일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 줄에 심어야 할 마늘이 부족했습니다. 급히 씨마늘로 사용하려 걸어두었던 마늘을 들고 와서 마늘 쪼개기를 했습니다. 마늘통을 쪼개 마늘쪽을 가르고 분리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려 결국 봉사자들 전체가 붙어서 마늘 쪼개기를 했습니다.


마늘을 쪼개는 동안 스님은 직접 삶은 밤을 참으로 가져왔습니다.

“제가 직접 줍고 씻고 삶은 밤이에요. 맛보세요.”


밤을 맛있게 먹은 후 마늘 쪼개기를 마쳤습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마지막 한 줄은 봉사자들에게 식사 후 심어줄 것을 부탁하고 스님은 밭을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무리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점심 식사 후 오후 1시부터는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청춘 톡톡’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1800여 명의 청년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의 일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외출이나 모임에 제약이 생기다 보니 예전보다 답답한 점도 생겼지만, 대신 우리가 이렇게 온라인으로 만나게 되는 좋은 일도 생겼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일수록 여러분보다 더 좋은 조건에 있는 사람만 쳐다보고 있으면 늘 낙담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면 현재 조건도 참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내가 어렵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때보다 더 큰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이어서 스님은 정토회 공동체 성원들이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모아서 인도의 불가촉천민 마을 아이들에게 영양식을 지원해 준 이야기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작은 돈일 수 있지만 인도의 가난한 마을에 전달이 되었을 때는 수많은 아이들의 영양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훈훈한 소식을 나누면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아버지가 너무 싫어서 인연을 끊고 싶다며, 어떻게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싶어요

“저는 아버지가 너무 싫습니다. 그래서 인연을 끊고 싶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노발대발하며 가끔씩 전화를 하거나 찾아오는데 매번 무섭고 두렵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생각과 불안함을 떨쳐버리고 싶습니다.”

“질문자는 몇 살이에요?”

“30대 후반입니다.”

“일단 스무 살이 넘었으면 성인이고, 성인은 어떤 결정을 해도 그것이 타인을 해치거나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법률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결정을 하든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입니다. 대신 아버지를 만나고 싶지 않다면 질문자가 아버지로부터 어떠한 경제적 지원이나 정서적 지원을 받을 생각도 같이 멈추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는 지원을 받으면서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안 들어주겠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질문자는 현재 아버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게 전혀 없습니까?”

“네, 전혀 없습니다.”

“스무 살 이후로 일절 지원을 안 받은 거예요? 스무 살 이후에도 지원을 조금 받은 게 있어요?”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지원을 받았고, 졸업 이후 직장을 구한 후로는 지원을 받지 않았어요.”

“대학을 다니는 동안 학비 포함해서 집에서 먹고 자고 한 생활비까지 모두 계산하면 총 얼마 정도 들었다고 생각해요?”

“천만 원 정도 든 것 같아요.”

“너무 적게 계산한 것 같기는 한데, 일단 그렇게 계산을 한다고 칩시다. 그럼 그 천만 원은 아버지께 다 갚았어요?”

“아직 안 갚았어요.”

“그렇다면 우선 그걸 다 갚고 나서 관계를 끊으세요. 스무 살 이전에 신세를 진 것은 안 갚아도 됩니다. 그건 부모의 의무이기도 하니까요. 그렇지만 스무 살 이후로 지원을 받은 건 성인과 성인 사이의 관계에서 질문자가 지원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걸 안 갚으려고 한다면 아버지로부터 잔소리를 듣거나 인사를 가거나 해서 평생 갚아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싫은 이유가 뭐예요?”

“항상 화내고 소리 지르고 따뜻하게 대해주신 적이 없어요.”

“질문자가 어릴 때 아버지가 그랬다는 거예요?”

“네.”

“그렇다면 지금 겪는 어려움은 어릴 때 생긴 트라우마로 인한 거네요. 그렇지만 아버지가 낳아주고 밥 주고 길러주고 또 대학까지도 보내준 것도 사실이잖아요.”

“네, 그렇죠.”

“법륜스님은 질문자한테 화를 내거나 고함지른 적도 없지만 동시에 밥을 주거나 길러준 것도 없어요. 아버지는 고함을 지르고 화를 내긴 했지만 그래도 질문자가 오늘 있기까지 도와주신 분이에요. 물론 화를 낸 건 잘못이지만 그래도 키워주고 대학까지 보내준 건 고맙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

“내가 원하는 아버지가 아닌 것은 맞아요. 나랑 대화도 하고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아버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길 가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길 가는 사람이 나를 먹여주고 키워주고 학교까지 보내줄리는 만무한 일이니까요. 길 가는 사람을 내가 미워하지 않는 것처럼 아버지는 적어도 길 가는 사람보다는 나은 사람이라는 관점이 분명해져야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물론 내가 원하는 아버지가 100이라면 우리 아버지는 100은 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길 가는 사람이 0이라면 우리 아버지는 0보다는 낫고, 50은 되는 아버지입니다. 그러면 이 50에 대한 감사는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과거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습니다.

감사할 게 없는데 일부러 감사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객관적으로 따져봤을 때 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아버지는 아니지만 남과 비교했을 때는 나에게 많은 혜택을 주신 분이기 때문에 감사한 겁니다. 이 관점을 가져야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고함을 지르고 야단을 치고 화를 낸 것에 대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됩니다.

어렸을 때는 내가 원하는 아버지가 아니었기에 아버지를 미워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이 들어 나도 어른이 되어 보니 비록 고함을 지르고 화는 냈지만 그래도 나를 도와주신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잖아요. 그러니 아버지는 고마운 분입니다.

이 관점이 생겨야 질문자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한 다음에도 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면 그때 관계를 끊어도 됩니다. 지금 아버지가 전화하거나 찾아오는 게 일 년에 몇 번 정도 돼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돼요.”

“아버지의 연세는 어떻게 되세요?”

“예순 넘으셨어요. 그런데 아버지를 만나거나 전화만 와도 제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한 달 정도 몸이 아파요.”

“아직 옛날에 입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서 그래요. 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를 도와준 고마운 사람이라는 관점이 생기면 과거의 상처가 치유가 되고,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고 나면 아버지 전화를 받는 것도 그리 힘들지 않게 됩니다. 전화가 와도 ‘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만 대답하면 되잖아요. 만약 아버지랑 완전히 인연을 끊고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게 되면 질문자는 후회가 안 될까요?”

“지금 생각으로는 후회할 것 같지는 않아요.”

“어릴 때 상처를 많이 입었나 보네요. (웃음)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후회할 것 같지 않으면 지금부터 인연을 끊어도 됩니다. 지금부터 아예 이사를 가서 연락을 끊고 사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그런데 아버지가 어머니 하고는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낼 거 아닌가요?”

“아버지는 새어머니랑 같이 살고 계세요.”

“아버지가 질문자를 핑계로 어머니를 보러 왔을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지만, 우선 저는 전화벨이 울리거나 초인종 소리만 나도 무서워요.”

“어릴 때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어요?”

“그런 건 아닌데 부모님이 싸우는 걸 많이 보고 자랐어요.”

“그걸 ‘트라우마’라고 해요. 지금 나에게 위협이 되는 건 아닌데 옛날에 입은 상처로 인해서 두려움이 생기는 심리현상이 트라우마입니다. 옛말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하는 말이 있잖아요. 이게 요즘 말로 하면 트라우마, 즉 마음의 상처예요. 우선 이것부터 치유를 해야 합니다. 이걸 치유하려면 이렇게 되뇌면서 매일 108배 절을 해보세요.

‘그래도 아버지는 남보다 고마운 사람이다’

비록 내 마음에 드는 아버지는 아니지만 남보다 고마운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이잖아요. 질문자는 혹시 아버지가 어머니와 헤어지고 난 다음 새어머니와 재혼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어요?”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재혼하는 건 아버지의 권리니까 문제 될 게 없겠죠?”

“네, 다만 평소에 저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전혀 없으셨고, 새어머니와 재혼을 할 때도 제 상황이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으시고 새어머니 편만 드셨어요. 또 항상 본인의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하셔서 평소에도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데 막상 아버지는 계속 교류하는 걸 원하니까 찾아오시는 거예요.”

“왜 교류하는 걸 원하신대요?”

“남들도 자식들이 연락하고 찾아오고 하니까 자신도 그런 것을 바라시는 거죠.”

“그러면 먼저 저를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후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그런데 저는 어릴 때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아버지만 보면 가슴이 뛰고 힘들어요. 그러니 당분간 안 보도록 배려해주세요’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세요.”

“그렇지 않아도 제가 아버지를 보면 계속 울고 말을 잘 못하니까 편지를 써서 드렸는데도 전혀 이해를 못하시고 본인이 잘해주신 것만 생각하시고 ‘네 말을 못 믿겠다, 네가 엄마한테 조종을 당한 거다’ 이러시면서 계속 찾아오세요.”

“어머니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머니도 기본적으로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전화가 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세요.”

“누구나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으니까 아버지한테 계속 말씀을 드리세요. 찾아오시면 따뜻하게 대해드리되 계속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무조건 반대하기보다 항상 ‘저를 보살펴 주신 건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먼저 해야 해요. 그러고 나서 말을 하는 겁니다.

‘제가 어릴 때 입은 상처가 너무 커서 아버지를 보면 제가 너무 힘이 듭니다. 그러니 저를 위해서 당분간 관계를 멈추어 주십시오. 제가 상처가 치유되면 그때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최소한 열 번 정도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마음을 먹으세요.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질문자가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말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긴장한 상태로 말을 하니까 부작용이 생기는 겁니다. 우선 매일 108배를 하면서 이렇게 되내어 보세요.

‘제가 원하는 만큼의 아버지는 아니지만 남보다는 나에게 큰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자꾸 되뇌면서 질문자 속에 있는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버지가 찾아오더라도 마음이 편안하고, 어느 날 돌아가셨다고 해도 후회가 안 돼요. 이것은 아버지를 위한 게 아니라 질문자 자신을 위한 거예요.

이렇게 마음의 상처를 계속 치유하면서 아버지가 찾아오실 때마다 아버지가 안 들을 걸 알면서도 계속 말을 하는 거예요.

‘저를 키워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제가 어릴 때의 상처가 너무 커서 만나면 아직도 후유증이 있습니다. 이게 치유되면 찾아뵙겠습니다’

한 번 이야기를 하면 다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되든 안 되든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고 마음먹고 이야기하면 곧 괜찮아질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어렵게 취직한 첫 직장이 적성에 안 맞아 그만두고 재취업을 하려니, 진로에 확신이 들지 않고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구직활동에 임해야 할까요?
  • 국제결혼을 하고 모국이 아닌 환경에서 장기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어떤 마음으로 지내야 괴롭지 않을까요?
  • 저는 어떤 것에 잘 사로잡힙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눈치를 계속 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괴롭지 않게 살 수 있을까요?

즉문즉설을 마치고 나서 스님이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싶다고 질문했던 분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문제가 살면서 제게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스님의 말씀대로 관점을 잡고 108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 아마도 절을 하다가 염주를 벽에 집어던지고 ‘내가 이런 사람한테 왜 감사하다고 해야 하지?’ 하면서 감정이 폭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치고 한 고비를 넘기면 ‘아, 아버지도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겠구나’ 하고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내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면 아버지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 바로 내 상처가 치유되는 원리입니다.”

마지막으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방청객들도 소감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만 집에 오면 심장이 쿵쿵 뛸 정도로 무서웠어요. 어머니가 불안해하시니까 저까지 덩달아 불안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15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게 되면서 ‘아버지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고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정토회를 만나 매일 108배 수행을 하게 되었고, 남녀 사이에 헤어지는 것은 착하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안 맞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지금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만나서 잘 살고 있는데, 예전보다 훨씬 아버지를 편안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질문자 분도 108배 절을 하면서 내 마음의 불안을 먼저 치유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아버지를 많이 미워했습니다. 그러나 스님 법문을 듣고 백일출가도 하면서 아버지에 대해서 미워했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났습니다. 작년에 아버지가 갑자기 위독해지셨는데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병간호를 하면서 좋은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얼마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후회하는 마음 없이 아버지를 잘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질문하셨던 분도 아버지에 대해 감사해하는 기도를 꼭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본인의 경험을 진솔하게 나눠준 덕분에 훨씬 더 훈훈해진 마음으로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에는 손님들이 찾아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손님들을 배웅하고 나니 밤이 깊었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밤을 줍고, 8시에 영어로 외국인을 위한 즉문즉설을 하고, 산 밑밭에 땅콩 수확을 한 후, 오후 1시에 통일축전 온라인 행사에 참여하고, 3시에 주말 명상수련 회향식 법문을 하고,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명상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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